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초심해의 유령성 (3)
입소식이 모두 끝났다.
죽은 죄수들의 시체는 분화구 속의 절벽 아래로 쓰레기처럼 던져졌다.
공식적으로 ‘처형’당한 것이 아니기에 지상의 명부에는 여전히 ‘생존 및 수감 중’으로 보고될 죄수들의 처지에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이 감옥에 서류상으로 갇혀 있을 것이다.
반면, 입소식에서 살아남은 죄수들은 층과 방 배정을 받았다.
무려 3천 번이 넘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이곳에 왔을 뿐만 아니라 소지품 검사, 건강 검진, 소독 작업에서 태연한 태도를 보였던 비키르에게는 당연하게도 ‘레벨나인’, 9층 판정이 내려졌다.
…철컹!
비키르는 비좁은 방에 갇혔다. 레벨나인은 기본적으로 독방 체제였다.
방 안의 분위기는 의외로 평범했다.
커다란 검은 벽돌로 축조된 석실. 마나와 물리력을 빨아들이는 물질인 비디스엠으로 만들어진 철창이 석실 전체에 덧대어져 있었다.
“이래서야 숟가락으로 벽돌을 파낼 수도 없겠군.”
비디스엠 철창은 그 간격이 촘촘할 뿐만 아니라 천장, 벽, 바닥을 모두 뒤덮고 있었기에 탈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애초에 벽이나 바닥을 뚫고 밖으로 나가 봐야 심해 1만 미터 아래의 해저이니 만큼 굴을 파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
또옥- 똑-
벽돌 사이사이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극도의 소금기가 농축되어 있는 간수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습기가 몸 전체에 찝찔하게 달라붙는다.
어둡고 춥고 눅눅한 기운이 독방뿐만 아니라 복도 전체를 꽉 채우고 있었다.
석실 내부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 흔한 침구류나 그릇 같은 것마저 아무것도 없는, 그저 텅 빈 정육면체의 공간.
하지만 비키르의 평가는 꽤나 후했다.
“그럭저럭 살 만한 곳이로군.”
악마들과의 살벌했던 전장을 수없이 구르던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 처지는 안락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비키르가 혼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쿵!
저 너머에 있던 육중한 철문이 한번 크게 울렸다.
끼기기기기긱-
자그마치 백 명이 넘는 간수들이 힘을 써야 열릴 정도로 무거운 문.
그것이 열리고 원래 이곳에 수감되어 있었던 죄수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밖에서 강제 노역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인 듯싶다.
“허억! 크허억! 끄르륵-”
“으으으…….”
“끄윽- 끄으으윽-”
작업장에서 강제 노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죄수들의 상태는 하나같이들 다 처참했다.
비키르는 이미 알고 있던 정보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레벨 1의 죄수들부터 레벨 9의 죄수들까지, 누벨바그의 죄수들이라면 모두 매일 새벽 노역장으로 나가 노역을 해야 한다.
그 노역이란 누벨바그가 위치해 있는 사화산의 내부를 파 내려가는 작업.
누벨바그의 내부 공간을 늘리기 위한 확장 공사라고 할 수 있겠다.
사화산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화산, 내부에 머금고 있는 엄청난 수준의 지열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래서 죄수들은 매일매일 삶아지고 타들어 가고 말라붙으면서 땅을 파고 또 파는 것이다.
“신입 죄수들 역시도 내일부터 바로 작업에 투입됩니다.”
비키르가 서 있는 철창 옆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일전에 봤던 간수인 가름 소위가 어느새 옆에 다가와 서 있었다.
그는 화상과 탈진으로 인해 신음하는 죄수들의 행렬 옆에서 걸어오며 말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오후 1시까지 쉬지 않고 노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점심 식사 시간은 10분.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정까지 노역이 계속됩니다. 이후 방으로 복귀해서 기도와 회개 시간 1시간을 가진 뒤 오전 1시에 취침하게 될 겁니다.”
즉 취침은 하루에 3시간, 끼니는 하루에 1번, 그것도 흑빵이나 육포 한 조각 같은 형편없는 식사를 10분 이내에 먹어 치워야 한다는 소리.
매일같이 계속되는 혹독한 고강도의 노역 작업은 물론이고 말이다.
가름의 목소리는 수직형 판옵티콘 구조로 되어 있는 누벨바그의 특성상 위로도 쭉쭉 울려 퍼졌다.
비키르는 가름의 목소리가 울리며 만들어 내는 파장을 듣고 누벨바그의 전체적인 구조를 감 잡을 수 있었다.
‘……커다란 원통형의 구조. 벽면에 죄수들의 방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고 맨 아래 9층 중앙에 작업장이 있는 모양새인가.’
레벨 9에 가까운 강한 죄수들은 지하 9층의 중앙 심층 부분에서 바위를 부수고 땅을 파 내려가는 작업을 하며 레벨 1에 가까운 약한 죄수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흙더미와 바위 조각들을 날라다가 밖으로 버리는 작업을 하는 듯했다.
