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라이온 킹 (2)
휘이이잉-
어부들의 말대로 어디 먼 바다에서 화산이라도 터진 것인지, 며칠 전부터 거세게 불어오는 해풍에는 기묘한 열기가 실려 있었다.
그 열기를 타고 번지는 악취는 해안절벽 위에 지어진 돈키호테가의 성 전체를 꼬릿꼬릿하게 만든다.
꾸덕꾸덕 건조된 건어물에서 나는 특유의 내음.
따듯해진 수온으로 인해 이상하리만치 많이 잡힌 온어들을 말리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다.
지나치게 많이 잡힌 온어들은 어부들에 의해 해안 이곳저곳에서 말려졌고 그 냄새는 해풍을 타고 넓은 지역에 퍼져 돈키호테가의 성까지도 범람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복도에서 나는 이 악취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창왕 ‘돈키호테 라만챠 세르반테스’.
창해창가 돈키호테의 가주이자 제국을 떠받치는 일곱 무인 중 한 명.
최강의 기마군 무적기마대와 최강의 해군 무적함대를 이끌고 푸른 창해를 지배했던 해상대제(海上大帝).
그리고 동년배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영웅들 중 하나인 ‘돈키호테 라만챠 튜더’의 아버지.
튜더는 방문을 열자마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처음 본 튜더가 제일 먼저 표한 감정은 슬픔이나 반가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
의문. 그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런 순수한 의문이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침실.
황량하리만치 커다란 침대 위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가늘게 움찔움찔 떨리고 있는 것이 무언가 심상치 않다.
튜더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파사사사사삭-
사람의 기척을 느낀 그것이 요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검은 물결이 침대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퍼져 나간다.
“……!”
튜더는 그제야 그 시커먼 것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퀴벌레와 파리, 개미, 지네, 그리고 각종 작은 풍뎅이 따위의 벌레들이었다.
웨에에에에엥-
악취가 훅 강렬해짐과 동시에 불쾌한 날갯짓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어마어마한 수의 해충들이 바글거리는 침대 위로 적나라한 풍경이 드러났다.
창왕 세르반테스.
창을 한 번 찔러 산에 구멍을 뚫고 창을 한 번 휘둘러 바다를 갈라 길을 내던 초인.
제국의 7대 가문 중 가장 광활한 영토를 소유했었던 존재.
해상을 통째로 지배하던 마도로스들의 제왕.
그는 해골과 바짝 마른 가죽만 남은 채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벌레가 들끓는 몸, 뼈만 남아 앙상하기 그지없는 두 팔은 배를 관통하고 있는 길쭉한 창대를 꽉 움켜쥔 상태였다.
악취와 벌레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기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털썩-
튜더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 아버님.”
황망하게 중얼거리는 음성.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태도.
정적. 지독한 정적.
무덤 속이라 해도 이보다 조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눈앞의 참혹한 상황 앞에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감히 쓰러져 있는 튜더에게 말을 걸지도 못했다.
최고의 친구, 최고의 스승, 최고의 아버지.
그런 존재의 비참한 말로를 목격한 튜더의 눈동자는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사정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잠깐만.”
누군가가 뒤에서 튜더의 두 눈을 가렸다.
비앙카. 그녀는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튜더의 귓가에 대고 호소하듯 입을 열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응?”
비앙카는 필사적으로 튜더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튜더의 두 눈을 가려 주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튜더는 무너져 가는 둑이 물을 토해 내듯 입을 열었다.
“……아버님!”
튜더는 그 뒤로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돌로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맨손으로 침대 위에 드글거리는 벌레들을 걷어 냈다.
벌레들이 얼추 사라지자 돌로레스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세르반테스의 맨얼굴을 가려 주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 Ite, missa est. 편히 잠드소서.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가소서.”
성녀의 미사. 짧지만 미어지는 진심을 다한 고별사였다.
비앙카가 손을 풀어 주는 즉시 튜더는 세르반테스의 미이라 위에 엎어져 울음을 참았다.
바싹 마른 고랑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
고통과 슬픔, 증오와 후회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자진하셨구나.”
돌로레스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세르반테스의 마지막을 유추할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의 사인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독과 심마(心魔)에 의해 약해진 몸을 악마에게 빼앗기기 전에 자신의 의지로 창을 거꾸로 쥐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실로 초인적인 의지와 인내력으로 창을 자신의 복부 깊숙이 찔러 넣어 침대 아래까지 관통시켰다.
침대와 벽, 바닥과 천장에 남은 시커먼 그을음의 소용돌이에는 악마가 세르반테스의 영혼을 비집고 몸을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발악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돌로레스는 신성력을 뿜어 세르반테스의 몸을 훑었다.
