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민낯 (1)
‘아, 그렇군. 아직 변신을 안 푼 상태였나.’
비키르는 용마인의 주먹에 깔리기 직전 개로 변신해 체적을 작게 만들었고 그 결과 압사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싱클레어가 최후의 순간 쓴 마법이 약간이나마 시간을 벌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돌로레스는 비키르의 전신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어머? 상처가 그새 거의 다 나았네? 신성력이 잘 듣는 체질이구나 우리 초코는.”
그녀는 사탕으로 산 연고를 비키르의 상처 곳곳에 발라 주었다.
이로써 비키르의 외상은 거의 완벽하게 낫게 되었다.
“음~ 하지만 아직 내상은 남아 있으니까 조금 더 요양해야겠다. 누나가 약 사줄게, 조금만 기다려.”
돌로레스는 비키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점 창을 켰다.
내상에 좋다는 약을 사탕 3개나 주고 사는 그녀를 보며 비키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전히 호구 같군.’
내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며칠 푹 쉬는 것만으로도 회복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길에서 만난 유기견에게 사탕을 3개씩이나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외상약까지 합치면 무려 6개의 사탕을 쓴 것이다!)
비키르는 돌로레스가 먹여 주는 약을 삼키지 않고 몰래 입안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나중에 몰래 환불해서 다시 사탕으로 바꾸어 돌려줄 생각에서였다.
한편, 돌로레스는 비키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초코야. 너도 현장에 있다가 함께 휘말려 들었구나, 가엾게도…….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아무리 층마다 만나게 되는 환경이 랜덤이어도 그렇지. 되게 공교롭다.”
“…….”
“여기 올 확률이 0.0001%인가 그렇다는데, 우리는 참 운이 좋다. 그치?”
“…….”
비키르는 밀려오는 난감함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 방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수감자 두 명 모두가 나가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방에 잔류하고 싶어한다면 둘 다 나가지 못할 텐데.’
비키르가 이 방을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돌로레스를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이미 이 방에서 상당 기간 거주할 마음을 먹고 있는 듯했다.
푹신한 침대에 소파, 상당량의 식량과 식수에 목욕탕까지 준비해 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초코야~ 외상도 다 나은 김에 누나랑 같이 목욕하자! 내가 만드는 성수는 내상 치료에도 좋을 거야!”
비키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목욕을 좋아하는가?
* * *
비키르는 결국 목욕탕에 들어왔다.
저항할 힘도 없었고 딱히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성력이 녹아들어 간 온천탕은 내상 치료에 효과적이었기에 비키르로서는 머리 숙여 부탁해야 할 판이었다.
커다란 목재 목욕탕 안에 따듯한 물이 가득 담겼다.
첨벙-
돌로레스는 비키르를 꼭 끌어안은 채 물에 몸을 담갔다.
“와아- 예전에도 우리 같이 목욕한 적 있었지? 추억이네.”
비키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과거 그래듀에이터 시절, 까뮤와 처음 만났을 때 박 터지게 싸우고 초주검이 되어 아카데미로 돌아가던 길에 지나가던 돌로레스의 눈에 띄어 목욕탕으로 끌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돌로레스는 목욕을 하며 이와 비슷한 말들을 했던 것 같았다.
“나는 목욕하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었거든. 공부에 업무에 봉사에……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딱히 취미를 즐길 시간도 없었어. 또 하나의 낙이었던 보드게임 동아리도 인원수가 너무 적어져서 폐부되었고. 요즘 애들은 다 학점 관리에 대외활동에 바쁘잖아. 취업난이 워낙 심하니까.”
낭만, 괴짜, 잉여 등등의 말들은 이제 쉽게 듣기 힘들게 되었다.
돌로레스는 이것이 학풍의 변화임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하- 악마에게 잡혀 탑 안에 갇힌 주제에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나도 참 현실감 없다. 그치?”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돌로레스가 비키르의 코끝을 톡 치며 볼멘소리를 했다.
“우씨. 너 꼭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군다?”
돌로레스가 물 밖으로 몸을 일으키자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목욕탕에 한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키르는 온탕 위로 피어오르는 뿌연 증기를 코로 맡으며 내상 회복에 집중했다.
성녀 돌로레스의 몸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신성력이 함유되어 있었기에 몸속의 내장들이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하루, 혹은 이틀 정도면 충분하겠군.’
