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독방 (2)
자기 이름을 ‘앙가주망’이라고 밝힌 노인은 심심한 모양인지 비키르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이 독방에 갇힌 지도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으이. 어디 보자, 내가 속으로 60초를 셀 때마다 마음속에 한 획을 그어두거든? 그게 벌써 삼백만 획을 넘었으니…….”
앙가주망의 말을 들은 비키르는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비키르에게조차도 독방에서의 100일은 힘겹고 막막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몇 년이나 갇혀 있었다고? 믿을 수가 없군.’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이의 말이기는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독방에서 만난 죄수의 말인지라 마냥 불신할 수도 없는 일이다.
“몇 년째 갇혀 있으면서 어떻게 안 굶어 죽었지?”
“푸스스스- 그야 이틀에 한 번씩 흑빵 부스러기를 대롱에 넣어 주잖나.”
“섭취할 수 있는 수분의 양은 모자랄 텐데?”
“그야 대기 중에 있는 이슬을 빨아 마시면 된다네.”
비키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슬이 있다고? 이 뜨거운 공간에?
하지만 앙가주망 노인은 태연하게 이곳의 생존법을 전수해 주고 있었다.
“뭐, 사실 빵 부스러기를 먹지 않아도 연명할 수는 있지. 몸 안의 신진대사를 극도로 천천히 돌아가게 하고 축적해 두었던 영양소들을 서서히 분해하는 거야.”
“…….”
“푸스스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이야, 너무 열심히들 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열정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일세. 너무 쉬지 않고 달려나가기보다는 가끔 이렇게 느긋하게 쉬면서 삶을 돌아보는 것도 좋아. 돌처럼, 물처럼 사는 게지.”
한가한 뒷방 늙은이의 시덥잖은 잔소리 같지만 흘려듣기에는 장소가 너무나도 신경 쓰인다.
무려 누벨바그의 독방.
레벨나인보다도 더 끔찍한 곳에 자칭 몇 년이나 갇혀 있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이곳에 갇혀서 아직 미쳐 버리지 않았을 정도라면…… 분명 거물급 범죄자였겠지.’
어쩌면 저게 이미 미쳐 버린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후 앙가주망은 비키르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젊은 친구 같은데. 뭣 때문에 이런 곳에 갇혔는가?”
“죄에 늙고 어리고가 어디 있겠나.”
“푸스스스- 맞는 말이기는 하군. 그래서, 뭐 때문에 수감되었어? 늙은이 질문에 답 좀 해 주게.”
“정적 암살.”
비키르가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앙가주망 노인이 껄껄 웃었다.
“좋은 일을 했는데 왜 수감되었어? 가문에서 팽 당했나?”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저런, 저런. 사냥개 신세였구만. 원래 산에 토끼가 떨어지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이 만고불변의 이치이긴 해.”
앙가주망 노인은 천연덕스럽게 뒤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왜인지 자네 출신이 어디인지 알 것 같군. 자네 바스커빌가지?”
비키르는 약간 뜨끔했다.
그리고 비키르의 그러한 동요를 앙가주망 노인은 귀신같이 간파하고는 예의 그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렸다.
“푸스스스스- 맞을 게야. 가문을 위해 열심히 일한 엽견(獵犬)을 이런 곳으로 보낼 만큼 비정한 가문은 몇 없거든. 기껏해야 철혈검가나 극독암가 정도겠지.”
“바스커빌가에 대해 잘 아는가 보군.”
“알다마다. 우리 가문도 한때는 철혈검가로 불렸었거든.”
앙가주망 노인의 말에 비키르는 잠시 머릿속을 뒤져 보았다.
지금이야 바스커빌가가 검가(劍家)의 지존으로 손꼽힌다지만 예전에는 아니었다.
제국이 하나로 통일되기 전, 대륙 곳곳에는 바스커빌가보다 명망이 높은 검술가문이 최소 4개는 더 있었다.
바하무트. 지즈. 사드. 니벨룽겐.
바스커빌은 이들 네 개의 가문에 비해 다소 밀리는 브랜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변변찮은 영지 하나 없이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가족형 용병단에 불과했으니까.
아무튼. 위의 네 가문에 바스커빌가가 더해져 5대 철혈검가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앙가주망 노인은 그 시절이 그립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가문 역시 명문 검가(劍家)로 통했지. 그런데 나 때부터 검을 놔 버린지라 그 뒤부터는 검의 명맥이 끊겼을 것이야. ……음, 아니. 아예 가문 자체가 사라졌으려나?”
“후손들이 없는가?”
