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70
470화 반격의 서막 (6)
리바이어던가의 본성.
…번쩍!
지하실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어마어마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동 마법진이 그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단 한 번에 한해 초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이 마법진은 설치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플라우로스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빛무리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그의 왼쪽 팔과 가슴팍은 통째로 뜯겨져 나가고 없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악마사냥꾼 놈. 마지막까지 끈질지게 물고 늘어지긴……]위기의 순간 심장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위험할 뻔했다.
천려일실(千慮一失). 마지막에 안심하는 순간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악마는 죽인다.’
악마사냥꾼이 마지막으로 으르렁대던 것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플라우로스는 몸을 한번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이 반응한 것에 스스로 놀라야만 했다.
‘……내가 떨고 있는 건가?’
무의식에 깊게 각인된 공포.
플라우로스는 머리를 흔들며 애써 사념을 털어 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냥 마력을 너무 소모한 결과다. 피곤한 게야.’
하지만 내심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마지막에는 한낱 인간에게 쫓겨 달아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플라우로스는 석실 한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핏발 선 눈을 번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모든 독인병들을 토치카로 보낸다. 이번에는 수원지대 전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야.]수원지대에서 물길을 끌어왔다고 해도 기껏해야 사흘 정도의 목숨이 연장되었을 뿐.
기본적으로 식수가 부족한 토치카는 농성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쪽의 독은 무한하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지.]즉, 토치카에 틀어박힌 악마사냥꾼들은 여전히 파리목숨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가 완전히 고립시켜 버리면 그만이다.
이것은 곧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수원지대 공방전에서 뜯겨져 나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 말이다.
‘토치카에 있는 단 한 마리의 인간도 살려 두지 않으리라.’
플라우로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독창 우로보로스를 바라보았다.
나락수로 만든 자루에서 기어 나온 두 마리의 뱀은 또다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며 독안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무한대의 독. 무한대의 독인. 지금의 리바이어던가를 막을 수 있는 가문이나 세력은 전혀 없다.
그것은 나머지 다른 가문들의 연합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곧 1황태자가 황제가 될 것이다. 내전에서도, 종족전쟁에서도 나는 승리자가 된다. 그리고 그때가 곧 대업을 이룰 적기이겠지.’
플라우로스가 앞으로의 계획을 주절거리고 있을 때.
마법진 속에 쓰러져 있던 검은 로브의 남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일으켰다.
추수자. 그를 보는 플라우로스는 홉스의 얼굴을 한 채 미소 지었다.
[잘했다, 나의 후계자여. 덕분에 황태자님이 부탁하신 것을 들어줄 수 있었다. 마지막에 나락수의 씨앗을 뿌린 것이 더없이 적절한 판단이었어.]“…….”
추수자는 가만히 선 채 대답이 없다.
플라우로스는 그것을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가서 쉬어라. 한동안은 독인병을 대량생산하느라 바쁠 테니 체력이 회복되는 대로 생산현장으로 복귀하도록.]“…….”
[그리고 독인병 군단이 완성되는 즉시 바로 토치카로 향한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끝을 낼 때야. 이제 곧 우리 가문이 천하를 쥐게 될 것이다.]플라우로스의 말에 추수자는 그저 고개를 깊게 숙여 보일 뿐이었다.
* * *
추수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후드를 벗었다.
창백한 피부, 짙은 다크서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청년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그르누이.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극독암가 리바이어던의 삼공자 신분으로 제국 최고의 대학인 콜로세오 아카데미에 입학, 열병기부 차석으로 조기졸업이라는 영예까지 거머쥔 이후 가문으로 복귀, 리바이어던가 본성의 핵심 전력이자 최강의 독인병 변이체 군단으로 손꼽히는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의 대장 직위까지 올라간 그의 인생은 분명 탄탄대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높은 직위, 가문 내 모든 이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위치, 콧대 높고 오만하던 형들보다도 훨씬 더 성공한 인생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에 성공했으나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평소 괴팍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만은 늘 자애로웠던 삼촌이 약물 실험에 참여한 뒤부터 서서히 정신이 이상해져가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면 나락수 속에서 동창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독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묵묵히 내려다보아야만 하는 위치에 올랐을 때?
이런 저런 생각들의 연쇄 속에서 문득 그르누이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린 친구였으니까……’
피기. 별로 특별한 것도 없었던 흐릿한 얼굴, 그러나 왜인지 기억에 남아 있던 동창생.
