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사육장 (1)
이름도 소속도 없는 하급 간수 비키르.
누벨바그의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이 사냥개의 정체와 의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괜히 까뮤에게 넘겼나? 조금 더 갖고 있어 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비키르는 천장에 납작 붙어 전진하며 생각했다.
불침번을 서는 간수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작은 덩치인 편이 수월하다.
그래서 강아지로 변한다면 숨어 다니기가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이내 비키르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누벨바그 안에는 개나 고양이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만약 개의 몸으로 변해 돌아다녔다면 눈에 무척이나 띄었을 것이다.
간수들은 가끔 애완동물을 길렀지만 그 대상은 보통 가재나 게, 문어 등이었고 종종 물개나 물고양이, 물소를 키우는 이들도 있었다.
‘애완동물을 기르려면 수족관이 필수겠군.’
이곳은 깊은 심해이니만큼 당연한 일이다.
비키르는 어느새 주변에 사람이 모두 사라졌음을 깨닫고는 바닥에 내려섰다.
5층. 비키르가 탈옥을 위한 1차적 목적지로 삼은 곳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바다였다.
드넓은 광장에는 구획별로 커다란 원형의 웅덩이들이 존재했고 그 사이사이에는 좁고 가파른 통로들이 나 있었다.
수족관. 혹은 양식장.
이곳은 누벨바그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수족관이었다.
“어디 뭘 키우나 좀 볼까?”
비키르는 수족관 구석에 적재되어 있는 밧줄 한 무더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끝에 붙어 있는, 어지간한 배의 닻만큼이나 큰 갈고리바늘에 절인 농어를 꿰고 웅덩이 안으로 던졌다.
풍덩-
미끼가 웅덩이 안의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반응이 왔다.
스으으으윽-
수면 위로도 보였다. 미끼를 향해 접근하는 길고 거대한 그림자가.
…꽈악!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보였다.
비키르는 손에 힘을 콱 주고 밧줄을 잡아당겼다.
촤아아아아악-
수면 위로 거대한 물봉우리가 융기해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물 밑에 있던 것이 낚싯바늘에 꿰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장어였다.
“……음. 이게 풍선장어라는 것이군.”
‘풍선장어(Gulper eel)’의 외형은 실로 기괴했다.
바짝 마르고 앙상한 꼬리에 반해 지나칠 정도로 거대한 머리와 배.
그 와중에 머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입은 거대한 신전의 정문만큼이나 크고 넓었다.
생김새는 기괴했지만 의외로 마계에서 넘어온 몬스터는 아니고 원래 심해에 살던 고유종.
한입장어, 꿀꺽장어, 엘리베이터 장어 등의 별명으로도 통한다.
[그-오오오오오!]이 거대한 심해어는 수면 위로 끌려 나오자마자 바로 짜증을 부렸다.
거대한 입을 쩍 벌리자 하나하나가 낚시바늘처럼 생긴 이빨들이 몇 중으로 빼곡하게 돋아나 있는 잇몸이 보인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는 듯 이빨의 뒤에는 까끌까끌한 미늘들이 수북하게 돋아나 있었다.
……물론.
“버릇없게 자란 장어로구나.”
비키르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뻐억!
단 한 번의 뺨따귀로 장어의 이빨 대부분을 부러트려 버린 비키르는 축 늘어진 채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장어를 육지로 완전히 끌어내 올렸다.
“많기는 많군. 이놈이 제일 큰가?”
비키르는 수없이 많은 장어들이 무리 지어 수족관의 웅덩이 속을 둥글게 헤엄치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방금 잡은 것은 운 좋게도 그중에서 제일 큰 놈이었다.
이 풍선장어는 누벨바그에서 본격적으로 사육하고 있는 어종이다.
특징으로는 몸뚱이가 너무 크고 지느러미와 꼬리가 너무 작아서 헤엄을 잘 못 치는 대신 몸의 부피가 크고 체중이 가벼워 해류에 둥둥 떠밀려 다니는 식으로 아득한 심해를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몸의 대부분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은 부분도 뼈와 가죽밖에 없어서 살코기를 얻을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워낙에 비리고 역한 냄새가 풍기기에 식용으로는 거의 쓸 수 없었다.
보다시피 애완용으로 삼을 만큼 귀엽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쓸모없어 보이는 어종을 왜 누벨바그에서 작정하고 양식하느냐?
“이게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엘리베이터’이기 때문이지.”
비키르는 눈앞에서 헐떡거리는 풍선장어를 바라보았다.
지상에서 누벨바그로 내려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혹한 바다에서도 한참을 멀리 항해해야 도달할 수 있는 해역.
자정 12시에 1차 현관문 역할을 하는 소용돌이가 열리면 그 안으로 오르하르콘 합금 관짝 안에 죄수를 넣어서 가라앉게 하면 된다.
죄수가 든 관은 해류를 따라 천천히 가라앉아 이내 심해 1만 미터 아래에 있는 이곳 누벨바그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누벨바그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바로 이 풍선장어를 이용하면 된다.
놈의 입은 크고 뱃속은 더 크다. 사람이 몇이든 얼마든지 탑승할 수 있을 정도.
살은 무르고 피부는 질겨서 심해의 아득한 수압에 짓눌리면서도 잘 살아남는다.
이와 같은 생물학적 특징을 갖춘 풍선장어는 탑승자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 적당한 크기까지 사육된다.
드문 일이지만 지상으로 올라갈 일이 생길 경우 적당한 크기의 풍선장어 한 마리가 골라져 나오고 탑승자들은 장어의 입을 벌리고 그 뱃속으로 들어간다.
