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토치카 섬멸전 (6)
누벨바그 화산의 폭발. 그리고 그것을 야기한 방아쇠 포세이돈.
비키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결국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온 세상천지를 휩쓸어 가는 대홍수.
앞으로 150일간 쏟아질 이 폭우는 일부의 높은 고원지대를 제외한 모든 땅을 전부 집어삼킬 것이다.
제국 전역으로 번져 나가던 산불도, 흉흉한 세태를 틈타 창궐한 몬스터 떼도,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던 가뭄도 모두 쓸려 내려갔다.
자연적으로 토치카에 있던 모든 이들은 구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높은 고원지대까지는 물살이 닿지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단단한 암석과 고운 모래로 만들어져 있는 지반은 배수에 굉장히 용이했다.
성채 역시도 비바람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했고 유일한 단점이었던 식수 부족 역시도 빗물을 받음으로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전대미문의 초자연재해로 기록되었을 대홍수.
하지만 멸망의 문으로 인해 제국 전역에 창궐하던 산불과 가뭄, 전염병, 몬스터 떼, 그리고 겁화의 장마라는 대재앙이 먼저 있었던 덕분에 후에 일어난 대홍수는 오히려 기적이 되었다.
멸망이 멸망으로 상쇄된 것이다.
* * *
성채 안의 막사 곳곳에는 깊은 배수로가 파였다.
커다란 통들이 막사의 앞에 놓였고 피난민들은 그것에 빗물을 받아 마음껏 마셨다.
며칠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던 물들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성 밖의 상황이 이래서야 적군이 쳐 들어올 일도 없겠군. 이제는 내부의 치안에 집중할 때다.”
오르카 소장은 누벨바그의 인력들을 풀어 성채 내부의 치안을 관리하고 각종 규율들을 재정비했다.
한편 사드 후작은 전투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푸스스스- 40여 년 전에 못 다한 혁명을 이제야 완수할 수 있겠구나! 황태자 놈은 어디 있느뇨! 황제가 이미 뒈졌으니 그 자식 놈이라도 죽여야겠다!”
“어휴 할아버님! 제 몸이 나으면 같이 가자니까요!”
당장 조각배 하나를 잡아타고 황도로 가겠다는 사드를 사디가 겨우 뜯어말렸다.
그 외에도 전투가 끝난 뒤의 재정비는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시리스와 씬디웬디를 필두로 한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토치카 요새를 증축하고 재건한다.
150일 뒤 대홍수가 끝났을 때를 대비해 모두가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있기에 모든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비키르.
그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언제나 성벽 최정상에 서 있었다.
…철썩!
이제는 바다로 변해 버린 성 바깥.
사납게 물결치는 물결들의 위로 허연 낭화(浪花)들이 피어난다.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의 토치카와 지금의 토치카를 견주어 보고 있었다.
“…….”
원래대로라면 운명의 수레바퀴는 더욱 더 가혹한 방향으로 굴러갔어야 했다.
악마들의 침공으로 인해 지옥이 되어 버린 현세.
혼돈을 틈타 병력을 이끌고 누벨바그를 습격했던 사디.
손녀 사디의 도움으로 인해 누벨바그를 탈옥할 수 있었던 사드 후작.
그런 사드 후작의 탈옥을 막기 위해 작업 도중 발견했던 포세이돈을 폭발시켰던 오르카 소장.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대홍수에 의해 겁화의 장마는 걷혔다.
하지만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은 뒤였고 예기치 못한 대홍수는 악마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비록 일주일 정도의 오차가 있어 식수확보에 꽤나 고생했다지만 비교적 예정된 시간에 맞게끔 대홍수가 시작되었다.
겁화의 장마도 걷혔고 멸망의 문 역시도 식어 버렸다.
[이쯤 되었으면 완벽한 승리나 다름없군. 안 그런가 인간?]데카라비아가 마치 자기 공인 양 뻐기는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승리한 것은 아니다. 커다란 국지전에서 이겼을 뿐, 마지막 승부처가 남았지.”
