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토치카 섬멸전 (2)
흙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일렁인다.
보리이삭을 흔드는 바람과도 같이 질주하는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들.
그리고 그 앞을 막아서는 것들은 이전 세대의 투견들이었다.
철커덕…… 절그럭…… 덜그럭……
해골과 가죽만 남은 바스커빌가의 칼잡이들이 수의를 휘날리며 걸어온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갈 때마다 녹슨 쇳조각들과 삭아 버린 이빨, 턱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차앙-
전대의 명검들이 톱날처럼 변해 버린 이빨을 드러냈다.
그에 맞서는 이자벨라, 저먼, 보스턴테리어, 그레이트데인, 쿠컬린, 메츠거훈트. 총 6인의 기사단장들 역시 각자의 애병을 뽑아 들었다.
칼을 빼 든 보스턴테리어 백작이 제일 먼저 진열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레이트데인 백작이 바로 그 다음이었다.
“으하하하하! 이빨 빠진 노견들 주제에 어디서 현역 흉내냐!”
“……이봐. 이분들은 우리 조상님들이시다.”
“그러니까! 뒈졌으면 얌전히 누워 기다리다가 제삿밥이나 받아먹으란 말이야!”
수의를 입은 바스커빌가의 망자병들과 거세게 맞부딪치는 둘.
보스턴테리어 특유의 드넓은 참격이 망자병 다수를 한꺼번에 몰아붙이고 있었다.
거칠게, 폭풍처럼 마구 몰아치는 참격은 불규칙적이고 난잡했지만 그만큼이나 파괴적이었다.
반면 그레이트데인의 참격은 가늘고 얇은 대신 밀도가 높다.
거구의 망자병 하나가 자신의 체구만 믿고 돌진해 오다가 어마어마한 무게가 실려 있는 그레이트데인의 참격에 짓눌려 그대로 반토막 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이자벨라와 저먼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굳이 내 쪽으로 와서 날뛰지 말고 저쪽으로 가지?”
“흥! 네년만 성과를 독식하려고?”
“……병력 차이가 이만큼이나 나는데 독식이 어딨나?”
평소 남녀가 바뀐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둘이다.
저먼은 라이벌 의식과 피해의식을 동시에 드러내며 이자벨라의 뒤를 죽자사자 따라잡기 시작했다.
이자벨라는 특유의 성격대로 극도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져 가며, 마치 바둑돌을 내려놓듯 검의 궤적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아우라만으로 벌써 수십 구의 망자병들이 고꾸라졌다.
저먼 역시도 그런 이자벨라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검술솜씨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지간한 독인병 수백 구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독인 망자병들이 허수아비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편, 메츠거훈트와 쿠컬린은 별동대의 대장인 비키르의 양옆을 호위라도 하듯 바짝 붙어 있었다.
“6식! 6식을 보자!”
“4식! 4식으로 승부!”
둘 다 각자의 검식에 자부심이 넘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인물들.
하지만 극의(極意)에 도달해 있는 수준이니만큼 그 정도의 장인 정신은 당연한 일이다.
휘리리릭- 콰긱!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비키르는 별수 없이 6식을 전개했다.
여섯 개의 이빨이 독인 망자병들을 사정없이 꿰뚫고 지나간다.
나락수 안에서 유수처럼 흐르는 세월에 갈고닦았던 비키르의 6식은 확실히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퍼퍼퍼퍽!
물론 4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삶에서 평생에 걸쳐 치열하게 벼려 놓았던 네 개의 이빨은 이번 생에서 그 효과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네 개의 이빨이 그냥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나와 전방에 있던 망자병들을 갈가리 물어뜯어 놓았다.
“……오오!”
“……과연!”
메츠거훈트와 쿠컬린은 비키르가 거의 동시에 토해 내는 4식과 6식의 기염을 보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그럴수록 그들의 경쟁의식에 불이 붙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콰-지지지지직!
메츠거훈트의 육식과 쿠컬린의 사식은 그야말로 고기를 으깨는 물레방아와도 같은 기세로 독인들의 저지선을 분쇄해 나갔다.
가장 접전이 치열한 최전선을 마치 무인지대처럼 돌파하고 있는 칠백작들의 뒤로 바스커빌가의 군견들이 착실히 거리를 좁혀 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의 최선두에는 비키르가 있었다.
퍼퍼퍼퍽!
비키르가 한 번 마검 바알제붑을 띄울 때면 어김없이 십수 개의 머리통들이 하늘을 수놓는다.
휘이잉-
먼 곳에서 불어오는 습한 동남풍이 비릿한 혈향을 쓸어 가고 있었다.
그때, 별동대를 이끌고 최전방을 뚫고 나가고 있는 비키르의 시야 저 멀리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
붉은 안개와 흙먼지를 헤치고 드러나는 앙상한 거체(巨體)들.
오-오오오오오……
그것은 키가 십수 미터를 넘어가는 장신의 독인병 부대였다.
껑충 큰 키, 지나치게 신장을 높이는 데 집착한 나머지 부실해진 근육과 골격, 그러나 기괴하리만치 길쭉한 팔을 쭉 뻗으면 토치카의 성벽 위에까지 닿을 정도의 피지컬.
