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74
474화 토치카 섬멸전 (4)
한 명이 한 개의 돌만 던져도 그 수가 부지기수이다.
토치카의 성벽 위로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힘껏 돌팔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토치카는 암반지대 위에 지어진 요새. 지천에 굴러다니는 것이 돌이다.
어마어마한 수의 돌멩이들.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피해 도망치는 것에 지친, 고된 삶과 누적된 포기에 넌덜머리가 난 이들의 분노가 토치카 요새의 높은 성벽 아래로 가속도가 붙어 내린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당연하게도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성벽을 기어오르던 독인병들은 머리가 깨지고 터진 채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삼번시 안드레알푸스가 퍼부었던 우박만큼이나 위력적인 낙석 샤워는 독인들의 총공세를 주춤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이다! 좌우로 조여라!”
사드 후작과 오르카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마지막 역습 찬스임을 알아챘다.
이윽고, 두 백전노장은 최후의 잔존병력들을 이끌고 나와 낙석이 미치지 않는 좌우 양익에서 독인병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비키르 역시 별동대를 이끌고 독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지금껏 경험해 봤던 그 어떠한 전장보다도 더욱 더 치열한 전투.
회귀 전후를 통틀어 가장 살벌한 싸움이었다.
퍼억-
비키르는 앞을 가로막는 거구귀의 목을 날려 버리며 생각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악마의 모가지를 따야 한다.’
그것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비키르는 칠백작, 그리고 일곱 기사단을 이끌고 무수히 많은 독인들의 강을 도하했다.
사냥개들이 깊숙하게 파고든 최전선 곳곳에 독기 가득한 혈화(血花)가 피어났고 수많은 머리통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콰쾅!
독인병들이 거대한 손바닥으로 지축을 잡아 찢는다.
비키르는 바로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독인병의 손바닥을 피해 옆으로 물러났다.
쩌억-
독인병의 가슴팍이 둘로 쪼개지며 시커먼 피분수가 일었다.
바로 그때.
“……!”
비키르는 뒷목에 오싹한 소름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전쟁터에서 그리 드문 감각은 아니고, 그저 뒤에서 적이 공격을 가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여느 때와 같았으면 그저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하면 될 일.
……하지만 정말로 특이한 경험은 지금부터였다.
퍼-억!
둔중한 소음과 함께 뒷목의 서늘함이 사라졌다.
뒤에서 손을 뻗어 오던 독인병이 죽은 것이다.
비키르는 고개를 돌려 누가 독인병을 제거했는지 보려고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방에 무수히 많은 독인병의 손바닥들이 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쩌억- 쩍! 퍼억! 뎅겅-
비키르는 마검 바알제붑을 길게 뻗어 정면에 있는 독인병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나갔다.
그리고 그럴수록 신기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 ……! ……! ……!
비키르의 뒤로 다가오는 독인병들이 계속해서 거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뒤를 받쳐 주고 있다.’
비키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뒤를 곁눈질했지만 빠르게 뒤엎어지는 시야와 곳곳에서 흩뿌려지는 피와 돌덩이의 소나기 때문에 뒤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으음- 너무 빨라서 잘 안 보이는데?]데카라비아마저도 현재 비키르의 등 뒤를 지켜 주고 있는 조력자가 누구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모양.
다만.
퍼퍽! 쿵! 우지지직!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서포트로 비키르가 가는 길의 뒤를 받쳐 주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누구지? 까뮤? 아이옌? 돌로레스? 싱클레어? 키르코?’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전장 저 멀리 멀어졌다.
바로 뒤에 붙어 따라오고 있던 칠백작과 일곱 기사단 또한 체력의 한계 끝 어귀에서 뒤쳐진 지 오래이다.
‘……일단은 믿고 가 보는 수밖에 없나.’
비키르는 지금껏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등 뒤를 철저하게 지켜 주고 있는 의문의 조력자를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번쩍!
비키르는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독인병을 향해 8개의 이빨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터억- 끼기긱!
비키르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놀랍게도 비키르의 칼을 맞받아 내는 독인병이 등장한 것이다.
전신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는 거구의 독인병.
비키르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리바이어던가의 장남. 쥐스킨트인가.”
한때 촉망받던 인재, 장차 제국을 떠받칠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차세대 유망주.
하지만 지금은 그저 기괴하게 뒤틀린 몸뚱이로 독이나 뿜어내는 악귀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였다.
꽈드드득!
비키르의 참격에 난자당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쥐스킨트…… 아니, 한때 쥐스킨트였던 것.
그것은 입을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린 채 어마어마한 악력과 재생력을 선보이며 비키르의 칼날을 밀고 들어왔다.
‘이 덩치에 재생력…… 쉽지는 않겠군.’
비키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힘을 더 끌어올리려는 순간.
…번쩍!
