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잉여인간(剩餘人間) (2)
“오. 드디어 깨어났나.”
비키르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시계탑 위에 피어난 거대한 꽃. 그것은 웃는 것처럼 죽 찢어진 아가리를 벌려 인간을 씹어먹는다.
으드득- 뿌득- 찔걱찔걱……
시뻘건 핏물에 뼛조각과 살점들이 섞여 질질 흐르고 있었다.
피가 스며들자 미이라처럼 빼짝 말라 있던 주변의 넝쿨들이 아주 약간은 주름이 펴진 것처럼 보였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모든 학생들이 겁을 집어먹고 물러섰다.
요정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이 식 물 은 하 루 에 한 번 사 람 을 잡 아 먹 어 요 ? 아 직 작 아 서 하 루 한 명 이 면 충 분 하 겠 네 요 ? 산 것 도 죽 은 것 도 잘 먹 어 요 ? ]위험등급 S. ‘혈수(血水)의 옥잠화(玉簪花)’.
미성숙개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사람 하나를 잡아먹어야만 한다는 강력한 마수(魔樹).
이놈은 전 스테이지에서 만났던 헬하운드 따위와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위험한 존재이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은 학생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시계탑 위의 식인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런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69일을 버티라고?”
“아, 아니야. 이제는 68일이라잖아!”
“젠장! 그거나 그거나!”
“진정해! 하루가 줄어든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줄어들었는지가 중요해!”
“어쩌면 여기서 더 줄일 수 있는지도 몰라!”
방금 전 한 명이 죽자 버텨야 하는 일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68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식량도 물도 제한적인데다가 하루에 한 명씩 이 괴물의 먹잇감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다들 공포와 초조함으로 눈치를 보고 있다.
그 와중에 옥잠화는 긴 혀를 뻗어 이빨 사이에 낀 고기조각들을 빼낸 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보 셨 죠 ? 먼 저 덤 비 지 만 않 으 면 괜 찮 아 요 ? ]그러나 뒤에 이어진 요정의 말은 옥잠화가 다시 잠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학생들의 표정을 다시금 딱딱하게 굳게 만들었다.
[ 뭐 , 내 일 또 깨 어 나 겠 지 만 ? ]악몽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제 학생들은 이곳에서 68일 동안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혈수의 옥잠화와 싸워야 한다.
몇몇 학생들이 이를 악물고 옥잠화의 줄기를 공격해 보았지만 애초에 위험등급 S급 마물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탑 바깥에서의 힘에 비해 100배나 약해져 있는 학생들로서는 더더욱.
“틀렸어. 마나도 제대로 모이지 않아.”
“꺄아아아악! 나는 저런 괴물이랑 한 공간에 있기 싫어! 싫다구!”
“하지만 폐허는 너무 춥다고. 싫어도 저 괴물 옆에 꼭 붙어 있지 않으면…….”
“크윽! 나는 차라리 콘크리트 하수도 속에서 얼어 죽을래!”
“저 식물이 너 하나를 못 찾을 것 같냐? 아까 뿌리랑 넝쿨 쭉쭉 뻗어 나가는 것 못 봤어?”
“아아, 어떻게 하라는 거야.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여기서 68일을 어떻게…….”
학생들은 좌절했다.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무서워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요정이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 너 무 낙 담 하 지 들 마 세 요 ? 제 가 특 별 한 선 물 을 드 릴 게 요 ? ]동시에. 생존한 학생들 모두의 눈앞에 기묘한 것들이 생겨났다.
…퍼퍼퍼퍼펑!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학생들의 품 안으로 각각 떨어져 내린 것은 하나의 상자.
그것은 사람 머리통 하나 크기의 검은색 정육면체였고 뚜껑 부근에 ‘?’ 라는 붉은색 기호가 적혀 있었다.
