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방랑기사로 사는 법 (2)
뚜우우우우-
몬스터의 습격을 알리는 뿔고둥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마적 떼가 나타났다거나 산불이 번졌다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적은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 금품이나 식량을 털리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목숨이 위험하다.
게다가 이번에 목책을 넘어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놀, 개체수가 많고 포악하기로 이름 높은 개과의 마물이다.
그르르르르……
이윽고, 시가지로 기괴한 것들이 밀려 들어온다.
기름이 낮은 온도에서부터 서서히 끓어오르는 듯한 음성.
바싹 말라붙은 흙을 긁는 소음.
구부정한 허리, 애매한 이족보행,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흉흉하게 번들거리는 눈알.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대표적인 유해종 놀 떼가 마을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놈들 역시도 상당히 기갈에 시달렸는지 바짝 마르고 털에도 윤기가 없었다.
눈은 바짝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에 질질 늘어지는 침에서는 끈적한 탐욕이 엿보였다.
역대급 기근에 지치고 고달픈 것은 몬스터 역시도 마찬가지다.
계속된 가뭄으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데다가 제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삶의 터전 자체가 크게 협소해졌다.
다른 몬스터들과의 먹이경쟁에서 밀린 하급 몬스터들은 역대급으로 창궐한 개체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인간이 사는 곳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이 한 떼의 놀들이 바로 그런 운명의 조류에 휩쓸려 온 경우였다.
캬아악-
놀 한 마리가 민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천은 찢어졌고 나무는 부서졌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들이 유린당하고 있었다.
놈은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바닥에 묻은 냄새들 중 가장 싱싱한 것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때.
…쾅!
벽장문이 부서지며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저, 저리 가!”
한 남자가 쇠스랑을 들어 놀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끽-
놀은 그 자리에서 두개골이 부서진 채 절명했다.
문제는 그 뒤를 이어 들어온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세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놀들이었다.
“여보! 뒷문으로 뛰어! 뒷마당 지하 창고로 가!”
남자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옆쪽 방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뛰쳐나왔다.
남자는 재빨리 여자의 옆으로 따라붙어 달렸다.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한 놀 떼들을 쇠스랑으로 위협하면서.
뒷마당. 지하로 가는 창고 문이 보인다.
남자는 재빨리 문을 열었고 여자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으아앙- 엄마!”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남자와 여자는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 비명의 주인이 누군지 눈치챘다.
지하 벙커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수는 둘,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바닥에 넘어진 뒤 막 일어나고 있는 소녀 하나가 있었다.
옷의 옆구리가 찢어져 있었고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막내야!”
남자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나갔다간 모두가 죽는다. 한시라도 빨리 이 문을 닫는 것만이 아내와 나머지 아이 둘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
눈앞에서 자식을 포기해야 하는 부모의 심경은 어떤 것일까.
“…….”
남자와 여자는 고민했다. 피가 나는 것도 모른 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 짧은 순간 생을 몇 번이나 돌이켜도 끝끝내 후회로 남을 듯한 결정을.
…쾅!
문이 닫혔다. 현실은 늘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여기 이 닫힌 문도 그러했다.
소녀는 울며불며 엎드려 문을 긁었다. 손톱이 다 벗겨져 나갈 정도로 처절하게.
아버지가 늘 했던 잔소리대로 현관문 옆구리 쪽에 툭 튀어나와 있던 못을 진작 제대로 다시 박아 넣을 것을 그랬다.
만약 그랬다면 방금 전에도 옷이 못에 걸려 주춤거리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소녀는 목 놓아 외쳤다.
“엄마! 아빠! 열어 주세요!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울지도 않고 밥도 조금만 먹을게요! 청소도 열심히 하고 언니 오빠들이랑 싸우지도 않을……!”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애원에 응답한 것은 부모형제가 아니라 등 뒤에 우글우글 몰려든 놀 떼였다.
크아아악-
제일 선두에 있던 놀이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녀가 막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퍼억-
놀의 아가리 안으로 쇠스랑이 틀어박혔다.
“막내야! 빨리!”
어느새 문을 열고 나온 남자가 놀 떼와 맞선다.
여자 역시도 창고 벽을 쌓아 올린 벽돌 조각들을 한 아름 들고 나와서 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비는 강하다. 물론 어미 역시도.
“아빠! 엄마!”
소녀는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뒤로 달렸다.
아비는 쇠스랑을 들어 놀 떼에게 맞서려 했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세상보다 강하지는 않다.
이윽고,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 놀 떼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욱-
두꺼운 가죽 바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튀었다.
한 가족의 몰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퍼억-
아비의 발이 가벼워졌다.
바지를 물고 늘어지던 놀의 머리통이 수박 깨지듯 산산조각 났다.
“……어?”
아비의 멍한 시선이 향한 곳은 정면.