비키르가 속으로 회복에 걸리는 시간을 어림하고 있을 때.
“……사실 나도 알아. 지금 이런 곳에서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뒤에서 돌로레스가 혼자서 하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눈앞에서 동기랑 후배들이 우르르 죽어 나갔어. 지난 몇 년간 함께 살며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고…… 이용하고 배신하고…….”
한 사람의 학생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종교인이었던 그녀가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악마가 정해 놓은 룰, 악의(惡意)로 벌여 놓은 판이다.
그 안에서 인의나 사랑 같은 것을 실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헬하운드 떼나 혈수의 옥잠화와 같은 위험한 마물들이 매 층마다 드글드글했다.
항상 정해져 있는 생존자들의 수, 그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은 도태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돌로레스는 그럴 때마다 번번이 자신이 대신 희생하려 했지만 주변인들은 힐러를 지켜야 한다며 그런 그녀를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
첨벙-
얼굴을 물에 한번 담갔다가 뺀 돌로레스는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냈다.
그러나 목소리에 묻은 물기는 미처 닦아 내지 못했다.
“……나는 나를 지켜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못 이기는 척 하며 받았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핑계로 소수의 희생을 외면했지. 약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저버린 거야.”
혈수의 옥잠화의 먹이로 바쳐지는 약자들, 약자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강자들.
비단 종교인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부조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인신공양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자신이 대신 희생하고 싶었지만 그래 봐야 딱히 변하는 것도 없을 뿐더러 그녀는 이미 집단의 리더, 살아남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과정 속에서 돌로레스는 번민하고 또 번뇌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것? 아니면 남겨진 자들을 위해 목숨을 보전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돌로레스는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간 내에 찾아내지 못했다.
다수의 약자들과 소수의 강자들이 대립한 결과, 혈수의 옥잠화가 폭주하는 결과가 나와 그나마 살아남았던 학생들마저 모두 전멸해 버린 것이다.
그 처참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 돌로레스는 결국 귀환주문서를 찢어야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다.
“……나는 무력했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에게 시험당했어.”
돌로레스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온천탕에서 올라온 뜨거운 증기가 그녀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비키르는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심마(心魔)에 제대로 먹혔군.’
이것은 암두시아스의 의도였다.
장차 영웅으로 자라날 어린 새싹들의 신념과 의지를 초장부터 꺾어 놓고 그 자리에 열등감과 자괴감, 그리고 무력감을 심어 놓겠다는 전략.
실제로 회귀하기 전에는 수많은 대영웅 꿈나무들이 여기서 사그라졌다.
‘……그러나 오히려 이 역경을 딛고 더더욱 강하고 단단해진 이들도 존재했지.’
그것은 훗날 ‘철혈의 성녀’라고 불리게 될 돌로레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본디 멸망의 시대가 도래한 뒤의 전장 최전선에서 각성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2차 각성, 그 전의 발판이 되는 1차 각성은 이곳 나락수의 탑 속에서 이루어졌었다.
‘이 심마를 어떻게 떨쳐 내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비키르 역시 마스터에 오르기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겪어서 알고 있다.
앞서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가 한두 마디의 조언을 해 주고 말고가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는 것을 말이다.
막말로, 비키르 역시 칼침의 무덤에서 만난 케인코르소의 몇 마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 준 덕분에 마스터에 오를 수 있었지 않은가.
‘……이 시점의 돌로레스에게 유효할 만한 명언이 뭐가 있을까.’
비키르는 깊게 고민했다.
장차 대영웅이 될 존재에게 해 줄 말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상념과 잡생각을 버리고 첫마디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비록 용마인과의 격전 직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상태라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역시 강철의 성녀 돌로레스, 본인이 했던 말을 해 주는 것이 최고겠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겪은 바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녀 역시도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 중년이 된 돌로레스가 부상자들을 돌보며 늘상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삶과 종교의 의미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비로소 그대를 더 나은 선(善)의 영역으로 이끌어 줄 것이니.”
그것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었다.
부상병들이 모여 있던 임시 대피소에서 강철의 성녀 돌로레스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울며 자책하던 한 젊은 성녀에게 직접 했었던 말이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누구보다 많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 낸 돌로레스가 인생의 경험을 담아 내렸던 가르침.
그것이 수십 년의 시간축을 건너 어린 풋내기 성녀 돌로레스에게 전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돌로레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초코야. 너 지금 말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