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덫 (1)
내가 ‘그것’을 들여다볼 때, ‘그것’도 나를 들여다본다.
‘그것’을 사냥하는 이들은 자신이 ‘그것’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선악의 피안 저 너머,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관념의 경계를 아득히 벗어난 변방에 ‘그것’들은 이쪽을 향해 발 돋아 서 있는 것이다.
-『이름 없는 한 늙은 악마사냥꾼의 수기』 (이것은 시체가 된 그의 품속에서 찾아낸 마지막 기록이다)-
* * *
‘……!’
비키르는 암흑 속에서 눈을 떴다.
몸뚱이는 없었다. 잘려 나간 목만이 남아 허공을 부유하고 있을 뿐.
비키르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나는 꿈을 꾸었는가.’
목이 잘려 나가는 순간 꾸었던 짧은 꿈.
모든 것은 한순간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일 뿐이었다.
꿈속에서 비키르는 많은 것을 이루었었다.
유아 시절부터 빼앗겼던 것들을 모두 손에 거머쥐었다.
죽음의 흑막도 밝혀냈고 가문의 형제들에게 복수도 했으며 아카데미에 입학해 훗날의 대영웅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거물급 악마들을 찾아내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꿈이었다. 한낱 부질없는 물거품에 불과했다.
이제 비키르는 다시 현실을 마주보고 있었다.
불타는 땅. 시체와 피의 산하(山河). 하늘에 창궐하는 까마귀 떼.
멸망의 시대. 인간계와 마계의 싸움은 결국 인간계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허울뿐인 승리였다.
인류의 99%가 절멸했으며 수없이 많은 대영웅들의 핏줄이 끊겼다.
한번 열린 게이트 ‘멸망의 문’은 닫히지 않았고 그 안에서 언제 또 2차, 3차 악마군이 몰려올지 모르는 일.
때문에 비키르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먼저 죽어간 전우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전우들의 생각에 목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핏발 선 눈을 계속 부릅뜨고 있을 뿐.
그때.
‘비키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키르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장대 위에 목만 남아 있었기에 뒤를 볼 수 없었다.
‘비키르.’
하지만 목소리 쪽에서 먼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따스한 손이 볼에 닿는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군인 한 명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볼에 긴 흉터가 난 여군. 그녀는 어렴풋하고 뿌옇게만 보이는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비키르는 그녀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207연대 4중대 1소대, 쟈네트 병장? 살아 있었는가!’
하지만 그녀 하나가 다가 아니었다.
그 뒤로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비키르는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알고 있었다.
‘키르케 대위, 하얄 소위, 쿠베린 중사, 살라딘 상병, 미르야무 이등병…… 모두, 모두 살아 있었구나! 죽은 줄…… 죽은 줄로만 알았다!’
죽은 줄 알았던 전우의 생환보다 더 기쁜 것이 있을까.
비키르는 목 놓아 부르짖었다.
……한데?
눈앞까지 다가온 전우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각막에 피가 말라붙었음일까? 붉고 뿌옇게 보이는 동료들의 모습은 비키르의 마지막 기억 속 모습과는 꽤나 달랐다.
‘쟈네트 병장. 그러고 보니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던 칼자국과 화상 자국이 싹 사라졌군? 얼굴이 멀쩡하니 마치 곱게만 자란 규수 같기도 하고.’
‘키르케 대위. 지난 번 전투에서 왼쪽 다리를 잃지 않았던가? 내가 의족도 만들어 줬었던 것 같은데……’
‘하얄 소위. 자네…… 귀가 다시 생겨났잖은가?’
‘쿠베린 중사. 멀었던 한쪽 눈이 다시…….’
그뿐만이 아니었다.
살아생전 한평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살다가 전쟁에 끌려오게 된 하급장교, 하급부사관, 그리고 병사들.
전우들은 하나같이 건강해 보였고 또 행복해 보였다.
팔다리, 눈, 귀 등등 신체에 결손이 있었던 이들은 멀쩡한 몸으로, 그리고 가난과 기아, 질병에 시달리던 이들은 부유하고 윤택해 보이는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순간.
