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28
428화 밤을 걷는 자들 (4)
싱클레어.
비키르를 제외한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20학번들 중에서 가장 발군의 재능과 성적을 자랑했던 모범생.
원래 역사에서는 콜로세오 아카데미 졸업 후 모두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그녀가 동기들의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러서!”
싱클레어는 튜더를 안고 있는 비앙카를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시에.
쩌저저저적! 우지지직!
지면이 대규모로 찢어지며 그 밑에 있던 누런 황금광맥이 통째로 들려 나온다.
지층 하나가 뚝 끊어져 나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수없이 많은 사금(砂金)들이 뜨거운 마력장에 의해 녹아내린 뒤 형태가 새롭게 재창조된다.
이윽고, 싱클레어의 등 뒤로 어마어마한 수의 황금 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 개의 손.
하나하나가 영롱한 금빛으로 빛나는.
그 뒤에서는 커다란 마나륜이 회전하며 후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싱클레어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모자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일명 ‘돈 많아 모자’, 소유하고 있는 황금의 양에 따라서 보유 마나량을 올려 주는 신묘한 아티팩트.
그것은 부르주아가의 정식 가주가 된 싱클레어의 압도적인 부(富)와 더불어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심지어 싱클레어는 나락수 안에서 상당히 높은 스탯을 찍고 나온 상태.
이로 인해 그녀는 대단위의 토(土)속성 마법과 금(金)속성 마법을 더블 캐스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콰콰콰쾅!
무수히 빗발치는 황금의 주먹들이 돈키호테가의 무적기마대를 얼마간 막아 세웠다.
말들이 넘어지고 기사들이 바닥을 굴렀다.
사방을 조여 오던 포위망이 일순간 확 느슨해졌다.
물론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어온 비앙카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팟-
비앙카는 마치 싱클레어와 약속이라도 한 듯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으로 튜더를 안아 들었고 그대로 솟구쳐 올랐다.
비앙카와 튜더가 포위망을 뚫고 뒤로 빠지자 싱클레어 역시 허공을 날아 그 뒤를 엄호했다.
콰콰콰쾅!
비앙카를 향해 날아들던 투창들은 황금으로 된 주먹에 부딪쳐 튕겨 나간다.
말없이 달리던 비앙카가 그제야 싱클레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문은 어쩌고?”
“데미안 숙부에게 맡겼어. 이제 와서 이런 말 염치없지만…… 아무래도 너희들이 걱정돼서.”
싱클레어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기어들어 가듯 말했다.
왜냐하면 싱클레어와 비앙카는 속된 말로 서로 ‘쌩깠던’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싱클레어는 본디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 뒤 사촌언니인 줄리엣과 겨루어 부르주아가의 가주 자리를 쟁탈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중에 줄리엣이 사망하고 같은 학교의 동급생이었던 비키르에게 점점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녀는 점차 방황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한참을 번민하던 그녀는 자신의 번뇌를 정리하고 미래에 대하여 확실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 콜로세오 아카데미를 자퇴하기로 했다.
또한 자신을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게 만드는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하려고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에게서 모습을 감추고 종적을 지워 버리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운명은 뒤바뀌었다.
싱클레어는 나락수 안에 갇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동기들끼리 벌여야 했던 살육전.
오직 한 명만이 살아남아 다음 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미션.
이러한 극한의 시련 속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가장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살려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우리들 중 가장 천재는 싱클레어잖아. 역시 네가 가는 게 좋겠어.’
‘……흥. 너 요즘 나한테 완전 섭섭하게 대했던 거 알지? 반성해라 진짜. 이런 좋은 친구가 어딨다고 말야.’
친구들은 먼저 등 돌리려 했던 자신을 감싸 주었고 또 희생해 주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그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 주었다.
이것저것을 재고 따진 끝에 친구들과는 떨어지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었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싱클레어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정해라.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믿을 것인지.’
비키르는 용마인의 주먹에 깔리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주구가 된 아버지를 죽일 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 뒤로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부르주아가의 가주가 된 싱클레어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게 과연 자신이 추구하던 삶이었을까?
지금의 상황은 자신이 진정코 원했던, 바라 마지않던 것일까?
[이참에 쓸데없는 인연들을 솎아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시간부로 모든 연극은 끝났다.]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단 하나뿐이었던 가족인 아버지 바르톨로메오는 진작 악마의 꼭두각시로 전락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이미 부르주아가의 가주가 되겠다는 목표는 의미를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껏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추구해 왔던 것일까?
또한 앞으로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그 영민한 머리로 답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싱클레어는 자신의 답을 관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나를 다시 친구로 받아 줘.”
싱클레어는 돈키호테가의 무적기마대를 막아내며 말했다.
굳건하게 서 있는 황금의 철벽과는 달리 파리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는 저 뒤에서 튜더를 돌로레스에게 맡기고 있는 비앙카에게도 닿았다.
“…….”
비앙카는 고개를 돌려 싱클레어를 바라보았다.
구슬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싱클레어.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가고 있는지 입가에서는 핏줄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너희들이 나를 용서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
그러나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용서를 안 하냐!?”