[일번시를 말하는 건가?]“그렇다.”
비키르는 드넓은 창해(滄海)로 변해 버린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카라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탄했다.
[과연. 그래서 누벨바그에서 탈옥하자마자 창해창가(滄海槍家) 돈키호테를 가장 먼저 수복했었군. 무적기마대와 함께 돈키호테가의 무력을 양분하는 무적함대를 손에 넣기 위해서.]“그렇다. 이런 세상이라면 함대를 가진 자야말로 패자(霸者)로 군림할 수 있을 테니까.”
비키르의 말에 데카라비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약간의 고민 끝에 다시 목소리를 냈다.
[패자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말이다, 인간.]“뭐냐.”
[전에 상대했던 이번시 플라우로스 말이다.]데카라비아는 약간이나마 불안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플라우로스는 지옥에 있을 때도 거짓말과 끈질긴 목숨으로 유명한 패자 중의 하나였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지?”
[놈이 정말로 영멸한 것일까? 나는 그게 의문이다. 만약 놈이 자신의 죽음을 거짓으로 위장했다면……]플라우로스는 워낙에 거짓말을 잘하는 존재이니 죽은 것마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다.”
[뭣? 어째서 그렇지?]“놈이 그 순간 살아 있었든 죽었든 간에.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비키르는 몰아치고 있는 폭풍우와 파도, 그리고 그 너머로 아득하게 보이는 적과 흑 산맥의 지류를 보며 건조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세상도 말이야. 알고 보면 지옥 못지않게 위험한 곳이거든.”
* * *
폭우가 줄창 쏟아지고 있는 밀림.
칼날처럼 예리한 잎사귀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검수림(劍樹林) 속을 달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허억! 헉! 커헉-]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내달리고 있는 이는 분명 극독암가 리바이어던의 차남 토마스 데 리바이어던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붉은 죽음의 기운과 날카롭게 변한 이빨은 분명 예전의 그가 아님을 뜻하고 있었다.
플라우로스. 그는 죽기 직전 술수를 부려 영혼을 이동시켰고 죽어 가는 토마스의 몸을 빼앗았다.
애초에 모든 마인들은 악마의 숙주,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는 예비용 몸뚱이에 불과한 것이니 그리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최후의 순간 토마스의 몸을 빼앗은 플라우로스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그 육신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전장에서 도망쳤고 결국 이곳까지 오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래도 피기를 죽이는 데에 성공했으니 협상을 할 만한 요소는 있을 것이다.
플라우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으스스스……
플라우로스는 전신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에 들어온 바윗골을 기점으로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고 있었다.
냉골. 적과 흑 산의 수해에 사는 원주민들이 부르는 지명.
한여름에도 서리가 얼어붙는다는 이곳의 기후를 플라우로스가 알 리가 없다.
가뜩이나 낮아진 체온이 더욱 더 낮아지자 몸이 둔해지고 관절 곳곳이 뻐근해졌다.
목과 배에 뚫린 구멍, 그리고 전신에 난자된 상처들에서 더더욱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히익!]플라우로스는 바윗골을 빠져나오자마자 바짝 엎드려야 했다.
스스스스-
빗방울과 나뭇잎들 사이를 헤치고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음산한 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거대한 몸집을 지닌 한 마리의 거미.
거미는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숲을 뒤지고 있었다.
저 멀리 숲 너머에는 그런 거미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나, 나를 찾고 있는 건가?]플라우로스는 직감했다.
지금 저 거미들에게 발각되었다가는 죽는다. 어떠한 여지도 없는 영멸이다.
플라우로스는 필사적으로 숨을 참고 바닥을 기었다.
거미들의 눈길을 피해, 벌레처럼 바닥을 기고 또 기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플라우로스는 거미들의 포위망을 피해 강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당히 고지대에 있는 강가였지만 계속된 폭우로 인해 강줄기가 많이 불어나 있는 것이 보인다.
