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덫 (2)
벽에는 반투명한 스크린이 떠 있다.
수많은 아이템들과 그것의 가격들이 제시되어 있는 카탈로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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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휴게공간.
편안하고 안락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아이템들의 가격이 그리 비싸지도 않아서 레벨이나 스탯이 낮은 이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편히 쉴 수 있었다.
맛 좋은 음식, 푹신한 가구, 흥미로운 오락거리…… 심지어 탑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메시지까지 보낼 수 있다!
답장은 한 번뿐이고 그것을 읽는 데 추가적으로 황금색 사탕 1개가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소통은 가능한 셈이다.
게다가 월 1회에 한해 보내는 것이 무료이니 더더욱 좋은 특전.
이 층에 들어올 수 있는 도전자는 전체의 0.0001%도 되지 않는데다가 다음 층부터는 난이도가 10배로 올라간다고 하니 도전자로서는 이 층에 온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모든 편안하고 안락한 것들에 대해, 비키르는 이렇게 평가했다.
‘……졸렬한 함정이로군.’
덫을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깔아놓은 것은 처음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층의 함정이다.
백전노장에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비키르조차도 회귀 전의 지식이 없었더라면 당해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천하의 측천무후 까뮤조차도 이 층에서 상당히 고전했다고 했지.’
비키르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오래 전의 일 하나를 회상했다.
머릿속에 바스커빌가의 가주 ‘휴고 레 바스커빌’의 얼굴이 떠오른다.
‘큰 마물을 잡는 방법을 아느냐.’
어느 날, 휴고는 바스커빌가의 어린 사냥개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사냥개가 손을 들어 ‘여럿이 덤비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여럿이 덤벼들어도 상대할 수 없는, 아주 큰 마물 말이다. 그런 것이 산 하나를 지배하며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대형 마물.
단일 개체로만 활동하며 그 전투력과 위험도가 군부대 여럿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실제로 바스커빌가의 영지가 위치해 있는 서쪽 변방에는 그러한 마물들이 꽤 많았었다고 한다.
휴고가 본가를 적과 흑 산맥의 하류로 옮긴 뒤부터는 모조리 씨가 말라 버렸다나?
휴고는 그때 자신이 썼던 토벌 방법을 말해 주었다.
‘딱히 무력을 쓰지는 않았다.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 한낱 범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당시의 휴고는 산 곳곳에 고깃덩어리들을 깔아 두었다고 했다.
독도 덫도 쓰지 않았다. 어쭙잖은 독이나 쇠 냄새는 적의 경계심만 부추기기 때문이다.
마물의 영역 곳곳에 뿌려 둔 고깃덩어리에는 조미가 되어 있었다.
지방이 많고 콜레스테롤이 풍부한 고기를 기름진 부위로만 골라 볶고 튀겨서 마물의 사냥로 곳곳에 깔아 놓는다.
처음에는 경계심 때문에 고깃덩어리를 먹지 않던 마물도 사냥로 곳곳에 보란 듯 놓여 있는 고깃덩어리를 계속 보다 보면 결국에는 먹게 된다.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고깃덩어리는 계속 제공된다. 도처에 놓여 있다.
딱히 사냥에 나설 것도 없이, 사냥로에 발만 들여놓으면 언제나 그런 기름지고 맛있는 고깃덩어리를 먹을 수 있다.
그저 드러누워 자다가 배가 고프면 몸을 일으켜 냄새를 따라가며 고깃덩어리만 주워 먹는 삶.
그런 삶이 한동안 계속된다.
그동안 마물은 살이 찐다. 배가 나오고 주름이 늘어진다.
대지를 달리며 늘 날카롭게 벼려지던 발톱, 먹잇감의 뼈를 부러뜨리고 피에 담가지며 담금질되던 이빨은 모두 무뎌지게 된다.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먹잇감의 기척을 눈치챌 수 있게 해 주던 귀도, 눈도 모두 지방이 껴 둔해진다.
살이 붙은 아랫배와 지방이 낀 내장은 날래던 몸을 무겁게 만든다.
‘그때가 적기지. 사냥을 나갈.’
마물이 야생성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혹독하게 단련된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들이 목줄을 끊고 달려 나간다.
그리고 그날부로 영역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철혈의 검가 바스커빌은 이런 방식으로 적과 흑 산의 마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이 층의 원리 역시도 똑같지.’
비키르는 카탈로그를 덮었다.
이 층이 위험하다는 이유는 목숨을 위협해 오는 마물이나 함정 같은 것들이 존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나도 확실해서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한순간의 악몽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화롭고 안락한 공간.
고생고생해서 모아 놓은 스탯들을 아주 조금씩만 내주면 얻을 수 있는 편의들.
이곳을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겪어 왔던 것보다 10배나 더 힘든 미션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탑 밖의 인물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이곳에서 버텨야 할 이유다.
지금쯤 눈물짓고 있을 가족, 친구, 연인들에게 자신의 무사함을 알릴 수 있는 기회.
더군다나 그들의 답장까지 받을 수 있다니!
그래서 도전자들은 이 층에 자꾸만 머물게 된다.
머무는 동안 자꾸만 스탯의 사탕들을 쓰게 된다.