비앙카가 재빨리 달려가 싱클레어의 목덜미를 잡아채 뒤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콰쾅! 쿠드드드드드득-
싱클레어가 비앙카에게 대롱대롱 붙잡혀 가자 황금벽이 무너지며 무적기마대가 돌진해 들어왔다.
애초에 산사태도 찢어발기는 저 괴물들의 돌격을 몇 초간 막아 세운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다.
퍼퍼펑-
싱클레어를 향해 투창 몇 개가 날아들었지만 비앙카는 싱클레어를 허리에 낀 채 그것들을 피했다.
창이 비앙카의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끊어 놓고 날아간다.
비앙카는 창을 피해 툭 튀어나온 바위 위로 쏜살같이 내달리며 허리춤에 낀 싱클레어를 향해 말했다.
“바보야, 애초에 친구가 아니었던 적도 없었어.”
“비앙카…….”
싱클레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1학년 신입생 때부터 2인 1실 같은 방을 썼던 막역한 사이.
하지만 결국 콜로세오 아카데미에서 서로 갈라섰던 둘.
출신 가문을 숨겼던 것이나 학교 졸업 이후 모든 연락을 끊으려 했다는 것은 어린 소녀들에게 있어서 큰 배신과 배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대의를 품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콰악!
두 여협객은 손을 잡았다.
다시 마주 잡힌 손은 처음보다도 훨씬 더 굳건하게 맞물려 있었다.
“늦게 와서 미안.”
“…….”
“말도 없이 아카데미 자퇴한 것도 미안.”
“…….”
“너한테서 정 떼려고 일부러 인사 씹고 말 거는 것 무시한 것도 미안.”
“…….”
“부르주아가 출신인 것 숨긴 것도 미안.”
“…….”
“또 나락수에서…….”
“아 쫌! 알겠으니까 다 퉁! 숨차서 대답도 못 하겠다!”
비앙카는 도도한 표정이 무너지는 것도 잊은 채 빽 소리 질렀다.
싱클레어나 비앙카나 눈물과 콧물이 질질 흐르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로 그때.
비앙카와 싱클레어의 바로 뒤까지 몰려왔던 무적기마대가 주춤했다.
“이 자식들! 감히 내 친구를!”
“용서 못 해!”
“두 배로 되갚아 주마!”
산쵸와 피기, 그리고 돌로레스의 치료를 받아 완쾌한 튜더가 합류한 것이다.
“비앙카!”
“튜더!”
튜더와 비앙카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펄쩍 뛰어올랐고 이내 서로의 등 뒤를 추격해 오던 기사들에게 각자 한 방씩 통렬한 반격을 날려 주었다.
“여어- 밤의 재벌 왔는가!”
“밤의 재벌보다는 밤의 황금왕이 낫지 않을까?”
산쵸와 피기가 오랜만에 보는 싱클레어를 향해 자연스럽게 씩 웃어 보이자 싱클레어 역시도 안도의 눈물과 함께 활짝 웃는다.
역시 함께 있어야 든든하고 즐겁다. 동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 명이 빠진 게 아쉽네.”
피기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혼잣말에 모두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걱정 마. 그 녀석은 반드시 돌아와.”
“죽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는 인물이지.”
“……역시 그렇겠지?”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건강할지도 몰라.”
“형아를 반드시 구해 내고 말 거야.”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 싱클레어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선배이자 조력자인 돌로레스가 서 있었다.
“준비 끝! 기도문이 완성되었어!”
돌로레스는 두 손을 붙이고 신성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파앗-
새하얀 불꽃이 돔 모양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돌로레스의 신성력에 닿자 돈키호테가의 기사들은 일제히 움찔하기 시작했다.
눈에서 탁기가 가시고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됐어! 효과가 있어!”
튜더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나 돌로레스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틀렸어. 세뇌가 너무 강해. 분명 십상시급의 악마가 힘을 쓴 거야.”
그리고 그 힘을 받아 간접적으로 기사들을 조종하고 있는 존재, 전장의 원흉이 돌로레스의 앞에 있었다.
“크하하하하! 내가 있는 한 그분의 영향력은 건재하시다!”
페드로. 그는 마기를 뿜어내며 돌로레스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페드로가 가까워지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의 눈빛이 다시 탁해졌고 행동 역시도 기민해진다.
결국, 돌로레스는 입술을 깨물고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쩔 수 없네.”
이 수단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다.
돌로레스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파앗!
또다시 밝은 빛이 그녀의 주위로 휘몰아친다.
따스한 햇살과도 같은 온기가 전장에 훈풍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페드로는 그런 돌로레스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기도나 신성 주문 같은 것은 가소로울 뿐이다! 빛 같은 것은 아무리 쬐어 봐야 따듯하기만 할 따름…….”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향해 드리워지는 커다란 그림자 때문이었다.
“……어?”
페드로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그것은 기도를 올리던 돌로레스가 갑자기 등 뒤에서 꺼내든 물건 때문이었다.
철퇴. 크고 아름다우며 강력한 쇳덩어리.
신성력이 아니라 물리력에 가까운 나보코프 1세의 애병이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