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79
479화 시가지해전(市街地海戰) (1)
쏴아아아아-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진다.
바다로 변해 버린 세상은 점점 더 사납게 물결치고 있었다.
토치카에 모인 사람들은 서서히 불안한 기색을 보인다.
“이러다가 여기에 갇혀서 굶어 죽는 거 아냐?”
“무슨- 식량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데. 아직도 넉넉하다잖아?”
“그래도 이 대홍수가 계속되면 어떡하냐 이거지.”
“150일 동안만 지속된대. 식량도 충분하고 식수는 더 충분하니 괜찮아.”
“그래도 바깥은 이미 바다잖아. 그리고 막말로 홍수가 150일 뒤에 딱 그칠지 어떻게 알아?”
“지금 돈키호테가의 장남께서 함대를 데리러 가셨다잖아. 그래서 지금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고.”
난민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은 허튼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고원지대(高原地帶) 토치카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임과 동시에 완전히 고립된 무인도나 다름없는 장소.
그래서일까? 비키르는 오늘도 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철썩!
높은 고원지대 위 견고한 성벽에까지 와 닿는 파도.
물살이 하얗게 부서지며 피어나는 흰 포말들은 마치 꽃밭을 보는 듯했다.
“…….”
비키르는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성벽 위에 앉아 있었다.
마치 뜨겁게 담금질 된 철을 식히듯, 그렇게 차가운 빗물로 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오늘도 비 맞고 있어? 청승맞게.”
비키르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까뮤.
그녀 역시도 비를 맞으며 비키르의 옆으로 걸어왔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쏟아지네.”
까뮤는 성벽 아래로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며 말했다.
“악마들이 만들어 낸 불바다가 아니었더라면 이것은 이것대로 재앙이 되었을 거야. 두 개의 재앙이 서로 절묘하게 맞물려 피해가 줄어들었네. 이 역시도 네가 누벨바그에서 계산했던 대로겠지? 화산을 폭발시키기 전에 말이야.”
“대부분은.”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이 딱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얼추 들어맞았다.
하지만 만약 오차범위가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정말로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
“…….”
비키르와 까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까뮤였다.
“……아버님 일은 유감이야.”
그 말에 지금껏 미동도 없이 서 있던 비키르가 반응을 보였다.
기껏해야 어깨가 아주 약간 떨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왜 그런 거요?’
‘나도 모르겠다.’
희게 바스러지는 기억. 하얗게 불탄 재. 이제는 빗물에 흩어진.
장렬하게 산화한 휴고는 그날 토치카에 있던 모든 이들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그런 휴고를 복잡한 심경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비키르는 한참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가 어떻게 9식의 문턱을 넘었는지 모르겠군.”
전생과 비교하면 사뭇 달라진 결과였다.
비키르의 말에 까뮤가 잠시 머뭇거린다.
“사실…….”
“?”
“오래 전에 그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어.”
까뮤의 증언은 비키르에게 있어서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나카자니예에서의 재판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지. 그는 나와 상의하고자 했어. 감옥에 갇힌 너를 빼낼 수 있는 방도를 말이야. 아. 참고로 사디, 그 여자와도 그때 손을 잡았던 것 같더군.”
사디와 휴고가 손을 잡았었다는 사실은 비키르에게도 조금 의외였다.
비키르를 위해, 휴고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준비했었던 듯하다.
씬디웬디가 종적을 감췄던 사디를 찾는 과정도, 아이옌이 즉결 처형을 피해 누벨바그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사디가 위장 신분을 만들어 누벨바그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암암리에 펼쳐져 있었던 도움의 손길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비키르는 재판장에서 보았던 휴고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바스커빌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내란죄와 존속살인, 가주 독살 혐의 등 죄질이 중하고 악독하나 피고인은 바스커빌가의 핏줄을 물려받은 존재이니만큼 귀족에 대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따라서 이 점을 정상 참작한 판결을 요구하는 바이다.
이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그저 휠체어에 뒤돌아 앉아 있었던 휴고의 뒷모습.
“…….”
비키르는 말이 없다.
까뮤는 그때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의 탈옥을 돕는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망령목에 대한 화제가 나왔어. 필연적으로 ‘칼침의 무덤’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지.”
까뮤는 손을 들어 올렸다.
츠츠츠츠츠츠츠……
망령목이 길고 앙상한 가지를 하늘하늘 흔든다.
“망령목이 휴고에게 반응한 것은 나도 의외였어. 그는 망령목에게서 ‘어떤 기억’을 읽었던 모양이야.”