“흐음~ 손녀가 하나 있긴 있었지. 근데 죽었나 살았나 몰라. 살아 있다면 아마 자네보다도 나이가 많을 걸세. 엄마뻘…… 까지는 아니고. 막내이모나 큰누나뻘쯤 되려나.”
“당신, 꽤나 오래 살았나 보군?”
“그럼. 오래 살았지. 한평생을 전장에서 보내왔다네.”
앙가주망 노인은 끌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늙은이에게 난데없이 평화로운 세상에 적응하라니. 그건 무리였지. 싸움과 전쟁이 곧 내 삶이었는걸.”
“당신은 지금도 누벨바그의 독방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군. 일관성 있는 삶이야.”
“푸스스스- 치열해? 여기가? 천만에. 이곳은 휴양지나 다름없지. 지금은 예전에 싸웠던 여독을 풀기 위해 이렇게 느긋하게 푹 쉬고 있지만…… 곧 좀이 쑤시게 되면 나갈 생각이야.”
누벨바그의 독방을 휴식처로 여기는 배짱을 보아하니 보통 노인네가 아니었다.
비키르는 옆에 있는 이 노인이 대체 얼마나 긴 세월을, 그리고 얼마나 치열한 삶을 겪어 왔을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그때, 마침 앙가주망 노인 역시도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자네 나랑 대화가 좀 되는 것 같은데. 혹시 논검을 할 줄 아는가?”
논검(論劍). 경지에 오른 바둑 기사들이 눈을 감고 구술로만 대국을 치르듯, 경지에 오른 칼잡이들은 눈을 감은 채 구술로 대련을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검로와 초식을 모조리 꿰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
비키르는 앙가주망 노인의 논검비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바스커빌가의 검술을 아나?”
“대충은 알지. 자, 그럼 시작하겠네.”
앙가주망 노인은 입을 열어 초식 전개를 시작했다.
비키르 역시도 가진 바 힘을 풀어 가며 가상의 대련을 전개해 나갔다.
바스커빌 제 1식. 상대방의 몸을 깊게 찌르는 이빨.
바스커빌 제 2식. 상대방의 몸을 한번 더 깊게 찔러 고정시키는 이빨.
바스커빌 제 3식. 상대방의 몸을 물고 무게를 싣는 이빨.
바스커빌 제 4식. 상대방의 몸을 베어내는 이빨.
.
.
비키르는 몸풀기 삼아 바스커빌 1식부터 4식까지를 전개해 나갔다.
놀랍게도 앙가주망 노인은 비키르가 축적한 4식의 숙련도를 꿰뚫어 보았다.
“놀랍군! 약관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4식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다니. 마치 한평생을 전장에서 구르며 살아온 중년을 보는 것 같잖은가!”
그러나, 말을 마친 그는 웃음기 어린 어조로 첨언했다.
“……뭐, 이 늙은이에 비하면 아직 새파란 애송이지만 말이야.”
이윽고, 앙가주망 노인이 초식을 전개해 나갔다.
비키르는 앙가주망 노인이 쓰는 검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앙가주망 노인은 비키르가 가진 검술이론을 토대로 자신의 것을 역전개 시켜 나갔다.
앙가주망 노인의 검술을 몰라도 자신의 검술에 대해서는 빠삭한 비키르는 자연스럽게 앙가주망 노인이 자신의 검술을 어떻게 파훼해 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마치 눈에 그려지는 듯한 광경.
비키르의 1식은 앙가주망 노인의 부드러운 검격에 잡아먹혔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2식은 오히려 자신의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는 꼴만 되어 버렸다.
아직 미처 쏘아져 나가지도 못한 3식과 4식은 곧바로 앙가주망 노인의 공격에 잡아먹혔고 이내 비키르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갈라질 위기에 봉착했다.
‘……뭐지? 보통 능구렁이가 아닌데?’
비키르는 슬쩍 간만 보려던 것을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다.
이윽고, 비키르의 힘이 모두 드러난다.
바스커빌 제 5식. 상대방의 몸을 뜯어내는 이빨.
바스커빌 제 6식. 상대방의 몸을 부수는 이빨.
바스커빌 제 7식. 상대방의 몸을 다지는 이빨.
바스커빌 제 8식. 모든 이빨들을 하나로 모아 고정시키는 이빨.
바스커빌이 도달할 수 있는 검술의 극의. 살아 있는 자의 한계.
그것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앙가주망 노인을 역공격했다.
흑양(黑陽).
