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모르그가의 연합전선 (1)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비키르는 야근 후 시청 집정관 사무실 건너편의 관사에서 잤다.
그 사실을 아는 치와와는 아침 일찍부터 그곳을 찾아갔다.
“잠꾸러기 집정관보님. 벌써 아침해가 떴습니다. 이제 출근하실 시간……어흐헉꺅!?”
관사 문을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간 치와와는 아침인사를 끝맺지 못하고 괴상한 비명을 질러버렸다.
관사의 방 안에는 온통 피가 흥건했다.
하얀 침대보를 적시고 내려와 바닥의 대리석 타일 사이사이 홈을 온통 격자무늬로 붉게 물들이고 있는 피, 피, 피!
벽이고 천장이고 침대로 모두 피로 흠뻑 젖어 있는 가운데.
“아. 좋은 아침이로군, 사무장.”
비키르는 너무도 태연하게 침대에서 일어난다.
졸린 표정을 보니 정말로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던 모양.
그리고 그 밑의 침대에는 목과 몸통이 분리된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검은 복면을 쓰고 있는 이 남자의 손에는 단도가 쥐어져 있었는데 누가 보기에도 암살자였다.
비키르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암살자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음? 기억에 없는데. 아무래도 잠꼬대를 하다가 죽여 버린 모양이군.”
“지, 진짜입니까?”
“그럴 리가. 가벼운 조크야.”
‘15살이라면 이렇게 장난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농담을 던져본 비키르이지만 치와와는 애초에 그게 농담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집정관보님…… 대체 본가에 계실 적에 어떤 유년 시절을 보내셨던 겁니까?”
“별로 재미없었나?”
“아니,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치와와는 여러모로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비키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부쩍 이런 날파리들이 많이 엉겨붙는군.”
독화살 두 대, 독이 든 술잔 네 번, 길거리 묻지마 테러 여섯 번, 칼빵에, 황산 뿌리기, 저격, 방화, 마차로 들이받기, 기타 등등…….
모두 최근 3일간 있었던 일이다.
침실까지 들어온 암살자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 역시 비키르의 적수는 못 됐다.
멸망의 시대를 거쳐 온 무인들은 자면서도 주변의 살의를 느낄 수 있는 기술을 저마다 하나씩은 익혀두고 있었고 비키르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흐음.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만큼 내가 주목받고 있다는 뜻 아니겠나?”
“배짱이 미치셨습니다 진짜.”
“상관에게 무례하군, 사무장.”
무심하게 대꾸하며 겉옷을 입는 비키르다.
치와와는 태연하게 침실을 나서는 비키르의 뒤를 따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집정관보님을 보면 정말 15세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군요.”
“핏줄이 어디 가겠나?”
“아무리 바스커빌의 핏줄이라고 해도…… 아니 애초에 바스커빌가의 다른 분들은 이렇지 않던데요? 전에 계셨던 집정관님은…….”
치와와는 계속해서 조잘거렸지만 비키르는 이미 그의 말에 신경을 끄고 있었다.
대신 그가 생각하는 것은 지난번 불법 경매장을 털었을 때 얻었던 수확이었다.
/ 송곳
-1슬롯: 화상(火傷) -케르베로스(A+)
-2슬롯: 질긴목숨 -지옥 물소(A)
-3슬롯: 출혈(出血) -헬하운드(B+)
마검 바알제붑.
죽인 자의 능력을 빼앗아 흡수하는 이 기묘한 마검에는 얼마 전에 경매장에서 만났던 마수 ‘지옥 물소 무르시엘라고’의 힘이 봉인되어 있었다.
위험등급이 C+랭크였던 트롤의 능력 ‘초고속재생’이 소멸하고 그 빈자리를 지옥 물소의 ‘질긴목숨’이 차지했다.
‘초고속재생’은 다친 몸이 빠르게 아무는 능력이지만 ‘질긴목숨’은 애초에 몸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단단해지는 능력이니만큼 이쪽이 훨씬 더 범용성이 좋다.