[ 무 기 하 나 없 으 면 불 안 해 하 실 까 봐 특 별 한 선 물 을 준 비 했 어 요 ? 무 엇 이 들 어 있 는 지 는 랜 덤 ? ]요정의 말에 의하면 이 안에는 ‘아이템’, 탑 밖에서는 아티팩트나 오파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구들이 들어있다고 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무작위 랜덤, 운이 좋으면 강하고 쓸모 있는 아이템을 뽑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허접쓰레기가 나올 것이다.
“좋았어! 난 이런 가챠 뽑기에 강한 편이지. 내 운을 보여 주겠어!”
한 학생이 제일 먼저 상자를 열었다.
상자는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안에 든 것을 꺼내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상자를 뒤집는다거나 부수는 것으로는 내용물을 꺼낼 수 없었다.
“어디 보자. 뭐가 들었나?”
학생은 상자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 순간.
…와그작!
기분 나쁜 파육음(破肉音)이 들려왔다.
“어?”
상자 밖으로 팔을 꺼내자 손이 손목 부근에서부터 뚝 끊겨 사라져 있는 것이 보인다.
“끄아아아아악!?”
학생이 피를 펑펑 뿜어내는 팔을 붙잡고 쓰러지자 검은 상자도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 가 끔 ~ 드 물 게 ‘ 꽝 ’ 도 나 와 요 ? 미 믹 같 은 것 ? 이 라 거 나 ? ]요정의 말은 랜덤박스를 보고 아주 약간이나마 희망을 가졌던 학생들의 표정을 다시 한번 죽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학생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눈앞에 떨어진 랜덤박스를 여는 학생들과 열지 않는 학생들로.
대부분은 방금 전 상자를 열려다가 손목이 날아가는 경우를 봤기에 상자를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자를 여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안 열면 어쩔 거야? 앉아서 굶어죽을 수는 없잖아.”
“배고파 죽기 전에 뭐라도 얻어 봐야지.”
“빌어먹을. 손목 하나쯤은 각오한다 이거야!”
“무기야 나와라! 제발! 내 몸 하나 지킬 만한 거라도…….”
이윽고, 랜덤박스를 깐 결과물들이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공개되었다.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역시 ‘이상한 사탕’이었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의 순서대로 많이 떨어지는 사탕들.
그 뒤로 누구는 귀부인들이나 쓸 법한 깃털 풍성한 부채를, 누구는 섬뜩하게 날이 선 철검을, 누구는 작은 하모니카를, 누구는 들지도 못할 만큼 육중한 철퇴를, 누구는 소금과 후추를, 누구는 육포와 식수를, 누구는 농사짓는 농기구를…….
랜덤박스 속에서 떨어지는 아이템들은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랜덤박스를 여는 그룹 말고도 일부 머리 좋은 학생들 그룹은 현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 일수가 69일이었다가 68일로 줄어들었지?”
“그새 24시간이 지나가서 카운팅 된 것은 아닐 거란 말이지?”
“아무래도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 시간은 우리 하기 나름인 것 같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생존자 수가 69명이라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설마 사람 수가 줄어들수록 버텨야 하는 일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겠지?”
“악마 놈들의 머리라면 충분히 그런 계획도 가능해.”
맨 처음 이곳에 온 생존자들의 수는 69명.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 일수도 69일.
하지만 한 학생이 옥잠화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 뒤 생존자의 숫자는 68명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 일수도 68일로 줄어들었고 말이다.
결국 학생들은 무서운 추리 결과를 내놓았다.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 날짜의 일수는 생존자의 숫자와 동일.
……만약 생존자의 숫자가 줄어들 경우 버텨야 하는 날짜의 일수도 줄어든다면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녀석들이 나올 거야. 어쩌면 그 전에 식량 다툼과 원한 관계에 의한 폭력사고가 발생해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르지.”
“아주 나쁘지만은 않네. 버텨야 하는 일수가 줄어들 테니까.”
“그래도 폐허를 잘 뒤져 보니까 식량이 아주 없지는 않더라. 대부분 상했거나 썩어 있는 게 문제지만.”
