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최악의 고문 (3)
“대화로 해결하자.”
비키르. 아니, 가름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은 입을 딱 벌렸다.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간수들은 물론 심지어 인질극을 주도하고 있던 시끗과 인질로 잡힌 키르코마저도.
…….
정적. 방금 전까지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던 노역장 전체에 침묵이 감돌았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이는 바로 시끗이었다.
“이게 뭐야. 멍청이 가름이잖아? 너 미쳤냐?”
비키르는 멸망의 시대를 거쳐 온 백전노장, 마나와 기척을 숨기는 것에는 도가 텄다.
오죽했으면 바스커빌가의 가주 휴고조차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시끗은 당연하게도 가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비키르는 가름의 모습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깨끗한 맨정신이다.”
“아니, 애초에 너는 예전에 나한테 죽은 게 아니었…….”
“한때는 그럴 뻔도 했지.”
사람은 죽을 정도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내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기 마련이다.
시끗은 예전과는 딴판으로 변한 가름의 기세에 눈을 가늘게 떴다.
“생긴 것은 그대로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군. 눈빛이 조금은 쓸 만해졌는걸?”
“알면 내 동기를 풀어 줘라. 겸사겸사 작업도 계속 진행할 수 있게끔 말이야.”
“끄르르르…… 지랄 마라 애송아. 눈빛이 변한 게 기특해서 말 좀 섞어 줬더니 어디까지 맞먹으려는 게야.”
시끗은 가름 따위와는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가름은 물러서지 않은 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뒤에서 몇몇 간수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하급 간수! 거기가 어디라고 나서는 거냐!”
“당장 돌아오지 못해!? 인질만 늘어날 뿐이다!”
“쯧쯧, 곧 뒈지겠군. 제 주제를 알아야지.”
그 말대로였다. 시끗은 목을 풀며 입 안으로 가래침을 끌어 올렸다.
…퉤엣!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가래침이 가름의 얼굴을 향해 돌팔매처럼 날아들었다.
맞으면 역병이 옮을 것이 뻔한 공격이었다.
한데?
슥-
가름은 그저 고개를 옆으로 슬쩍 젖히는 것만으로도 시끗의 공격을 피해 냈다.
도저히 하급 간수가 반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시끗의 표정이 변했다.
그 틈을 타 가름은 간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제법 구미가 당길 만한 대화거리가 있지. 궁금하지 않나?”
“끄르르륵! 어처구니가 없군.”
시끗은 황당하다는 듯 웃어 버렸다.
“대체 뭔 대화를 하자는 거냐? 너랑 나랑.”
먹혔다.
고위 간수들이 입으로만 내뱉는 말은 애초에 믿을 거리가 못 된다.
그것은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시끗 본인이 제일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고위 간수들도 쩔쩔매고 있는 마당에 혼자서 배짱 좋게 걸어 나온 하급 간수 나부랭이 한 마리.
이런 피래미가 대체 무슨 대화를 시도할 것인가?
시끗은 그 점이 살짝 궁금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발생한 호기심은 저절로 쉽게 생겨난 것처럼 저절로 쉽게 사라졌다.
“에이, 관두자. 이 몸이 네깟 놈이랑 수준이 맞을 리가 없는데 대화가 어떻게 되겠…….”
“여왕.”
“……!”
“네놈을 이곳으로 보낸 이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시끗의 표정은 이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뜩이나 예민한 마당에 폐부를 긁는 키워드가 나왔다.
시끗이 이렇게까지 폭주하는 이유가 바로 ‘여왕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이기 때문.
이윽고, 시끗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악의가 뿜어져 나왔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막히고 전신이 무겁게 짓눌리는 듯한 그런 살기였다.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애숭아. 갑자기 구미가 확 당기는걸?”
시끗은 대화에 대한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열의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멀리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모든 간수들이 뒤로 반 발자국씩 물러날 정도였다.
그러나 가름은 여전히 태연했다. 예전의 그였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시끗은 키르코의 목을 단단히 움켜쥔 채 씹어 내뱉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놈은 이 계집년을 짝사랑하고 있었지? 좋아, 어디 내 구미가 당기는 대화라는 것을 한번 해 보자고. 만약 낚시라면 이년의 목뼈를 부러트려 죽이고 내장을 모조리 파먹어 버릴…….”
“잠깐.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가름은 시끗의 살기에 주눅 들기는커녕 손바닥을 들어 그의 말을 끊기까지 했다.
“이 대화는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지. 극비 사항이다.”
“고작 하급 간수인 네깟 놈이 무슨 극비?”
“들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계급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끄르르륵- 아까부터 당당하기 그지없군. 그래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할 일이라는 게 뭐냐?”
대화의 주도권이 아주 약간이나마 이쪽으로 넘어왔다.
가름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키르코를 이쪽으로 넘겨라.”
“미친놈이냐?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놈에게 와서 인질을 내놓고 대화를 하자고?”
“인질은 계속 잡고 있을 수 있게 해 주마.”
“아까부터 계속 뭔 개소리냐? 누가 이년 대신 인질이 된다는 거야?”
“나다.”