오번시 암두시아스의 숨통을 끊어 버렸던 바로 그 궁극기가 논검비무의 가상 세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푸스스스스- 이거 정말 나를 놀라게 하는군. 믿기지가 않아. 어찌 이런 나이에 이런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앙가주망 노인은 놀랄 뿐, 겁먹거나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앙가주망 노인의 힘이 비키르의 힘과 맞부딪친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흉폭함과 공격성, 그 저돌적인 반격에는 지독한 광기마저 어려 있었다.
한평생을 싸움과 전쟁으로만 보내 온 미치광이 전쟁광다운 승부수.
그 저돌성에는 비키르조차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광인(狂人)이 존재했다니.’
비키르 역시도 앙가주망 노인과의 논검으로 인해 생경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오로지 싸움과 살육, 분쟁만을 위해 세상에 내놓아진 결과물.
그야말로 전쟁 미치광이 그 자체이다.
숨 쉬는 한 호흡 한 호흡,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뻗는 한 손길 한 손길마다 모두 살의와 파괴에 대한 열망으로만 가득하다.
남을 괴롭히고 싶어 안달 난 아우라. 이 어긋난 극의. 삐뚤어진 고결함.
왜 이 노인이 인류에게서 멀리 격리되어 이곳 누벨바그,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혹독한 곳의 독방에 갇혀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미친놈이로군. 악마든 인간이든 종(種)의 문제를 떠나 절대 엮이면 안 될 타입이다.]오죽했으면 한때 악마였던 데카라비아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그때, 앙가주망 노인이 끌끌 웃으며 말했다.
“자네와 이렇게 논검이라도 하니 살짝 의욕이 생기는걸? 약간이나마 젊어진 느낌이야.”
“도움이 됐다니 기쁘군.”
“큰 도움이 됐지. 아!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얼마 만인가 몰라. 윈스턴과 오르카 이후로 말이야. 으음, 그 전에는 역시 바스커빌가의 칠백작들과 싸울 때였던가.”
“칠백작들과? 보스턴테리어나 그레이트데인, 이자벨라 같은 인물들 말인가?”
“누구? 그런 아해들은 몰라. 지금의 칠백작들 말고, 전 시대의 칠백작들 말이다.”
하긴, 앙가주망 노인의 연배를 미루어 짐작해 보면 최소한 두 세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앙가주망 노인은 비키르에게 물었다.
“지금 바스커빌가의 가주가 누군고?”
“휴고 레 바스커빌.”
“휴고…… 휴고…… 그게 누구지? 웬 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녀석이 해 먹고 있는가 보구만. 왜 케인코르소 그 꼰대가 가주 직을 계승받지 않았지?”
“……케인코르소를 아나?”
“암, 알지. 엄하고 까탈스러운 양반이었어. 내가 소싯적에 뭣도 모르고 까불다가 많이 당했지.”
앙가주망 노인은 마치 유년 시절의 소꿉놀이를 회상하듯 아련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치의 참격을 떠올리면 지금도 살이 떨릴 정도야. 푸스스스- 지금은 죽었으려나? 하긴 세월이 이리도 많이 흘렀는데 당연할지도. 어쩌면 뭔가에 홀려서 그 칼침의 무덤인지 뭔지 하는 환상을 쫓아가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철이 덜 든 바보처럼 말일세.”
“…….”
비키르는 입을 다물었다.
칼침의 무덤이라는 곳이 실존한다는 것도, 케인코르소가 데스나이트가 되어 9식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도 굳이 말해 줄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비키르는 앙가주망 노인의 정체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회귀하기 전, 누벨바그의 간수들은 악마와 인간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멸마전 초창기의 이야기.
멸마전이 후반부로 이르자 누벨바그의 간수들 역시도 지상으로 나와 악마들과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누벨바그의 붕괴.
누벨바그라는 장소 자체가 사라져 버렸기에 간수와 죄수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그때 누벨바그라는 감옥을 붕괴시킨 이는 교도소장 오르카 본인이었지.’
누벨바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그가 왜 그런 행동을 취했을까?
그 내막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했었다.
하지만 그 중 꽤나 설득력 있는 설 하나가 있었다.
한 탈옥수가 지상으로 나가려 했고 교도소장 오르카가 그것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고작 한 사람의 탈옥을 막기 위해 누벨바그급 교도소 전체를 붕괴시켰을 정도라면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탈옥수가 누구였느냐에 대해서는 호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했는데……
‘아마도 이 사람인 것 같군.’
만약 그렇다면 비키르는 앙가주망 노인이 누구인지, 그 진명(眞名)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논검비무와 바스커빌가의 오래된 역사들을 알고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확실하다.
비키르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가급적이면 얽히지 않아야 할 인물.’
악마보다도 더욱 더 끔찍하고 무서운 인간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