방금 전 비키르의 참격이 지나갔던 궤적을 그대로 되짚어가는 참격이 있었다.
바스커빌 8식.
여덟 개의 이빨이 비키르가 만들어 놓은 자국 위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쥐스킨트의 거대한 육신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살점과 핏물의 소나기 아래, 비키르는 지금껏 자신의 뒤를 받쳐 주었던 존재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피바람에 휘날리는 검은 피풍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붉은 눈동자.
그리고 전장을 질주하는 내내 깎지 못해 자라난 수염.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지존. 모든 사냥개들의 주인.
휴고 레 바스커빌이 그곳에 있었다.
여덟 개의 이빨을 드러낸 채 서로를 마주하게 된 부자(父子).
비키르도 휴고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이 없다.
“…….”
“…….”
먼저 침묵을 깬 이는 휴고였다.
차락-
그는 부르주아가로부터 반환받은 명검 ‘발뭉’을 한번 휘둘러 핏물을 털어 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그저 스쳐 지나간 뒤 흔적도 남지 않는 바람 소리처럼 말했다.
“잘 컸구나. 해 준 것도 없는데.”
비키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그 짧은 침묵이 끝이었다.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휴고는 이내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그리고 어느새 도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8식의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땅과 하늘을 동시에 쪼개 버리는 참격이 독인들을 휩쓸어 간다.
비키르 역시 지금은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자각했다.
이윽고, 아비와 아들은 등을 맞대고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비키르의 칼이 베고 지나간 곳의 빈틈을 휴고가 찔렀다.
휴고의 칼이 찌르고 지나간 나머지의 빈틈을 비키르가 베었다.
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자의 존재 유무는 아주 크다.
서서히 전황을 뒤집어 가고 있는 둘 사이에는 핏물과 살점 말고도 어색하고도 미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하하하하-]저 너머의 전장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비키르는 그것의 주인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플라우로스. 만악(萬惡)의 근원.
그것은 비키르를 향해 눈을 빛내며 웃고 있었다.
[암만 날뛰어 봐라! 나의 독은 무한하다!]플라우로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뒤에서 거대한 차를 끌고 왔다.
상단부가 검은 막사로 가려져 있는 마차.
그것은 예전에 비키르가 수원지대를 쟁탈하러 가던 도중에 본 독 충전소였다.
오-오오오오!
독인병들이 토치카 요새의 성벽에서 하나둘씩 철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뒤에 있는 검은 막사에 들어가 보다 강한 힘과 독을 얻기 위함인 듯싶었다.
[이것만 있으면 독인들은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 시체마저 일으켜 부리는 것이 나의 독이야!]플라우로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비록 막사가 폭발하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말아다.
콰콰콰콰콰쾅!
독인병들이 탕진한 독기를 충전해 주는 막사.
그것이 지금 불길에 통째로 휘말리고 있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
비키르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점에서 왜 독 충전소가 폭발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플라우로스가 더 궁금했나보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그것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뭐, 뭐냐!? 왜 내 우로보로스가……!?]순간, 비키르와 플라우로스의 눈동자에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추수자. 리바이어던가의 막내 그르누이 데 리바이어던.
불타고 있는 막사의 휘장 아래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박살 나 깨져 버린 항아리 앞에 서 있었다.
붉은 죽음을 만들어 내던 두 마리의 뱀 ‘우로보로스’가 담겨 있던 항아리 속에서는 엄청난 기세로 끓어오르는 기름이 극도로 뜨거운 유증기를 펄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가끔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심할 때가 있거든.’
‘……칫, 그런 회의감이 왜 드냐? 나는 항상 잘 살고 있는데! 사람이 당당해야지 말이야!’
비키르의 뒤를 따라온 별동대원들 사이에서 싱클레어의 얼굴을 발견한 그르누이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사람이 당당해야지.”
어딘가 아득한 기억 속을 되짚어가는 듯한 목소리.
싱클레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촤악!
끓는 기름 속에서 두 마리의 뱀이 튀어나왔다.
온몸이 튀겨지는 끔찍한 화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힘을 쥐어짠 우로보로스는 멍하니 서 있던 그르누이의 목을 물고 항아리 속으로 끌어들였다.
와시시시시시-
커다란 항아리 속으로 뜨거운 기름이 출렁거린다.
이윽고 막사 안에는 그저 침묵만이 감돌게 되었다.
활활 타들어 가는 막사를 보며 플라우로스는 경악에 차 소리 질렀다.
[말도 안 돼!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배신을……!?]실로 뜬금없고 어처구니없게 벌어진 돌발 변수.
하지만 플라우로스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저번에는 팔만 가져갔었지.”
귓가에 으스스하게 얼어붙는 목소리.
“이번에는 목도 내놓고 가라.”
어느새 비키르에게 뒤를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