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죄와 벌 (4)
황도에서 제일 악명 높은 교도소조차도 밤의 사냥개의 악명을 감당하기는 힘겨워 보였다.
대륙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최악의 교도소 누벨바그로의 이감을 앞두고 비키르는 황도의 수감시설에 임시 수용되었다.
“내일 새벽인가.”
비키르는 누벨바그로의 여정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3,021번의 종신형과 누벨바그 수감.
재판 결과가 나온 지 불과 6시간 만에 실행으로 옮겨질 사항이었다.
“……사형은 면했으니 다행이군. 휴고의 탄원이 의외였다.”
수많은 판례들을 분석한 결과 즉결 처형이라는 판결은 내려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혹시나 이례적인 결과가 나와 즉결 처형을 당한다고 해도 대비할 비책들도 몇 있는 상태였다.
“무난무난한 흐름이다.”
비키르는 별다른 불만 없이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 판결 역시도 원래 구상해 두었던 계획 중 일부.
약간의 변수가 있었기는 했지만 충분히 예측했던 오차 범위 내였다.
그때.
-흉악범을 처형하라! 처형하라!
-사형시켜야 한다!
-불태워 죽여라!
-사과해! 사과하라고!
창살과 벽 너머에서 작은 소음들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시위대가 몰려와 난동을 피우고 있는 모양.
밤의 사냥개에게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잃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들은 판결이 내려진 이후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밖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서운하지 않나?]문득 데카라비아가 물었다.
데카라비아는 몸집의 크기를 줄여 작은 점처럼 변해 비키르의 양 쇄골 사이에 박혀 있는 상태.
그래서 수감 전의 소지품 검사 등에서도 딱히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다.
[네가 한 모든 일들은 인류를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 말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게이트가 열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겠지. 그리고 죽은 인간들은 애초에 악마와 계약한 시점에서 용서 받지 못할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저들은 오히려 너에게 고마워해야 하거늘.]데카라비아는 본인이 더 허탈한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린다.
그러나 비키르는 여상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다.
“죽은 이들이 모두 악마와 계약한 존재들이며 미래에 인류 전체에게 큰 죄를 지을 자들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겠지. 말한다 한들 믿어 주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은 원래 자기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동물이다.
설명한다고 해도 통할 리가 없고 애초에 저 많은 이들을 일일이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나 하나가 죽일 놈이 되는 게 편하지 않겠는가.”
[인간. 너는 영웅이나 성인을 꿈꾸는가?]“아니. 그저 살리고 싶은 사람들만 최대한 살릴 뿐이다.”
절대선 같은 개념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인류 전체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겠다는 마음가짐도 아니다.
그저 전생의 비루한 삶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몇 안 되는 온기, 그리고 이번 생에서 의도치 않게 생겼던 소중한 인연들을 지켜 내고 싶을 뿐.
그래서 비키르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손목과 발목을 구속하고 있는 차가운 구속구의 감각을 느끼면서.
‘……한데 이 구속구는?’
비키르는 손목의 수갑과 발목의 족쇄,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는 사슬들을 손가락으로 한번 쓸어 보았다.
차가운 금속 재질, 그러나 무게와 견고함이 예사롭지 않다.
같은 부피와 질량의 그 어떤 금속보다도 무섭고 단단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구속자의 마나를 흡수하려 무력화시키는 성질까지 있었다.
비키르는 이 구속구에 문득 즉흥적인 흥미를 느꼈다.
‘조금 연구해 둘까? 어쩌면 재미있는 변수가 생겨날지도.’
비키르가 구속구를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던 바로 그때.
끼익-
지하감옥의 문이 열리고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면회다.”
사형수, 또는 누벨바그로 이감되는 죄수들은 단 세 번의 면회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비키르는 이미 바스커빌가의 면회 요쳥을 한 번, 콜로세오 아카데미 학생들의 면회 요청을 두 번 거절한 상태였다.
간수는 비키르가 이번에도 면회 요청을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바로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들어오게 해라.”
비키르는 세 번째 면회 신청을 받아들였다.
간수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뒤돌아 나갔다.
이윽고, 면회객들이 지하감옥의 창살 앞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후드와 로브를 걸친 네 명의 사람들.
그들은 비키르의 앞으로 걸어와 후드를 벗어 맨얼굴을 드러내었다.
“안녕? 오랜만에 보네.”
제일 먼저 입을 연 이는 바로 씬디웬디였다.
그 뒤로 걱정스러운 표정의 치와와, 미니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휼이 얼굴을 보였다.
“도련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세상에!”
“사장님! 얼굴이 반쪽이 되셨습니다!”
“……사냥장님.”
그들은 모두 현재 바스커빌의 성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비키르가 가문 내에서 상원의원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그들을 보좌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의외로군.”
비키르는 눈앞에 있는 씬디웬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는 바스커빌이라는 성을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러자 씬디웬디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도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어디든 좀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가끔 너무 지치는 날이 있거든.”
