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밤을 걷는 자들 (3)
어셔 포 비앙카.
신궁비가 어셔의 차기 가주…… 였었던 사람.
그녀는 현재 어셔가의 가주로 있는 어셔 포 로드릭의 외동딸이다.
따라서 차후 신궁비가는 그녀가 물려받아야 함이 옳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궁귀(弓鬼)라는 별호가 붙었을 정도로 강했던 어셔 포 로드릭이 의문의 병으로 쓰러졌고 그의 장녀 비앙카는 아직 어렸다.
그녀가 콜로세오 아카데미에 있을 때, 집안이 뒤집어졌다.
어셔 포 매들라인. 어셔 포 로드릭의 하나뿐인 누이.
어려서부터 몸이 병약하여 가문의 대소사에 나서지 않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실권을 잡은 후 치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매들라인은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직접 관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셔 포 로드릭이 병으로 눕기만을 지금껏 기다렸다는 것처럼.
아버지의 변고를 듣고 가문으로 돌아간 비앙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홀대와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얼굴마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는 자신의 지지세력인 외척 가문과 방계의 가문들을 모아 매들라인의 입지를 견제하려 했다.
그러나 헛된 일이었다.
매들라인은 비앙카가 콜로세오 아카데미에 막 입학했을 무렵부터 일찌감치 그녀의 외척세력과 방계 가문들을 모두 포섭해 둔 바 있었고 비앙카는 오히려 믿었던 도끼에 발등만 찍힌 꼴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집안이 자신의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가장 큰 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 뒤로 비앙카는 가문을 등지고 세상으로 나왔다.
유일한 소꿉친구이자 영혼의 라이벌인 튜더에게 몸을 의탁할까 싶어서 돈키호테 가문을 찾아갔지만 튜더 역시도 비슷한 처지였다.
창왕 세르반테스가 궁귀 로드릭과 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병을 얻어 갑작스럽게 드러누웠고 그의 동생인 파사몬테가 실권을 장악했다.
심지어 튜더는 비앙카와 달리 가문 전체와 대놓고 싸우려 들고 있었다.
그래서 비앙카는 튜더를 데리고 도망쳤다.
지상에 현존하는 최강의 무력 집단들 중 하나인 돈키호테가의 무적기마대와 어셔가의 신살저격조가 그 둘을 뒤쫓았다.
도망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지만 그럭저럭 버텨 낼 수 있었다.
언제나 어린애라고만 생각했던 소꿉친구 튜더는 어느덧 믿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남자로 자라났다.
아니, 때로는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비앙카는 그런 튜더를 조금 더 오래 지켜보게 되었다.
유년 시절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철없고 대책 없었던 시기를 함께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 힘들고 아픈 시간을 함께 겪고 있는 사람.
……그래서일까? 비앙카는 지금 평소답지 않게 분노하고 있었다.
“끌끌끌- 계집년이 독하기 그지없구나.”
돈키호테 라만챠 페드로. 파사몬테의 부관. 오래 전 비키르를 누벨바그로 호송했던 장본인.
분명 팔다리가 잘린 채 지하감옥에 투옥되어 있어야 할 녀석이 어째서인지 멀쩡한 몸상태로 기마대를 이끌고 있었다.
비앙카는 이를 뿌득 갈았다.
튜더를 지금의 처지로 몰아넣은 주범들이 지금 눈앞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역시 네놈들은 마인(魔人)이구나.”
“뭘 새삼?”
페드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이죽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어셔가의 이설레드가 네년을 잡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데. 잘된 일이다. 그놈에게 팔아먹으면 꽤나 쏠쏠하겠어. 튜더, 그 겁쟁이 쥐새끼 놈을 잡으러 나왔다가 뜻밖의 수확이 생겼군.”
순간, 비앙카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겁쟁이 쥐새끼? 그건 악마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들어 간 너랑 그런 너를 세상에 싸질러 놓은 니 애비애미한테나 어울리는 말 아닌가?”
