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End game (10)
…번쩍!
한바탕 폭풍이 일었다.
거대한 분화구가 만들어졌고 주변에 있던 흙먼지와 분진, 수분, 물기, 유증기, 지하수, 용암, 포연, 유황가스 등등…… 기타 모든 것들이 싹 사라졌다.
바닥은 매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깔끔하게 쓸렸다.
대기는 수분 한 점 없이 바싹 말라붙어 있었고 그 흔한 불길이나 가스 하나 없었다.
그리고 이토록 깨끗하게 변한 황무지 정중앙에 두 명의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덜너덜 찢겨진 옷,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피, 바닥에 깊게 박힌 채 주인을 지켜 낸 무기들.
그들은 폭사되는 빛과 열풍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모든 것을 견뎌 냈다.
실로 무시무시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한쪽은 누벨바그의 교도소장 오르카.
다른 한쪽은 누벨바그 최악의 수감자인 사드 후작이었다.
“……뭐였지?”
“어이쿠, 삭신이야.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누?”
대폭발과 그 여파까지 버텨 낸 두 노인의 힘은 동일했지만 그 힘의 원천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오르카 소장은 지키고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
사드 후작은 해치고 파괴해 버리고자 하는 의지.
서로 극명히 대립하는 의지와 목적이 의외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혼란의 와중에도 끝끝내 쓰러지지 않고 버텨 낸 두 노인은 곧 자세를 바로 하고 재차 싸울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
두 노인 모두 눈을 뜨자마자 보인 정면의 풍경에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쿠르르르륵-
분화구의 중앙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푸른 불길.
굵고 거대한 불기둥이 땅 밑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누벨바그의 전 층, 그러니까 Lv.9, Lv.8, Lv.7, Lv.6, Lv.5, Lv.4, Lv.3, Lv.2, Lv.1의 천장을 모조리 뚫고 그보다 더 높은 곳까지 뻗어 나가 있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드-
선악의 문.
누벨바그의 뚜껑 역할을 하고 있는 이 거대한 원형의 문이 푸른 불기둥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 주변부의 사슬들이 하나 둘씩 끊겨 나가고 있는 것이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심지어 주변의 도르래들이 부서지며 사슬들이 끊어질 때마다 문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심상치 않다.
플러버 점액들이 옅어짐과 동시에 밖에서부터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물길은 아예 이 불기둥의 근처에도 다가오기 전에 모조리 증발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뭐, 뭐냐 저게?”
오르카는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
하지만 아무도 이 괴현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저 멀리 나가떨어져 있는 도르듐, 수와레, 사디, 그리고 아이옌과 사드 후작까지 모두 멍한 표정으로 불기둥의 끝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 한 사람. 비키르만 빼고 말이다.
쿠르르륵!
비키르는 불기둥의 싹이 발아한 지점, 그러니까 푸른 알이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뜨거운 열풍과 푸른 불길이 온몸을 태울 듯 요동쳤지만 비키르는 굴하지 않았다.
가름의 얼굴로 위장하느라 툭하면 얼굴에 화상을 입혀서 어느 정도 뜨거움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열기는 사뭇 다르다.
어지간한 불길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초고온의 청염(淸炎)이 어마어마한 상승기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살이 타는 것쯤이야.’
비키르는 작렬하는 불길 사이를 헤집고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 몸이 위로 붕 떠 날아가 버리지 않게 온 힘을 다해 지면에 붙어 있어야 했다.
이윽고, 불길과 아지랑이의 너머로 포세이돈의 모습이 보인다.
둥그런 구체는 반으로 쪼개져 있었고 푸른 불기둥은 그 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밑으로 내려가 있는 불기둥의 뿌리 부분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 지면 아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지진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누벨바그 화산 가장 심층부의 열권(熱圈)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
‘역시, 누벨바그는 사화산이 아니었군.’
이 화산은 죽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가장 크게, 가장 성대하게 폭발하기 위해 남몰래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모여드는 지점에 뿌리를 내리고 힘을 빨아 먹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푸른 씨앗 ‘포세이돈’.
엄밀히 말하자면 누벨바그에 기생하고 있던 존재였다.
‘아니. 기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곳 누벨바그라는 장소 자체가 포세이돈을 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일지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비키르는 불길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뜨거운 자락들을 모두 걷어 냈다.
놀랍게도 불길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 맹렬한 열기를 뿜어냈으나 비키르가 손을 대자 이내 얌전해졌다.
마치 자신의 털을 쓰다듬는 것을 허락한 짐승처럼.
열기가 줄어들자 이내 따스한 온기만이 감돌게 되었다.
