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80
480화 시가지해전(市街地海戰) (2)
돈키호테가의 무적함대.
해상전에 한정하자면 제국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병력이다.
창해의 푸른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수많은 함선들의 앞으로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제일 선두에서 달리는 배의 뱃머리, 비키르는 거세게 불어오는 해풍을 정면으로 맞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상을 뒤덮은 무한한 암흑. 이것은 분명 일번시의 능력 중 하나였지.’
언제나 청명한 황도의 하늘은 지금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콰쾅! 철썩-
어마어마한 높이의 해일만이 연신 몰아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 배가 뒤집히겠는걸?”
비앙카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서 있는 튜더는 그저 코웃음 칠 뿐이었다.
“돈키호테의 배가 고작 이 정도 해일에 뒤집힌다고? 어림도 없지!”
말 그대로였다.
무적함대는 이름에 걸맞게 단 한 척의 배도 좌초되지 않은 채 해일을 뚫고 전진했다.
거대한 함선들은 서로 굵은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전체가 곧 하나, 하나가 곧 전체나 다름없었다.
연환계(連環計). 배와 배를 쇠사슬로 잇는 전법.
비키르가 제시한 이 전략 덕분에 무적함대의 돌파력은 훨씬 배가 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까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화공(火攻)만 조심한다면 좋은 방법이야.”
“비가 이렇게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데 화공을 당할 염려는 없지.”
“맞아. 현 시점에서 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네. 역시 내 남친다워!”
비키르의 대답에 까뮤는 씩 웃으며 비키르의 팔을 툭 쳤다.
바로 그때.
“……!”
까뮤가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비키르의 표정이 변했다.
“냄새.”
“……?”
비키르의 뜬금없는 발언에 까뮤는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황급히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 보았다.
“뭐, 뭐지? 뭐야? 나 냄새 나? 맨날 씻는데? 야, 양치도 방금 하고 오는 길이야! 남자친구 만나는데 혹시 모르는 일이라…… 어, 아니면 향수라도 뿌릴 걸 그랬나? 안 그래도 전장에 향수를 들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고민하기는 했는데…… 호, 혹시 아까 아침에 체조할 때 땀이 나서 그런……?”
“그 냄새 말고.”
비키르는 얼굴이 터질 듯 빨갛게 달아오른 까뮤의 말을 일축했다.
“악마의 냄새 말이다.”
“……!”
“반쪽짜리 특유의 옅은 냄새.”
그러자 까뮤의 표정도 굳어졌다.
“이상하네. 지금은 세에레가 내 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소량이라 그 정도의 냄새는 안 날 텐데?”
“너에게서 난다는 것이 아니다.”
비키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과거 까뮤는 ‘시체 여왕’으로 활동할 당시 팔번시 세에레와 몸을 절반씩 나눠 썼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비키르는 까뮤에게서 반쪽짜리 악마의 냄새를 이미 한번 맡고 코에 각인시켜 뒀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때와 비슷한 냄새가 해풍에 실려 오고 있었다.
바로 정면, 제국의 중심지인 황도에서도 핵심 구역으로 치는 황궁이 있는 방향에서 말이다.
“……!”
까뮤 역시도 곧 비키르가 말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과연, 먼 곳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이 냄새는 짙고도 강렬한 것이었다.
“이형(異形)의 냄새로군. 일반적인 악마의 것이 아니야.”
망루 위에 있던 아이옌이 펄쩍 뛰어내리며 말했다.
나락수 속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 왔던 그녀는 수없이 많은 마인과 마물, 요정들을 죽이는 과정 속에서 이런류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기운이 느껴지네요. 불길한 것은 훨씬 더하지만 그만큼이나 불안정한 느낌이에요. 강함의 층위와는 다르게.”
갑판 밑의 선실에서 나온 돌로레스 역시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까뮤 언니 때랑 비슷한 느낌이기는 한데 조금 다르기도 하네요. 까뮤 언니 때는 인간 반, 악마 반이 섞인 느낌이었다면…… 이 느낌은 그냥 악마가 반밖에 안 남아 있는 느낌이랄까.”
닻줄을 정리하던 싱클레어 역시 모두의 의견에 동의했다.
나락수 속에서 용마인의 피를 뒤집어쓴 뒤 그녀 역시도 나름의 감이 생긴 듯했다.
웅웅웅-
비키르는 손목 안쪽에 잠들어 있는 바알제붑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울음소리가 갑판 뒤에서도 들려오고 있었다.
키르코.
말없이 비키르를 응시하고 있던 그녀의 허리춤에서 마검 아스모데우스가 바알제붑과 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키르는 가슴팍에 매달려 있는 데카라비아에게 물었다.
“일번시에 대해 뭐 아는 것 좀 없나?”
[……내가 지식 자판기인가? 저기 있는 성녀와 같은 취급 마라.]데카라비아의 말에 옆에 있던 돌로레스가 발끈했으나 까뮤와 아이옌의 만류로 저지되었다.
“진정해. 틀린 말은 아니잖아.”
“하하- 토치카 공방전에서는 사실상 성수 자판기였지.”
“너, 너무해! 뒤에서 열심히 보호막 쳐 드렸잖아요! 이래서 힐러는 손해라니까! 잘하면 티가 안 나고 못하면 티가 확 나는…….”