“여차하면 뭐 이 뚱보 녀석부터 잡아먹어 버리지 뭐. 크크크-”
“뭐?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해. 재미없게!”
“……농담 같냐?”
“…….”
사람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3일에서 7일 사이.
약간의 물을 마실 수 있다면 20일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춥고 황량한 폐허에서 식량도 없이 68일이나 버티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 것이다.
더군다나 당장 내일 이 시간에 옥잠화가 깨어난다면 그것도 문제다.
“어차피 한 명만 먹으면 다시 잠든다잖아. 그러면 모두 죽어라 도망치고 발이 느린 녀석부터 잡아먹히게 냅두면 어떨까?”
“그게 제일 공평한 것 같다. 요컨대, 자연선택설이라는 것이지.”
“그래 맞아. 느리면 죽어야지 뭐.”
“애초에 저 옥잠화란 게 그렇게 강해? 그냥 다 같이 싸우면 안 되나?”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을 때.
요정이 또 깜빡했다는 듯 첨언했다.
[ 맞 다 ? 옥 잠 화는 많 이 움 직 일 수 록 짜 증 을 내 요 ? 6 8 명 정 도 는 한 번 에 도 먹 어 치 운 답 니 다 ? 많 이 움 직 이 지 않 게 끔 하 는 게 상 책 이 겠 죠 ? ]말을 마친 요정은 옆에 있던 건물의 창문 안쪽을 가리켰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수북하게 쌓인 뼛조각들이 가득했다.
전부 다 크고 굵은 뼈다귀들.
그것은 주변 지형과 함께 온통 산산조각나 있는 헬하운드의 사체들이었다.
요정은 낄낄 웃으며 홀로그램 창 하나를 띄웠다.
그것은 이전 스테이지에서 상대했던 헬하운드들이 혈수의 옥잠화를 상대로 싸우는 장면이었다.
거진 일백 마리에 육박하는 헬하운드이 각자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혈수의 옥잠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깨갱!
100마리의 헬하운드들은 혈수의 옥잠화를 상대로 단 10초도 버티지 못했다.
10초에서 8초 사이의 3초 동안 절반에 해당하는 50마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줄기에 맞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7초에서 4초까지 4초 동안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숫자인 40마리가 바닥에서 튀어나온 뿌리에 맞아 피떡이 되어 바닥에 눌어붙었다.
3초에서 카운트가 0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헬하운드 5마리가 시계탑 위의 꽃의 중앙 술 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 숨결에 맞아 한 줌 혈수로 녹아내렸다.
그 이후로 옥잠화는 헬하운드의 시체들을 얼마간 먹다가 이내 질렸는지 다른 장소로 옮겨가 버린다.
전멸.
“…….”
학생들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전 스테이지에서 학생들을 그토록 괴롭혔던 헬하운드들 조차도 이 꼴이다.
옥잠화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포악해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경우 한 번에 68명을 전부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에는 하루 한 명, 인신공양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뜻.
소름끼치는 정적이 감도는 폐허. 살아남은 68명의 학생들이 눈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괴물에게 바쳐질 제물로 선택될 수도 있다는 위험.
더군다나.
“저 식인꽃 말이야. 시체를 던져 줘도 먹고 잠들겠지?”
“그럴 거야. 아까 산 것도 죽은 것도 모두 먹는다고 했으니까.”
“그럼 마냥 하루에 한 명씩 먹혀서 다 죽는 게 아니구나.”
“그렇겠지. 결국 다 죽는 거면 그냥 죽으란 소리뿐이잖아.”
“……그래, 그렇다면 됐어. 어쨌든 시체도 먹는다는 거지? 일이 수월해지겠군.”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오히려 전 스테이지보다 더 쉬울지도?”
다른 학생들을 향해 위험한 시선을 보내는 몇몇 이들까지.
폐허의 분위기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