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발락 (1)
-띠링!
[지하 10층 ‘실낙원(失樂園)’을 벗어났습니다] [지하 11층 ‘유수의 강’에 진입합니다].
.
비키르는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혼자였다. 옆에 있었던 돌로레스와는 어느새 다른 공간으로 갈라진 듯싶었다.
“기분 나쁜 곳으로 떨어졌군.”
비키르는 주위 환경을 둘러보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잎사귀들과 뾰족한 가시덤불.
무덥고 습기 찬 기후.
저 멀리 숲을 빙 둘러 흐르는 강물이 크고 완만하게 굽이쳐 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밀림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가 있었다.
혈수의 옥잠화.
저 괴기스러운 수생식물들이 강의 수면 위에 쫙 깔려 있다는 것이다.
군락지(群落地). 비키르는 혈수의 옥잠화가 무리 지어 자라나는 곳의 중심부에 떨어진 것이다.
“……이 숲을 포위하고 있는 건가? 이래서야 밖으로 나가기 힘들겠군.”
숲을 빙 두르고 있는 강줄기마다 혈수의 옥잠화들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그 규모는 너무 아득해서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나 옥잠화가 유독가스를 내뿜을 수도 있었기에 비키르는 얼굴에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옥잠화를 제외하면 평범한 밀림인 것 같은데.”
비키르는 다시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
비키르는 무언가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드넓은 강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옥잠화 군락에 시선이 빼앗겨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숲은 아까 전 비키르가 처음 살펴봤을 때와 지금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나 거목 등 아주 기본적인 풍경은 그대로였으나 그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츠츠츠츠츠츠……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나뭇잎이 돋아나는가 싶더니 이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열매는 다시 땅으로 떨어져 씨앗에서 싹을 틔웠고 원래의 나뭇가지는 쪼글쪼글 말라붙어 사멸했다.
숲의 모든 것들이 엄청난 속도로 태어나고 죽어 간다.
마치 시간을 수십 배로 빨리 감는 것 같았다.
비키르는 진흙 웅덩이 속에 고인 물을 바라보았다.
물은 눈에 띄는 속도로 증발해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웅덩이 안에 있던 작은 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부화해 작은 날벌레들로 변했다.
그것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몇 번 왱왱 돌아다니다가 그대로 떨어져 죽었다.
“……저건 하루살이인가?”
말이 하루살이지 보통 이틀 하고도 열일곱 시간 정도를 사는 하루살이가 이렇게 빨리 죽어 버릴 정도라면 확실히 무언가가 이상하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비키르는 이 층의 이름에 다시 한번 주목했다.
세월은 본디 유수(流水)와도 같이 흘러가는 법.
아무래도 이 층의 이름은 주위의 강이 아니라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숲이라. 또 괴상한 곳이 나왔군.”
정확히는 유기체의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는 숲이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 강물이 흐르는 속도와 같은 것은 보통의 세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비키르는 자신의 몸에 주목했다.
츠츠츠츠츠……
깊은 상처의 흔적이 눈에 띄게 옅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바실리스크의 재생력으로도 어림없을 정도의 속도.
‘……시간의 흐름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다.’
비키르는 더욱 낯빛을 굳혔다.
회복력이 이렇게까지 빨라진 것을 감안할 때 2배, 3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속도로 시간이 흐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서둘러야겠군.”
비키르는 시간이 쫓아오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 * *
비키르는 잠시 멈춰 서서 숲을 둘러보았다.
강에서 벗어나 숲의 안쪽으로 들어오자 나뭇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래선 적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겠는데.’
푸른색과 붉은색, 파란색과 보라색.
주변의 나무는 몇 초마다 단풍이 들고 푸르러지고를 반복하며 숲에 요란한 빛을 드리웠다.
쿼바디스 가에 있는 거대한 스테인글라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화려함.
“…….”
비키르는 숲의 수색 방법을 변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숲의 전장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적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
적과 흑 산의 생활을 통해 비키르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생태를 모르는 숲이라면 걸음을 가까이 하지 말 것.
그것이 발락의 수색조들이 가진 원칙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게 변화한 것이 식물뿐이라는 것에 있었다.
아마도 이 유수의 강에서 유일하게 적응한 것은 식물밖에 없을 것이다.
식물들에게 노화란 자연스럽고 또 친숙한 개념일 테니까.
“일단은 나무 위로 올라가야겠군.”
비키르는 빠르게 다음 행동을 정했다.
이렇게 시각을 어지럽히는 곳은 다른 무엇보다도 빠르게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눈을 부릅뜨고 있어 봐야 머리만 아플 뿐.
그렇게 주변의 덩굴을 잡아챘을 때,
스륵-
나무 덩굴은 힘없이 떨어졌다.
그사이 덩굴이 말라비틀어지고 뿌리에서 새로운 덩굴을 키워 낸 것이다.
텁-
비키르는 아예 나무줄기를 잡았다.
군대에 있을 때 나무 타기는 지겹도록 해 봤다.
비정상적으로 둘레가 커진 나무지만 비키르의 나무 타기 실력이라면, 그리고 지금의 신체 능력이라면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고지대로…….”
비키르가 턱을 쓸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핑!
귓가에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쇄애애애애액-
비키르조차 반응하기 힘들 정도의 놀라운 속도로 날아드는 화살.
다행스럽게도 궁술에 일가견이 있는 비키르는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 고개를 젖혔다.
