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사육장 (3)
비디스엠. 그녀는 농도 짙은 소금물 속에서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호호호- 놀라긴.”
비키르를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리는 그녀의 입가에서는 앳된 볼살이 싹 빠져나가 있었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활짝 만개한 농염함이었다.
비키르는 순수하게 놀라며 감탄했다.
“……해초 계열 엔트? 그런 게 실제로 있을 줄이야.”
숲속에서 사는 엔트에 대한 이야기는 적과 흑 산의 수해에 살던 시절 많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엔트는 숲에서만 서식하는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엔트는 해저 깊은 곳의 해초숲에도 서식한다.
수인이 여러 가지 동물의 계열로 족보가 나뉘는 만큼 엔트 역시도 여러 가지 식물의 계열로 족보가 나뉘는데 비디스엠 같은 경우에는 다시마나 미역류의 해초 계열 엔트였던 것이다.
“흠. 생각처럼은 안 풀리는군.”
비디스엠을 바닷물 속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 오히려 치명적인 악수가 되어 비키르의 발목을 잡았다.
일반적인 식물이야 소금기에 닿으면 잎이 까맣게 타들어가 고사해 버리지만 해초의 경우에는 오히려 활기를 찾으니 말이다.
…파캉!
비키르는 날아드는 해초 사슬들을 발로 걷어찼다.
해초에 달려 있는 둥글고 딱딱한 몽우리들은 발등에 닿을 때 흡사 볼링공을 전력으로 걷어차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번거롭네.’
비키르는 팔에 들러붙는 잎사귀들을 걷어 내며 수면 위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비디스엠은 비키르가 물 밖으로 탈출하게끔 내버려 두지 않았다.
“호호- 어딜 가려고? 기껏 들어왔는데 좀 더 놀다 가~”
질기고 쫀쫀한 해초 줄기들이 바다뱀처럼 날아들었다.
키리리릭-
풍선장어 양식장 밑바닥에 돋아난 검은 해초들이 비디스엠의 수족처럼 움직여 비키르의 발목을 붙잡았다.
차라라라락- 꽈악…
그 위로는 길고 거대하게 자란 해초의 잎사귀들이 대각선과 가로 세로로 뻗어나가 격자무늬의 포위망을 만들고 있었다.
호망, 승망, 각망, 자망, 유망, 투망, 몰이망, 저인망…… 비키르 하나를 노리고 온갖 종류의 그물들이 펼쳐졌다.
가두는 것뿐만이 아니라 옥죄어 오기까지 하는 무시무시한 구속구였다.
끝이 뾰족하게 돌돌 말린 해초의 창들이 꼼짝달싹 못하게 된 비키르의 전신을 관통할 듯 달려들었다.
그물로 묶고, 창으로 찌르고, 게다가 일단 닿은 이상 마나와 힘도 쓰지 못한다.
비디스엠을 무적의 괴물로 만들어주는 필승 패턴이었다.
퍼퍼퍼퍽!
피와 살점, 내장이 폭죽처럼 터진다. 물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흐응.”
하지만 비디스엠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수없이 많은 해초의 창들은 결국 비키르에게 닿지 못했다.
비키르가 결정적인 순간 옆을 지나가던 풍선장어의 꼬리를 잡아당겨 방패로 쓴 것이다.
퍼퍽! 퍽! 퍼억!
뒤늦게 날아온 해초의 창들 역시도 비키르가 끌어당기는 풍선장어들에게 막혀 엉뚱한 오발 사고만 내고 있었다.
“으윽! 이 풍선장어 하나 키우는 데 몇 년이 걸리는데! 도르듐과 수와레가 알면 난리 나겠는걸.”
화가 난 비디스엠의 전신에서 기포가 끓기 시작했다.
부글부글부글……
과연 식물답게, 비디스엠은 몸에서 엄청난 양의 산소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왜 그렇게 비디스엠을 과보호했는지 알겠군.’
비디스엠은 죄수들의 마나와 힘을 구속하는 비디스엠 구속구를 제작하는 것 외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감옥 내부에 산소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마나와 물리력을 차단하는 능력 말고도 유황이나 유증기 같은 것을 먹고 그것을 산소로 바꾸는 기묘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비디스엠이 없다면 누벨바그 역시도 없다.
플러버로 둘러싸인 점액 돔 안에서는 산소를 따로 공급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더더욱 마음에 드는 친구잖나.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구나.”
비키르는 방패로 쓰던 풍선장어를 내버리고 다음 풍선장어 위에 올라탔다.
뻐억-
아래에서 급상승한 해초의 창이 풍선아귀의 위턱과 아래턱을 동시에 꿰뚫는 순간.
…쿵!
비키르 역시도 풍선장어를 버리고 사육장의 바닥에 착지했다.
“호호호호- 더 깊게 내려가겠다고? 자살행위일 텐데?”
비디스엠은 긴 해초들을 그물망처럼 펼쳐 수면 위로 가는 길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이제 비키르는 꼼짝없이 웅덩이 바닥에 갇힌 처지가 되었다.
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호흡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슈르르르르륵-
비키르의 오른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현상에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에 있는 비디스엠조차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기묘한 방향으로 흐르는 수류(水流). 그것은 비키르의 오른손을 향해 천천히 빨려들고 있었다.