가름은 자기 자신을 인질로 삼는 대신 키르코를 돌려보내라고 하는 중이었다.
“이게 아니면 대화 성립이 안 돼.”
“……너 지금 자기 처지를 알고 있기는 한 거냐?”
“알지. 나는 약하디약한 하급 간수. 인질까지 잡고 있는 네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중이지.”
“네놈까지 인질로 잡아 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더더욱 대화는 안 되겠지. 아쉽군. 네가 들었으면 참 좋아할 만한 내용인데 말이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하는 가름의 태도에 시끗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정말로 대체 무슨 배짱이지?”
“너도 알다시피, 나는 평소에 배짱이 두둑한 타입은 아니었지. 목숨을 걸고 허세를 부릴 만한 용기도 없다.”
“…….”
“그런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정도면 궁금하지 않나? 뭘 믿고 이러는지 말이야.”
가름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시끗은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좋다. 그렇다면 인질을 교환하기 전에 네놈이 내 인질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증거를 보여 봐라.”
“인질이 되는 데에도 증명이 필요한가?”
“당연하지.”
시끗은 분한 표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키르코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이 여자는 뒈지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있다. 용기도 있고 배짱도 두둑하지.”
“…….”
“하지만 네놈은 비루먹은 개, 멍청이 가름이 아니더냐? 나에게 인질로 잡히는 순간 똥오줌을 지리며 심장마비가 올지도 모르잖아? 그럼 인질의 가치도 사라지지.”
“억지를 부리는군.”
“네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렇다면 어떻게 증명하라는 거냐?”
가름이 묻자 시끗은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소령급 간수를 향하여 손을 뻗었다.
“어이, 너. 담배나 한 대 줘 봐라.”
“……?”
마침 소령은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채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고 시끗에게 던졌다.
후욱-
시끗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한번 우물거렸다.
동시에, 그의 찢어진 입안과 입술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담배에 흠뻑 배어들었다.
역하고 비린 냄새가 나는 핏물, 그리고 그 핏물에 적셔진 담배.
시끗은 입에 물고 있었던 담배를 손에 들더니 그것을 그대로 가름에게 내밀었다.
“이걸 피워 봐라. 그렇다면 네 배짱을 인정해 주지.”
그 말에 모든 간수들이 입을 다물었다.
키르코마저 눈을 질끈 감은 채 생각했다.
‘……저런 걸 입에 댈 리가 없잖아.’
시끗의 피는 제 1급 위험물질.
한 방울만 땅에 떨어져도 반경 수십 미터를 알콜과 불, 화약으로 소독해야 하는 끔찍한 독이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역병에 걸릴 수도 있는 저 담배를 누가 미쳤다고 손에 대겠는가.
하물며 입에 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포위망의 최선두에 서 있던 바스티유 중령도 이를 악물었다.
‘하급 간수치고는 시간을 잘 끌어 주었지만…… 결국 여기까지인가.’
그는 후방의 부하들을 향해 조금씩, 극도로 천천히 전진해 시끗의 뒤를 덮치게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끗 역시도 조금도 방심하지 않은 채였고 말이다.
……그때.
모든 이들을 경악시킬 만한 일이 벌어졌다.
슥-
가름이 시끗이 건네는 담배를 태연하게 받아 들은 것이다.
누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담배를 입에 문 가름.
“불.”
그리고 태연하게 요구하는 담뱃불까지.
시끗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설마 정말로 입에 댈 줄은 몰랐다는 표정.
그러나 가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불도 줘야 할 것 아니냐.”
그 말에 시끗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간수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척-
한 소령 계급의 간수가 황급히 품을 뒤져 던진 성냥이 시끗의 손에 떨어졌다.
치익- 화르륵!
시끗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성냥을 켜 가름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무려 레벨 8층에 수감되어 있는 거구의 독쟁이가 자기 키의 절반도 되지 않는 하급 간수에게 허리를 숙여 가며 불을 붙여 주는 광경은 실로 묘한 것이었다.
후욱-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가름은 이내 긴 연기를 뿜어냈다.
“…….”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안 거냐?”
시끗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내 피에는 사실 역병독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실로 충격적인 커밍아웃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모든 간수들은 자신들이 지난 2년간 시끗에게 속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시끗의 몸에 역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누벨바그 안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몇몇 종류의 곰팡이와 버섯의 가루, 의사들이 주사하고 가는 해독제와 제독제를 역이용해 겉보기에만 심각해 보이는 피부병을 일으켜 역병을 흉내 냈고 그걸로 허세를 부려 왔었다.
극독암가 리바이어던 출신, 더군다나 ‘붉은 죽음’이라는 역병의 창시자라는 이미지가 그의 허세를 뒷받침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반전 가득한 허세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급 간수에 불과한 가름이 이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저 녀석 역시 믿는 바가 있었군!”
“그, 그런데 저게 허세였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의사들도 못 밝혀냈었잖아.”
“그러게? 따로 구분하는 법이라도 있나?”
시끗과 그의 손에 목을 잡혀 있는 키르코, 다른 모든 간수들은 가름이 시끗의 허세를 어떻게 간파했는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가름은 입을 열어 느릿하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모두의 의문에 답했다.
“몰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