풍덩-
플라우로스가 강을 건너기 위해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콰직!
순간, 플라우로스는 하반신에 와닿는 격통을 느끼고는 기겁해야 했다.
[크윽!? 물고기 따위가!?]톱날 같은 이빨을 가진 물고기들이 달라붙어 플라우로스의 살점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테리’. 적과 흑 산의 강에 사는 식인어들이 피냄새를 맡고 우글우글 모여드는 것이 수면 위에서도 보였다.
[……제기랄!]플라우로스가 막 강에서 나오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쉬익-
시야를 꽉 채우는 시커먼 암흑이 보인다.
거대한 아가리가 플라우로스의 머리통을 삼키려 들고 있었다.
무슈후슈. 수해에 사는 거대한 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뒤로 접근한 이 뱀은 눈 깜짝할 사이에 플라우로스를 집어삼켰다.
[끄으으윽! 이 하찮은 미물 따위가!]플라우로스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뱀의 뱃가죽을 터트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성체인지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도주에 필요한 생명력의 대부분을 질긴 뱀가죽을 찢는 데 써 버렸으니 그것이 낭패일 뿐이다.
[……어디 쉴 곳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객사하겠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이냐.]플라우로스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필사적으로 떴다.
눈꺼풀을 아예 잡아 뜯어 버리고 안구만 남겨 놓자 그나마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이윽고, 플라우로스는 나무뿌리 밑을 파 놓은 깊은 땅굴을 발견했다.
저곳이라면 비를 피할 수 있고 체온도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라우로스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땅굴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떨어진 체력 탓에 집중력도 흐트러졌음일까? 플라우로스는 나무의 옆구리에 큼직하게 패여 있는 손톱자국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크-워어어어억!]등 뒤에서 벼락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플라우로스가 미처 뒤돌아볼 새도 없었다.
눈먼 늙은 옥스베어 암컷이 십수 톤이 넘는 무게만큼의 파괴력을 담아 휘두른 앞발.
그것은 플라우로스의 두개골을 확실하게 박살 내 버렸다.
[크아악! 끄어어어어어……]온몸에서 독한 피를 뿜어내는 플라우로스를 옥스베어는 혐오스러운 것을 보듯 했다.
이윽고, 옥스베어는 앞발에 묻은 피를 빗물에 씻어 내고는 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죽일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플라우로스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 ……! ……!]뭉개진 입에서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프고 고통스러운 몸에 대한 절규?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이들을 향한 증오? 처참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 치밀어 오는 분노?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복수? 아니면…… 소멸에 대한 공포?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
복잡한 상념들이 곤죽이 된 뇌 속에서 뒤섞인다.
그리고.
그런 플라우로스를 맞이하는 이들이 있었다.
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웽……
모기.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모기들이 피 냄새를 따라 날아든다.
플라우로스, 아니 토마스의 몸에 붙어 피를 빠는 모기들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살을 빠는 모기들도 존재했다.
가죽만 빨아 먹는 모기들도 섞여 있었다.
아예 침을 더 깊게 박아 넣어 뼈를 빠는 모기들도 보였다.
……그리고 개중에는 아무것도 빨지 않는 모기가 있었다.
그것은 그저 뿌옇고 탁한 눈으로 허공을 부유한다.
아무것도 빨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모기들의 위에 군림하며 압도적인 불길함을 뿜어내고 있는 모기.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는 플라우로스는 그 모기를 향해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 ……!]이윽고, 모기는 조용히 플라우로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러나 분명히 목표를 정해 침을 꽂았다.
쪼오오옥-
시뻘건 연기가 모기의 침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간다.
수해의 원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또 경계하는 모기.
혼(魂)을 빠는 모기가 플라우로스의 말로를 장식하고 있었다.
[……!]한낱 미물의 식사거리로 전락해 버린, 실로 초라하고 형편없는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