풍선장어는 신체 특성상 수압을 견디는 힘이 뛰어나지만 스스로 헤엄칠 힘은 거의 없는 존재, 녀석들은 지상으로 통하는 ‘특정한 해류’에 탑승하여 천천히 지상까지 흘러 올라간다.
그래서 불리는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엘리베이터 장어’인 것이다.
“……저 거품막 하나만 뚫고 나가면 바로 탈옥 가능인가.”
사육장의 끝 통로에는 시커먼 심해의 풍경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사실 사육장 안과 밖의 심해 사이에는 두 공간을 가로막는 투명한 점액의 방수벽이 쳐져 있었다.
마치 비누방울처럼 보이는 이 점액질의 끈적하고 투명한 벽을 누벨바그의 간수들은 ‘플러버(Flubber)’라고 불렀다.
‘비디스엠’과 ‘플러버’, 이 두 가지는 누벨바그를 존속 가능하게 하는 핵심 물질이다.
비디스엠은 죄수들의 마나와 힘을 구속함으로써 질서를 만들고 플러버는 외부에서 성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막아서 감옥 자체가 유지될 수 있게 해준다.
둘 다 아직까지 정체가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는 미지의 물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끈적…
비키르는 창문을, 아니 누벨바그의 고성 전체를 덮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점액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플러버 역시 비디스엠과 함께 누벨바그의 보안을 책임지는 물질이었지만 비디스엠만큼의 견고함은 없었다.
이제 구속구를 벗어던졌기에 마나도 쓸 수 있는 비키르로서는 이 플러버라는 물질을 뚫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질질질-
비키르는 장어의 꼬리를 잡아끌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장어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놈들의 몸은 흐물흐물해서 좁은 창문도 통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헤엄치는 능력도 없어서 해류만 착실하게 따라가니까.
“이건 거인을 구속하려는 용도인가? 뭐 이렇게 크담.”
비키르는 방금 전 낚은 풍선장어를 들여다보았다.
대 거인족용 구속병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큰 대형 장어였다.
다른 수족관에는 작은 것들이 우르르 사육되고 있는 반면 이 정도로 큰 녀석들은 수족관 안에도 몇 마리 없다.
쿠구국-
비키르는 장어의 혓바닥에 고삐를 채웠고 이내 줄을 뱃속까지 길게 늘어트렸다.
아무리 장어가 헤엄치는 능력이 없다고 해도 지느러미의 방향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윽고.
…뻥!
비키르는 장어를 바다 밖으로 걷어차 버렸다.
뿌지지지직!
플러버 점액이 찢어지며 장어가 아득한 심해의 공간으로 빠져나간다.
뱃속이 텅 빈 채 말이다.
그 이후 비키르는 밧줄과 낚시바늘,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농어를 미끼로 몇 마리인가의 장어를 더 낚아 올렸다.
작지만 비키르 하나가 들어가기에는 충분한 크기로 세 마리, 아까 놈보다 더 큰 놈으로 두 마리.
비키르는 그놈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혀와 지느러미에 고삐를 채운 뒤 창밖으로 밀어 버렸다.
플러버 창문은 한번 찢어져도 금세 다시 아물었기에 바닷물이 계속 밀려 들어올 걱정도 없었다.
그때, 여섯 번째 장어를 물 밖으로 내보내고 있던 비키르에게 데카라비아가 물었다.
[인간. 그런데 왜 장어들을 계속 바다로 내보내는 거냐? 타지도 않을 거면서.]“교란시키기 위해서지. 이 장어들을 다 추격하려면 인력이 많이 들 것이고 시간도 오래 걸릴 테니까.”
[아하.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여유가 되면 교란책은 하나씩 꼭 마련해 두는 편이 좋지. 탈옥할 때는 특히나 말이야.”
낚아 올린 장어를 모두 창문 밖으로 내보낸 비키르에게 데카라비아는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비키르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안 나갈 것이다.”
[……뭐?]데카라비아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그럴 거면 장어는 애초에 왜 풀었어?]“말했잖은가. 교란책.”
비키르는 옅게 미소 지었다.
“장어를 타고 나가는 것은 조금 뒤다. 탈옥은 아직 최종단계가 아니야.”
지금 나가면 교란용 장어를 몇이나 풀었든 간에 무조건 잡힌다. 해류가 흐르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
또한 비축해 둔 식수나 식량도 없었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항해에 무작정 임할 수도 없었다.
또한 장어가 중간에 더 큰 심해괴물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암초나 거친 해류에 좌초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비키르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탈옥에 임하고자 했다.
불확실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뭐야? 탈옥수야?”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비키르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얼굴의 화상 자국을 싹 지워 버리고 맨 얼굴로 돌아갔다.
천천히 뒤돌아서는 비키르의 앞으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제복을 입었길래 간수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목소리는 비키르를 마주한 채 흥미롭다는 듯 감탄성을 흘렸다.
“흐음- 이렇게 생겼구나. 내 수갑을 부순 놈의 얼굴은.”
가름의 얼굴이 아닌 비키르의 얼굴을 보고 감탄하는 존재.
녹색 머리카락에 나른하게 풀린 눈, 아직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소녀.
하지만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 몇 겹으로 채워져 있는 구속구는 분명 낯익은 것이었다.
간수의 제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구를 차고 있는 이 의문의 소녀는 가슴팍에 반짝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원스타. 대령의 윗 계급인 준장을 뜻하는 표식.
비키르는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렇군. 네가 만든 것이었나.”
그동안 못내 해결하지 않았던 비키르의 오래된 의문 하나가 해소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