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지천명 아비무쌍(知天命父無雙) (1)
잘린 머리가 이죽인다.
[내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 너희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라고 말이야.]“…….”
[현재로써는 나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포기해라, 악마사냥꾼이여.]플라우로스는 계속해서 혓바닥을 놀렸다.
진실 혹은 거짓. 알면서도 속을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척 강행돌파할 것인가.
비키르의 옆에 선 까뮤가 이를 뿌득 갈았다.
“야, 저 새끼가 하는 말 진짜야? 진짜로 쟤가 죽으면 멸망의 문인지 뭔지가 열려?”
대답은 두 군데에서 들려왔다.
하나는 까뮤의 어깨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세에레, 다른 하나는 비키르의 가슴팍에 매달려 있는 데카라비아였다.
[플라우로스는 거짓의 이능을 가진 존재라서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우리도 몰라.] [……하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있겠지. 저놈은 교활하니까.]결국 동급의 악마들조차도 플라우로스의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의 순간, 양자택일의 기로 앞에서 비키르는 망설였다.
이대로 플라우로스를 놓아줄 것이냐, 아니면 멸망의 문이 열릴 것을 각오하고 놈을 죽일 것이냐.
지금 이 순간에도 플라우로스는 머리를 수증기처럼 만들어 천천히 달아나고 있었다.
식은땀이 녹아내리는 납방울처럼 뚝 떨어진다.
비키르는 이를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문 채 고민했다.
……바로 그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비키르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음성이 있었다.
휴고. 그가 비키르의 등 뒤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들아.”
그는 비키르를 불렀다.
비키르는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휴고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자식이 설사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비다.”
비키르는 그 말을 굉장히 새삼스럽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휴고 역시도 ‘언제부터 아비 노릇을 했다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이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기기긱-
발뭉이 땅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
비키르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번쩍!
휴고가 칼을 휘둘렀다.
강맹한 참격이 날아들어 지면을 때렸다.
도망갈 준비를 거의 다 끝내 가고 있었던 플라우로스의 머리가 있는 곳이었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치의 자비도 없는 참격이 악마의 마지막 멱줄을 끊어 놓았다.
비키르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가는 플라우로스의 머리를 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악마는 죽인다. 비키르 역시도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더라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키르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선택을 유예(猶豫)받았다.
그것도 한 번도 아비로 여겨본 적 없었던 휴고의 손에 의해서.
본의 아니게 어리광을 피운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
“…….”
비키르와 휴고의 시선이 마주한다.
복잡한 상념이 흐르는 간극.
그 미묘한 분위기 속에 모여든 모든 이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쿠르릉! 콰쾅!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짙은 먹구름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하늘에 붉은 빛기둥 하나가 그려진다.
그것은 실로 거대하고 또 거대한 붉은색 선(線).
둥그렇게 그려지는가 싶던 붉은 곡선은 이내 중앙에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키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멸망의 문!”
플라우로스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은 진실이었다.
놈은 소멸에 준하는 어마어마한 부담을 몸에 짊어지면서까지 멸망의 문을 열었고 자신의 목숨을 끈으로 만들어 그 문을 막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플라우로스의 생명줄이 완전히 끊어진 지금, 예정대로 봉인이 풀리고 문이 열린다.
십상시급 고위악마가 목숨을 담보로 소환한 문.
아마 지금쯤 플라우로스의 영혼은 소멸 이상의 어마어마한 패널티를 받아 영원토록 고통에 몸부림쳐야 하는 끔찍한 처지에 놓였겠지만…… 지금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멸망의 문이 열렸다.
비키르는 전신이 미친 듯이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 억눌렀다.
이제 곧 겁화의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긴 우기.
현생 인류의 98%를 절멸시킴으로써 인간 연합군 측에 가장 크고 끔찍한 피해를 입혔던 악마들의 최종병기.
끝없이 끝없이 내리던 불의 비, 불의 바람, 불의 벼락, 불의 홍수.
온 세상천지에 떨어져 내리는 시뻘건 빗방울이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릴 것이다.
산의 풀과 나무들은 불타고 숲은 잿더미 사막으로, 바다와 호수는 부글부글 끓어오른 끝에 황무지로 변해 버리고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이 타 죽거나 바짝 말라비틀어질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앞으로 150일간 범람할 불의 대홍수는 그마저 남은 모든 생명들을 말살시키리라.
“……진짜였어?”
“이 정도 규모의 차원문이라니. 나락수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군.”
“이렇게 끔찍한 마법은 처음이에요! 압도적인 불길함이…….”
