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검은 혀 (4)
비키르는 쓰러진 키르코를 그녀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
끼기기긱- 기기긱- 끼꺽!
문손잡이를 당겨도 요란한 소리만 날 뿐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경첩에 소금기가 껴서 잔뜩 녹이 슬어 버렸기에 그렇다.
‘……열악한 방에서 사는군.’
비키르는 혀를 찼다. 하기야, 하급 간수들이 사는 방이 원래 다 그렇고 그런 법이다.
비키르 역시도 얼마 전까지 중위 이하의 하급 간수들이 쓰는 방에 살았었으니까.
창문 하나 없는 석실 문을 열자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가 전부인 간촐한 풍경이 보인다.
키르코는 딱딱하고 깨끗한 침대 위에 누운 채 신음했다.
마나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방출한 부작용에 검은 혀에게 당한 일격이 겹친 결과였다.
“…….”
비키르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문득, 키르코가 대위로 진급할 당시 바스티유 중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묘한 운명이로군. 실로 묘해. 결국 자식은 부모를 닮는가.’
검은 혀에게 가게 된 키르코를 두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과거를 알았기 때문에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죄수와 간수 사이의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파 놓기 위한 도구로 이용당했던 키르코의 부모, 그리고 그 작업에 앞장섰던 검은 혀.
‘……키르코라는 이름이 왜 알려지지 않았었는지 알겠군.’
키르코는 분명 발군의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
장차 까뮤나 돌로레스만큼이나 이름을 날릴 대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키르가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어 본 적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영웅이 되기 전에 살해당하기 때문이겠지. 검은 혀에게.’
키르코는 누벨바그라는 최악의 장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검은 혀라는 사이코를 적으로 삼았다.
아마 그녀가 미래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게 된다면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이리라.
비키르는 다시 시선을 돌려 침대 위에 누워 신음하는 키르코를 내려다보았다.
“……. ……. …….”
키르코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입술을 꽉 깨물고 신음소리를 참고 있었다.
식은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침대 전체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였다.
비키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탁
비키르의 손이 키르코의 배 위에 놓였다.
츠츠츠츠츠츠……
몸에서 몸으로 마나가 전해진다.
비키르는 손을 통해 자신의 마나를 조금씩 키르코에게로 옮겨 놓았다.
고통에 겨워 신음하던 키르코의 얼굴 표정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너무 갑작스럽게 상위의 경지로 도약했군. 이래서 분노 같은 감정에 떠밀려 각성하는 것이 안 좋지.’
키르코는 검은 혀에 대한 분노로 그래듀에이터가 되었다.
이런 식의 각성은 사실 별로 몸에 좋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들거나 높은 위치에서 떨어지면 근육이 파열되는 것처럼 마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분노 폭발로 인한 각성은 마나가 흐르는 혈맥을 억지로 넓히다 못해 터트려 버리는 것과 같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나 이후 찾아오게 되는 부작용은 마나 폭주의 증상과도 매우 비슷하다.
키르코가 폐인이 되지 않고 상위의 경지로 올라선 것은 그저 요행,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침팬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아무 건반이나 무작위로 눌렀는데 그 순서가 우연히 잘 맞아 들어 클래식한 교향곡 하나가 완주될 정도로 희박한 확률이랄까.
‘그래도 다행이로군. 악운을 천운으로 만들었으니 그 뒤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원래대로였다면 검은 혀에게 죽었어야 할 키르코는 비키르 덕에 살아남았다.
이것이 장차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
비키르는 키르코의 기혈을 안정시켜 줌과 동시에 마나의 혈맥을 가지런하게 맞추어 놓았다.
남에게 흔히 베풀기 어려운 친절이었고 비키르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때.
“……!”
비키르는 키르코의 몸속 내부를 뒤지던 도중 기묘한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비키르의 몸속에서 키르코의 몸속으로 흘러드는 마나.
그것은 키르코의 기혈 내부에 난 상처와 구멍들을 메꾸며 마나를 점점 차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딱 한 군데, 비키르의 마나로도 메워지지 않고 있는 구멍이 있었다.
기껏 차오르는가 싶었던 마나와 체력이 그 구멍을 통해서 다시 줄줄 빠져나가 버린다.
‘뭐지?’
비키르는 찜찜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마나가 새어 나가는 흐름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 ……! ……!”
비키르의 마나가 물이 새는 구멍을 찾아 나가자 키르코의 표정이 점점 더 찡그려진다.
식은땀이 끊이질 않았고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도 더욱 커졌다.
침대의 시트를 꽉 쥔 채 허리를 구부리는 키르코, 하지만 비키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나를 운용했다.
이윽고, 누수가 생긴 곳을 찾아냈다.
