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노역장 (2)
…우드득!
비키르는 몸통 전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손바닥 아래 깔려 버렸다.
“……인간의 힘은 아니로군, 확실히.”
비키르의 말대로, 지금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도르듐의 손바닥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침대만큼이나 거대한 손바닥, 거칠고 두꺼운 비늘들이 더덕더덕 붙은 손등, 시커먼 갈고리 같은 손톱.
그리고 다섯 개의 굵은 손가락 사이로 펼쳐져 있는 얇은 물갈퀴 너머로 비쳐 보이는 것은 검은 비늘과 노랗게 타오르는 동공이었다.
바다악어(Crocodile).
도르듐은 인간과 악어가 반씩 뒤섞인 듯한 괴기스러운 외형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은 제복이 찢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도르듐은 무시무시한 이빨들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한편 비키르는 도르듐의 짐승화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누벨바그의 5대 간수장은 전원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수인(獸人). 다양한 짐승의 유전자가 뒤섞여 있는 인간.
그들은 오크나 드워프, 엘프와 같은 유사인류로 취급되는 종족이며 지능이 높고 평상시의 외형이 인간과 큰 차이가 없어 인간과의 공존이 가능하다.
다만 그들은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동물의 모습이 뒤섞여 있는 괴기스러운 외형으로 변신하는데 이 때문에 많은 차별을 받아 왔고 이제는 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적어진 형국이었다.
“바다악어 계열 수인이라…… 이건 보기 드문데.”
비키르는 바닥의 무른 흙을 파헤쳐 도르듐의 손바닥 안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와 버렸다.
도르듐은 이빨을 드러내며 그런 비키르를 추격해 왔다.
검은 제복 안에서 굵고 긴 꼬리가 튀어나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콰쾅!
뒤에 있던 돌산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비키르는 꼬리가 지나간 빈 공간을 따라 안쪽으로 파고든 뒤 도르듐의 옆구리에 비디스엠 사슬을 휘둘렀다.
그러나.
…따앙!
도르듐의 제복 안은 이미 검고 두꺼운 비늘과 미늘로 가득 차 있었다.
아까 비키르가 주먹을 날렸을 때 데미지를 전혀 주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네게 승산은 조금도 없다.”
도르듐은 여전히 팔뚝에서 회전하고 있는 나선의 아우라를 땅바닥에 메다꽂으며 말했다.
콰콰콰콰콰쾅!
온 세상을 찢어발길 듯 요동치는 참격의 폭풍이 지면 아래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바위도 흙도 모래도 용암도, 모두 이 소용돌이 속에서는 고운 입자의 분진으로 변해 나부낄 뿐이다.
더군다나 주변에 있는 유황 가스들이 이 폭풍의 핵심을 향해 빨려 드는데다가 거기에 불까지 붙어서 주변의 대기 역시도 미친 듯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륵- 콰콰쾅!
폭발과 분쇄. 마치 파괴신이 강림한 듯한 그 광경에 죄수들도 간수들도 모두 기가 질려 저 멀리서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비키르 역시도 판단을 내렸다.
“아, 이건 안 되겠군.”
비디스엠 구속구를 차고 있는 이상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나마 나락수에서 쌓은 스탯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찢겨져 죽었을 것이 분명한 일.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비키르는 날아드는 참격을 피해 요리조리 물러났다.
목적지는 방금 전까지 비키르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노역을 하던 비탈길.
도르듐이 비키르를 따라 막 비탈길의 중턱까지 기어올라 왔을 때.
틱-
비키르는 미리 작업해 뒀던 눌림돌들을 발로 모조리 빼 버렸다.
그러자 불이 붙어 넘실거리는 거대한 바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쾅!
불붙은 바위는 비탈길을 따라 맹렬한 속도로 굴러떨어져 도르듐을 덮쳤다.
“지형지물을 숙지하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지.”
비키르는 항상 전투에 대비해 주위의 지형지물을 살펴 두는 습관이 있었다.
예전에 적과 흑 산의 수해에서도 그랬고 보육원에서도 그랬고 지금 이곳 누벨바그의 레벨나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누벨바그의 간수장을 얕보는구나, 애송이.”
도르듐은 코앞에까지 굴러온 집채만 한 바위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흐읍!”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 도르듐은 꿈틀꿈틀 부풀어 오른 팔뚝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는.
콰-쾅!
일격에 바위를 분쇄해 버렸다.
강력한 주먹과 그 뒤를 따라오는 칼날의 소용돌이는 바위를 산산조각으로 부순 것도 모자라 갈고 으깨서 먼지구름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오오오오오!
저 멀리서 지켜보던 간수들이 도르듐의 엄청난 신위에 환호성을 보낸다.
그러나.
“힘 한번 좋군. 어디, 더 해 봐라.”
비키르는 비탈길 위에 있던 눌림목 몇 개를 더 발로 툭툭 밀어 버렸다.
쿠르르르르릉-
아까 전보다 더 큰 바위들이 비탈길 밑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
도르듐의 이마에 비로소 식은땀 한 방울이 맺혔다.
“에에잇!”
부하들이 보고 있는데 여기서 물러난다면 간수장으로서의 체면이 살지 않는다.
비키르가 노린 대로, 도르듐은 굴러떨어지는 모든 바위들을 굳이 힘으로 부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쾅! 콰쾅! 콰지지직!
