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47
347화 발락 (5)
적과 흑 산의 수해에서 2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어린아이.
‘오늘 네가 도와줬던 그 소녀가 저 녀석의 여동생이다. 이름은 ‘아휼’.’
비키르는 약간의 고민 끝에 아휼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기억해 냈다.
한때 비키르의 아내가 되고 싶다면서 새벽같이 막사 앞에 줄 서 있었던 어린 소녀.
부르주아가의 악덕상인들에게 무안과 성희롱을 당하던 것을 비키르가 구해 준 것을 계기로 사이가 많이 가까워졌었다.
‘아휼은 예전부터 몸이 약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상인 놈들이 가져온 유리구슬 때문이 아닐는지 싶군.’
비키르는 아휼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귀걸이를 발견해 그 안에 들어 있었던 마약들을 전부 제거했고 그 결과 그녀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키르가 수해를 떠난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소녀였다.
“……많이 컸구나.”
비키르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눈앞에 있는 아휼의 나이는 겉보기로는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들은 그녀의 나이는 무려 예순에 가까웠다.
아휼은 물기 어린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 * *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비키르의 질문에 아휼은 모든 것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비키르가 떠난 뒤 무역이 개시되었고 발락은 본격적으로 제국과의 평화 협상을 시작했다.
일견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려가는 듯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변’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암두시아스. 이 악마는 윈스턴의 몸 없이 독자적인 힘으로 현신해 발락의 전사들을 덮쳤다.
‘수해의 마담을 잡으러 왔는데 도저히 못 찾겠군. 너희들이라도 잡아가야겠다.’
그는 나락수 안에 들어갈 지형을 모으러 온 듯했다. 그저 단순한 여흥으로.
하지만 악마의 여흥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요구했다.
발락의 전사들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한 일각수와 일생일대의 승부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족장 아퀼라가 사망했다.
그녀는 암두시아스의 뿔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 놓은 채 스러져갔다.
아도나이와의 전투에서 입었던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그 외 다른 전사들도 뿔뿔이 흩어졌어요. 습격해 왔던 일각수가 너무 강해서…….”
“너는 왜 이곳에 있게 된 거냐?”
“저는 그 당시에 폐허에 숨어 갓난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고…….”
아휼의 말을 들은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발락의 전사들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들은 지는 꽤 되었다.
그때 나락수의 안으로 삼켜졌고 이 층에 도착한 이래 지금껏 시간을 보냈다면 십대 초반이었던 아휼이 이렇게 나이를 먹은 것도 이해가 된다.
아휼을 따르고 있는 중년의 전사들 역시 그 당시에는 갓난아이였을 테니 비키르를 몰라보는 것도 설명이 되었다.
“그렇군. 그래서 다들 문신이 흐릿했던 거였어. 갓난아이 때 했던 문신이라 피부가 늘어나면서 색이 옅어졌구나.”
비키르는 고개를 돌리다가 아까 자신이 붙잡았던 여전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예전에 발락의 전사들에게 바스커빌가의 체술을 가르쳐 줄 무렵, 성인 전사들은 그런 것을 뭐하러 배우냐는 생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어렸던 아이들 몇몇은 비키르를 따라다니며 그것들을 열심히 배웠었다.
“그렇다면 너는 아진이로구나. 너는 아미라겠고.”
“헉!?”
“헛!?”
비키르가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이름으로 호명당한 두 중년 전사는 각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한편.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그토록 무섭던 발락의 야만인들이 비키르와 아는 사이라는 것에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비키르는 짧게 설명했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비키르와 발락의 전사들이 가족과도 같은 사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야 했다.
“너 서부 출신이었구나 비키르! 밤의 사냥개에 발락의 사냥장에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학생에…… 신분이 대체 몇 개냐?”
“놀랍군. 발락 부족과 제국인이 함께 생활할 수 있다니.”
“그, 그러게. 발락의 전사들은 굉장히 폐쇄적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네가 활을 잘 쐈구나. 어쩐지…….”
비키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휼이 미안스럽다는 듯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선주객, 그러니까 발락의 전사들이 받은 미션 역시도 똑같았다.
– 죽고 죽이기!
※ 방심은 금물! 후발주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무섭게 강해집니다!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선주객이라고 해도 부단하게 노력해야겠죠?
※ 전원이 미션을 클리어했을 경우에만 인정입니다!
아휼과 다른 전사들 역시도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를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아휼은 이들을 죽이기가 싫어 그저 식량만 가져가는 것으로 보여 주기식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을 합쳐서 뭔가를 해 볼 생각은 없었나?”
“그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노골적으로 평화 분위기를 조성할 경우 요정이 나타나 모든 것을 망쳐 놓거든요. 가령 대놓고 서로 죽여야 하는 미션을 던져 준다거나…….”
