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Dead Man Walking (2)
비키르는 처음 누벨바그에 입소했을 당시 가름이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이게 뭐야! 입소식이 뭐 이래! 이건 그냥 개죽음이잖아! 사실상의 처형식 아니냐고!’
‘그럴 리가요. ‘누벨바그의 처형식’은 따로 있고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끔찍하답니다.’
입소식을 보고 기겁을 하는 한 죄수의 말에 태연하게 대꾸하던 가름.
비키르는 그제야 가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쩌어어어억-
심연의 한복판에 등장한 입.
그 거대한 아가리는 텅 빈 공간을 비틀며 그 안에 중첩되어 있는 다른 공간을 드러냈다.
네모, 세모, 원…… 삐뚤빼뚤 제멋대로 생긴 기형치들이 질서도 균형도 없이 그저 빼곡하게만 돋아난 아가리.
익사체의 눈처럼 탁하게 부풀어 오른 두 눈알은 분명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먹잇감’에 반응하고 있었다.
비키르는 생각했다.
‘……5대 간수장 중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가 바로 ‘플러버 준장’이랬지.’
그의 정체는 ‘괄태충 계열 수인’으로 짐작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끼워 맞추기 식 분류일 뿐, 이 기묘한 생물이 어느 군, 어느 목, 어느 강 등에 속하는지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 없었다.
‘애초에 수인이라고 하는 이유조차 모르겠군.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나이 불명. 성별 불명. 종족 불명.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불명.
준장이라는 계급 역시도 인간이 이 생물에게 멋대로 붙인 사회적 직함일 뿐.
까마득히 오래 전, 그러니까 인간이 누벨바그를 처음으로 발견했을 당시에도 이곳에서 원래 살고 있었던 태고의 선주생물(先住生物).
이 생물이 무엇인지, 어쩌다가 여기서 살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벨바그에서 가장 오래된 고문헌들을 아무리 뒤져 봐도 플러버 준장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있었다’는 기록밖에는 없었다.
‘……뭐 아무튼. 이놈이 비디스엠과 함께 누벨바그의 보안을 책임지는 핵심 전력이라 이건가.’
비키르는 심연의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저 거대하고 괴기스러운 생명체를 보며 생각했다.
죄수들의 마나와 힘을 구속하는 비디스엠.
성 전체를 점액으로 뒤덮어 침수를 막아 주는 플러버.
이 둘이야말로 누벨바그를 존속시키는 양대 핵심 물질인 것이다.
우어어어어어……
그때, 플러버 준장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연의 갈라진 틈에서 길고 굵은 혓바닥이 튀어나왔다.
‘플러버’라 불리는 끈적한 점액이 혀뿌리 아래에서부터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저것이 누벨바그의 문과 창문을 뒤덮고 있는 거품막 창문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렇게 쩍 벌어진 광활한 아가리 속으로 시끗은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악!?”
시끗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누벨바그의 입소식 1차, 칼날다리에서 떨어진 낙오자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서류상으로는 생존해 있다고 표기되어 있는 그들이 실제로는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를.
시끗은 심연에 빠지고 말았다.
…풍덩!
‘빠졌다’라는 말이 더없이 적절했다.
플러버 준장의 몸은 짙은 녹색이 뒤섞인 암흑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뜨겁지만 않을 뿐, 마치 납을 끓여서 녹인 융해액에 빠진 것처럼 끈적하고 무겁다.
이 끈적끈적한 점액의 응집체는 끝간데를 모르고 퍼져 나가 있었고 그 밑바닥을 섣불리 한계 긋지 않는다.
마치 태고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수와 거인의 설화, 그 정도로 큰 거인의 목구멍에 낀 가래가 있다면 딱 이런 외형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끔찍한 점액의 심연, 어둠의 늪에 빠진 시끗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질러댔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은 텅 빈 공동 전체를 순식간에 공포로 가득 채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절규였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누벨바그의 중급 간수들조차도 귀를 막고 입술을 깨물었을 정도.
그러나.
“…….”
오직 한 사람.
비키르만은 여전히 절벽 끝에 우뚝 선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태연한 기색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문득.
전신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던 중 시끗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심연 위, 절벽가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비키르와 눈이 마주쳤다.
“……너! ……너!”
시끗은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구출도, 탈옥도 처음부터 없었다.
애초에 바다 속에는 편지배달부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해저 1만 미터 아래의 이 망망심해 아래에서 찾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이곳은 누벨바그. 꿈도, 희망도, 미래도, 아무것도 없는 곳.
“그우욱! 비어어어억!”
어느새 입까지 파묻힌 시끗은 온 마음을 다해 눈앞에 있는 대상을 저주했다.
무시무시한 악의가 소용돌이치며 이 악당의 전신에 본인조차 알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종류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악의도, 살의도, 복수도 모두 살아 있는 다음에야 의미가 있는 것.
