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탑 밖 (5)
전설 속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시켰던 목마의 최후가 이와 같을까.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거대한 말의 형상이 천천히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뚝 부러져 나간 뿔끝부터 시작해 발굽 끝까지 잿가루로 변해 흩어지는 그 모습은 이 기나긴 악몽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에게 알려 주었다.
오번시(五僠尸) 암두시아스. ‘나락의 일각수’가 완전히 영멸하는 순간이었다.
“……끄, 끝났다!”
“악마가 죽었어!”
“나락수가 허물어지고 있소!”
곳곳에서 들뜬 탄성이 터져나왔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을 되찾은 부모,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부모를 다시 만난 자식, 애지중지 가르쳤던 제자를 잃었다가 되찾은 스승, 존경하는 스승의 품으로 되돌아온 제자.
모든 이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입을 모아 환호했다.
나락수가 자취를 감춘 분화구의 정중앙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
그곳에는 바스커빌가의 일곱 기사단이 도열해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 전장에 개입해 최후의 담판을 이끈 칠두마차(七頭馬車).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콜로세오 아카데미에 모인 군중들은 훨씬 더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고맙소! 고맙소 바스커빌가!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내 이 은혜는 평생토록 잊지 않겠소!”
“그, 그런데 왜 바스커빌가의 기사들이 이곳에?”
“철혈검가는 극도로 폐쇄적인 가문 아니었나?”
“분명 저, 저 소년이 기사들을 불러모았소! 호각을 부는 것을 내가 봤어!”
군중들은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좌중의 이목은 한 곳으로 쏠려가기 시작했다.
나락수의 탑을 부수고 튀어나온 용자.
하늘에 닿을 듯한 아우라의 기둥을 세웠던 소드마스터.
한때 콜로세오 아카데미에 재학중이던 신입생.
……그리고 철혈검가의 모든 사냥개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은 존재.
비키르. 비키르 반 바스커빌!
비키르는 지금껏 숨겨 왔던 뒷배를 여과 없이 풀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비키르의 앞으로 공손하게 부복하는 일곱 사냥개들.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소가주 오시리스, 그리고 그 뒤로 도베르만 기사단의 단장 이자벨라, 셰퍼트 기사단의 단장 저먼, 로트와일러 기사단의 단장 메츠거훈트, 울프하운드 기사단의 단장 쿠컬린, 핏불 기사단의 단장 보스턴테리어, 마스티프 기사단의 단장 그레이트데인이 모두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은 일동 충격을 받았다.
다른 가문도 아니고 그 바스커빌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바스커빌가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전력. 심지어 차기 가주인 오시리스마저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한 이름 모를 소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충격을 넘어 비현실적이게까지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내 몇몇 눈치 빠른 호사가들의 입이 열렸다.
“……서, 설마 비키르 반 바스커빌!?”
“언더독의 부집정관! 황제 폐하의 표창까지 받은 바스커빌가의 전설!”
“허, 헛소문이 아니었어? 너무 말도 안 되는 활약상 때문에 가상의 인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말이 맞잖아! 저 애와 똑같은 얼굴을 한 황금상이 모르그가의 붉은 송곳성에 서 있었다고!”
“바스커빌가와 야만족들의 평화무역길을 연 영웅이 실존인물이었단 말인가! 세상에!”
“혹시 대학리그의 2차 시험에서 망령목을 회수했다던 그 학생이 아니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락수의 탑에서 빠져나온 몇몇 학생들이 탑 안에서 비키르가 보였던 영웅적인 신위들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아빠! 내가 헬하운드 무리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게 저 친구 덕이야!”
“저 친구가 나를 옥잠화로부터 구해 줬어! 오오, 비키르! 나의 벗이여!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우리를 용서해 줘서 고마워! 네 그릇은 대체……! 제길! 너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구!”
귀족파, 호족파, 평민파, 아랑곳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비키르에게 존경과 흠모, 동경과 감사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키르는 늘 맨 앞에 나서서 모든 희생을 도맡아 치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탑 안의 보상을 독식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키르 씨! 여기를 좀 봐 주세요! 마나 스크린 샷 찍습니다!”
“이번 나락수 사태를 해결하신 공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본인이 바스커빌가의 숨은 실세라는 게 사실입니까!?”
“왜 그동안 정체를 숨겨 오셨습니까!?”
이윽고 특종 중의 특종, 대박을 직감한 기자들이 비키르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싸울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어느새 이렇게 많은 수가 모여든 것인지 불가사의할 노릇이었다.
“서방! 에잇! 다들 비켜! 안 보이잖아!”
“반 님! 자, 잠시만 지나갈게요오-!”
까뮤와 돌로레스는 비키르에게 다가가고자 했지만 워낙에 인파가 순간적으로 많이 밀려든지라 앞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눈에 힘을 주는 두 여자였다.
한편. 비키르와 평소 끈끈한 우애를 자랑하던 친구들 역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가 비키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처음부터 비키르의 주변에 있었기에 다가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비키르! 결국 해냈구나 이 자식! 대영웅 됐다고 우리 모르는 척 하면 안 된다!”
