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End game (9)
…쿠르릉!
비키르와 오르카의 격돌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죄다 부수고 무너트려 놓았다.
인간의 손이 닿은 것이든 닿지 않은 것이든 모두 공평한 결말이었다.
산, 언덕, 외벽, 망루, 축대, 교각…… 그 모든 것들이 죄다 붕괴해 버렸다.
그리고 독방 역시도 그 중의 하나였다.
콰르르르르르르륵-
수많은 독방들이 붕괴해 내렸다.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콰긱- 퍼펑!
수와레가 만든 독방, 주물틀과 같은 이 기묘한 구조물들이 부서질 때마다 안에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미이라들이 튀어나온다.
……살아서 나온 이는 단 한 명, 바로 사드 후작이었다.
레벨나인의 가혹한 환경으로도 끝끝내 가둘 수 없었던 단 한 명의 인간.
사실상 누벨바그는 사드 후작 한 명을 가두기 위해 존재한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저릿!
비키르는 순간 전신에 끼쳐오는 오싹한 감각에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수없이 많은 뱀들이 전신을 핥아 오는 기분.
시선이 마주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를 쳐다보기만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들었다.
‘……앙가주망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눈치챘어야 했다.’
일전에 짐작했던 대로 ‘앙가주망 노인’의 정체는 바로 사드 후작이었다.
과거 47개의 가문을 선동해 쿠데타를 일으켰던 전쟁광,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전란의 시대로 회귀하기를 원했던 미치광이.
그가 다시 자유를 얻었다.
“푸스스스스-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보는군.”
사드 후작은 깡마른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관절이 비틀릴 때마다 뭔가가 터지고 부러지는 듯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때.
“……할아버님.”
옆에 있던 사디 교수가 사드 후작을 불렀다.
그녀답지 않게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
사디와 사드. 조손(祖孫)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다.
“사디냐? 아이쿠, 요 녀석. 많이 컸구나. 못 본 사이에 아주 그냥 마인이 다 됐네.”
“호호호- 할아버님을 구하기 위해 무리 좀 했어요. 그래도 예뻐해 주실 거죠?”
“암만. 이리 와서 이 할애비에게 안기렴.”
그러자 사디는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비척비척 일어나 사드 후작을 끌어안았다.
사드 후작 역시도 푸근하게 웃는 얼굴로 사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맙다 얘야.”
“할아버님이 무사하셔서 기뻐요.”
“대가 끊긴 줄로만 알았던 우리 가문에도 이제 볕 들 날만 남았구나.”
“어머? 저는 남자 만날 생각이 없는걸요?”
“내가 여자를 만날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란다.”
사디와 사드 후작은 호호깔깔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라서 순간 이곳이 어느 한적한 오전의 카페 테라스가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금방 깨졌다.
“결국 기어 나오고 말았구나, 앙가주망.”
오르카가 쇳물이 끓는 듯한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사드 후작은 권태로운 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돌려 오르카의 눈빛을 맞받았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범고래 늙은이. 참 죽지도 않고 오래도 사는군.”
“네놈에게 들을 말은 아니지.”
오르카는 바로 곤봉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사드 후작을 향해 휘둘렀다.
“이런, 무기도 없이 빈손인 늙은이를 핍박할 셈인가? 정말 너무하는군.”
사드 후작은 싱긋 웃더니 바닥에 떨어진 채찍을 집어 들었다.
“손녀야. 채찍을 좀 빌리마.”
그리고.
퍼펑- 차라라락!
날아드는 오르카의 곤봉을 향해 마주 휘둘렀다.
오르카의 곤봉 끝에 박혀 있던 육중한 쇠붙이와 사드 후작의 채찍 끝에 달린 묵직한 쇳덩이가 한군데에서 만났다.
…콰쾅!
금속끼리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으로 비산하는 불똥과 아우라의 파편은 이미 초토화되어 더 변할 것도 없는 대지를 한번 더 격변시키고 있었다.
콰쾅! 쾅! 우지지지지직! 퍼펑! 펑! 우르릉……
곤봉과 채찍이 한번 맞부딪칠 때마다 지축이 끊어지고, 다시 붙고, 비틀리고, 다져졌다가 또다시 끊어지고, 부서지고, 바스러진다.