명예와 평판에 목숨을 거는 것이 돈키호테가의 가풍이다.
페드로는 비앙카의 말을 듣는 즉시 눈이 뒤집어졌다.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본능적으로 장갑을 벗으려 하는 페드로, 그리고 비앙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활에 화살을 먹였다.
펑!
나락수에서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세월을 보내던 비앙카.
그녀는 그때의 심득을 바탕으로 아카데미에서 피나는 수련을 했다.
그래듀에이터 특유의 액체 아우라가 화살에 담겨 쏘아져 나갔다.
마치 끈적한 액체가 지면에 수평을 이루며 길게 떨어지는 듯한 모양새.
그리고 그 위력은 막강했다.
퍼억-
페드로의 손등을 관통한 화살은 그대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러나.
“크하하핫! 빈틈이 없으면 만들어 찌르는 건가? 어셔가의 궁술은 역시 대단하네.”
페드로의 눈이 탁한 기운으로 번들거린다.
그는 화살을 분질러 버렸고 그 자리에는 바로 새롭게 자라난 살이 뒤덮인다.
비앙카는 그것을 보며 다시 한번 페드로와 그의 주인인 파사몬테는 악마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다른 기사들은 대체 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지?’
비앙카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려 뒤편을 살폈다.
돈키호테가의 ‘무적기마대’.
그들은 ‘무적함대’와 더불어 돈키호테가의 무력을 양분하는 실세 중의 실세이다.
평소 대쪽 같고 충성심 깊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들이 어째서 모조리 악마의 하수인이 되었단 말인가?
“……!”
눈썰미 좋은 비앙카는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볼 수 없는 투구의 안쪽 얼굴, 철면으로 가려진 무적기마대 구성원들의 표정.
그들은 하나같이 넋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지에 오른 기사들답지 않게 탁한 눈빛, 개중에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악마에게 조종당하고 있구나!’
이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어셔가의 기사들 역시도 비슷한 상태이리라.
매들라인이 비앙카의 지지세력들을 어떤 방식으로 포섭했을지 역시도 대강 짐작이 갔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비앙카는 이를 악물었다.
돈키호테가의 무고한 기사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이쪽이 죽을 판이다.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팟-
비앙카는 땅을 박차며 화살을 날렸다.
다행스럽게도 조금만 더 가면 가파른 암석지대가 나온다.
기마대는 그곳까지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돈키호테가의 무적기마대를 얕봐서 벌어진 실책이었다.
두두두두두-
놀랍게도 돈키호테가의 기마대는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급경사도 거침없이 질주했다.
“쳇. 저런 괴물 같은 놈들이 왜 악마한테 조종당하는 거야?”
비앙카는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저 많은 기마대를 하나하나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콰쾅! 쿠르르르릉-
비앙카가 쏜 화살들은 암석 절벽의 약한 부분들만을 노렸다.
밧줄과 넝쿨로 만들어진 함정들이 화살에 의해 파괴되자 엄청난 양의 토사와 돌무더기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지간한 기마대는 벌써 전멸했어야 할 상황 속에서 돈키호테가의 무적기마대는 오히려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바위와 흙을 뚫고 전진해 오는 기사들의 랜스 끝에는 모두 그래듀에이터를 상징하는 아우라가 맺혀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위용.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산사태도 생으로 찢어발기는 저런 것들이 전장을 누비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노릇이다.
그 어떤 포위망이 저들에게 뚫리지 않고 버텨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비앙카가 도망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저 무식한 돌격들을 온전히 제 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두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비앙카!”
저 위에서 천둥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콰쾅!
사선으로 쏘아져 온 참격이 맨 앞에 있던 기사 하나를 뒤로 날려 버렸다.
튜더. 검은 피풍의를 휘날리며 등장한 그가 비앙카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일어나!”
