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잉여인간(剩餘人間) (4)
“……내가 먹이가 되겠다.”
모든 학생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손.
비키르가 학생들의 앞으로 나섰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그 얼굴은 마치 선심 써서 오늘의 방 청소나 설거지 따위의 사소한 일을 대신 해 주겠다는 사람의 것 정도로 보인다.
…….
좌중이 일동 침묵에 잠겼다.
여기서 비키르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1학년 슈퍼루키.
스포츠면 스포츠, 성적이면 성적,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여러모로 상당히 유명인사일 수밖에 없다.
경매에서 귀족파와 호족파를 동시에 물 먹인 사건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귀족파의 3학년 고든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저 식인꽃의 제물이 되겠다고?”
“그래.”
“제물이 뭔지 몰라? 아니, 너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떨어지면서 머리를 어디에 부딪쳤다거나.”
그들은 비키르가 헬하운드 무리와 케르베로스를 사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비키르가 어지간한 고학년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이 상황이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무심한 어조로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내가 먹이가 되겠다. 싫다면 다른 자원봉사자를 알아보든가.”
말을 마친 비키르는 고개를 돌려 고든의 양옆으로 늘어선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피와 땀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하나같이 명품이 분명해 보이는 비싼 옷들.
그들은 아마도 귀족파의 학생들일 것이다.
비키르의 시선을 받은 모든 이들이 몸을 움츠리며 뒤로 숨어들었다.
“우리 그룹 멤버들은 절대 안 된다 이건가?”
비키르의 질문에 고든을 비롯한 귀족파 학생들이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비키르는 태연하게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 어차피 다른 학생들을 사냥해서 옥잠화의 비료로 쓸 생각 아니었나?”
그 말에 모든 학생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비키르는 뒤에서 들은 말이 있었기에 귀족파 학생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저 식인꽃 말이야. 시체를 던져줘도 먹고 잠들겠지?’
‘그럴 거야. 산 사람만 잡아먹는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됐어. 일이 수월해지겠군.’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오히려 전 스테이지보다 더 쉬울지도?’
그러나, 귀족파의 학생들은 비키르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무, 무슨 소리야! 미쳤어!? 어떻게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아니었나?”
“당연히 아니지!”
“…….”
“진짜야! 믿어줘!”
고든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비키르의 경고를 들은 다른 학생들, 그러니까 귀족파가 아닌 이들은 슬며시 귀족파 학생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제 귀족파가 전처럼 분위기를 확 휘어잡지는 못하게 되었다.
고든은 슬금슬금 자신을 피하는 학생들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 그래서 뭐 어쩌라구! 뭘 말하고 싶어서 나온 건데 너!”
“처음에 말하지 않았나. 내가 먹이가 되겠다고 했다.”
“그럼 그냥 먹히든가! 알아서 해!”
“안 그래도 그럴 것이다. ……다만.”
비키르는 말을 잠시 끊은 뒤 모두를 돌아보았다.
“나 이후로 아무도 죽지 않을 방법을 말해 주려고 하는 것뿐.”
그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다시 비키르를 향해 고정되었다.
하나같이들 절실한 표정.
고든부터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기세로 비키르를 향해 엉거주춤 다가온다.
“뭐? 그, 그런 방법이 있어? 뭔데? 설마 그새 마음이 변해서 거짓말을 하려는 것이라면…….”
하지만 비키르는 고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잡는다.”
“……뭐?”
고든이 말을 하다 말고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비키르는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혈수의 옥잠화를 잡을 것이다.”
그 말에 주변 학생들의 표정이 멍하게 바뀐다.
“뭔 개소리야 미친……!”
“아까 요정이 보여 주는 영상 못 봤……!”
“아, 진짜. 괜히 시간만 낭비했……!”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나오려는 찰나.
…콰쾅!
무시무시한 폭음이 모두의 고막을 찢어발길 듯 두들겼다.
주먹을 들어 보인 비키르가 그대로 시계탑의 벽을 내리찍어 버린 것이다.
쩌저저저적- 우르릉!
대각선으로 갈라진 균열은 쭉쭉 뻗어나가 시계탑의 돌기둥 하나를 통째로 무너트려 버렸고 그 너머에 있는 교각들까지 줄줄이 붕괴시켰다.
“…….”
모든 학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비키르는 다시 한번 말했다.
“혈수의 옥잠화는 내일 나 혼자서 잡는다.”
“…….”
그러시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으랴. 학생들은 그저 입만 딱 벌린 채 어버버 말을 뭉갤 뿐이었다.
그때, 비키르가 팔짱을 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뭐, 뭔데 그게?”
고든의 질문에 비키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랜덤박스. 사탕.”
“……!”
“너희들의 것 모두가 필요하다.”
그 말에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랜덤박스를 개봉한 학생들은 그 안에서 나온 사탕들, 혹은 잡다한 아이템들을, 개봉하지 않은 학생들은 랜덤박스 자체를 들고 망설인다.
고든 역시 마찬가지였다. 랜덤박스를 까서 나온 이상한 사탕 15개를 들고 있던 그는 속으로 죽상을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탕을 받자마자 모두 먹어 버릴걸.’
하지만 비키르는 그들의 속마음을 모조리 꿰고 있었다.
“지금부터 사탕을 먹는 사람들은 거래대상에서 제외하겠다.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제외하겠다는 건 무슨 말이지?”
“알아서 생각해라. 나는 다 계획이 있다.”