놀랍게도 사드 후작이 뿜어내는 힘과 기개는 오르카의 것과 비교해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누가 그를 보고 지난 수십 년간 누벨바그의 9층 독방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겠는가.
“…….”
오르카는 저릿저릿 떨리는 팔을 감싸고 자세를 낮추었다.
사드 후작이 그런 오르카를 깔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날이 떠오르는구만. 벌써 40년도 더 지났나.”
‘47인 소요사태’.
제국이 하나로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일어났던 사상초유의 대사건.
47명의 사람들이 주도해서 일으킨 사건이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각각 한 가문의 가주였기에 ‘47가문 소요사태’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당시 제국에 반기를 들고 황궁까지 쳐들어가 황제의 목을 베기 직전까지 갔었다.
대외적인 이유는 그저 황위가 탐나서라고 공표되었지만……
“사실 황위 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 푸스스스-”
사드 후작이 반란을 일으켰었던 이유는 순전히 하나였다.
‘재미’.
제국이 하나로 통일된 이후 하루에 수십만 명씩 죽어 나가던 대규모의 전쟁도, 피와 살점이 튀는 강자와의 싸움도 모두 사라졌다.
힘을 가졌다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도 없게 되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마음대로 복수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은 법과 규칙에 맞게 행해졌고 가능한 평화롭게, 피를 흘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주가 되었다.
사드 후작은 그러한 변화를 몹시도 싫어했다.
전쟁과 살육, 약탈, 복수, 힘과 힘이 팽팽하게 맞부딪치며 자웅을 겨루던 시절.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아 자신의 목숨이 가진 값어치를 증명할 수 있었던 그 끝없는 피와 폭력의 시대.
“그때 그 시절, 그때 그 사람들이 좋았었는데…… 푸스스스…….”
일평생을 그러한 전국시대에서 살아왔던 사드 후작은 인생의 말년에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그 지루하고 따분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적응할 마음 자체가 없었다.
“뭐, 아무튼. 그래서 일으켰었지. 소요사태를. 간만에 참 재미있었어. 응. 그 이후로는 안 봐도 뻔해. 다시 재미없는 세상이 도래했을 거야. 그것은 이곳으로 입소하는 애송이들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딱 봐도 평화와 게으름에 찌들어서 말이야.”
사드 후작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곳 누벨바그의 독방에서 휴식이나 취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머리도 식히고 생각도 좀 정리할 겸 해서 말이야.”
“……그랬던 놈이 지금 와서 왜 다시 기어 나왔나?”
오르카가 물었다.
그러자 사드 후작은 이채 어린 시선으로 오르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요즘 지상이 꽤나 재밌어졌다고 들었거든?”
“…….”
원래도 딱딱했던 오르카의 표정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이것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상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것만은 결코 사드 후작에게 들켜선 안 되는 일이었다.
오르카는 이곳 누벨바그로 돌아오기 전 세상을 보았다. 지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사드 후작 역시도 그런 오르카의 눈 속에서 바뀌어 버린 세상을 보았다. 보고야 말았다.
사드 후작이 너무나도 좋아할 만한, 그의 흥미를 끌다 못해 안달 나게 만드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전쟁, 살육, 학살, 피, 폭력, 오로지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
과거 전국시대의 가장 치열했던 시절.
위대한 흑마법사 트제르시나 위대한 검사 오르나티가 살았다던 가장 뜨겁고 가장 격렬했던 시대.
전국시대의 전성기에 필적할 만한 거대한 전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푸스스스스! 이거 말년에 참 주책맞게도 피가 뜨거워져서 말이야. 오랜만에 바깥나들이가 하고 싶어지는걸? 부축해 줄 수 있겠니, 얘야?”
“물론이죠 할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지상으로.”
사드 후작은 손녀인 사디를 돌아보며 웃음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분명 조손 사이의 다정한 대화였지만 둘의 미소에서는 어쩐지 무시무시한 광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때.
…쿵!