“멋지다, 벗이여! 정말 멋졌어! 그나저나 바스커빌가의 후예일 줄은 몰랐군! 그런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니. 오늘 밤의 술안주거리는 아주 풍성하겠는걸?”
“으아아앙! 비키르!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는 네가 무사한 게 제일 기뻐!”
“휘유. 하여간 간 떨리게 만드는 녀석이라니까.”
“…….”
맨 뒤에 엉거주춤 서 있던 싱클레어 역시도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
하지만.
비키르는 이 모든 상황들을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감흥도 없는. 아니, 오히려 지독하게 싸늘한 시선으로.
비키르는 이쪽을 향해 환호하는 모든 인파를 등진 채 조용히 왼손을 바닥으로 뻗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아휼 일행을 따라가거라. 당분간은 이별이다.”
그것은 왼손 손목에 붙어 있는 새끼마담에게 한 말이었다.
[핵핵- 끼잉……]새끼마담은 가기 싫다는 듯 칭얼거렸지만 이어지는 비키르의 재촉에 결국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사사삭-
새끼마담은 저 멀리 점으로 변해 사라져 가는 아휼 일행을 따라 기어갔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
이윽고, 새끼마담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키르는 비로소 군중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가 그런 비키르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자, 기자님들~ 차례를 지키세요! 우리 비키르는 지금 피곤한 상태입니다! 자자, 세기의 대영웅을 만나서 흥분하신 것은 알겠는데~”
“비키르. 몸은 좀 괜찮나? 아까 아우라를 모두 발산하는 것 같았는데 약이나 포션이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
“인터뷰가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아? 일단 휴식이 먼저가 아닐까 싶은데……”
“어우, 이 기자들은 어디서 이렇게들 몰려왔담? 전투 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야, 뭣하면 우리 아빠한테 말해서 인파를 좀 물리라고 할까?”
수많은 사선을 넘어,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위대한 과업을 끝끝내 완수해 낸 친구에게 표하는 경의.
친구들의 태도에서는 그것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이 순수하고 한없는 호의에 대한 비키르의 대답은 짧은 것이었다.
“꺼져라.”
그 말에 순간 친구들의 몸이 멈칫했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잘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응? 비키르, 누구에게 말한 거야?”
“누가 또 있나?”
“헉! 누구야! 누가 비키르를 귀찮게 해!”
“일단 교수님들한테 먼저 말해서 기자들을 좀 물려야……”
그러자 비키르는 다시 한번 더 똑똑히 말했다.
“꺼지라고 했다. 쓰레기들.”
이쯤 돼서야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깨달았다.
비키르가 지금 자신들을 향해 적의 어린 눈빛을 번뜩이고 있다는 것을.
“야, 야아…… 너 왜 그래? 갑자기 왜 정색을……?”
“으음. 우리가 너의 명예에 빌붙는다고 생각한 건가? 오해다. 우리는 그럴 생각이……”
“마, 맞아 비키르! 그냥 순수하게 네가 걱정되어서……”
“너 어디 머리라도 부딪쳤냐? 갑자기 왜 그래?”
생각지도 못한 태도에 잔뜩 당황한 듯한 친구들의 반응.
하지만 비키르는 딱 잘라 말했다.
“네놈들 같이 약해빠진 것들을 친구로 둔 적 없다. 분수를 알고 비비적거려라.”
종지부(終止符).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정과 인연, 관계를 잘라내는 대사였다.
충격. 대충격.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자리에 굳어 버렸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튜더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왜? 왜 그래 비키르? 마,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너만 주문서 쓰게 해서? 하, 하지만 그때는 우리들도 다 주문서가 없었……”
그러나 튜더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비키르가 튜더의 가슴팍을 퍽 밀치고는 인파의 중앙으로 걸어 나갔기 때문이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자신들을 벌레처럼 내려다보는 비키르의 시선에서 넘을 수 없는 선을 느꼈다.
확연하게 그어진 선. 절대로 좁힐 수 없는 거리.
영문도 모르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튜더와 그 옆의 산쵸, 피기, 비앙카.
비키르의 싸늘한 시선이 낯설어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그들이 다가 아니었다.
까뮤와 돌로레스, 싱클레어, 그리고 탑 안에서 비키르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모든 이들이 자리에 얼어붙었다.
비키르는 콜로세오 아카데미에서 만나고 사귄 모든 이들에게 선을 긋고 그들을 져버렸다.
아니, 지금껏 관계를 만들어 온 모든 이들을.
그리고 수없이 몰려든 기자들의 앞으로 나가 말했다.
“내가 ……다.”
너무 뜻밖의 대사인지라 맨 앞줄에 있던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는 비키르의 말을 똑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뒤에 있던 기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열며 되묻자 비키르는 대답 대신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
비키르의 품 안에서 나온 물건들을 확인한 모든 이들은 이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기겁해야 했다.
붉은 칼날. 역오망성 목걸이. 그리고 역병 의사 마스크.
이 상징물들이 뜻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었다.
일순간 고요해진 좌중을 눈앞에 둔 비키르는 나직한,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밤의 사냥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