“지친다고 칼날에 기대지는 않지. 동맹은 잠시일 뿐. 바스커빌가에게 복수하는 것이 네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나?”
“맞아. 그런데 생각을 조금 달리하기로 했어.”
씬디웬디는 생긋 웃으며 왼손을 들어 보였다.
반짝-
놀랍게도 왼손의 약지에는 작은 반지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연인끼리 맹세한 사랑의 증표, 혹은 결혼반지였다.
“내가 바스커빌가의 안주인이 된다면 그것도 어떤 의미로는 복수가 아니겠어? 내부에서 바스커빌가를 집어삼키는 셈이니.”
“……?”
순간, 단 한순간도 미동이 없었던 비키르의 눈매가 살짝 떨렸다.
문득 오래 전에 들었던 휴고의 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시리스 녀석은 만나는 여자가 있는 것도 같은데 통 꼬리를 안 밟히더군. 물어봐도 대답도 없고 말이야.’
대학리그의 2차 시험을 위해 바스커빌가를 방문했을 때 휴고에게 직접 들었던 말이었다.
비키르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회귀 전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움직이는 살인 인형과도 같았던 오시리스가 여자를 만나다니.
안 그래도 가문에 포메리안이 들어온 뒤부터 휴고와 오시리스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게 바뀌었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설마 이런 식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줄이야.
‘이것이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군.’
언제나 이해타산이 확실한 비키르조차도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언제부터?”
“좀 됐어. 서부전선의 원주민들과 바스커빌가의 교역을 중개 및 지원하면서부터야. 그때 경호 업무차 몇 번 만났거든. 뭐, 원래 어렸을 적에 안면이 있는 사이이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안드로말리우스의 숙주였던 세트가 죽은 이후 그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은원을 정리한 이가 바로 오시리스였다.
비키르가 아카데미로 떠난 이후 오시리스는 억울하게 멸문당한 메시나드나로 가문의 누명을 벗겨주었고 이에 따른 바스커빌가의 책임도 모두 인정했었다.
‘오래된 원로들을 축출하기 위한 피해 보상과 인사 발령 절차가 있었지. 그 와중에 눈이 맞은 건가?’
게다가 어렸을 적부터 안면이 있었던 소꿉친구였다니. 하여간 놀랄 일이다.
그 씬디웬디와 그 오시리스의 만남은 매사에 무덤덤한 비키르조차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게 만들 정도의 빅뉴스였다.
한편, 씬디웬디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그때와는 정반대네.”
씬디웬디와 처음으로 만나 대화했을 때 그녀는 감옥 안에 있었고 비키르는 감옥 밖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비키르는 감옥 안에 있고 씬디웬디는 감옥 밖에 있다.
이에 대한 비키르의 소회는 짧았다.
“예상했던 일이지.”
비키르는 고개를 돌렸다.
치와와, 미니핀, 아휼이 걱정스럽다는 시선으로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비키르는 감옥 바깥에 있는 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해 줘야 할 일들이 있다.”
비키르는 치와와, 미니핀, 아휼을 각각 따로 불러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달했다.
“……해서, ……에 식량을 비축, ……고지대의 요새화, ……인류 대이동, ……최후의 요새, ……토치카.”
조금씩 조금씩 키워드가 달랐지만 공통되는 키워드가 여럿 존재했다.
이윽고, 씬디웬디의 차례가 되자 비키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살로 다가왔다.
스윽-
이윽고. 비키르의 얼굴 가죽이 갑자기 벗겨져 나온다.
피카레스크 마스크.
덮어쓰는 순간 사용자의 살가죽과 동화되는 이 기묘한 가면이 씬디웬디의 손으로 넘어갔다.
“어머나? 이걸 왜 날 줄까?”
“네 것이 아니다. 까뮤에게 전해 줘라.”
단탈리안이 죽으며 남긴 유물. 악마의 힘이 짙게 배어 있는.
지금껏 비키르가 수없이 많은 악마와 그의 추종자들을 사냥하는 동안 쓰고 다녔던, 어찌 보면 밤의 사냥개의 상징과도 같은 가면이다.
“……그녀라면 내 뜻을 알아들을 것이다.”
까뮤에게는 세에레가 함께 있다. 그러니 분명 이 가면을 전해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건네받은 씬디웬디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말괄량이 아가씨가 또 세상을 얼마나 뒤집어 놓을지…… 망령목 때도 모르그 가문이 통째로 뒤집혔었는데.”
“세상은 자연스럽게 뒤집힐 것이다.”
“……?”
씬디웬디가 비유적으로 한 말에 비키르는 정색을 했다.
씬디웬디, 치와와, 미니핀, 아휼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키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키르는 모든 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곧 대홍수가 일어날 테니.”
그것은 멸망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 1의 행동강령.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책.
“방주를 준비해 둬라.”
비키르가 심복들에게 남긴 마지막 전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