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언더도그마 (1)
-띠링!
[지하 3층 ‘익숙한 땅’을 벗어났습니다] [지하 4층 ‘흑해(黑海)의 섬’에 진입합니다]지하 3층의 황도 구역이 점점 아스라진다.
딱 발뒤꿈치까지를 적셨던 거대한 쓰나미도 더 이상은 따라오지 못했다.
68인의 생존자 전원은 1인용 게이트를 통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비키르가 눈을 뜬 곳은 지하 4층의 세계였다.
“으음. 바다인가.”
비키르는 얼굴에 붙은 마른 모래들을 쓸어냈다.
습기 찬 해풍이 불어오는 곳.
비키르는 시커먼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있는 섬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 위에 봉긋 돋아난 흙무덤과 같은 외형이었다.
앙상한 고사목들이 회색빛 안개 속에서 뼈다귀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첨벙-
비키르는 해변으로 가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물은 전체적으로 시커먼 빛깔을 띠고 있었다.
팔꿈치까지만 물에 담가도 금세 손등이 보이지 않게 된다.
부력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머리카락이나 옷자락 등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첨벙- 첨벙-
손을 휘저어 보니 움직임이 극도로 둔해진다.
물 자체도 일반적인 물에 비해 훨씬 더 무거운 느낌.
“……이게 그 ‘흑수(黑水)’라는 것인가?”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끝, 아주 머나먼 대양 어딘가에 있다는 바다.
그곳의 바닷물은 검고 무거우며 아무것도 띄우지 않는다고 한다.
납을 녹인 것처럼 걸쭉하고 무거운 이 검은 바닷물에 빠진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뜨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뱃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절대 진입하면 안 되는 금기의 구역이라나.
“하긴. 멀쩡히 항해하고 있던 배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가라앉아 버릴 테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수평선 저 너머에는 사나운 풍랑이 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섬 주위를 빙 둘러 가두듯 휘몰아치고 있는 폭풍우.
비키르는 바닷물을 털어내고는 다시 해변으로 돌아왔다.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을 지나 다시 고사목들의 숲으로 돌아오자 이제는 흰 흙이 보인다.
“이건 균사(菌沙)로군.”
흙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에 청국장처럼 끈적한 실이 하얗게 늘어져 있다.
섬의 절반은 검은 모래, 나머지 절반은 흰 흙.
실로 기묘한 생태계였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서 한 조각씩을 뚝뚝 떼어와 억지로 바느질 해놓은 것처럼.
“……흙은 말라붙고 나무들은 죽고.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개의 지형이 억지로 섞인 결과인가.”
누가 이런 기묘한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는 뻔하다.
[암두시아스는 세계관 흡수자다.]가슴팍의 데카라비아가 입을 열었다.
[놈은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세계의 일부를 떼어내어 나락수 속에 보관하지. 그 안에는 다양한 누더기 공간이 생기는데 이것도 그중 하나다.]위층에서 본 콜로세오 아카데미나 황도의 시가지를 생각하면 확실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일부를 흡수할 때 그곳에 살던 생명체들은 어떻게 되나?”
[함께 끌려오게 되지. 탑에 도전하는 도전자의 위치로 말이야.]그렇다는 것은 이 탑에 비키르보다 먼저 들어온 선주객(先駐客)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인간이든 마물이든 간에.
그때.
“……!”
비키르는 섬의 중앙 부근에서 기묘한 것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말라죽어 있는 흑과 백의 세계 정중앙에 우뚝 솟아나 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나락수의 잔뿌리인가.”
땅에서 솟아나 있는 그것은 가지도 줄기도 잎사귀도 없이 그저 거대하게 뒤틀려 있었다.
아마도 나락수의 본체에서 뻗어 나왔다가 길을 잃고 이곳까지 돋아난 존재로 보인다.
비키르는 나무뿌리를 타고 올라가 보았다.
검고 단단한 나무껍질을 한동안 타고 올라가자 옹이구멍 하나가 보였다.
그곳에는 피처럼 붉은 수액이 퐁퐁 샘솟아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키르는 그것을 한번 손가락으로 콕 찍어먹어 보았다.