중간중간에 배치된 죄수들은 수감된 층의 레벨에 따라 작업구역이 나뉘어 바위 무더기와 흙더미를 옮기는 노역을 한다.
즉 레벨 9에 가까울수록 작업장에서 가장 깊고 뜨거우며 위험한 곳에서 노역을 하고 레벨 1에 가까울수록 상대적으로 얕고 덜 뜨거우며 안전한 곳에서 노역을 하는 셈.
설명만 놓고 보면 복잡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림으로 보면 아주 쉽고 단순한 구조였다.
가름 소위가 말했다.
“당신들은 현재 위대한 누벨바그를 확장하는 영광스러운 노동을 하는 중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누벨바그의 확장.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들은 현재 ‘레벨나인’이라 불리는 지하 9층보다 한층 더 깊은 구역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일명 ‘레벨텐’, 지하 10층을 만들기 위한 대규모 공사.
지하 10층을 파 내려가고 있으니 작업장이 지하 9층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롭게 만들어질 구역 레벨텐에는 레벨나인에도 수감이 불가능한 흉악범들을 이감시킬 예정입니다. 제소자 여러분들께서도 본인들의 안전을 생각하신다면 적극 협조해 주시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가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가끔 누벨바그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흉악범들이 난동을 피우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늘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죽어 나가는 이들은 죄수들이었다.
그러니 죄수들의 입장에서는 약하면 약할수록 공사에 열심히 참여해서 위험한 상위의 죄수들을 하루라도 빨리 아래층으로 보내 버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일이었다.
비키르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누벨바그에는 규격 외의 괴물들이 많지.’
현재 레벨나인에 갇혀 있을, 비키르가 아는 범죄자들만 해도 그 수가 제법 된다.
‘시스투스 계열 엔트 메기디오’, ‘그리핀 경’, ‘잠자는 숲의 오로라’, ‘살부계의 스노우화이트’, ‘유리굽의 신데렐라’, ‘사드 후작’…….
하나하나가 단신으로 일개국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괴물들.
지상에 있을 때 종신형만 5천 번 이상을 선고받고 이곳에 수감된 그들은 누벨바그의 레벨나인 층으로도 감당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노역을 거부하거나 간수의 통제에 불응한다면 바로 독방행입니다. 레벨나인보다 끔찍한 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가름은 비키르를 겨냥한 듯 입을 열었다.
비키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 간수가 언급하는 독방은 비키르가 몸담고 있는 독방과는 전혀 다른 개념일 것이다.
‘독방이라. 끔찍한 곳이지. 한번 갇히면 살아서 나오기 힘든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곳을 버틸 만한 죄수는 누벨바그에서도 단 한 명뿐이라고 했던가.’
비키르가 회귀 전에 들었던 이런 저런 정보들을 상기하고 있을 때.
“……헉!?”
“오, 온다! 그들이 온다!”
“모두 비켜서! 자칫하면 잡아먹힌다!”
노역을 끝내고 돌아온 저레벨 층의 죄수들이 기겁을 하며 좌우로 물러섰다.
간수들 역시도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꼬나 쥔 채 문 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불길이 넘실거리는 지평선 너머로 검은 그림자들이 늘어진다.
크거나 작거나 혹은 어마무시하게 큰 그림자들.
“…….”
“…….”
“…….”
그들은 바로 노역장의 중심부에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레벨나인의 수감자들이었다.
귀환하는 레벨나인의 수감자들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려 있을 때.
비키르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심드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봐, 간수. 혹시 신문 같은 것은 없나?”
그러자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던 가름 소위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기가 막히다는 듯 대답했다.
“신문? 죄수 주제에 그런 귀한 걸 왜 찾습니까?”
“신문이 귀한 거였나? 그건 몰랐군.”
“바깥세상의 문물은 그게 무엇이든지 귀합니다. 특히나 신문처럼 정보를 다루는 것은 더더욱요. 간수들조차도 신문은 쉽게 구경할 수 없고 간수장급, 혹은 몇몇 극소수의 특권층들이나 되어야 읽을 수 있습니다.”
바깥세상과의 연결고리는 그만큼 귀하고 위험한 것이다.
적어도 누벨바그에서는 그렇게 통했다.
비키르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곳에 갇힌 것은 죄수나 간수나 마찬가지로군.”
그 말에 가름은 황당하다는 듯 두 손을 허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가름은 굳이 허리춤에 찬 삼단봉을 뽑지는 않았다.
‘……내일이면 그 여유도 사라질 것이다.’
제아무리 레벨나인에 갇힌 악마라고 해도 누벨바그의 노역을 한번 맛보면 기절초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은 한때 그 어떤 화산보다도 뜨거웠던 화산 ‘누벨바그’의 이름을 딴 감옥.
지금은 사화산이 되었다지만 아직 내부에 갇혀 나가지 못하고 있는 지열(地熱)은 그야말로 지옥의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뜨겁다.
내일부터 그곳을,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뜨거운 구역을 파 내려가야 하는 비키르에게 가름은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레벨나인의 악마들조차도 심심찮게 죽어 나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