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68
468화 반격의 서막 (4)
“……기적은 믿고 행하는 이에게 반드시 일어나 응하리라.”
돌로레스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단 룬 교단의 교인이 아니더라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말할 만했다.
거대한 거미들의 무리, 그리고 그중 단연코 가장 거대한 거미 한 마리.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던가, 옛날에는 먼지덩어리처럼 작았던 새끼마담은 어느덧 거대한 몸집을 가진 어머니가 되었다.
자신과 똑 닮은 작은(?) 아이들을 산하에 바글바글 거느린 거대한 어미가!
“……믿을 수가 없군.”
“마담 여덟다리보다 훨씬 더 거대하잖나.”
어미를 본 적이 있는 까뮤와 아이옌마저도 놀람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새끼마담은 거대했다.
산 하나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콸콸콸콸콸콸콸콸……
붉은 죽음에 오염된 물줄기를 거미들의 벽이 막아선다.
유계의 거미 마물.
독을 주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것들에게 있어서 붉은 죽음은 오랜만에 만나는 기름진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악마들조차도 맞서기를 꺼리는 거미들의 힘과 덩치, 그리고 식탐은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던 붉은 죽음의 물결마저 막아 세웠다.
꿀꺽꿀꺽꿀꺽꿀꺽꿀꺽-
거미들이 입을 댄 물줄기들은 다시 맑고 투명해진다.
붉은 죽음의 기운들은 수많은 거미들에 의해 모조리 제거되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신관들이, 다른 한 쪽에서는 거미들이 붉은 죽음을 막아선다.
플러버 역시도 독인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덩치를 불려 가는 동시에 더욱 더 많은 양의 붉은 죽음을 흡입하고 있었다.
까뮤와 아이옌이 옆에 있던 돌로레스의 어깨에 팔을 걸쳐 놓으며 말했다.
“야, 성수자판기. 아까 내 남친이랑 꽁냥꽁냥 분위기 좋던데. 이제 일 줄어서 아쉬워 어쩌냐?”
“아, 아쉽다뇨!? 그리고 누가 자판기에요! 신성모독입니다! 그, 그리고 애초에 비키르 님이 왜 당신 남친이에요?”
“오- 나도 옛날에 이 성녀즙 덕 좀 봤었지. 으하하하-”
“즈, 즙!?”
뒤에서는 싱클레어가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고 키르코는 뚱한 표정으로 혼자 서 있을 뿐이다.
그때. 모든 이들의 앞으로 새끼마담이 고개를 숙였다.
쿠-구구구구구……
비키르가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얼굴을 내리는 새끼마담.
관절을 감싸고 있는 갑각과 갑각이 마찰하는 소리가 지면을 통해 지진처럼 전해져 오고 있었다.
못 본 사이에 완연한 성체가 된 모습이 다소 낯설다.
비키르 역시 약간은 경계하는 태도로 새끼마담을 마주 보았다.
그러나.
빵싯-
비키르의 앞으로 고개를 숙인 새끼마담은 활짝 웃었다.
옛날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기숙사 시절, 비키르가 수업을 들으러 나가 있을 동안 방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가 비키르가 방문을 열고 돌아오면 늘 짓곤 하던 그런 표정이었다.
[핵핵핵-]새끼마담은 비키르를 향해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자신의 커진 덩치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한 격한 포옹.
“……음. 그, 그래. 많이 컸구나. 정말로 많이.”
[끼잉- 끙-]비키르가 쓰다듬어 주자 옛날처럼 꽁무니를 흔들며 품속을 파고드는 모습.
덩치가 커졌어도 확실히 애는 애다.
그때, 새끼마담의 머리 위로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사냥장님!”
“형제여! 도우러 왔다!”
이 목소리를 어찌 잊겠나.
비키르가 고개를 든 곳에는 수해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면면이 보인다.
나락수에서 만났던 아휼, 그리고 그동안 생사를 모르고 있었던 아훈이 활을 든 채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발락의 전사들이 모두 비키르를 향해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크르릉!]막 손을 흔들려는 비키르의 뒤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옌의 환수가 된 바키라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그러자 발락의 전사들이 모인 곳에서도 응답하는 포효 소리가 마주 들려왔다.
바키라와 똑 닮은 늑대 하나가 머리를 내밀었다.
아휼의 파트너가 된 비올라. 바키라의 딸.
늑대 부녀 또한 오랜만의 상봉을 나눈다.
이윽고.
퍼펑! 퍽! 퍼-억!
발락의 전사들이 선보이는 무시무시한 궁술은 독인들을 쭉쭉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아휼의 활약은 거의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나락수에서 얻은 스탯을 기반으로 한 그녀는 어지간한 발락의 원로급 전사들의 힘마저 압도하고 있었다.
“많이 늘었구나, 아휼.”
“……사냥장님!
아이옌은 그런 아휼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는다.
아휼은 아이옌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이 되었다.
한편, 비키르는 옆으로 착지한 아훈에게 물었다.
“족장님은?”
“말 모양을 한 악마에게 변을 당하셨다. 아도나이 님과의 전투에서 입으셨던 후유증 때문이었지. 그래도 놈의 뿔 끝을 부러트리셨으니…….”