“믿을 수가 없네. 저런 게 존재했다니.”
“차라리 누벨바그가 요람처럼 느껴질 정도야.”
까뮤, 아이옌, 돌로레스, 싱클레어, 키르코도 저 위 하늘에 그려지고 있는 거대한 차원문을 보고서는 입을 닫지 못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함이리라.
바로 그때.
…콰쾅!
하늘 전체가 사납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비키르가 벼락같이 외쳤다.
“1차 폭발이 온다!”
회귀하기 전, 멸망의 문이 열리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우선 문이 열리는 순간 안쪽에 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옥불이 쏟아질 것이다.
그 순간적인 화력은 수만의 병사들을 한순간에 한 줌 잿가루로 만들어 버릴 정도.
지금 이곳에 나타난 멸망의 문은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쿠르르릉-
문이 천천히 열린다.
벌써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군중들은 경악했다.
“……덥군.”
“푸스스스- 가뜩이나 목말라 뒈지겠는데, 이제는 아예 타 죽게 생겼잖아?”
오르카와 사드조차도 하늘에 나타난 멸망의 문을 상대로는 투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토치카 본성의 망루 위에 서 있는 씬디웬디 역시도 입을 열었다.
“……저런 게 불을 내뿜었다가는 토치카가 통째로 날아갈 거야.”
성벽 위에서 열심히 돌을 던지던 수많은 난민들 역시 일제히 넋을 잃었다.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 천재지변, 압도적인 절망과 공포를 가져오는 존재.
그것이 바로 멸망의 문이었다.
검은 하늘에 열린 붉은 차원문은 이제 어느덧 완연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제 그 깊디깊고 사악한 속내를 천천히 열어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저벅-
이 모든 절망과 혼돈, 공포를 내딛고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는 사람이 있었다.
비키르.
그의 표정은 더없이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내가 왜 회귀했는지 알겠군.’
그것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차앙-
비키르는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토치카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멸망의 문을 향해 한 발자국 더 힘차게 내딛었다.
이제 곧 터져 나올 거대한 화염 폭풍에 맞서기 위해서.
이윽고.
쿠-르르르륵!
거대한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누벨바그 화산의 폭발에 맞먹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규모의 초자연재해.
마치 입에서 혓바닥이 나오듯, 멸망의 문은 최초의 홍염(紅焰)을 뿜어내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싹 핥으려 들었다.
그리고 비키르는 멸망의 문의 혓바닥을 끊어 놓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이 모든 것은 처음 요람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쿠르륵!
최후의 마나 한 가락까지 전부 쥐어짠 비키르는 칼끝에 검은 태양을 만들어 띄웠다.
사납게 회전하는 여덟 개의 이빨은 구체의 형상을 취하며 멸망의 문 앞에 맞선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작고 미약해서 마치 횃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도 같아 보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지.’
비키르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마나를 폭사시켰다.
요람에서 독사의 목을 졸라 죽이던 시절의 힘까지 전부 긁어모아 내지르는 일격.
돌로레스의 가호가 실린 비키르의 참격이 멸망의 문이 뿜어내는 불길에 맞서고 있었다.
질끈-
비키르는 눈을 감았다. 곧 뜨겁게 불타 사라질 자신의 육신을 상상하며.
…….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충격도 없고 딱히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
비키르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의아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그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멸망의 문. 터져 나오는 지옥불의 향연. 풍전등화의 토치카.
그 사이에 떡 버티고 있는 무언가가 보인다.
검은 이빨.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것이 지옥문에서 터져 나오는 불길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여덟이 아니라…….”
비키르가 더듬더듬 헤아리는 이빨들의 수.
그것은 여덟보다 하나가 더 많았다.
아홉.
아홉 번째 이빨이 불길을 사납게 물어뜯고 있었다.
멸망에 저항하는 아홉 개의 이빨. 바스커빌 제 구식(九式).
무시무시한 기세로 폭사되는 적과 흑의 아우라가 토치카에 도래하고 있는 종말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비키르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 것.
칼침의 무덤. 죽음의 문턱을 넘어간, 한때 고결했었던 자의 말로.
데스나이트. 그리고 아홉 개의 이빨. 지고(至高)의 바스커빌.
생사경(生死境)의 경계를 넘어간 존재.
이미 한 번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멸을 유예받은 언데드.
‘……언제부터 아비 노릇을 했다고.’
휴고.
휴고 레 바스커빌.
철혈검가(鐵血劍家) 바스커빌의 가주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