하지만 귓불 한쪽이 찢겨나가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퍼퍼퍽!
계속해서 화살들이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부터 날아왔다.
습격자는 이러한 숲에 잘 적응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비키르가 반응하기 어렵던 것은 어디까지나 기습의 영역에서였다.
대략적인 화살의 방향을 읽어 낸 비키르는 화살을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다.
‘74미터 정도인가.’
화살은 한 사람이 쏘는 것이 분명했다.
모두 특유의 묵직함을 가지고 있다.
보통 제국의 궁술이 날카롭기만 한 것에 비해 이 궁술은 화살에 제대로 힘을 싣는, 마치 대포와도 같은 느낌.
발락의 궁술과는 또 다르다.
어딘가 상당히 낯익은 궁술.
‘이건…….’
그렇게 비키르가 습격자에 대한 정보를 유추해 내려고 하는 순간,
쉐에엑-
날아온 화살들이 뒤에 있는 바위를 뚫고 틀어박힘과 동시에.
번쩍!
눈앞으로 스산한 쇠빛이 뿌려졌다.
극도로 작은 점이 눈앞으로 쏘아져 온다.
그것은 창.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어 정면의 모습만 보일 뿐 측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화살만큼이나 빠르게 쏘아져 오는 창은 마치 가로로 떨어져 내리는 번개와도 같았다.
그것은 정확히 비키르의 눈앞을 겨누고 있었다.
…타탁!
이윽고, 비키르의 눈앞으로 두 명의 괴인이 나타났다.
하나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다른 하나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둘 다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몸을 짐승 가죽과 나뭇잎으로 가리고 있었다.
남자는 온몸이 진흙투성이에 풀뿌리 천지인 것으로 보아 아마 땅속에 은엄폐한 것이 분명했다. 그에 비해 여자는 몸에 바른 진흙이 이미 꽤나 말라 있었다.
‘원거리와 근거리의 조합인가.’
남자는 긴 창을 들고 있었고 여자는 큰 활을 들고 있었는데 제법 합이 잘 맞아 보였다.
쉬익- 팟!
남자가 창을 휘둘러 거리를 벌려 놓으면 여자가 쏘아 낸 화살이 어김없이 빈틈을 파고든다.
이것은 창의 빈틈을 화살이 뒤늦게 메꾸는 것이 아니라 창이 일부러 틔워 준 활로를 화살이 마무리하는 식의 연계 유인 공격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합을 맞춘 파트너 사이가 아니라면 소화할 수 없는 수준 높은 콤비네이션.
……하지만 비키르는 그들이 합을 맞추었을 시간의 수십 배, 수백 배를 전장에서 굴러먹었던 노련한 베테랑.
끼릭- 콰긱!
명치를 향해 파고드는 창살을 손으로 잡아챈 비키르는 그것을 빙글 돌려 꺾었다.
…우드득!
남자는 창을 움켜쥔 채 버텨 보려고 했지만 애초에 근력 스탯에서부터 상당한 차이가 난다.
창잡이의 손목이 꺾여 나가는 것을 확인한 비키르는 그 즉시 창을 잡아당겼다.
홱- 콰악!
딸려오는 창잡이의 목을 향해 손아귀를 뻗어 뱀처럼 문 비키르는 그대로 팔에 힘을 주었다.
“……컥!”
비키르에게 목이 잡힌 남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바닥에 메다 꽂혔다.
그러자 뒤에 있던 여자가 경악하며 달려왔다.
퍼퍼퍼펑!
그녀는 남자가 위기에 처하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한 번에 네 개나 되는 화살을 발사했다.
그것도 뛰는 도중에!
하지만 비키르는 뒤로 슬쩍 물러나는 동시에 반대쪽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앞으로 쭉 뻗은 손가락 다섯 개 사이사이로 화살들이 들어오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
‘반사신경 스탯을 올려놓은 게 도움이 되는군.’
비록 1의 상승폭이지만 아예 없던 스탯이 생겨난 것이니만큼 그 효과를 굉장했다.
…차라락!
비키르는 한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날아드는 화살 네 대를 모조리 잡아채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여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비키르의 손에 목을 잡힌 남자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오지 마!”
남자는 여자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어찌나 절박하게 외치는지 비키르가 무릎으로 힘을 주어 누르고 있음에도 몸 전체가 들썩일 정도였다.
“도망가! 너까지 위험해!”
“……하지만 네가 잡혔는데 어떻게 안 가!”
“가라고! 가서 지원이나 요청해!”
“싫어! 못 가!”
여자는 남자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 허벅지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 들었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비키르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그때. 비키르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쯤 해 둬라. 돈키호테, 어셔.”
순간, 발버둥 치던 남자와 여자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
“……!?”
나뭇잎 사이로 가려져 있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벌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창의 돈키호테. 활의 어셔.
이 두 명문가문 출신이 흔할 리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비키르!”
얼굴의 흙과 나뭇잎을 떼어 내며 벌떡 일어서는 둘.
그들의 정체는 바로 튜더와 비앙카였다!
탑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만나는 친구의 모습에 둘은 매우 놀라고 또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란 이들은 튜더와 비앙카뿐만이 아니었다.
비키르 역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둘을 보고 흠칫했다.
“……!”
나뭇잎 가면과 진흙 화장을 걷고 맨얼굴을 드러낸 둘.
그 둘은 최소 10살은 더 나이 든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