이미 플러버 준장의 입안에 떨어진 시끗은 그저 평소보다 조금 더 신선하게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터업-
우물거리는 주름들이 시끗의 거구를 점점 빨아들였다.
바닥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칠흑의 뻘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시끗, 시끗 데 리바이어던.
그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보았을 때, 빛 앞에는 비키르의 무표정한 얼굴이 있었다.
……문득,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리고 시끗은 죽기 직전의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초인적인 관찰력과 집중력으로 비키르의 입술이 그리는 희미한 궤적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자기가 포식자인지 아니면 피식자인지, 주제 파악을 하고 살아야지.’
첫 만남 당시 들었던 말 그대로였다.
“……! ……! ……! ……!”
시끗은 무어라 외쳤다.
온 힘을 다해, 본인조차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낸 적 없었던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의 분노나 악의, 혹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사악한 저주, 아니면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릴 정도로 진실되고 순수한 속죄나 참회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뜻이 세상에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끄르르르륵!
시끗은 본인이 평소에 잘 내던 웃음소리와도 같은 뱃고동 소리와 함께 검은 수렁의 아래로 사라졌다.
망자들이 흔히 듣곤 하는 ‘편히 잠드소서’와 같은 안식이 그에게 허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는 이제 절대로 저 심연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 * *
간수들 사이에 오싹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 담대하고 배짱 좋은 키르코마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플러버 준장님의 처형식은 언제나 무섭네요.”
절벽에서 시끗을 밀어 떨어트리고 돌아온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플러버 준장. 일단 지성은 없어 보인다만, 탈옥 시에 어떤 변수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군.’
누벨바그의 고성 전역에 자신의 신체를 뻗어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는 괴생명체.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누벨바그 내 최강의 전력으로 꼽히는 괴물.
사실 5대 간수장 중 가장 그 정체가 미지에 가려져 있는 이 괴물을 만나 보기 위해 시끗을 이용했던 것도 있었다.
비키르는 이 괴물을 어디까지 경계해야 하고 어디까지 무시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벨바그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계산이 안 되는 변수를 만난 것이다.
……그때.
“가름 대위.”
비키르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스티유 중령이 서 있었다.
뒤에는 정복 차림의 부관들도 함께였다.
“부르셨습니까 중령님.”
비키르가 목례를 하며 대답하자 바스티유 중령은 이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걸었다.
“그래. 드디어 골칫덩어리 죄수 하나가 사라졌군.”
진급과 출세, 그리고 이를 위한 라인 작업에 여념이 없는 바스티유 중령은 늘 죄수들의 폭동을 경계했다.
실적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동부린 횟수가 제일 많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시끗은 최근 들어 바스티유 중령의 가장 큰 눈엣가시였다.
“……솔직히 말해서, 죄수를 처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일단 처형이 결정된 죄수가 끊임없이 저항하고 폭동을 일으키고 탈옥이나 테러 계획을 세우기도 하니 말이야. 또한 처형을 집행한 간수의 트라우마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고.”
“이번 건은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그렇지. 다행이지. 무려 레벨 8의 죄수가 아무 사고도 치지 않은 채 조용히 처형을 받아들였으니 말이야. 처형을 집행한 간수 당사자에게도 별다른 후유증은 없어 보이고. ……맞나?”
“그렇습니다.”
비키르의 대답에 바스티유 중령은 더욱 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레벨 8급의 죄수를 처형 바로 그 순간까지 얌전하게 만드는 카리스마와 수완, 그리고 무시무시한 처형식에 단독으로 임하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배짱과 담대함.”
“…….”
“이 모든 것이 다 자네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보면 볼수록 참 탐나는 인재야.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비키르는 계속 듣고 있기가 귀찮았는지라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평소 하지 않던 립서비스까지 해 주었다.
“평생 중령님을 따르겠습니다.”
그 말은 바스티유 중령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더욱 더 환하게 만들었다.
줄 서고 라인 만들고 파벌 구축하는 것이 특기인 바스티유 중령, 그는 비키르를 자기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인식한 듯했다.
“좋아. 나는 역사에 오명을 남긴 무능한 군주나 장군들과는 다르지. 충성스럽고 유능한 부하에게는 마땅히 격에 맞는 보상을 지급한다.”
?
비키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비키르를 향해 바스티유 중령은 검은색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자네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중령님께서 하사하신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제게 있어서는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하하, 이 자리에서 열어 봐도 좋아.”
바스티유 중령은 마치 그 선물이 자신의 도량과 그릇, 배포를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기회라도 되는 양 채근했다.
이윽고, 옆에 있는 키르코를 포함한 모든 간수들의 시선이 모여 있는 중앙에서.
달칵-
비키르는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과연 모든 이들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