그것들은 전신의 땀구멍으로 붉은 죽음의 안개를 뿜어내며 전선 너머로부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토치카의 높은 성벽을 공략하기 위해서 특수 제작된 개체들로 보인다.
‘……저런 것들이 성벽으로 접근하도록 내버려 두면 수성전이 골치 아파진다.’
물론 오르카 소장이 알아서 잘해 주겠지만 그래도 토치카 본성의 부담은 최소화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는 보호해야 할 난민들도 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부실한 골격 탓에 접근 속도가 느리군. 성벽에 가까워지기 전에 베어 버리는 것이 낫겠다.’
비키르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별동대! 저쪽에 있는 거구귀(巨軀鬼)들을 먼저 친다!”
“옛!”
칠백작들은 비키르의 명령에 군말 없이 칼을 거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를 따르는 칠백 기의 기사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별동대를 몰아 막 전장을 가로지르려는 비키르.
그때. 옆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스스스스-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는고? 젊음이란 부럽구만.”
고개를 돌리자 비키르의 옆쪽에 솟구친 높은 기암괴석 위에 서 있는 노인 하나가 보인다.
사드 후작. 그는 기척도 없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에는 도르듐, 수와레, 비디스엠, 플러버, 그리고 키르코 등의 누벨바그 올스타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마인화한 사디 역시도 말이다.
비키르는 다소 황당하다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조합이지? 체포라도 당하고 있는 중인가?”
“푸스스스스- 농담도. 오르카 그 늙은이에게 빌려 왔다. 역습을 가하는 데에는 소수정예가 좋거든.”
한때 자신을 감금하던 교도관들을 부리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기는 사드 후작이다.
물론 그런 사드 후작의 뒤에 있는 도르듐과 수와레의 표정은 완전히 썩어 있었다.
특히나 사드 후작이 갇혀 있던 독방을 관리하던 수와레의 표정이 꽤나 볼만한 것이었다.
사드 후작이 물었다.
“뭐 아무튼, 성벽으로 가고 있었나?”
“그래. 저런 커다란 것들이 성벽에 붙으면 골치 아파질 테니까.”
“푸스스스- 판단이 빠르군. 정확하기도 하고.”
전술의 대가인 사드 후작과 비키르의 판단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때,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사드 후작의 시선이 비키르의 뒤에 서 있는 여섯 명의 남녀를 향했다.
“호오- 어디서 이렇게 풋내 나는 살기들이 쏟아지나 했더니만. 너희들이 바스커빌가의 새 칠백작이냐?”
풋내라는 말에 여섯 남녀의 미간이 일제히 찌푸려졌다.
보스턴테리어, 그레이트데인, 이자벨라, 저먼, 메츠거훈트, 쿠컬린 모두가 사드 후작을 향해 날카로운 살기를 뿌리며 호승심을 드러냈다.
“어휴, 전장에 나오시기에는 너무 늙으신 것 아닌지요 선배님? 항렬은 우리보다는 저기 서 있는 망자병들이랑 더 가까우실 것 같은데.”
“이봐, 전대의 대선배님께 그게 무슨 결례냐. 나이도 드신 분이 뒷방에서 나오시면서 얼마나 용기를 내셨겠어.”
“제국에서도 특급 전범으로 분류하고 있는 당신과 나눌 말은 없습니다. 내전이 끝나고 나면 다시 빵에 처넣어 드리지요.”
“죄수들이 이미지 세탁하는 것 정말 역겨워. 운 좋은 줄 알라고 늙은이.”
“전대의 노괴물 사드 후작이라. 한층 더 진일보하게 된 내 육식을 테스트해 보기에 딱 좋은 상대로군.”
“……강자. 붙어 보고 싶다.”
각자 싸울 자세를 취하는 칠백작들을 본 사드 후작은 피식 웃었다.
“하룻강아지들일수록 잘 짖어 대는 법이지. 이번 세대 바스커빌가에는 딱히 인물이 없구나. 역시 케인코르소, 그 늙은이뿐인가…….”
바로 그때.
퍼퍼퍼퍼펑!
성벽 쪽에서 요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
성벽을 향해 접근 중이던 비키르와 사드 후작은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막 성가퀴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장신의 독인병들이 연달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밑에서 시커먼 폭풍이 불어와 독인병들의 발목을 절단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호- 저쪽에 꽤나 쓸 만한 놈이 있구만? 누구지?”
사드 후작이 관심을 보인다.
독인병들의 발목을 잘라 내며 성벽 하단을 지키고 있는 군대가 이내 이쪽으로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검은 바람의 최선두에 서 있는 존재가 비키르의 앞으로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
“붉은 호각 소리를 들었는데도 집결이 조금 늦어 버렸습니다. 나이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 참 세월이 야속하군요. ……허나.”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비키르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빠진 정장, 멋들어진 콧수염, 그리고 정중한 인사.
“……정말로. 정말로 잘 크셨습니다, 도련님.”
존 베리모어 집사장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