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55
455화 수원지대 침투작전 (2)
“리바이어던 가문이다!”
“독인들이 몰려옵니다!”
“숫자가 엄청납니다!”
성곽의 보초병들이 내지르는 외침은 다 비슷비슷했다.
지평선이 검붉게 물들었다.
마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장막처럼 지면을 뒤덮어 오는 독인들의 군대.
붉은 죽음의 기운이 악령처럼 넘실거리는 가운데 토치카 요새 섬멸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캬아아아아아악-
1차 성벽을 향해 미친 듯이 몰려드는 독인들.
그것들은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흉폭성과 저돌성을 보이며 맨몸으로 성벽에 달라붙는다.
…퍼억!
새가 벽에 부딪쳐 죽듯, 제일 처음에 달려든 독인이 토치카 요새의 단단한 성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밟고 또 다른 독인이 성벽에 머리를 부딪친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켜켜이 쌓여 가는 독인들의 시체는 점차 충차의 형상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독인들을 이끌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전신을 가리고 있는 시커먼 후드와 망토, 손에 든 대낫은 날뿐만 아니라 자루마저 실로 기괴하게 구부러져 있다.
“……저 녀석은 뭐야?”
“뭔 추수라도 하러 왔나?”
경비병들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는 순간.
…번쩍!
괴인이 손에 든 낫을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참격과 함께 무시무시한 독기가 날아들어 성벽을 때렸다.
콰쾅!
성벽이 통째로 뒤흔들릴 정도로 묵직한 일격이었다.
추수자(秋收者)는 정말 적들의 목숨이라도 추수하러 온 것처럼 대낫을 휘둘렀다.
그가 한번 날뛸 때마다 주변으로 강력한 독기가 물씬 피어났고 이에 따라 주변에 있는 독인들이 더욱 더 기세등등해지고 있었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가 한 자리에 섰다.
“저 시커먼 녀석이 선봉대의 대장인가?”
“실력이 대단한 놈 같다. 낫 휘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군.”
“지휘관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병사들은 ‘추수자’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진짜 우리들 목숨이라도 추수하려고 온 것 같네.”
비앙카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안드레알푸스의 최후를 장식했던 비앙카의 화살이 추수자를 향해 겨누어졌다.
펑!
파공성을 날리며 쏘아져 나가는 화살.
“……!”
추수자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딱히 대낫을 들어 올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차차차차착!
수없이 많은 독인들이 마치 인간 방패처럼 뭉쳐 비앙카의 화살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비앙카가 그 뒤로 몇 번을 더 저격했지만 그녀의 화살은 추수자에게 닿기 전에 모두 독인 방패에 의해 막혔다.
“쳇. 엄청 싸고도네. 무슨 도련님이야?”
비앙카는 화살을 피해 뒤로 물러나는 추수자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독인들은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었다.
붉은 죽음의 파도.
독인들이 내뿜는 독기와 죽으면서 터트리는 피분수는 멀쩡한 사람도 감염시켜 독인으로 만든다.
만약 토치카 요새의 중심부에서 광역 신성방어막을 쳐 유지하고 있는 돌로레스의 정화력이 아니었더라면 이 철옹성도 흔들리고 말았을 것이다.
촤악-
추수자가 손을 옆으로 뻗자 독인들의 이동경로가 바뀌었다.
독인들을 이끌고 계속해서 성벽의 약한 틈을 공격하는 추수자.
놈은 일신의 전투력도 강했지만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듯 보였다.
“으윽, 뭐 이런 괴물 같은 것들이…….”
“군략에 밝은 지휘관과 맹목적으로 그것을 따르는 병사들의 조합이라. 괜히 내전지대를 휩쓸고 다녔던 게 아니군.”
“거기에 독까지 있으니 무적이라 할 만하네.”
“제기랄! 병사들이 겁먹고 있어!”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이를 악물고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점점 분위기는 리바이어던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물러서지 마라 머저리들아!”
위쪽의 성벽에서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적아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순간 중앙 성벽을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몸집의 노인 한 명이 곤봉을 든 채 우뚝 서 있었다.
오르카. ‘오르카 몽트뢰유쉬르메르 쟈베르’. 누벨바그의 교도소장.
방어와 수성의 달인이라는 그가 성벽 아래에서 전장 전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네놈들이 물러서면 뒤에 있는 이들이 죄다 죽는다! 여기서 싸우면 잃는 것은 자신의 목숨뿐! 네놈들 혼자만 뒈지는 것과 네놈들의 가족들까지 싹 다 뒈지는 것 중에 뭐가 더 남는 장사냐!”
오르카의 호통을 들은 병사들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분위기가 기울어지는 것이 멈추었다.
노련한 백전노장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장창수와 뇌목수들은 앞으로 나와라.”
오르카의 명령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독인들을 향해 긴 창과 긴 나무를 뻗어 독기가 닿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에서부터 밀어냈다.