독기를 비롯한 모든 사특한 잔여물들이 깨끗하게 정화되고 있었다.
“쇠약해지신 정신으로나마 끝까지 악마에게 저항하셨어.”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었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튜더는 끓어오르는 납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르반테스의 정신력이 강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해상의 지배자이자 초원의 지배자였으니까.
……문제는 무엇이 영혼만큼이나 강인했던 그의 육체를 병들게 했느냐는 것이다.
돌로레스는 침대 밑의 바닥을 살폈다.
썩어 문드러진 벌레들의 사체가 보인다.
그것들은 바싹 말라서 가루가 되어 있는 것이 분명 세르반테스의 시신에 제일 먼저 달려든 녀석들일 것이다.
“……독기가 느껴져. 아주 지독한 역병의 기운도 함께.”
돌로레스는 벌레들의 사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된 벌레들은 분명 독 기운에 오염되어 있는 세르반테스의 시신을 갉아 먹고 죽은 것이리라.
세르반테스의 시신에서도 역시 희미하게나마 독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되어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독에 고통받았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돌로레스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붉은 죽음!’
과거 비키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빈민가에 역병이 돌고 있다.’
그 당시의 돌로레스는 비키르를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 비키르가 가져온 사안이 워낙 심각해 보였는지라 결국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때 처음으로 붉은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역병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붉은 죽음을 미리 다루어 봤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는구나.’
돌로레스는 이 역병을 직접 정화해 본 적이 있어서 잘 안다.
붉은 죽음이란 극독암가 리바이어던에서 만든 극독에 의한 전염병.
심지어 창왕 세르반테스를 중독시킨 이 독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개량된 버전으로 보였다.
‘훨씬 더 지독하고 까다롭게 변했어. 창왕께서도 어찌하지 못하셨을 정도라니.’
시간이 많이 지나 희미해진 독기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돌로레스는 세르반테스에게서 느껴지는 이 독기의 느낌을 잘 기억해 두었다.
한편. 튜더는 이를 갈았다.
“……극독암가 리바이어던!”
아비를 중독시킨 원수들의 이름이다.
붉은 죽음이라는 증오스러운 독과 역병을 만들어 낸 흉수들이다.
이윽고, 튜더의 시선이 세르반테스의 복부에 꽂힌 창으로 향했다.
돈키호테가의 가주를 상징하는 창 ‘궁니르’.
섬전과도 같은 빠르기와 해일과도 같은 묵직함을 자랑하던 세르반테스의 창술은 일반적인 창이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소문난 명장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 낸 온갖 창들이 모조리 부러져 나가는 동안 오로지 이 궁니르만이 세르반테스의 창술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견고했다.
무겁기는 하지만 마나 전도율이 높고 아무리 강한 충격에도 잔상처 하나 나지 않기에 날을 갈 필요조차 없다는 신물.
튜더는 피눈물을 흘리며 궁니르의 창대를 잡았다.
“제가 반드시 파사몬테를 죽여 아버님의 복수를 하겠습니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자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츠츠츠츠……
궁니르가 미약하게나마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천천히 세르반테스의 몸에서 뽑혀 나왔다.
마치 세르반테스가 스스로 손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텅-
자석이 제짝을 찾아 붙듯, 궁니르가 튜더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왔다.
튜더는 궁니르를 쥐는 순간 그 무게 때문에 앞으로 넘어질 뻔했으나 이내 그것을 꽉 쥐고 버텨 냈다.
세르반테스조차도 두 손으로 다뤘던 궁니르를 한 손으로 잡고 있으니 그 무게가 상당할 텐데도 튜더는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츠츠츠츠츠츠…… 풀썩-
수없이 많은 벌레들에게 뜯어 먹혀 가면서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세르반테스의 육신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검고 붉은 재로 변해 풀썩 주저앉은 그의 잔해에서는 전과 같은 악취는 전혀 나지 않았다.
다만 생전에 즐겨 피우던 담배의 알싸한 향만이 느껴질 뿐.
바로 그 순간.
짝- 짝- 짝- 짝-
벽과 벽이 만나는 곳의 코너, 어둠에 잠겨 있던 안쪽의 구석에서 누군가가 박수 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
지금껏 방 안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밤을 걷는 자들 6인은 퍼뜩 자세를 갖춘다.
이윽고, 어슴푸레한 빛에 불청객의 얼굴이 드러났다.
백면(白面),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진 장신의 남성.
“드디어 뽑혔구나. 궁니르.”
돈키호테 라만챠 파사몬테.
아니 네 번째 십상시 ‘키메리에스’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