“먹을 수 있겠군.”
맛에서는 엷게나마 단맛이 났다.
비록 잔뿌리 끝인지라 수액의 농도가 묽고 그 양이 얼마 되지 않기는 했지만 사람 하나쯤은 충분히 먹고살 만큼의 양은 되었다.
회귀 전에 읽었던 대영웅들의 회고록에서도 나락수의 잔뿌리에서 나오는 수액을 먹고 살아남았다는 기록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 섭취해도 좋을 것이다.
비키르는 옹이구멍에 머리를 대고 수액을 빨아 마셨다. 마치 벌레가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생존에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밍밍한 액체가 비키르의 마른 목을 축여 주었다.
바싹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던 내장도 간만에 촉촉하고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이만하면 됐다.”
비키르는 적당히 마시고는 수액에서 입을 뗐다.
옹이구멍 안에는 아직 상당량의 수액이 남아 찰랑거리고 있었지만 비키르는 더 이상은 입에 대지 않았다.
데카라비아가 말했다.
[잘 생각했다 인간. 나락수의 수액은 한 번에 음용 가능한 양이 정해져 있지. 그것을 넘기면 마물화되기 십상이다.]“알고 있다.”
비키르가 막 나무뿌리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
“어이! 넌 뭐냐!?”
아래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저쪽의 언덕 방향에서 몇 명인가의 학생들이 경계심 어린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지하 3층에서는 못 보던 얼굴들.
하지만 같은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서 다들 안면은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비키르를 향해 계속해서 외쳤다.
“누구 마음대로 그 수액을 마신 거야!”
“이번에는 우리 차례였다고!”
“어디서 굴러먹다가 온 놈이 우리 것을 훔쳐먹어!”
그들은 비키르보다 먼저 이 층에 떨어진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비키르도 68일이 넘는 시간을 보낸 뒤에 이곳에 떨어졌어야 했는데 요정이 즉흥적으로 미션을 종료해 버리는 바람에 다른 이들과 섞여든 듯싶었다.
‘흐음. 그렇다면 이놈들은 나보다 먼저 지하 3층의 미션을 클리어했다는 건가.’
탑 안에서는 층별로 시간 개념이 제멋대로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비키르는 아래에 있는 학생들을 쭉 돌아보았다.
물론 그들이 다가 아니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엥? 새로운 놈이 왔네.”
“누가 왔어? 혹시 귀족 출신이야? 아니면 호족?”
언덕 위로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학생들.
하나같이들 다 빼짝 말랐고 눈에는 핏발이 흉흉하다.
지하 3층에서 혈수의 옥잠화를 맞닥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들이니만큼 바짝 독이 올라있을 수밖에.
그때, 학생들 중 리더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콜로세오 아카데미 열병기부의 3학년 도그마다. 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지. 내 얼굴쯤은 알고 있겠지?”
묘하게 우쭐거림이 느껴지는 대사였다.
물론 비키르는 그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었다.
‘도그마. 평민. 언더독 시(市) 출신. 열병기부의 3학년이고 학년 차석. 기말고사 결승전에서 돌로레스에게 패했던 녀석이군.’
본인이 평민 출신이라는 것에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학생회장이자 학년 수석이며 출신 가문도 고귀한 돌로레스에게 엄청난 경쟁의식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 남학생이다.
도그마는 비키르를 향해 말했다.
“네가 누군지 안다. 냉병기부 1학년의 비키르지? 보아하니 뒤늦게나마 ‘우리 층’에 합류한 모양인데.”
그는 마치 층 전체가 자신들의 것인 것마냥 고압적인 자세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곳에는 룰이 있어. 옹달샘의 수액 양이 많지 않으니 시간을 정해서 차례차례 수액을 먹는 것이다. 너는 그 룰을 어겼어.”
“……그 룰은 누가 만들었지?”
비키르가 묻자 도그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우리 ‘평민파’지.”
“……평민파?”
비키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콜로세오 아카데미에는 3개의 세력이 있다.
공식 조직인 학생회. 그리고 비공식 조직인 귀족파와 호족파다.