아휼의 말에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끈끈한 유대감을 보이며 평화를 추구했다가 싱클레어와 헤어졌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부족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가 걱정이에요. 특히 오빠랑 부족장님이…….”
아휼은 자신의 오빠인 아훈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 비키르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녀’ 역시도.
‘……아이옌.’
비키르는 턱을 잠시 쓸었다.
그들은 이 탑 안으로 끌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희들은 그나마 여기에 떨어져 지금껏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만약…… 만약 이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더 비참한 꼴을 당했다면…….”
“…….”
비키르는 그런 아휼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나쁜 생각은 하지 마라. 나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야.”
“……나갈 수 있나요? 여기서?”
“물론이다.”
비키르는 아휼에게 이 탑에 대한 모든 지식들을 알려 주었다.
나락수. 세계관 흡수자. 암두시아스의 괴상한 취미.
마치 룬의 열화판과도 같은 그 기행에 아휼은 입을 반쯤 벌렸다.
“그러니까…… 이곳은 악마가 온 세상의 일부들을 짜깁기해서 만들어 놓은 곳이고 한 층을 클리어라면 그 층의 세계와 주민들은 해방된다는 건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해방이란 없지. 탑을 클리어할 때까지 말이야.”
비키르는 얼마 전 흑해에서 조우했던 충왕인들을 떠올렸다.
탑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충왕인들은 불벼락에 맞아 한 줌 잿가루가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염원하던 탈출에 실패했을 것이리라.
‘이 탑은 중도 포기자들에게 유독 가차 없지.’
비키르는 아휼을 비롯한 발락의 전사들에게 미션을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오빠는 여전히 믿음직하시군요.”
아휼은 비키르를 향해 선망의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때. 튜더가 앞으로 나섰다.
“……음, 저기. 방해해서 미안한데. 그럼 미션은 어떻게 하지?”
합당한 질문이었다.
– 죽고 죽이기!
※ 선주객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는 게 원래 힘든 거예요~
※ 전원이 미션을 클리어했을 경우에만 인정입니다!
– 죽고 죽이기!
※ 방심은 금물! 후발주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무섭게 강해집니다!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선주객이라고 해도 부단하게 노력해야겠죠?
※ 전원이 미션을 클리어했을 경우에만 인정입니다!
양측에게 주어진 같은 미션. 그것은 상대 집단을 죽이라는 뜻.
그렇지 않으면 미션은 클리어할 수 없다. 영원히 이 층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은 선택해야 해.”
피기가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콜로세오 아카데미에서의 인연이냐, 아니면 발락에서의 인연이냐.
두 집단 중 한 집단만이 살아남아 이 층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느 쪽이 죽어야 하는가?
그 문제는 전적으로 비키르의 손에 달려 있었다.
“…….”
“…….”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도. 아휼을 비롯한 발락의 전사들도 비키르의 칼끝을 바라본다.
그때.
지금껏 닫혀 있던 비키르의 입이 열렸다.
“나를 믿나?”
비키르는 발락의 전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아휼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키르가 한창 영웅으로 활약하던 시절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였다.
자연스럽게 비키르의 모든 활약상을 전설처럼, 신화처럼 들었던 세대.
아휼을 비롯한 모두가 비키르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사냥장님의 말에 복종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로 돌아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그러자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 역시도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우리야 당연히 너를 믿지. 친구잖아.”
“예전부터 느꼈다. 너는 동갑내기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형 같았지.”
“나는 비키르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
“흥. 네가 온 뒤로 지지부진하던 미션도 점점 진도를 빠지기 시작했는데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가 있나. 딴죽 안 걸 테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
모두가 비키르의 말에 동의했다.
끄덕-
그러자 비키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뎅겅!
칼을 휘둘러 눈앞에 있는 아휼의 목을 날려 버렸다.
“……어!?”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와 발락의 전사들이 미처 경악할 새도 없이.
퍼퍼퍼퍼퍽!
시뻘건 참격이 무한궤도를 그리며 몰아쳐 모든 이들의 목을 일격에 잘라 버렸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의 머리가 피에 젖어 붉게 변한 풀밭을 데굴데굴 구른다.
자욱하게 떠도는 피분수. 경악으로 굳어 버린 얼굴 얼굴들.
“…….”
비키르는 모든 벗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중앙에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죽고 죽이기!
※ 선주객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는 게 원래 힘든 거예요~
※ 전원이 미션을 클리어했을 경우에만 인정입니다!
미션은 여전히 클리어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든 이들을 죽이고 홀로 살아남은 비키르.
이윽고, 그의 말라붙은 입술 역시도 무겁게 달싹였다.
“……나도 너희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