또한 난민들이 밤새 만든 털방석과 대나무 주렴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독인들이 내뿜는 각혈을 막아 주었다.
오르카는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독안개와 함께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닥에 구멍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청각과 촉각에 예민한 이들을 뽑아 그 안으로 들여보내라. 적이 땅굴을 파고 들어오는지를 알 수 있다.”
오르카는 수성을 철저하게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성타마다 다섯 명씩 배치하되 5타마다 타장 한 명을 정하고 25타에 성장(城將) 한 명을 세워라. 50타를 관장하는 치총(雉總)들은 해당 방위의 성장들을 통솔하여 각자 맡은 구역만을 방어해라.”
미리 배치해 둔 병력들이 오르카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오르카는 실시간으로 꿈틀거리는 독인들의 진영을 살피며 계속해서 지령을 내렸다.
“정포를 담당하는 화부들은 숯불이 꺼지지 않게끔 관리하며 10분마다 북을 쳐라. 병사들이 다음 북소리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성 내부에서 불량배들이 보급을 방해하지 않도록 민병대는 각별히 신경 쓸 것이며 특히나 기름과 화약 보급에 차질이 없도록 해라.”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오르카가 슬슬 전면에 나서자 전황 역시도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오래 전의 전쟁영웅이었던 오르카의 등장에 신뢰를 얻은 병사들.
토치카 수성병력들의 체계가 잡히자 독인들의 공세 역시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잘하는군.”
반대편 성벽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비키르는 저 멀리 오르카의 지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하기 전에도 오르카는 방어전과 수성전의 대가였다.
전쟁의 후반부에 오르카가 참전했기에 그나마 인류는 존속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전쟁이 심화 될 동안 심해의 밑바닥에서 누벨바그를 지키고 있었고 또 너무 막바지에 참전했기에 전쟁 초기와 중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비키르에 의해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오르카는 전쟁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인류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본격적으로!
“큰일 났습니다! 리바이어던가에서 방패차와 유개차를 끌고 옵니다! 도부수 부대도 접근하고 있습니다!”
독인 부대는 화살과 돌멩이를 막기 위한 방패와 도성을 위한 긴 사다리들을 나르고 있었다.
또한 거대한 도끼를 든 거구의 독인들이 성벽 밑부분의 돌과 축대를 깨부수기 위해 육탄전마저 시도해 온다.
그러나 오르카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함없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민병대에게 보급 받은 기름을 성벽의 경사로에 붓고 화부들은 그 위에 숯불을 던져라. 장창과 뇌목은 치우고 그 대신 사슬에 화약과 쇳조각이 담긴 자루를 묶어 성벽 위로 굴려 버려라.”
이윽고, 약간 비스듬하게 경사진 토치카 요새의 성벽 위로 기름들이 흘러내린다.
암벽등반을 하는 것처럼 성벽을 타던 독인들은 기름범벅이 되어 허우적거린 끝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미끌거리는 벽은 제아무리 강력한 육체를 지닌 독인들이라 해도 오를 수 없을 정도로 험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화약과 쇳조각, 숯불들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기름과 불길, 화약이 만나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함께 뿌려진 쇳조각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퍼져 나가며 독인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는 소사체와 폭사체들 중에 사지육신이 멀쩡한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을 본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는 입을 딱 벌리며 감탄했다.
“따, 딱히 기발하거나 특별한 전략은 없으신 것 같은데 그래도 굉장하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그대로다. 엄청나게 정석적이고 모범적인 수성전이야.”
“사실 정공법이라는 게 엄청 어렵지. 자기 부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악해야 보급과 병력에 차질이 없게 되니까.”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건가. 굉장하네…… 이것이 연륜과 관록인가 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실히 독인들의 총공세는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넘실대는 붉은 악령들이 조금씩 조금씩 구멍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에 용기백배한 병사들은 성벽 위를 쳐다보며 외쳤다.
“우와아아! 독인들이 주춤한다! 역시 구국의 전쟁영웅이셔!”
“거의 다 막아냈어! 오르카 소장님 만세! 만세!”
“쟈베르 님! 이제 뭘 하면 되겠습니까!?”
“어서 다음 명령을!”
군중은 오르카를 향해 열화와 같은 성화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르카는 담배연기를 뻑뻑 뿜어내며 짜증스럽다는 듯 표정만 구길 뿐이다.
“그 다음은 내가 알 게 뭐냐?”
……?
모든 이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 구국의 전쟁영웅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오르카는 서서히 잦아들어 가는 적군의 총공세를 보며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나는 방어만 할 뿐. 공격은 다른 놈 관할이다.”
말을 마친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 담배를 질겅이며 옆을 향해 턱짓한다.
모두의 시선은 오르카가 지목한 옆쪽 성벽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 있는 노인 한 명이 보인다.
“푸스스스스…….”
사드. 앙가주망 세드릭 사드 드 사드 전(前) 후작.
그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전방의 독인 부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