조금씩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줄어든 사탕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힘, 민첩, 체력…… 더 나아가서는 레벨까지 줄어들게 된다.
이 층의 밖에서 이미 먹었던 스탯의 사탕들을 토해 낼 수도 있고 그럴 경우에는 더 많은 사탕을 돌려주기까지 하니 교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곳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도전자는 더욱 더 빠르게 약해진다.
몸도 마음도 약해져 버린 도전자는 결국 다음 층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이곳에 평생 남아 있게 된다.
창살 없는 감옥.
몸만 갇혀 있을 뿐이지 마음은 갇혀 있지 않았던 탑의 도전자들은 결국 마음마저 이곳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여기서 피둥피둥 살찌고 늙어 쇠약해지게 되겠지. 탑 밖의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에 평생 만족하면서 말이야.’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탑을 클리어하게 되면 자동으로 이 층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라는 심리까지 작용한 결과, 도전자들은 더더욱 이 층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분명 숨겨져 있는 함정이 존재하지.’
비키르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시야 한구석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탑 외부로 편지를 보내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비키르는 거침없이 편지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허공에 글자가 떠오른다.
[To. 207연대 4중대 1소대, 쟈네트 병장에게.] [보고 싶구나, 전우여. 그곳에서는 편히 지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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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르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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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르는 가지고 있던 황금색 사탕 한 개를 소비해 답장을 열어보았다.
[From. 207연대 4중대 1소대, 쟈네트 병장.] [중대장님? 비키르 중대장님이십니까? 살아 계셨습니까? 어디 계십니까! 모두가 중대장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살아 계실 줄 알았습니다! 비키르 님이 돌아가셨을 리 없다고 전선에 나가 있는 모두가 입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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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르는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편지를 닫아 버렸다.
‘역시 함정이 맞군.’
노련한 비키르는 편지에 숨겨져 있는 이상한 점들을 모조리 꿰뚫어 보았다.
우선 쟈네트 병장은 회귀하기 전의 인연, 그 시간 선에서는 이미 처형당하고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의 쟈네트 병장은 씬디웬디의 지원을 받아 평범한 부잣집의 규수로서 살고 있을 것이다.
미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비키르가 기억하고 있는 저 ‘쟈네트 병장’이라는 인물은 이제 어느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즉각적으로 답장이 왔다는 것은…….
‘기만책이지.’
이 층에 들어온 이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소중한 사람과 연락이 된다는 것 자체에 안도하고 안심하게 만드는 기능.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
편지를 읽은 악마가 편지를 쓴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엿본 뒤 최대한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써 보내는 답장인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는 제한 때문에 꼭 필요한 인물에게 꼭 필요한 말만 적어서 보낼 수밖에 없지. 그 그리움과 간절함의 감정은 모조리 악마 요정에게 읽힌다.’
그리고 이제 악마가 대필한 편지는 탑 안의 도전자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 것이다.
다음 층으로 넘어갔다가는 이 소소한 연락 교환마저도 영영 불가능하게 될 테니까.
‘졸렬하고 비겁한 게 딱 악마들의 전략답군.’
비키르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탑 밖에 기다릴 사람도, 그리워하는 사람도 없는 비키르로서는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층을 떠날 수 있었다.
‘……다만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때까지만 이곳에 남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는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새끼마담과 데카라비아 역시도 침대 밑에서 쿨쿨 자고 있으니 곧 눈을 뜰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나를 침대로 옮겨 놨지?’
비키르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머? 깼구나.”
저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키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낯익은 얼굴의 여학생 하나가 서 있었다.
돌로레스.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인 그녀가 침대 건너편에 서서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비키르는 잊고 있었던 것 하나를 더 깨달았다.
‘그렇지. 이 층에는 꼭 남녀 한 쌍이 떨어지지.’
이 층에 수감된 이들이 외로움에 미쳐 탈출을 시도하지 않도록, 악마들은 이곳에 꼭 다른 수감자 하나를 끼워 놓는다.
둘이 서로 말벗이 되어 이곳에 남을 수 있게끔 말이다.
돌로레스는 아마도 비키르보다 먼저 이 층에 진입한 듯했다.
그녀는 비키르의 이마에 난 상처를 안타깝다는 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 더 누워 있도록 해. 외상은 거의 없지만 내상이 심하니까.”
비키르는 돌로레스가 너무 스스럼없이 다가오자 순간 당황했다.
‘……뭐지?’
지금 자신이 밤의 사냥개 상태인가? 아니면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1학년 비키르의 상태?
반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1학년 비키르를 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내오고 있는 저 애정 가득한 눈빛은 분명 밤의 사냥개를 대할 때의 그것이다.
‘……설마. 정체를 들킨 건가?’
비키르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돌로레스가 그런 비키르의 몸을 확 끌어안았다.
“어허! 이 녀석! 좀 더 누워 있으라니까 참 말 안 듣네!”
동시에, 그녀는 비키르의 양 옆 옆구리에 손을 끼워 넣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순간 돌로레스의 크고 맑은 눈망울 안에 비키르의 모습이 비친다.
그것은 비키르도, 밤의 사냥개도 아니었다.
“누나 말 듣자 초코야. 확 중성화 해 버리기 전에.”
땅콩검가의 사냥개 초코.
비키르가 가진 제 3의 신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