그의 마지막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오는 내내 한 번도 떨린 적 없었던 손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오래 전에 들었던 한 친구의 목소리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왜 나한테 잘해 주는 거야?’
‘……뭐, 우린 친구니까.’
그르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키르.”
그와의 재회에서 느꼈던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는 그르누이 스스로도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던 그 눈빛은 과연 예전 그대로였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떠오른다.
언제나 늘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었던 녀석.
동년배의 동급생이지만 따르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리고 늘 쫓아가고자 넘어서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닿지조차 못 했던 그런 녀석.
그런 녀석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혹한 사선들을 넘어와 지금 이곳에 서서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
언제나 늘 행동거지에 신념과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그럴 것이다.
그르누이는 낮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애써 생각을 미뤄 두었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독인병들을 양산해서 적대세력들을 쓸어버리고 1황태자를 황제로 만드는 일.
일곱 개로 쪼개져 있던 권력을 하나로 합치는 진정한 의미의 제국 통일.
달그락-
순간, 그르누이는 자신의 왼쪽 가슴팍에서 이물감을 느꼈다.
목걸이. 입술 모양의 작은 브로치가 달린.
그동안 목에 걸고 다녔지만 딱히 신경 써 본 적은 없었던 물건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것이 유난히도 그르누이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입바른 입술’.”
새내기 시절 대학리그에서 상품으로 받은 아티팩트.
사실 그때의 순위도 비키르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남들은 다 좋은 아티팩트를 얻었는데 나는 쓸모없는 것을 얻었다고 시무룩해 했었지.”
어떤 질문이든 간에 단 한 번에 한해 ‘예’ 혹은 ‘아니오’로 사실을 알려 준다는 아티팩트이다.
오래 전에 실존했던 한 현자의 입술을 잘라 만들었다는 이 아티팩트는 한 사람이 한 번의 질문만을 던질 수 있었다.
쿨타임은 약 일백 년. 사실상 그르누이만을 위한 아티팩트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그르누이는 바짝 마른 입술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이 아티팩트를 처음 얻었을 때 나누었던 동급생과의 대화가.
‘나만 이게 뭐야.’
‘왜 아주 좋은 아티팩트 같은데. 나는 가끔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심할 때가 있거든. 그럴 때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
‘……칫, 그런 회의감이 왜 드냐? 나는 항상 잘 살고 있는데! 사람이 당당해야지 말이야!’
싱클레어. 한때 동경했던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하던 말이 그르누이의 오래된 기억 속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왔다.
“……입바른 입술이라.”
그루누이는 지금껏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쭉 떠올렸다.
형들에게 치여 주목받지 못하던 열등감 가득한 삶, 가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유일한 쉼터였던 시끗 삼촌의 비극, 아카데미에서 만난 다른 가문의 천재들, 나락수 안에서 피어난 작은 우정, 본가에서의 고속 출세, 수없이 많은 독인병들을 부리는 지휘관으로의 임명, 반대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독인으로 변이시켜야 하는 업무, 그리고 전쟁…… 또 전쟁…….
그르누이는 고개를 들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검은 망토, 그리고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는 거대한 대낫.
그르누이는 손을 뻗어 망토를 두르고 대낫을 집어 들었다.
목숨 추수자. 그르누이는 고개를 돌려 어둠 너머로 펼쳐진 광경을 들여다보았다.
수많은 철창 속, 독인들이 이빨과 손톱으로 철창을 긁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때 사람이었던 존재들. 약물과 학대로 인해 이성을 잃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게끔 설계된.
그르누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왼쪽 가슴에 올려놓았다.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저들은 악, 우리는 선, 우리 리바이어던가는 최고의 가문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인류를 부흥케 하는 선지자가 되리라고. 이들은 그날을 위한 작은 희생양이며 죽은 뒤에는 신에게 구원받아 성전의 첨병에 섰던 영웅으로서 영원토록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버지의 말, 삼촌의 마지막 모습, 졸업 이후 전장에서 재회한 동기들…….
이윽고. 그르누이는 판단을 내린 듯 눈을 떴다.
세 번을 고쳐 고민한 그는 비로소 왼쪽 가슴에 올려 둔 손에 대고 물었다.
“내가 지금 내리려는 판단이 옳은 것이냐?”
그리고 이내, 그르누이의 왼쪽 가슴에서 작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달싹!
입바른 입술이 입바른 대답을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