도르듐은 기세 좋게 바위 세 개를 연달아 격파해 버렸다.
하지만 네 번째 바위만큼은 조금 무리였던 모양인지…….
뻐억-
반 정도 부수는 데 그쳐야 했다.
나머지 바위 조각에 얻어맞은 도르듐은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갔고 비탈길 밑에 있는 용암 못에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다.
…풍덩! 푸시이이익-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는 초고온으로 끓고 있던 용암 못은 도르듐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
방금 전까지 환호성을 지르던 간수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노역장 전체에 기묘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퍼-펑!
용암 못의 수면이 박살 나며 무언가 커다랗고 시커먼 것이 위로 치솟아 올랐다.
도르듐. 만신창이가 된 몰골의 그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 뛰어 올라온 것이다.
간수장에게 지급되는 제복은 기본적으로 방화 기능이 있다지만 그것이 저 정도로 걸레짝이 된 것을 보면 도르듐이 입은 화상 데미지는 심각한 수준인 듯했다.
“크아아악! 이놈! 죽여 버리겠다!”
도르듐은 극도의 분노로 인해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용암에 빠지기 전보다 두 배 이상 부풀어 오른 근육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때.
“그만. 거기까지.”
비키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도르듐이 뭔 일인가 싶어 잠시 멈춘 틈을 타 비키르는 재빨리 용건을 밝혔다.
“더 이상 반항할 생각은 없다. 살려 줘라.”
“……?”
도르듐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레벨나인에 갇힐 정도로 흉악한 범죄자들은 대게 엄청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번 폭동을 일으켰을 때 그것을 진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처형뿐이다.
……한데?
“도저히 못 이기겠군. 마나를 쓴다면 또 모를까. 아무튼 개죽음 당하기는 싫으니 이만 하지. 살려만 준다면 무슨 처벌이든 받아들이겠다. 앞으로는 노역도 성실하게 하마.”
도르듐을 비롯한 모든 간수들은 그제야 비키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세상에, 레벨나인의 죄수가 자수를 하다니! 애초에 이럴 거면 왜 폭동을 일으켰단 말인가!
“이,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도르듐이 버럭 소리 지르려 할 때, 비키르가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참고로, 지금껏 노역을 하면서 모든 눌림목들을 조금씩 헐겁게 해 놨다.”
“……!”
“나를 살려 주지 않겠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작업량을 0으로 만들어 주지.”
비키르는 방금 전 빼 버렸던 눌림목들 말고도 수많은 눌림목 작업을 해 왔다.
만약 저 위에 있는 축대의 바위들이 모두 굴러떨어진다면 레벨나인 전 구역의 작업량들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으득-
도르듐은 이빨을 부러질 정도로 세게 갈았다.
저 얄미운 놈이 작정하고 도주한다면 언젠간 잡을 수야 있겠지만 피해가 너무 크다.
많은 부하들이 보고 있는데다가 다른 작업장들의 노역까지 멈춰 버린 이상 더 이상 소동을 지속시킬 수도 없었다.
“좋다. 자수한다면 처형은 면하게 해 주마.”
“그럼 됐다.”
비키르는 도르듐의 공개 약속을 받은 뒤에야 비탈길 위에서 내려왔다.
비키르가 내려오자 도르듐의 옆으로 다가와 있던 수많은 간수들이 달려들어 비키르에게 비디스엠 수갑을 2중 3중으로 채워 놓았다.
저벅- 저벅- 저벅-
도르듐은 무릎 꿇은 비키르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퍼억-
온 힘을 담은 주먹으로 비키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뚝- 뚜욱-
피범벅이 된 채 늘어진 비키르를 내려다보며 도르듐은 콧방귀를 뀌었다.
“독방에 갖다가 처박아라. 기간은 세 달, 아니 100일을 채우도록.”
“넵! 독방에서 일백 일이라면 사실상의 ‘처형’인 셈이로군요.”
옆에 있던 바스티유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많은 간수들이 달라붙어 비디스엠 사슬을 잡아끌었다.
비키르는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채 질질 끌려 깊은 동혈 속으로 사라졌다.
“……소동은 끝났다! 노역을 재개시켜라!”
도르듐은 고개를 돌려 고함쳤다.
그런데.
“…….”
간수들도 죄수들도 가만히 눈치를 보고 있을 뿐, 아무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도르듐이 다시 한번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당장 노역을 재개시켜!”
그때, 옆에 있던 키르코 소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기…… 대령님. 이런 말씀 드리기는 송구스럽지만…… 노역을 할 게 없는데요?”
“뭐라?”
도르듐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키르코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들어 도르듐의 뒤편을 가리켰다.
“……?”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 도르듐의 시야에 후방의 풍경이 들어왔다.
붕괴된 산. 산산조각 난 바위. 깊게 파헤쳐진 흙.
죄수들이 노역을 할 게 없을 정도로 공사는 많이 진척되어 있었다.
도르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날뛰는 동안 파괴 작업이 압도적으로 빨리, 많이 진행된 까닭이었다.
“……! ……! ……! ……!”
죄수들의 오늘 작업 할당량을 혼자서 모조리 채워 준 도르듐의 이마에 핏줄들만 터져 나갈 듯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