튜더는 창을 뻗어 휘두르며 말했다.
비앙카는 튜더가 팔을 내밀어 주지 않는 것에 조금 의아함을 느끼다가 이내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튜더는 현재 왼쪽 팔이 없다.
돈키호테가를 탈출하던 도중에 잃었던 것이다.
“튜더! 이들은 너를 노리고 있……!”
“알아! 일단 물러나는 데에만 집중하자!”
튜더는 창을 휘둘러 근처에 있는 바위들을 모조리 아래로 굴려 버렸다.
“튜더! 비앙카!”
저 뒤에서 돌로레스와 산쵸, 피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페드로를 비롯한 돈키호테가 기사들의 대처가 훨씬 빨랐다.
“포위!”
페드로의 명령에 기사들이 우르르 돌아가 돌로레스를 비롯한 지원군을 막아섰다.
동시에 나머지 병력들은 일제히 창을 들어 튜더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퍽!
투창 하나가 튜더의 허벅지를 꿰뚫고 지면에 박혔다.
“……!”
튜더는 이를 악물었지만 뒤이어 날아드는 창의 소나기를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다만.
“엎드려.”
그는 비앙카를 자신의 등 뒤에 두고 전면으로 쏟아지는 모든 창을 막아섰을 뿐이다.
퍼퍼퍼퍽!
팔뚝과 허벅지, 어깨, 다리를 관통하는 창날.
“튜더!”
비앙카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지만 튜더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비앙카를 지키고 있었다.
“눈물겨운 기사도로군. 보기 좋은 최후로다.”
페드로는 짐짓 눈물을 글썽이며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퍼펑!
페드로의 창이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며 떨어져 내린다.
…뚝!
그동안 튜더를 지켜 주었던 창이 반으로 부러져 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튜더는 그대로 쓰러졌다.
뒤에 있던 비앙카가 황급히 튜더를 받아 들었다.
“튜더!?”
가슴팍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당장 신관에게 보이지 않으면 분명히 죽을 것이다.
그러나 돌로레스를 비롯한 이들은 돈키호테가의 기사들이 세운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페드로는 이죽거렸다.
“어쩔 테냐? 얌전히 항복하겠다고 한다면 튜더를 가문으로 데려가 치료해 줄 수도 있다. 물론 네년도 함께 말이야.”
어째서인지 페드로는 튜더를 바로 죽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
비앙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두 번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도와줘. 튜더를 살리고 싶어.”
“좋았어! 탁월한 선택이야. 이설레드 놈에게 생색 좀 낼 수 있겠구만.”
페드로는 낄낄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저 위에서 돌로레스를 비롯한 밤을 걷는 자들에게서 기마대를 철수시키기 위함이었다.
“어이! 그만하면 됐다! 이제 철수……!?”
그러나. 페드로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으-직!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어 그의 안면을 으깨 버렸기 때문이다.
콰콰콰쾅!
이윽고, 땅에서 튀어나온 황금빛 주먹들이 돈키호테가의 기사들을 후려쳐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퍼펑! 쿠드드득! 쾅!
흙으로 만들어진 고리들이 지면 위로 솟아올랐고 그것은 질주하는 기마대의 말발굽들을 걸려 넘어지게끔 만든다.
“크으윽! 이, 이게 무슨…….”
뭉개진 코와 터진 입술, 입 밖으로 줄줄 흐르는 핏물에 부서진 이빨 조각을 토해 내고 있는 페드로의 앞으로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검은 로브와 모자, 그리고 그 안으로 보이는 숏커트의 흰 머리카락.
키는 훌쩍 컸지만 얼굴은 여전히 아이처럼 앳된 여인 하나가 튜더와 비앙카의 앞에 오연히 서 있었다.
“미안. 좀 늦었네.”
째깍째깍- 바쁘게 움직이는 회중시계의 태엽 소리.
싱클레어가 비앙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