비키르는 바실리스크의 힘을 이용해 살을 재생시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비키르는 불의 장막들을 걷어 내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아주 좁은 원형의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비키르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한 쌍 존재했다.
[……!]검은 비늘.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푸른 불길.
……크기는 손바닥 사이즈보다 조금 작을까?
도마뱀처럼 생겼지만 등에 날개가 달려 있는 기묘한 생물이 비키르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불에서 태어나고 불을 먹고 자라서 불로 돌아가는 생물처럼 전신이 불길에 휘감겨 있었다.
“…….”
비키르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것 역시도 비키르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존재가 된 이들.
이윽고.
딸꾹-
그것이 작게 딸꾹질을 했다.
작은 콧구멍에서 푸른 불길이 조그맣게 튀었다가 사라졌다.
“예쁘다. 알에서 이런 것도 태어날 수 있구나. 샐러맨더 같은 건가?”
“……아니. 그보다 훨씬, 훨씬 더 상위의 존재지.”
어느새 뒤를 따라온 아이옌이 감탄하며 하는 말에 비키르는 짧게 대꾸했다.
비키르 역시 이것의 정체를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악마들에 반하는 고대의 존재들 중 가장 창대하며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가슴팍 사이에서 부들부들 떠는 데카라비아의 반응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것이 아직 존재할 줄이야!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멸종된 줄 알았거늘! 분명 마도황제 트제르시가 직접 하나하나 숙청했다고 들었었는데!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개체일지도……!?]포세이돈을 본 데카라비아는 그동안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호들갑을 있는 대로 다 떨기 시작했다.
한편.
꾸륵- 꾸륵- 쿠르륵-
그것은 검고 푸른 몸을 움직여 비키르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비키르의 손등에 대고 볼을 부비적거렸다.
친근감의 표현. 태어나서 처음 본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과 애착이 드러나는 움직임.
하지만 그 교감의 시간은 짧았다.
파앙-
그것은 이내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로의 도약을 준비했다.
마치 잘 있으라는 듯한 그것의 시선을 비키르는 담담하게 맞받고 있었다.
‘또 봐.’
뇌리에 울려 퍼지는 전언.
그것은 언어의 형식을 통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그 뜻이 더욱 더 정확하게 와닿아 심장을 울린다.
비키르 역시 그 뜻에 대답했다.
‘인간의 수명은 짧다. 네가 나를 보러 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에는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 다시 볼 수는 없을 거야.’
눈을 감고 고개를 젓는 비키르의 뜻에 그것은 몹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시간이 됐다.
그것은 작은 날개를 활짝 폈다.
그리고 지면 아래, 화산의 가장 깊고 뜨거운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 푸른 불기둥이 그것의 날개에 힘을 실어 주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화산의 힘이 작디작은 그것의 두 날개에 응집되어 눈이 멀 듯한 푸른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지저 무저갱의 바닥을 박차고 깊고 어두운 심해를 관통하여 수면 위, 아득한 상공을 지나 드넓은 창천으로 비상하려 한다.
“됐다. 끝났어.”
비키르는 이 모든 것들에게서 관심을 꺼 버렸다.
그동안 수행했던 모든 과업들이 모두 끝났다.
이곳 초심해의 유령성까지 직접 왕래하며 온갖 위기와 고난들을 감내한 목적을 드디어 달성하고 만 것이다.
“누벨바그에서의 목적은 이걸로 끝이다. 알이 부화했으니 이제 더는 볼 일 없어.”
“그래? 그럼 이제 여기를 나가면 되는 거야?”
“……이제 그것이 새로운 문제지.”
비키르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맨 처음에 누벨바그로 내려올 때 이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만약 이 포세이돈을 무사히 발견하고 몇 년 일찍 가동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은 모든 소임을 다했노라고, 그 뒤부터는 죽어도 상관없노라고.
하지만 막상 이 단계까지 와서 멋지게 계획을 성공시켜 놓고 나니 새로운 욕심이 생긴다.
살고 싶다.
더 오래 살아남고 싶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 길고 끔찍할 전쟁이 어떻게 종식되는지, 저번 생에서 보지 못했던 최후의 마무리가 어떻게 결판나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갈 것이다.
미래를. 비키르가 전생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이후의 먼 미래를!
…터억!
비키르는 손을 뻗어 아이옌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엇?”
놀란 표정을 짓는 아이옌을 향해 비키르는 짧게 말했다.
“나가자.”
이제는 정말 이곳 누벨바그를 떠날 차례가 왔다.
머릿속을 맴도는 그리운 얼굴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지 모를 지상으로 돌아갈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