까뮤의 말에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짚이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고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고도 검을 처음 잡던 시절과 같은 마음으로 쉬지 않고 계속해서 부던히 뜀박질을 하는 이만이 얻어가는 것이 있는 법.] [이 경지는 일반적인 인간들의 이해와 공감, 납득, 믿음, 상식, 개연성과 인과율을 모두 부정해 버리는 영역.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는 절대로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지.] [너는 아마 살아생전에는 이 경지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9식의 영역은 죽음의 문턱,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지.] [진짜배기 바스커빌이라면 삶의 마지막에는 이곳을 찾아오게 되어 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게다.]휴고가 본 것은 아마도 케인코르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이 많은 형의 말로에서 그는 무엇을 느꼈음일까?
비키르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육식(六式). 모든 감정을 초월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칠식(七式). 버렸던 감정을 되찾아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팔식(八式). 검을 처음 잡았던 시절과 같이, 처절한 수라장을 수없이 전전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구식(九式). 죽음을 경험해 본 이만이 오를 수 있는, 지고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핵심에 있는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
“…….”
휴고는 어떤 마음으로 그 문턱을 넘어갔을까.
생사의 피안(彼岸) 그 어귀에서 비키르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때.
탁-
까뮤가 비키르의 어깨를 짚었다.
“너무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마. 여기까지 왔는데, 너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좀 생각하라고.”
“……맞아요.”
그리고 그런 까뮤의 말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로레스. 어느새 성벽 앞까지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비키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비키르 님을 따르고 있어요. 비키르 님이 어디로 가시든 그 뒤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맞는 말이기는 한데, 나는 우산 없냐?”
“2인용이에요.”
까뮤의 툴툴거림을 외면한 돌로레스는 비키르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튜더는 걱정하지 마세요. 강한 친구니까 분명 함대를 이끌고 돌아올 거예요.”
그녀의 말에 비키르는 다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 높게 솟구치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강인한 함대도 항해를 나서지 못할 것만 같다.
승기를 잡은 이상 한시가 급한데 꽤나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이었다.
“내가 항상 망루에서 보고 있으니까 너는 그만 들어가라. 건강이 상하기라도 하면 안 돼.”
어느새 나타난 아이옌이 비키르에게 말했다.
수 킬로미터 밖까지 살필 수 있는 그녀의 초인적인 시력은 비키르를 한참이나 상회하는 것, 만약 튜더가 함대를 이끌고 온다면 그녀에게 제일 먼저 보이게 될 것이다.
“뭐야, 야만인? 왜 자꾸 남의 남자한테 얼쩡거려?”
“야만인? 또 홀딱 벗겨지고 싶나?”
“오- 옛날 생각나는데? 그게 지금도 가능할 줄 알아?”
모르그의 까뮤와 발락의 아이옌은 예나 지금이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때.
“그만들 좀 싸우세요. 가뜩이나 형아 마음도 심란할 때인데.”
성벽 보수공사를 마친 싱클레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뮤와 아이옌이 눈을 가늘게 떴지만 싱클레어는 슬쩍 외면해 버렸다.
그녀는 비키르의 앞으로 따듯한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음 전투가 최종전이 되겠네. 차 한잔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어떨까?”
“……황성으로 가는 건가. 나는 문헌상으로만 접해 봤었는데.”
싱클레어의 옆에는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키르코도 있었다.
키르코가 비키르에게 물었다.
“한데, 지상이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다는 것이 되나?”
“그럴 일이 없게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토치카로 모았지. 그리고 시공간상 이곳으로 오지 못한 사람들 역시도 다른 고원지대로 미리 피신시켜 두었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해.”
싱클레어가 대신 대답했다.
그 둘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계속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때.
“엇!?”
비키르의 옆에 붙어서 까뮤와 눈치싸움을 벌이던 아이옌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시력 좋은 그녀는 어둠과 폭풍우를 뚫고 휘몰아치는 물결 너머의 무언가를 본 모양이다.
이윽고, 아이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왔다! 함대야!”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윽고, 거센 물결과 폭풍우를 뚫고 거대한 함선이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크고 육중한 함선은 어지간한 물결 따위는 무시하고 곧장 이곳 토치카의 고원지대를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런 함선들의 수는 부지기수. 실로 어마어마한 위용이다.
돌로레스도 환희 어린 얼굴로 외쳤다.
“튜더에요! 튜더가 돌아왔어요!”
그녀의 말대로 제일 앞에 있는 대장선의 위에는 창해창가 돈키호테를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심지어 배 위에는 언뜻 보기에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정말이다! 토치카는 물에 침수되지 않았어!”