애초에 지옥 물소는 트롤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하기 힘든 고위 마물이었으니 그 효과가 우월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경매장에 A급 마물의 사체가 있을 줄이야. 운이 좋았군.’
그것을 먹어치운 덕택에 어제 왔던 암살자를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어젯밤 관사 내에 잠입했던 암살자의 실력은 무려 그래듀에이터 급이었다.
그래듀에이터에 이제 갓 오른 하급자에 불과하긴 하지만 분명 액체처럼 끈적한 아우라를 만들어 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부지불식간에 암습을 당한지라 단도에 가슴팍을 살짝 찔리기는 했다.
하지만 스틱스 강의 가호와 지옥 물소의 질긴 목숨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 덕에 비키르의 몸에는 옅은 상처 한 줄기만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암살자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무, 무슨 놈의 몸뚱이가 이렇게 단단……!?’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암살자들의 배후를 색출해 씨를 말려 버려야겠다.”
“지당하신 말씀입지요.”
사실 치와와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비키르는 이 작업만 마무리한 뒤 부집정관 직에서 사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들었던 씬디웬디의 조언대로 말이다.
바로 그때.
비키르의 계획을 도와줄 만한 일이 있었다.
바스커빌 본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시청 앞에는 거대한 검은색 마차가 서 있었다.
바스커빌가의 상징인 이빨 모양의 로고가 박혀 있는 고급 마차.
아침 일찍부터 시청을 방문한 이는 비키르도 익히 잘 아는 이였다.
존 베리모어 집사. 그가 친히 비키르를 찾아온 것이다.
“도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군, 집사. 얼굴이 좋아졌네.”
비키르의 대답을 들은 베리모어 집사가 환하게 웃었다.
“그것 보십시오. 본가를 떠나가실 때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도련님은 잘 해내실 것이라고.”
본가에까지 들려오고 있는 외부의 소문들.
그것은 하나같이 언더독 시의 명 부집정관에 대한 것들이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지.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 본인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겸손으로 일관할 뿐이다.
이윽고 베리모어 집사는 이곳을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아마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확한 보고를 원하시는 듯합니다.”
“보고서라면 이미 서면으로 제출했을 텐데?”
“하하, 그거랑 아들이 와서 직접 말해 주는 거랑 같나요.”
말을 마친 베리모어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찡긋했다.
“기대가 크십니다. 가주님이 그렇게 웃으시는 것은 저도 처음 봤는걸요.”
* * *
휴고 레 바스커빌.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가주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그에게서 풍겨나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잘했다, 아들아.”
답지 않게 훈훈한 분위기였다.
휴고는 오늘 자 조간신문을 책상 앞에 내려놓았다.
.
.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 결과가 신문 1면에 실려 있었다.
“큰 공을 세웠구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못 하는 밥버러지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단다.”
휴고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건 채 비키르를 바라보았다.
“불법 노예 거래는 매매자나 매수자 모두 사형에 처해질 만큼의 중죄지. 네 활약 덕분에 황실에서도 표창장이 내려왔다.”
“영광입니다.”
“이번 기회에 ‘바스커빌들은 칼만 잘 쓸 뿐 머리가 나쁘다’는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었다. 장한 일을 했구나.”
비키르가 선보인 특별법과 그것을 선포하는 과정에서의 퍼포먼스, 그리고 강력한 법 집행은 바스커빌가가 관장하는 모든 도시들을 넘어 황실에게까지 귀감을 보였다.
휴고의 파격적인 인사 발령에 비키르는 파격적인 성과로 보답한 셈이었다.
바스커빌가의 가풍 중에는 ‘상과 벌을 확실하게’라는 것이 있다.
잘했으면 상을 받고 못했으면 벌을 받는다.
비키르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휴고는 그 보상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비키르를 본가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거라.”