우드득-
비키르는 키르코를 똑바로 눕힌 뒤 제복 자락을 찢었다.
하복부 쪽, 그러니까 검은 혀의 손바닥이 마지막으로 닿았던 부분의 살이 검게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검은색 구체 하나가 보인다.
동그랗고 까만 알 같은 것이 키르코의 배에 붙어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거머리로군.”
비키르는 그것이 뭔지 바로 알아챘다.
그것은 검은 혀가 있었던 석실에 우글우글 깔려 있던 것들과 비슷했다.
놀랍게도, 이 거머리 유충은 키르코의 피와 마나를 빨아 먹을 때마다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꾸물꾸물……
손과 발, 머리가 생기더니 이내 얼굴에 이목구비가 형성된다.
그 모습은 마치 키르코를 작게 빚어 놓은 듯한 외형.
마나와 피를 빨아 먹으며 점점 커진 그것은 유년 시절의 키르코를 연상시킬 만한 모습과 크기로 자라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색 일색인 것을 제외한다면 인간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대로 가면 아마 키르코와 똑같은 모양의 검은 괴물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신기한 힘을 가진 거머리로군.”
비키르는 키르코의 배에 붙은 거머리를 힘으로 떼어 낸 뒤 그 부분을 기갈가뭄의 힘으로 지지듯 봉인했다.
-끼약!
바닥에 내팽개쳐진 거머리는 이내 비키르의 군홧발에 짓이겨져 죽고 말았다.
“…….”
그제야 비로소 키르코의 안색이 평온해진다.
식은땀도 멎었고 불규칙적으로 헐떡이던 신음과 숨소리도 고르게 잦아들었다.
비키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피와 마나를 빨아 먹고 본인의 모습으로 변태하는 거머리 유충이라…… 들어 본 적 있나?”
[아니. 처음 보는데.]가슴팍에 붙어 있던 데카라비아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대답했다.
멸망의 시대를 거쳐 오며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비키르조차도 모르는 마물.
심지어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데카라비아조차도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단다.
‘……아마도 검은 혀가 이곳 누벨바그에서 개발한 신종 마물이겠군.’
지상에도 ‘뼈를 빠는 모기’와 같은 특이한 마물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힘과 외형까지 훔치는 기상천외한 마물은 없다.
[후후후…… 이 마물이 지상에 알려지면 난리 나겠는데?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잖아. 악마들조차도 탐을 낼 거야.]이것은 악마들도 모르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마물.
전 십상시 출신이었던 데카라비아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확실한 것이리라.
비키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것은 좀 탐나는데.’
입소식 때 만났던 거머리들이 검은 혀 중령의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비키르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누벨바그에 온 이래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게 생긴 것이다.
비키르는 검은 혀가 개발하고 키우는 이 거머리들의 알을 입수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탈옥이라는 공적인 작업과는 별개인 사적인 욕심이었다.
‘최대한 거머리 알을 입수하는 쪽으로 탈옥 루트를 짜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탈옥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는 검은 혀 간수장을 필히 처리해야 한다.
어차피 놈은 정체와 신분, 소속이 불분명한 위험분자이니만큼 굳이 살려 둘 이유도 없었다.
비키르는 그것이 키르코의 미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약간의 부채의식이 작용한 결과였다.
뭐니뭐니 해도 그녀는 비키르에게 신분을 빌려준 가름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으니까.
스윽-
비키르가 막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
별안간 키르코가 비키르의 옷깃을 잡았다.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희미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가름.”
반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꿈과 현실 속에서 부유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고마워.”
그녀는 비키르를 향해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별말씀을.”
비키르는 무미건조한 답례와 함께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안 가면 안 돼?”
키르코는 속에 있는 무언가를 토하듯 말했다.
대심해의 유령성.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여인.
“……혼자 있기 싫어.”
비키르는 그런 키르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곳을 나가고 싶다.’
문득 가름의 일기장 모든 페이지에 항상 마지막으로 적혀 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그 애와 함께.’
하지만 비키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가름이 아니다. 이곳 누벨바그 역시 잠시 거쳐 가는 곳일 뿐, 최후의 무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너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밖에는 해 줄 수 없었다.
“……아마도.”
비키르가 마지막 말을 끝냈을 때는 이미 옷깃을 붙잡고 있었던 키르코의 손이 침대 아래로 떨어진 뒤였다.
……. ……. …….
키르코는 어느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비키르는 그녀의 안색과 호흡이 완전히 안정된 것을 한번 더 확인하고서야 방문을 나섰다.
탁-
잠시 열렸던 문이 닫혔다.
처음으로 열었을 때보다는 경첩이 많이 느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