“진정하세요. 선배님 아니었으면 토치카는 진작에 함락됐죠.”
“맞다. 신성력은 신기한 힘이었다. 나는 아예 처음 보거든.”
돌로레스와 싱클레어, 키르코 역시도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그동안 비키르는 데카라비아의 대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커흠! 일번시는 말이다. 몸의 구조가 이형이야. 일반적인 생명체는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개체를 나누곤 하는데 그 녀석에게는 그러한 개념이 통하지 않지.]“……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너는 너를 기준으로 인간의 개체를 나누고 정할 것 아니냐. 너라는 인간이 하나. 그리고 같은 기준을 만족하는 인간이 있으면 둘. 또 셋. 넷. 다섯……. 그러나 일번시는 아니다. 둘이서 곧 하나일 수 있고 하나이면서 곧 둘일 수 있지. 아(我)와 비아(非我)를 나누는 기준이 인간의 개념 밖에 있기에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재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너처럼 특이한 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데카라비아는 악마들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범주에 속하는 사물형 악마이다.
일번시 역시 그렇다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었다.
[아무튼. 나 역시도 많이 알지는 못한다. 일번시 녀석은 비밀이 많은 존재거든. 다만…….]데카라비아는 무척이나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목소리를 쫙 깔았다.
[‘문을 닫는 자’와 ‘문을 여는 자’의 역할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고만 들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가 전부야.]들을수록 아리송해지는 선문답에 비키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평생을 곧고 우직하게 살아온 그는 이런류의 빙빙 돌아가는 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키르가 막 다른 질문을 하려 할 때.
“비상! 앞에 지진해일이다!”
저 옆 함선의 망루 위에서 씬디웬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이들이 황급히 난간을 붙잡고 정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어마어마한 기세로 융기하는 물무리.
시커먼 언덕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까지 닿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파도가 솟아올랐다.
해수면의 가죽이 통째로 벗겨지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으음!”
튜더 역시도 상당히 긴장한 기색이었다.
저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지진해일 앞에서는 제아무리 강한 함대라고 해도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푸스스스스- 머저리들아, 뭘 그리 걱정하느냐?”
뱃머리 앞에 걸터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드 후작만큼은 천하 태평한 기색이었다.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는 튜더를 비롯한 돈키호테의 기사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지금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잊었나뇨?”
……?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그 순간.
콰-쾅!
정면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눈앞에 있던 해일이 한순간에 찢겨져 나갔다.
구멍이 뻥 뚫린 채 힘없이 주저앉는 해일.
그리고 함선 위의 모든 이들은 보았다.
해일이 함대를 덮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엄청난 괴력으로 해일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내리는 손을.
…퍼펑!
이윽고, 사드 후작이 드리우고 있는 낚시대의 줄을 쥔 손이 수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함선의 갑판 위로 내려앉는 이는 시커먼 피부에 흰 반점을 가지고 있는 범고래였다.
“가끔은 이 모습으로도 몸을 풀어 줘야 하지.”
범고래 계열 수인의 모습으로 변한 오르카는 바스티유 중령이 붙여 주는 담뱃불에 축축한 담배를 들이밀며 말했다.
퍼퍼퍼퍼펑!
오르카가 물속에서 부숴 버린 해일의 파편들은 각 가문의 가주들이 맡아 처리했다.
파편이라고는 해도 하나하나가 상당한 크기의 물벼락들이 사방팔방으로 비산하고 있었다.
…턱!
검은 피풍의 자락을 휘날리며 비키르의 앞 난간을 향해 걸터앉는 이는 괴조(怪鳥) 오시리스.
방금 하나의 거대 해일을 작살내고 온 그는 문득 비키르와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형이라면 형이기 때문일까? 오시리스는 비키르의 눈에 담긴 감정을 단숨에 읽어 냈다.
“아버님의 일로 고민하고 있느냐?”
비키르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시리스 역시 굳이 되묻지 않았다.
다만, 오시리스는 돌아서며 첨언했다.
“나 역시도 아버님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
“하지만 공감은 되더군.”
“……!”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감은 되는 것. 반대의 경우는 있어도 이러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시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옆 함선의 망루 위에 있는 씬디웬디를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너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
오시리스는 ‘굳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중얼거림을 남기고는 나타났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
비키르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여인들, 하얗게 산화한 아버지, 식어 버린 멸망의 문, 마지막 십상시와 벌이는 최후의 담판.
배가 사납게 흔들리며 마음도 요동친다.
비키르는 깊게 심호흡했다.
배는 흔들릴 수 있지만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비키르는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 냈다.
앞으로의 일은 멀리 생각할 것 없다.
오직 하나.
“악마는 죽인다.”
코앞까지 다가온 일번시와의 정면승부에 올인하면 될 일.
이윽고.
검게 물든 하늘과 수면,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혼돈 일체인 세상의 중심부에 무언가가 보였다.
수평선을 찌르며 솟아오르는 뾰족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키르코가 난간 위에 선 채 외쳤다.
“저것이 중앙 시계탑인가! 책에서 본 적 있다!”
흘러간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황도의 상징이 변함없는 위용을 뽐내며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콜로세오 아카데미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물에 잠긴 대도시의 중심가.
한때 번영과 유행의 상징과도 같았던 시가지 위로 전진하는 함대.
본격적이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황도 입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