오르카가 곤봉으로 땅을 한번 내리찍었다.
“절대로 나가지 못한다. 네놈들은.”
범죄자를 향한 오르카의 두 눈에서는 증오의 빛이 뚝뚝 묻어 떨어지고 있었다.
“사회악(社會惡). 네놈들의 존재 자체가 만들어 내는 혼돈과 무질서, 양민들의 불안을 막는 것이 나의 책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들은 이곳을 나가지 못해.”
“푸스스스스- 이보게 친구여. 자네의 목숨이 뭐 대단한 가치나 되는 줄 아는가?”
오르카 소장과 사드 후작이 다시 한번 팽팽하게 대치하기 시작했다.
“못 내보낸다. 절대. 절대로.”
“푸스스스- 이번에는 자네를 도와 조수 역할을 해 줄 윈스턴도 없다네.”
오르카는 육중한 곤봉을 들어 올렸다.
사드 후작 역시도 마치 칼로 거합술을 펼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채찍을 말아 쥐었다.
쩌적- 쩌저저적-
두 개의 사나운 기세가 충돌함에 따라 주변의 대기와 지면이 유리 조각처럼 깨져 나가고 있었다.
한편, 전란의 소용돌이 중심부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 아이옌이 비키르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지? 이참에 도망칠까?”
“……아니. 어찌 보면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비키르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저 둘의 싸움으로 인해 이득을 취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타이밍.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오르카와 사드 후작의 대치는 과연 무시무시한 것이다.
단순히 서로 노려보며 기세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지형을 뒤틀어 놓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가 지금 실시간으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콰쾅!
오르카가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사드 후작 역시도 낄낄 웃으며 발걸음을 떼 놓았다.
성난 범고래처럼 돌진하는 오르카와 흐늘흐늘한 유령처럼 날아드는 사드 후작.
둘 다 일격에 승부를 내려는 듯 하나같이 강맹한 힘을 손아귀에 말아 쥔 채였다.
…번쩍!
오르카가 곤봉 끝에 모든 아우라를 몰아넣었다.
시커먼 해일과도 같은 기운이 사드 후작을 덮친다.
콰콰콰콰콰콰……
사드 후작 역시 채찍을 짧게 말아 쥐었다.
그리고 그동안 비디스엠 구속구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던 아우라를 회전시켰다.
츠츠츠츠츠츠……
거합술.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참격의 힘과 기세로 일합에 승부를 내 버리는 기술이 채찍으로 구현되었다.
바로 그때.
“지금이다!”
비키르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쿠르르르륵! 콰르릉!
바스커빌 제 8식. 검은 태양이 오르카와 사드 후작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
“……!?”
오르카와 사드 후작은 일대일 승부가 갑작스럽게 삼파전으로 변한 것에 크게 당황했지만 이미 목숨을 걸고 내지른 일격을 회수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오르카의 곤봉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해일과 사드 후작의 채찍에서 뿜어져 나온 참격의 뱀, 그리고 비키르의 검은 태양이 일제히 한 지점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들보다 앞서서 재빨리 움직인 사람이 있었으니.
“서방! 받아!”
바로 아이옌이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두 손을 내뻗었다.
눈앞에서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구체 ‘포세이돈’을 향해서!
콰콰쾅!
뿌리 부근에서 사나운 폭발이 일어났고 그 여파에 의해 튀어나온 지면이 흔들렸다.
우지지직!
포세이돈이 땅에서 뽑혀 나왔다.
그것은 마치 뿌리가 돋아난 양파처럼 지면에서 떨어졌고 이내 비탈길을 향해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오르카와 사드 후작, 비키르의 일격에 모여드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해서!
동시에.
…번쩍!
눈부신 빛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옌은 겨우겨우 귀를 막았다.
비키르는 고막이 터져 나가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크헉!?”
“끄악!?”
지켜보고 있던 도르듐과 수와레마저 귀를 부여잡고 쓰러질 정도로 큰 폭발음이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 ……! ……!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충격파에 적중당한 포세이돈의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쩌적-
알껍데기가 깨지는 소리.
……그것은 마치 무언가가 부화하는 듯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