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어셔가의 몰락 (4)
“푸하!”
튜더와 비앙카가 뭍으로 기어 나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대기. 불어오는 바람이 칼처럼 매섭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 죽음의 악령들이 넘실거리는 늪지대 위로 어셔가의 저택이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잡아.”
“……응.”
비앙카가 뻗은 손을 튜더가 잡았다.
둘은 서로 손을 잡은 채 산길을 내달렸다.
푸드득-
등 뒤에서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가 불타고 남은 척추뼈처럼 앙상하게 돋아난 고사목들 사이를 튜더와 비앙카는 정신없이 달렸다.
뾰족한 나뭇가지와 가시 끝에 긁혀 얼굴과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났지만 그런 것을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늪지대 위를 떠도는 인과 유황불, 물안개와 함께 춤추는 붉은 죽음.
튜더와 비앙카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성녀의 가호 하나에 의지한 채 어둠 속을 죽어라고 내달렸다.
푸드득-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조금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때.
…쿵!
튜더가 달리다 말고 별안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비앙카가 깜짝 놀라며 튜더를 부축한다.
“튜더! 괜찮아?”
“……으음.”
비앙카의 화살이 훑고 지나간 옆구리에 붉은 기운이 계속해서 번지고 있었다.
아무리 스쳤다고는 해도 꽤나 중상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비앙카는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업혀.”
“…….”
하지만 튜더는 고개를 저었다.
“악마가 언제 쫓아올지 몰라. 비키르가 산등성이를 넘기 전까지는 절대 방심하지 말랬잖아.”
“지금 내가 방심하고 있는 걸로 보여?”
“어. 그렇게 보여.”
튜더는 조용히 비앙카를 밀어냈다.
“먼저 가. 나는 조금만 쉬었다가 뒤따라갈게.”
“지랄하지 말고.”
튜더가 밀어낸 거리를 비앙카가 다시 좁혀 온다.
그녀는 튜더의 멱살을 잡아챈 채 말했다.
“너 지금 이러는 거 하나도 안 멋있는 거 알지?”
“멋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너는 아직도 날 모르겠냐?”
“그러는 넌, 날 알고?”
“…….”
튜더와 비앙카의 시선이 한동안 마주친 채 그대로 있었다.
튜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가문 내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날 네가 구해 줬지. 너 역시 목숨을 걸었어.”
“…….”
“이제는 내 차례야. 나는 어차피 더 이상 걷기는 글렀어. 마지막으로 널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줘.”
출혈과 저체온증으로 꺼져 가던 튜더의 눈에 불꽃이 피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을 직감한 존재만이 뿜어낼 수 있는 최후의 빛이었다.
……그러나.
“개소리할 체력 있으면 걷기나 해라.”
비앙카의 눈빛은 튜더의 것을 훨씬 더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너를 구한 것은 나지만 나를 구한 것이 너이기도 해.”
“…….”
“네가 살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 줄 알아 내가? 폐가 터져라 뛰고 달려온 곳의 끝에서 네가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을 봤을 때…… 그때 내가 얼마나 안도하고 또 감사했는 줄 알아?”
비앙카는 튜더의 멱살을 말아 쥐고 바짝 끌어당겼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러니까 살아. 어떻게든.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도 살라고. 내가 죽고 나면 그때는 뒤지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고.”
“…….”
튜더는 비앙카의 협박 아닌 협박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둘은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나는 진작에 모두 써 버렸고 몸에는 저택의 함정을 돌파하며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하다.
흠뻑 젖은 몸에서는 계속해서 체온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푸드득-
등 뒤에서 또다시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정말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비앙카.”
창대에 의지해 겨우 걷던 튜더가 꺼져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앙카 역시도 고개를 든다.
“고마워.”
“……불길하게 뭔 짓이야. 이런 상황에서 인사라니.”
“그냥.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
“아 진짜!”
비앙카가 고개를 홱 돌리는 순간.
쿵!
튜더가 바닥에 쓰러졌다.
“…….”
비앙카는 그런 튜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튜더의 옆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그래. 잘했어. 이 정도면 충분히 대단했지.”
쓰러진 튜더에게서는 대답이 없다.
그러자 그런 튜더를 바라보는 비앙카의 두 눈에 비로소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당하고 오연했던 표정은 금세 무너지고 평범한 제 나이대 여인의 모습을 하게 된 비앙카.
그녀는 숨이 잦아들고 있는 튜더를 꽉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결국 약속했던 산등성이는 넘지 못했지만 악마를 유인해 내고 검은 폭죽을 터트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애초에 미끼로 쓰인 둘의 생존확률을 염두에 두고 짠 계획이 아니었으니만큼 각오했던 상황이었다.
“고마워. 함께해 줘서.”
그녀는 튜더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푸드득-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의문의 소리.
비앙카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남은 힘은 없지만 최후의 기력까지 긁어모아 저항할 심산이었다.
“너한테 몸을 뺏기느니 죽겠다!”
그녀는 튜더의 앞에 버티고 선 채 활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짙은 어둠 저 건너편으로 붉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알이 보인다.
으스스한 붉은빛을 뿌리는 그것은 마치 괴기 전설 속에 나오는 죽음의 개가 현신한 것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펄럭-
그런 비앙카의 앞으로 등장한 이는 악마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였다.
“아직 팔팔해 보이는군. 다행이야.”
비키르. 밤의 사냥개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앙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키르? 여, 여기는 어떻게? 약속 장소는 산등성이 너머잖아?”
“마중 나왔다. 뭐, 약간 위험을 감수하긴 했지.”
말을 마친 비키르는 손을 들어 올렸다.