펄럭-
건조한 바람에 넝마와도 같은 피풍의가 휘날린다.
광택 없는 검은 판금 갑옷이 듣기 싫은 금속음을 깎아 내고 있었다.
방랑기사.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그가 지면 위에 우뚝 선 채 놀 떼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 저기. 뉘신지?”
아비가 물었으나 방랑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콱-
등에 짊어지고 있던 긴 막대를 손으로 옮겨 쥐었을 뿐이다.
퍼엉! 빠각!
주변에 있던 놀들의 머리통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붉은 피와 함께 찢어지는 붕대 조각 안에서 시퍼런 창날이 드러났다.
그래듀에이터를 상징하는 액체 아우라가 끈적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에 복잡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퍼퍼퍼퍼퍽!
낭비 하나 없는 움직임.
극한의 실전경험이 만들어 내는 노련한 경로.
지금껏 수없이 많은 전장을 거쳐 온 베테랑의 솜씨였다.
그제야 후드가 벗겨지며 방랑기사의 얼굴이 엿보였다.
앳된 얼굴이지만 느껴지는 관록, 보통은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가 적절하게 뒤섞여 있는 외모였다.
어깨는 곰처럼 떡 벌어져 있고 허리는 늑대처럼 가늘다.
왼팔이 없는 것만 제외하면 전투에 최적화된 몸매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는 하나뿐인 팔로도 귀신같은 창 솜씨를 자랑했다.
창이 한번 움직이면 적어도 하나의 놀이 죽었고 둘 이상의 놀이 불구가 되었다.
퍼억! 퍽! 우드득! 퍼-억!
고기와 뼈를 한꺼번에 다지는 소리. 순식간에 피범벅이 된 뒷마당.
하지만 더 이상 놀 떼의 지저분한 신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마물 떼를 깔끔하게 정리한 외팔의 방랑기사는 창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그때. 지하 창고의 문을 빼꼼 여는 손이 있었다.
방금 전 하마터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뻔한 소녀였다.
그녀는 방랑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누구세요?”
“…….”
“제 이름은 ‘삼무아(Shammua)’에요! 혹시 은인의 존함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방랑기사는 고개를 돌려 소녀를 돌아보았다.
무서움이 없는 것인지 고마운 마음이 강한 것인지, 소녀는 어느새 눈물을 거둔 채 동경과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랑기사가 막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캬아아아악-
그르르륵!
컹! 컹!
울타리 밖에서 놀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히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랑기사는 짧은 여유를 뒤로하고 다시금 정면을 향해 섰다.
이윽고.
뿌지지직!
목책이 부서지며 거대한 무언가가 뒷마당으로 난입해 들었다.
일반적인 놀에 비해 세 배는 더 큰 체구, 전신에 빳빳하게 곤두서 있는 털은 특이하게도 검은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충혈되어 있는 두 눈에서 기름과도 같은 진액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역한 악취가 바람을 타고 풍긴다.
위험등급: A
크기: 3m
발견지: 전 대륙
-일명 ‘포이즌 놀’, 또는 ‘시독 (尸毒 ) 놀’
놀 중에서도 소화계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진화한 예이다.
대부분의 놀은 시체를 파먹고 살아가는데 그중에서도 포이즌 놀은 섭식한 시체가 위장 속에서 썩으며 내뿜는 독을 피부나 타액에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300마리 이상의 개체 수를 갖춘 놀 군락에 1마리 꼴로 분포하며 대부분은 우두머리의 역할을 수행하는 듯하다.
포이즌 놀. 놀 무리의 변종. 일반적인 놀은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는 힘과 흉폭성을 자랑하는 존재.
안전해졌나 싶어서 밖으로 나오려던 일가족은 포이즌 놀의 무시무시한 자태에 겁먹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외팔의 방랑기사는 그저 건조하게 웃을 뿐이었다.
“……포이즌 놀. 저건 오랜만이네.”
건조한 음성이 짧게 흐른다.
그는 하나뿐인 팔로 해일처럼 넘실거리는 푸른 아우라를 뿜어냈다.
꽉 말아 쥔 창에는 한 점의 미동조차 없었다.
뒤에 있는 소녀가 어미의 성화에 이끌려 문을 닫기 직전, 방랑기사는 말했다.
“소속은 자경단 ‘밤을 걷는 자들’. 별명은 조금 오그라들긴 하지만 ‘밤의 기사’.”
“……!”
소녀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상대방은 요즘 민중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밤을 걷는 자들’ 소속.
삶에 지친 이들을 구원의 땅, 낙원 ‘방주’로 인도한다는 도시 전설 속의 존재들 중 하나였다.
외팔의 방랑기사, 아니 ‘밤의 기사’는 소녀를 향해 짓궂은 미소로 씩 웃어 보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름은 튜더.”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갑고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성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