아훈의 말을 들은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나락수에서 나온 직후 암두시아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퀼라의 분전이 전에 있었던 덕분일지도 모른다.
암두시아스 역시도 아퀼라로 인한 후유증을 끝끝내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비키르의 어깨를 탁 치는 손길이 있었다.
키르코.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지금이 기회야. 역습 타이밍이다.”
비키르 역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윽고, 모든 증원군이 산봉우리를 향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바이어던가의 가주를 잡아라!”
바스커빌가, 모르그가, 쿼바디스가, 부르주아가, 토치카 지원군, 그리고 발락과 거미들까지.
플라우로스는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표적으로 전락해 버렸다.
[……허.]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하는 플라우로스.
하지만 전황은 확실히 기울었다.
비장의 무기였던 독 방출마저 쿼바디스가의 신관들과 수해의 거미들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으니 악마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상당히 난감하게 된 셈이다.
더군다나 바스커빌과 모르그의 전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독인들을 찢어발기고 있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전투가 삽시간에 끝나 버릴 위험도 있었다.
플라우로스는 비키르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인정한다. 내가 네놈들의 세계를 너무 쉽게 봤던 모양이군.]악마의 입에서 패배 선언이 나왔다.
하지만 적의 목숨을 확실히 끊어 놓지 않으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키르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악마를 상대로는 더더욱 그렇다.
쾅!
비키르가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것과 동시에 플라우로스 역시 몸을 뒤로 물렸다.
‘……여기서 잡아야 한다.’
플라우로스는 강하고 교활한 존재.
모든 악마들이 그렇다지만 그 중에서도 플라우로스는 그 위험도가 훨씬 더 높은 존재였다.
비키르는 필살의 각오를 품은 채 산봉우리를 내달렸다.
독인들이 가로막으려 들었지만 비키르의 뒤를 따르고 있는 5인의 엄호가 장애물들을 날려 버리며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까뮤, 아이옌, 돌로레스, 싱클레어, 키르코.
작렬하는 불길과 쇠꼬챙이, 강력한 화살비, 신성한 가호, 황금의 거인, 흡혈하는 뱀은 비키르로부터 플라우로스를 지키려 하는 독인들의 벽을 압도적인 힘으로 깨부숴 버렸다.
그리고 비키르는 무너져 내리는 독인들의 벽을 뚫고 플라우로스의 뒤를 잡았다.
“악마는.”
검은 태양. 여덟 개의 사나운 이빨이 드러난다.
“죽인다.”
사냥개가 진득한 살의를 드리우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오, 나의 아들!]플라우로스가 별안간 얼굴을 뒤집었다.
표범가죽을 젖히고 리바이어던가의 가주 홉스의 얼굴 가죽을 드러낸 플라우로스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동시에.
…까앙!
비키르는 바알제붑을 들어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묵직한 대낫을 막아내야 했다.
펄럭-
수많은 난전을 거치며 누더기가 된 검은 장포가 휘날린다.
추수자. 그가 자욱한 독안개를 내뿜으며 비키르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콰기기긱!
칼과 대낫이 맞부딪치며 무수한 불똥을 빚어낸다.
하지만 추수자는 비키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빨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검격이 어지러워질수록 추수자는 비키르에게 사정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어지간한 독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말을 마친 비키르는 칼로 대낫을 걷어 냄과 동시에 추수자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날렸다.
쩌-억!
추수자의 가슴팍에서 빗장뼈들이 깨져 열리는 소리가 묵직하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플라우로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금만 버텨다오 아들아! 곧 이동마법진이 발동된단다.]그 대사는 추수자를 격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비키르를 조롱하기 위해서 내뱉어진 것이었다.
플라우로스는 다시 홉스의 얼굴을 싹 걷어 낸 채 비키르를 향해 조소를 지어 보였다.
[자, 이제 ‘그것을’ 쓰거라.]플라우로스의 명령을 들은 추수자는 바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한 움큼 꺼내 들었다.
검은 구체, 다닥다닥 돋아나 있는 미늘 가시.
비키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락수의 씨앗!”
[그렇다! 심심할 만하면 나오지?]플라우로스가 대신 대답했다.
주위로 시뻘건 독무가 다시금 몰려오고 있었다.
공간이 왜곡되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락수의 씨앗 때문만은 아니리라.
“공간이동 마법이다!”
“상당히 고클래스야, 형아!”
뒤에서 까뮤와 싱클레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키르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더 높였지만 눈앞으로 날아드는 수많은 나락수의 씨앗들을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을 듯했다.
저것에 맞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또 환몽세계 속으로 끌려가기라도 하면 답이 없다.’
이런 급박한 전시상황에 나락수 안으로 한번 더 끌려들어 가게 된다면 정말로 큰일이다.
비키르는 어쩔 수 없이 정면돌파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비키르! 가!”
비키르의 앞길을 열어 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퍼퍼퍽!
화산탄처럼 날아드는 나락수의 씨앗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비키르의 앞길을 열어 주는 존재.
생각치도 못한 도움에 비키르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피기.
그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