비키르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꿈속에서 비키르는 씬디웬디라는 인물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미래에 전우가 될 이들을 일찌감치 큰돈을 들여 후원했었다.
그래서일까?
다시 만난 전우들은 하나같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몸 하나 상한 곳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며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모였다.
각자 비키르의 팔, 손가락, 다리, 발가락, 귀, 코, 입, 눈을 들고 한자리로.
‘비키르!’
그들은 한데 모여 부르짖었다.
이윽고, 전우들이 들고 온 신체 부위들이 비키르에게로 밀려온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뇌리에 나선무늬를 음각시키고 있었다.
미안하다.
면목 없다.
네게만 모든 짐을 지우는구나.
응원하겠다.
힘내라.
앞으로 나아가라.
수많은 전언들이 시야를 빙글빙글 돌게 만든다.
그리고.
비키르는 뇌리에 깊숙하게 울려 퍼지는 모두의 한마디를 들었다.
‘고맙다.’
* * *
-띠링!
[지하 9층 ‘용마인(龍魔人)의 실험실’를 벗어났습니다] [지하 10층 ‘실낙원(失樂園)’에 진입합니다]귓가를 연달아 때리는 요란한 알림음.
“……!”
비키르는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다.
“……그렇군. 이쪽이 현실이었지 참.”
실로 오랜만에 악몽이 아닌 꿈을 꾸었다. 어쩐지 체력이 약간은 회복된 것도 같았다.
‘꿈속의 전우들이 내게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감성적이려나.’
비키르는 아까 꾼 꿈 내용을 상기하며 고개를 들었다.
흰 색. 오로지 흰 색의 공간만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용마인의 실험실에서 한 층 더 내려온 곳이군.’
9층에서 용마인의 주먹에 깔리는 순간, 비키르는 다시 한번 개로 변해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싱클레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법을 써 주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비키르는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상부터 확인했다.
– / 레벨 / 황금색
레벨을 1 올려주는 사탕.
단맛이 난다.
-레벨 +1
황금색 사탕 50개.
일반 사탕 만 오천 개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보상이었다.
아마도 용마인의 실험실에서 탈출한 것에 대한 보상과 용마인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한 보상이 합쳐진 결과 같았다.
‘신기하게도 아이템은 안 나오는군.’
비키르가 몇 번인가 요정에게 아이템 보상은 필요없다는 의사를 밝혀서일까? 이상하리만치 보상으로 사탕들만 나오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전자였다면 아이템 없이는 미션을 클리어하기 힘들지. 나를 힘들게 하려는 요정들의 꼼수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비키르는 보상을 모두 확인한 뒤 몸을 일으켰다.
옷을 입고 있지 않아 알몸인 살갗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 안락한 소파가 보인다.
비키르는 현재 크고 푹신한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옆에는 책상과 의자, 그 위에는 은촛대와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빵 등 각종 음식들이 놓여 있다.
비키르는 이 층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다지 정보랄 것도 없다.
이 층에는 몇몇 숨겨진 설정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설정들이 오픈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벽면의 글귀에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혀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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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옆에는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들의 가격이 적힌 카탈로그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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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의 밑에는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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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르는 주의사항들의 맨 밑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안내문의 마지막이었다.
텅 비어 있는 넓은 공간을 상점에서 산 것들로 채울 수 있는 구조.
나름대로 합리적인 가격의 생필품, 혹은 사치품들.
생존을 위협하는 그 어떠한 요소도 없으며 각종 휴식과 오락거리들이 제공된다.
무엇보다 탑 밖에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꿈이나 환상, 신기루가 아니었으며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비키르는 생각했다.
‘최악이로군.’
회귀하기 전, 난다 긴다 하던 대영웅들 전원이 혀를 내두르던 가장 위험한 층.
악마들이 도전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함정.
탑의 전 구역을 통틀어 가장 사악하고 가장 비열하며 가장 노골적인 덫이 이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