하지만 평민파라는 조직은 없었다. 애초에 평민이라는 신분 주제에 파벌을 결성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군. 탑 안에서 새로 생겨난 개념인가.’
세상 밖은 돈 많고 힘센 놈들이 지배한다. 귀족과 호족, 그리고 엘리트들.
유구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이 지배구조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고 계층 간 이동은 점차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이 굳어졌다.
비록 47인 소요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모두 잔혹하고 완벽하게 진압당했다.
즉, 아래 계층의 존재들은 절대로 상위의 계층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지.”
도그마는 씩 웃었다.
세상 밖을 지배하고 있는 힘의 논리,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시스템이 이곳에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제로베이스. 모든 것이 완전히 공평한 세상.
돈 많고, 예쁘고, 잘생기고, 신분 높고, 공부 잘 하고, 힘세고…… 세상에서 우위에 서게 만들어 주었던 모든 기준들이 이곳에서는 전부 다 0, 공평한 시작점으로 되돌아온다.
기회의 완전균등. 노력만 하면 누구든 위로 갈 수 있는 세상.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져야 했던 낮은 신분, 못생긴 외모, 약한 육체, 형편없는 재능, 가난한 집안…… 이 모든 것들을 싸그리 다 뒤집어엎을 수 있다.
언제나 이쪽을 내려다보던 것들보다도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평민 부모를 만났다는 원죄(原罪)로 태어나서부터 불이익을 받았던 우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 모든 것은 레벨과 스탯! 그리고 공들인 만큼 정직하게 돌아오는 보상! 이제 우리 평민들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도그마는 주위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모여든 이들 스무 명 가량은 전원이 다 평민들이었다.
도그마는 기이한 열기가 어려있는 목소리로 비키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너도 평민이지? 다 안다. 그동안 서러웠겠지.”
“…….”
“나 역시도 그랬다. 귀족, 호족 놈들은 평민 출신이 뭔가 잘하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지. 비록 돌로레스 그년 때문에 수석은 한 번도 못 했지만 지금까지 차석은 놓쳐 본 적이 없어.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는 학생회의 부회장까지 되었지. 그동안 무수히 많은 모멸의 시선, 굴욕을 겪어왔다.”
“…….”
“그래. 말 안 해도 다 알아. 귀족파와 호족파를 경매에서 물 먹인 게 너지? 그때부터 너를 주목해 왔다. 부모 잘 만나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고작인 병신 머저리 새끼들이 너를 음해하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지. 나름대로 돕고 싶었지만 그때는 나 역시도 내 앞가림 하기 벅찼어.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있다, 비키르. 손을 잡자. 언제까지 윗세대들이 만든 착취 구조 밑에서 피만 빨릴 것이냐?”
도그마의 연설을 들은 주변의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촉촉이 붉힌다.
섬에는 때 아닌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어쨌지?”
비키르가 찬물을 끼얹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하 2층에서 지하 3층으로 적어도 50명 정도가 살아남아 떨어졌을 것이다.
헬하운드를 운 좋게 피한 그들은 말라붙어 있는 혈수의 옥잠화를 맞닥뜨렸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했으리라.
그리고 여기 모인 스무 명 가량의 평민들은 그 선택에서 살아남은 이들.
비키르는 다시 물었다.
“평민이 아닌 급우들을 어떻게 했나?”
그러자 도그마가 대답했다.
“그야 뻔하지. 너도 지하 3층을 거쳐 왔을 게 아니냐. 그것들은 모두 먹이가 되었다.”
“누구의?”
“…….”
비키르의 거듭된 질문에 도그마는 대답 없이 그저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너무 따지지 마라. 이곳은 신분질서 역전의 땅이야. 개, 돼지만도 못한 귀족 놈들의 운명에는 이것이 제격이지.”
이윽고, 학생들이 도그마의 손짓에 따라 좌우로 갈라졌다.
철그럭- 철컥!
몇몇 학생들이 폐허에서 주운 것으로 보이는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말라죽은 검불 더미 너머에서 몇 명의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에 채워진 개목걸이, 길게 늘어진 쇠사슬 목줄, 그리고 얼굴과 몸 곳곳에 보이는 구타와 학대의 흔적.
“…….”
비키르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모두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