웨어울프, 구울, 굵은등갑 지네, 산거북, 그리핀 등등…… 그 외에도 몇 마리인가의 마물이 목이 잘린 채 피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비앙카는 그제야 자신과 튜더가 어떠한 마물의 습격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지금껏 비키르가 묵묵히 도주로를 청소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계획을 세울 당시, 말로는 두 사람을 버리는 패라 했지만 사실 비키르는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신경 써 주고 있었던 것이다.
“……비키르.”
비앙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으나 비키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한편.
비키르는 고개를 돌려 어셔가의 저택 위로 피어오르는 검은 폭죽의 궤적을 돌아보았다.
저 폭죽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로드릭 어셔는 죽었다. 혹은 죽는 것만도 못한 처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비앙카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버님은 살아 계셔. 하지만 저택 부지 전체를 잠식하고 있는 붉은 죽음의 독기 때문에…….”
“상황은 얼추 알겠다. 이제부터는 말할 체력도 아껴라.”
이윽고, 비키르는 쓰러진 튜더에게로 다가갔다.
맥을 짚어본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다. 포션 좀 먹고 신성력 찜질 좀 받으면 금방 일어날 거야.”
“그,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산등성이 너머로 가야…….”
“네가 가만히만 있는다면 가능하지.”
“응? 그게 무슨……?”
비앙카가 미처 반문할 겨를도 없었다.
확!
비키르는 그 자리에서 튜더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 옆구리에는 비앙카를 끼운 채 비탈길 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어어어어?”
비앙카는 당황했으나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비키르의 힘과 속도는 엄청난 것이어서 튜더와 비앙카를 짊어지고도 눈 깜짝할 사이에 가파른 암벽 위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마치 새가 활강하는 듯한 속도였다.
‘……다행이로군.’
비키르 역시 현 상황에 나름대로 안도하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 튜더가 죽는 곳, 그리고 비앙카의 정신이 이상해지는 곳이 바로 이 장소였다.
어셔가 수복 작전.
원래대로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중에 벌어져야 하는 일이지만 장소만큼은 이곳이 확실했다.
어셔가를 수복하기 전, 튜더는 악마의 세뇌에 당한 비앙카를 막으려다가 큰 부상을 입게 되고 그 탓에 악마군단의 옥잠화를 뚫지 못한 채 홀로 남아 아군을 피신시킨 뒤 장렬하게 전사한다.
비앙카는 결국 끝끝내 가문을 수복하지 못한 데다가 자신이 가장 힘들 때 함께해 줬던, 그리고 평생의 소꿉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튜더를 자신의 손으로 해쳤다는 죄책감에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운명은 바뀌었다.
튜더는 살아남았고 비앙카 역시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 비앙카가 매들라인의 세뇌에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러브굿에게 감사해야겠군.”
비키르는 비앙카의 머리카락에 꽂혀 있던 브로치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분홍색 하트 모양 브로치가 붙어 있는 헤어핀.
일명 ‘사랑의 방어막’.
이것은 과거 비키르가 대학리그에 참가했을 때 얻었던 아티팩트였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비키르는 대학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상으로 데카라비아를 얻었었다.
그 당시 비키르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메를리니 러브굿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녀가 상품으로 수여받은 것이 바로 이 ‘사랑의 방어막’이라는 아티팩트였다.
‘제가 얻은 아티팩트는 ‘사랑의 방어막’입니다! 하트 모양의 브로치가 달린 헤어핀인데요! 착용하고 있으면 그 어떠한 종류의 강력한 세뇌나 정신계 마법이라고 해도 한 번은 막아 준다고 하네요! 단 진정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작동한다고 합니다!’
이 사랑의 방어막이라는 아티팩트의 효과는 그 어떠한 강력한 세뇌라도 한번은 막아 주는 것.
단 이 아티팩트가 발동하기 위해서는 옆에 진정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
‘향수, 스킨 로션, 구두, 벨트, 모자, 선글라스, 셔츠, 가방, 만년필, 넥타이, 지갑, 운동화, 헤어핀…… 세상에. 대학리그에서 상품으로 걸었던 아티팩트도 끼어 있네. 거기다가 이건 또 뭐야? 마차의 열쇠잖아?’
과거 러브굿은 자신이 받은 이 아티팩트를 팬심의 의미로 비키르에게 우편으로 보냈던 적이 있었고 비키르는 이것을 잘 간수하고 있다가 어셔가의 저택에 잠입하기 전 비앙카에게 건넸던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가라.’
비앙카에게는 헤어핀을, 튜더에게는 붉은 폭죽과 검은 폭죽을.
만약을 대비한 비키르의 준비 덕에 튜더와 비앙카는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 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얼굴 덕을 본 건가.”
바닥에 고인 웅덩이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던 비키르는 고개를 돌렸다.
꼬옥-
기절한 튜더와 그런 튜더를 바라보는 비앙카의 두 손이 꽉 맞물려 있는 것이 보였다.
* * *
이윽고.
비키르는 산등성이에 있던 임시 캠프를 찾아냈고 낙엽 수북이 덮인 구덩이 속에서 미리 배치해 두었던 포션을 꺼내 튜더에게 먹였다.
“……헉? 나 왜 아직 살아 있어?”
튜더가 맹한 소리를 하며 깨어나자 비앙카가 왈칵 울음을 터트린다.
바로 그때.
푸드득-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저 멀리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산등성이 위로 올라간 비키르는 어셔가의 저택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섰다.
아니나 다를까.
[……쫓아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독이 바짝 오른 매들라인의 목소리와 어셔가의 기사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눈매가 매서워지는 튜더와 비앙카에게.
“준비해라.”
비키르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싹 다 되갚아 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