“저곳에 가면 정말 식량이 있나요?”
“아아, 구원이 정말로 있있어! 물에 잠기지 않은 땅이 있었다고!”
“그때 밤을 걷는 자들의 말을 믿었어야 했어! 진작 그랬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함대 위에는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피난민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맨 앞의 대장선의 선미에 낯익은 얼굴이 둘 보였다.
바로 튜더와 비앙카였다.
“비키르! 약속된 것보다 늦어서 미안하다! 면목이 없어!”
“이 바보가 지나가다가 고지대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을 모두 구해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늦었어!”
그 둘은 이런 감격적인 순간에도 여전히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다.
까뮤, 아이옌, 돌로레스, 싱클레어, 키르코는 토치카로 오는 수많은 다른 피난민들을 보며 우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들까지 추가로 받아들이면 식량이 줄어들 텐데?”
“흠, 치안 문제가 새롭게 벌어질 수도 있고.”
“괜찮아요. 식량은 충분하다고 했어요. 치안도 누벨바그 팀이 합류했기 때문에 감당 가능한 수준이고요.”
“다섯 달 정도야 너끈히 버티지. 우리 집안의 자산을 다 쏟아부었는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최종 결전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바로 그때.
“상관없다. 어차피 곧 이곳을 떠야 하니까.”
비키르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최종전이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들 역시도 비키르의 말을 알아들었다.
머지않아 황도에서 벌어지게 될 단판 승부.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 * *
튜더가 이끌고 온 배들의 수와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선체가 작고 흘수가 얕아 소규모의 빠른 기동이 가능한 롱쉽, 13열의 노를 가졌고 26명의 노잡이를 태울 수 있는 카르비, 20열의 노를 가졌고 40명의 노잡이를 태울 수 있는 스네카, 1백 명의 전투원을 수용할 수 있는 스케이드, 1천 명이 넘는 전투원을 탑재할 수 있는 드라카 등등.
더군다나 이 수많은 배를 모는 이들은 드넓은 창해를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닐 줄 아는 돈키호테가의 베테랑들이다.
유빙이 떠다니는 북해를 평지처럼 누비고 다니던 그들은 어마어마한 항해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다가 된 제국의 중심지까지 돌진할 수 있는 용기와 담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촤아아악- 철썩!
수많은 함선들이 거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간다.
바스커빌가, 모르그가, 쿼바디스가, 부르주아가, 그리고 돈키호테가와 어셔가의 생존자들마저 모두 합류한 결사대.
더군다나 콜로세오 아카데미, 테미스퀴라 여대학당, 바랑기안 훈련소, 마탑의 인물들까지 한자리에 모두 모였다.
오시리스와 칠백작, 레스파네, 아돌프, 교황 나보코프 1세, 루터 추기경, 모즈구스 대주교, 데미안, 밴시 교장 등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지금껏 인연을 맺어 왔던 모든 이들 전부가 한자리에 모여 전의를 불태운다.
토치카 연합군은 돈키호테가의 함선을 타고 황도로 출전했다.
이제는 해도(海圖)로 변해 버린 황도의 지도를 짚어 가며 안쪽, 더 안쪽으로.
한편.
“…….”
제일 선두에 있는 대장선에 탄 비키르는 선미에 서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그럭-
배가 한번씩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비키르의 손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이 갑판 위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비키르의 옆에는 미니핀과 치와와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쿠! 부집정관님! 저쪽에……!”
비키르는 치와와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 옆의 수면 위로 번지는 거대한 그림자.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바다괴물 하나가 물밑을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이곳에 살 리 없는 종이다.
‘황도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알겠군.’
황제가 사는 곳. 아니, 이제는 황태자가 사는 곳.
물에 잠긴 그곳이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는 얼추 짐작이 된다.
제국의 중심 황도에서 최후의 담판을 지을 상대는 일번시. 멸망의 시대를 이끌었던 첫 번째 주역.
그리고 비키르가 넘어온 몇 번인가의 삶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먼저 죽어 간 전우들의 복수, 그 끝이 서서히 보이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거센 해풍이 불어와 돛을 부풀렸다.
배는 물결 위를 나는 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철그럭-
또다시 쇠사슬이 갑판을 긁는 소리.
비키르는 손에 쥔 사슬을 더욱 힘껏 말아 쥐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미니핀이 그 쇠사슬의 끝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더듬더듬 물었다.
“저, 근데 부집정관님.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저게 뭔가요?”
쇠사슬의 끝에 묶여 있는 것이 정말로 뭔지 몰라서 질문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관.
비키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은 크고 무거운 관짝이었다.
안에 누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