그 말에 모두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랜덤박스와 거기서 나오는 아이템이라는 것 자체가 혈수의 옥잠화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지급받은 것.
그것들을 소모함으로써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토록 간사한 법이다.
막상 자신의 손에 쥔 것을 공익을 위해 내놓기란 쉽지 않은 법.
리더 격이었던 고든부터가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학생들은 오죽할까.
비키르는 머뭇거리는 고든과 그 옆의 귀족파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아까는 자기 사람들을 절대 잃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었는데. 겨우 랜덤박스라는 대가 하나도 치르지 못할 만큼 값싼 관계였던가?”
“그, 그럴 리가 있나! 랜덤박스가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야! 네가 우리들의 랜덤박스와 사탕을 먹고 튈지도 모르니까, 그런 점을 경계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럼 랜덤박스를 아직 나에게 넘기지 말고 가지고 있어라. 내일 옥잠화가 깨어나면 내가 그 앞으로 가서 서 있지. 그러면 일정 거리를 두고 그곳에 랜덤박스를 쌓아둬라. 너희들은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고.”
계약이 깨질 것 같으면 서로가 각자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다.
비키르가 배신한다면 학생들은 앞으로 내달려 랜덤박스를 회수하면 된다.
학생들이 배신한다면 비키르는 빠른 발과 강한 힘을 이용해 반대쪽으로 도망쳐 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랜덤박스와 사탕의 수만 잘 지켜진다면 말이야.”
“……으음. 그런데 꼭 랜덤박스랑 사탕이어야겠나? 탑 밖으로 나갔을 때 돈을 준다거나, 아니면 좋은 취업 자리를 무조건적으로 배정해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는 안 되겠나?”
“아니. 무조건 랜덤박스와 사탕이다. 다른 아이템들도 싹 다 모두.”
탑 밖에서의 약속이 공허할 뿐이라는 것은 여기 있는 학생들조차도 아는 사실이다.
모두가 체념하려는 그때.
“여기 있어. 비키르.”
그르누이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다.
녀석의 눈은 왜인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네가 달라고 하면 줘야지. 우리는 ‘친구’잖아. 서로 신뢰하는!”
비키르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윽고, 비키르는 그르누이가 건네는 랜덤박스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까는 순간.
…꽈득!
랜덤박스는 터지지 않고 그대로 비키르의 손목을 깨물었다.
미믹. 그르누이의 랜덤박스는 ‘꽝’이었던 것이다. 겉보기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르누이의 얼굴에서 피가 싹 빠져나간다.
“으아아아아아악!? 세상에! 비키르 괜찮아!? 아, 아니야! 나도 몰랐어! 지, 진짜야! 진짜 몰랐는데, 으으……! 아니야,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약! 어서 약을!?”
하지만 비키르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진정해라.”
비키르는 미믹에게 물린 팔에 힘을 콱 쥐었다.
그리고는.
뿌각!
다른 손으로 미믹의 위를 후려갈겨 그대로 부숴 버렸다.
상자 모양의 외골격이 깨지자 그 안에서 혓바닥과 내장, 이빨들이 핏물과 함께 울컥울컥 쏟아져 내린다.
미믹의 밖으로 꺼낸 비키르의 손목에는 상처 한 점 없었다.
“마음만 받아야겠군.”
“…….”
그르누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다시 반짝반짝하는 시선을 보낸다.
“역시! 역시 나의 친구!”
그것을 본 모든 학생들이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에 꽤 강한 3학년 생도 하나가 미믹에게 당해 너무도 허무히 손목을 잃는 것을 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비키르의 요구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꼭 넘겨줘야 할 것이 있지.”
“……제기랄, 뭐가 또 있어?”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비키르는 입을 열어 마지막 요구사항을 말했다.
“한 사람분의 몸뚱이가 필요하다.”
“……!”
고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방금 전에 요구당했던 랜덤박스나 사탕과는 차원이 다른 요구.
“무, 무슨 소리야. 사람 몸을 왜 달래? 애초에 시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네가 나선다는 거잖아.”
“사람의 몸이 필요한 것은 처음의 한 번 뿐이다. 현재 혈수의 옥잠화는 지나치게 말라비틀어져 있어서 피부가 굉장히 단단하지. 그 탓에 느려졌기는 하지만 나 역시도 공격을 박아넣기 힘들다.”
그르누이는 비키르가 혈수의 옥잠화의 살점을 힘들게 베어내는 것을 본 적 있다.
또한 다른 학생들 역시도 헬하운드들이 혈수의 옥잠화의 넝쿨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하고 전멸당하는 것을 본 상태였기에 모두가 비키르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고든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제기랄.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그래서, 누구의 몸을 제물로 바칠 건데?”
결국은 전에 했던 논의를 다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죽을 것인가?
공부를 못하는 학생?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
친구가 별로 없는 학생?
아니면 단순히 힘이 없는 학생?
이 모든 의문들을 앞에 두고 비키르는 다시 한번 칼을 뽑아들었다.
“그것은 지금부터 내가 결정해 주마.”
바로 그 순간.
…와르르! 콰콰콰쾅!
방금 전 비키르가 주먹의 힘으로 부숴 놓은 돌기둥들이 그제야 무너져 내렸다.
이 광경을 본 학생들은 비키르가 탑 안에서 100배나 약해졌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현실을 부정하며, 그러나 필연적으로 도출할 수밖에 없는 결론을 입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소드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