‘뭐지? 저쪽에 구멍이라도 있나?’
물이 새는 것이 아니라면 저쪽으로 수류가 생길 이유가 없다.
비디스엠이 뭔가가 이상하다고 막 느끼는 순간.
쿠르르르르륵!
수류의 강도가 갑자기 세졌다.
마치 어디에 물이라도 새는 듯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물살.
주변의 해초는 물론이고 비디스엠마저 그 수류에 휘말려 끌려갈 뻔했다.
“뭐, 뭐야!?”
식물 특유의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비키르가 뻗고 있는 오른손에 잡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이 처절하게 외치는 경고였다.
‘기갈가뭄’.
마수(魔樹) 혈수의 옥잠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 수분을 가진 것이라면 모조리 말려 버리는 힘.
비키르는 웅덩이에 있는 모든 수분을 말려 버릴 셈이었다.
그리고 물이 말라 사라지고 난 빈 공간에 새로운 물이 채워지고 그것이 또 말라 사라지길 반복하며 격한 수류가 생겨난 것이다.
비키르는 바알제붑을 통해 아우라를 뿜어냈다.
마치 쏟아지는 기름을 역으로 거슬러 오르는 불길처럼, 비키르의 아우라는 소용돌이치는 수류를 타고 역방향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 대상은 당연히 비디스엠이었다.
“헉!?”
비디스엠은 물로 가득 찬 공간 자체를 쪼개 버리며 날아드는 여덟 개의 이빨에 경악했다.
흑양. 바다 밑에 조그맣지만 밀도가 높고 무거운 검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륵!
검은 태양은 놀라운 속도로 몸집을 불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본디 비키르의 필살기인 이 흑양은 파괴력은 있지만 주변의 것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없었다.
다만 이곳이 물속이라는 점, 그리고 비키르가 혈수의 옥잠화가 가진 기갈가뭄의 힘을 사용할 줄 안다는 점이 연계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는 셈이었다.
‘저, 저 자식!? 애초부터 이걸 노리고 물속에……!’
비디스엠은 그제야 비키르의 노림수에 완전히 말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검은 구체는 기실 수없이 많은 이빨들의 집합체, 중심부로 끌려 들어갔다가는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뻔하다.
살점토막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온몸이 분해될 것이다.
“꺄아아아악!?”
비디스엠은 어떻게든 수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가용 가능한 해초들을 모조리 끌어올려 쏘아 보냈지만 전부 다 검은 태양의 중심부터 빨려 들어가 장작이 될 뿐이다.
갈가리 찢겨져 분쇄된 해초들은 파편조차도 건질 수 없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저 괴물 같은 놈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비디스엠의 해초에 닿아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마나와 물리력을 모조리 무효화하는 비디스엠의 해초가 이렇게 무력하게, 흡사 싸구려 종잇장처럼 찢겨지는 걸 누벨바그의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도 기겁을 하리라.
하지만 아주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쿠르르륵…… 쿠륵! 꾸르륵!
대량의 수초들을 모조리 검은 태양에 때려 박은 결과, 수류가 조금은 느슨해졌다.
그래서 비디스엠은 겨우겨우 수류에서 벗어나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푸하!”
수면을 박차고 밖으로 나온 비디스엠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빠,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겠어. 이걸 도르듐이랑 수와레에게 알려야…….”
하지만. 그녀는 일곱 걸음을 채 옮겨 놓기도 전에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어?”
시야가 팽글팽글 돈다. 분명 똑바로 내딛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인가 발이 꼬여 있었다.
…쿵!
비디스엠은 바닥에 엎어진 채 허우적거렸다.
‘?’
‘왜?’
‘내가 왜 이러지?’
‘왜 몸이 말을 듣지 않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빨리,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하는데……’
해결되지 않는 의문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촤악-
비키르 역시 수면을 부수고 밖으로 올라왔다.
“해초라서 그런지 물을 많이 먹는군.”
비디스엠을 향해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비키르, 그의 손가락 끝에서는 검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담의 독.
비키르는 일전에 비디스엠이 풍선장어들을 도륙 내며 피보라를 일으킬 때 슬쩍 자신의 피를 물에 풀어 버렸던 것이다.
이후 수류에 의해 와류가 형성되면서 비디스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량의 독을 전신으로 흡입한 상태였다.
물에 의해 묽어진 독이었기에 효과가 늦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일단 증상이 나타난 이상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헉! 허억! 컥!”
비디스엠은 한 손으로 목을,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바닥을 기었다.
슈우우우욱-
독에 의해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갔고 그 때문에 몸에서 수분도 증발한다.
몸 곳곳에는 죽음을 알리는 반점, 검버섯이 피기 시작했다.
소녀에서 성인 여성의 외형으로 변했던 비디스엠은 이제 쪼글쪼글 말라붙은 늙은이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내가 죽으면…… 죄수들의 구속구와 철창이…… 모두 힘을 잃어…… 그것만은…… 그것만은…….”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앞으로.
저벅- 저벅- 저벅-
밤의, 아니 누벨바그의 사냥개가 발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워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