제국의 아카데미 ‘콜로세오(Colosseo)’, 전 세계의 모든 엘리트들이 입학을 꿈꾸는 바로 그곳.
그 말을 들은 비키르가 물었다.
“아카데미는 본디 20살에 입학하는 것이 정석 아닙니까?”
“실력만 있다면 나이에 큰 제한은 없다. 조기 입학자도, 만학도도 모두 입학 가능하지. ‘입학 시 25살 이하일 것, 졸업 시 30살 이하일 것’이라는 조건을 넘기지만 않으면 된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비키르는 짧은 목례로 자신의 의견을 대신했다.
한데?
원래대로라면 늘 이쯤에서 대화를 끝냈을 휴고가 드물게도 대화를 더 이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였다.
“아카데미에 너를 포함한 몇 명을 함께 보낼 예정인데, 아직 엔트리를 못 짰다.”
“……?”
“혹시 같이 가고 싶은 친한 형제가 있느냐?”
전혀 의외의 질문이었다. 이건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나 물어볼 법한 내용이 아닌가?
‘아차. 아버지 맞지 참.’
비키르는 이내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기억해 냈다.
사생아. 어찌 되었던 비키르 역시 휴고의 아들이다.
너무 오래 아들 취급을 못 받았어서 그런가 본인도 잊고 있었다.
비키르는 약간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하이브로, 미들브로, 로우브로 세쌍둥이와 제일 친합니다.”
제일 친하다는 게 뭐 별 거 있나, 곁에 두고 조지고 싶으면 그게 친한 거지.
“……그러냐?”
휴고는 의외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 납득했다.
“참고하마.”
그렇게 해서 아카데미 건에 대한 대화는 끝났다.
비키르가 막 목례를 마치고 방문을 나가려는 순간.
“아, 참. 아들아, 잠깐 있거라.”
“……?”
비키르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자 휴고가 자리에서 잠깐 일어났다.
이윽고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정비한 언더독 시의 법률들을 살펴보았다.”
“……미숙한 결과물입니다.”
“농업 법에 대해 수정된 부분들이 제법 있더구나. 굉장히 효율적으로 잘 정비했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비키르는 언더독 시의 외곽, 그러니까 적과 흑 산의 하류와 널찍한 평지가 맞닿는 지역에 있는 대규모 농장들에 관한 법률 제도들을 재정비했었던 적이 있다.
그곳에는 루비 광산 외에도 사탕수수, 담배, 목화 등등을 재배하는 논밭이 많다.
주로 야만인 포로들이 그곳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국경을 넘어 습격해 오는 야만인들은 언더독 시의 외곽에 있는 농장들을 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휴고가 말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간단하게 영지 시찰이라도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네가 정비한 법률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도 봐야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비키르는 여전히 별다른 이견 없이 부복한다.
그때.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휴고가 문득 물었다.
“한데. 혼자 갈 생각이냐?”
“……?”
비키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영지 시찰을 혼자 가지 떼로 가나?
비키르가 새삼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휴고를 보자 그는 다시 의자에 앉은 채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영지 시찰은 합동 작전이다.”
휴고의 말에 비키르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었다. 조금 더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표현이었다.
그것을 알아들은 휴고는 진짜 본론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네가 8살 때 세웠던 작전을 기억하느냐? 그 왜, 루비 광산 때 말이다.”
“……물론입니다. 루비 광산 지역을 모르그에게 임대해 주고 야만족들을 그쪽으로 몰아 손 안 대고 두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명 차도살인지계.
국경을 넓히기 위해서는 어차피 야만족들과 부딪쳐야 하니 이왕이면 모르그의 손을 이용해 그들을 제거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휴고는 입가에 진득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 계획이 먹혀들었다.”
“먹혀들었다 하심은……?”
“모르그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 왔다. 아주 저자세로 말이야.”
이토록 기분 좋아 보이는 휴고는 오랜만이었다.
그는 비키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합동 토벌전이 어떻겠냐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