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불화(不和)의 후작 (2)
일번시 안드라스. 또 다른 이름은 ‘불화의 후작’.
흰 깃털을 가진 날개는 언뜻 보기에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까마귀의 머리에 부엉이의 눈, 하반신은 늑대의 것이었다.
손에는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칼 하나를 들고 있었다.
늘 불만에 가득 차 있는 파괴자.
조화로운 상태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며 분란을 사랑하고 혼돈과 함께하는 존재.
차앙-
비키르는 곧바로 바알제붑을 빼 들었다.
그러나.
[후후후- 뭘 그리 경계해? 그럴 필요 없어.]안드라스는 여전히 시종일관 웃는 낯이었다.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본모습을 드러냈을 뿐이야. 서로 숨기는 게 있으면 대화가 안 되잖아?]“…….”
[우리 둘은 각자 추구하는 목표가 있지.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상충하지 않아. 그러니 일단 칼 내려놔.]상황이 이쯤 되자 비키르는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악마가 본모습까지 드러냈는데도 싸우지 않기는 처음이다.
‘……어지간한 악마사냥꾼이었다면 속아 넘어갔을지도.’
하지만 안드라스의 이런 친절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비키르는 속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불화의 후작.
무시무시한 기세로 전장을 누비며 수없이 많은 인류연합 측 대영웅들의 목을 날려 버리던 악귀.
지금 눈앞에서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다고는 해도 저것은 기본적으로 마물(魔物), 그중에서도 끝판왕급으로 흉악한 존재이다.
비키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안드라스는 짐짓 지쳤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본모습을 드러내고 싸우지 않기는 나도 처음인데? 하지만 대화를 하고 싶으니 어쩔 수 없지. 내가 불리한 상황이기도 하고.]“…….”
[자, 그럼 아까 했던 이야기를 계속해도 될까?]안드라스는 눈에서 빛을 뿜어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죽고 난 이후 세상은 많이 안정되었어. 나는 너를 원래의 세상으로 돌려보내 줄 수 있고 네 기억 속에 있는 몇몇 인물들 정도는 되살려 줄 수도 있어.]그러나.
“죽은 자를 되살려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설령 악마라 하더라도 섭리를 어길 수는 없지.”
비키르의 태도 역시도 강건했다.
“악마는 죽인다. 그것이 섭리야.”
사냥개는 사냥을 한다. 사냥감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배웠다.
그러니 대화는 여기까지, 그 다음부터 나눌 것은 칼뿐이었다.
…번쩍!
비키르는 초장부터 온 힘을 다해 검식을 전개했다.
바스커빌 8식. 번천의 이빨이 한군데로 모여들며 시커먼 태양을 만들어 냈다.
콰지지지직!
단단한 옥좌가 두부 으깨지듯 박살났다.
지난 수십 년간 지고한 존재가 기거했던 곳 치고는 꽤나 허무한 말로였다.
[이런.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어쩔 수 없나?]안드라스는 불타는 검을 휘둘렀다.
뜨거운 불길과도 같은 참격이 날아들어 비키르를 향한다.
쩌억-
비키르가 피한 곳에는 깊은 금이 패였고 그것은 이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바스커빌 8식과 안드라스의 불길이 사납게 맞붙었다.
대기가 박살 나며 곳곳에 마나가 깨져 빛나는 균열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쉽구나. 반 정도는 진실이었는데.]안드라스는 칼끝의 비키르를 밀어붙이며 히죽 웃었다.
유혹을 할 때는 절반의 진실에 절반의 거짓을. 이것이 악마들의 기본 술책임을 비키르는 잘 알고 있었다.
“네놈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식량으로 삼기 위해 이 세계로 넘어온 존재들이다. 그런 놈들과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오히려 반대인데?]“……?”
비키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안드라스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입을 열었다.
[악마는 오히려 인간을 번영케 할 수 있다. 널리 이롭게 말이야.]“헛소리.”
[그렇지 않아. 네가 우리들의 목적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안드라스는 아직도 비키르를 설득하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닭’이라는 짐승을 아나?]“……?”
닭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과 가장 친숙한 가축 중 하나이니만큼 당연한 일이다.
안드라스는 다시 한번 물었다.
[너희 인간들은 닭을 사육하고 도축하고 잡아먹지. 닭은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할까? 그것들은 과연 행복할까?]“그럴 리가.”
[아니. 그들은 행복할 거야. 하나의 개체가 아닌, 종(種)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야.]안드라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닭은 말이야. 인간에 의해 품종이 개량되기 전에는 훨씬 더 작고 나약한 짐승이었어.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해 버렸을 거야. 작고 나약하니까 대부분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다른 짐승에게 사냥당해 죽었겠지.]“…….”
[하지만 인간이 닭을 가축으로 선택한 이후 닭의 개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다른 어떤 조류보다도 더 월등한 개체수를 자랑하게 되었어. 종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상당히 효율적인 선택이 아닐까?]“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비키르의 칼날이 또다시 허공을 가른다.
안드라스는 그것을 피해 비키르의 귓가로 접근했다.
[인간들 역시도 나약하고 고단한 짐승이 아닌가?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단 말이냐?]“…….”
[전쟁, 맹수, 기근, 가뭄, 홍수, 산불, 기아, 질병. 거기에 같은 인간들끼리 다퉈야 하고, 경쟁해야 하고, 싸워 이겨야 하고…… 죽도록 노력해도 살 집 하나 구하기도 힘들고, 애 하나 키우기도 벅차며, 늙은 부모까지 봉양하려면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지.]“…….”
[번식하고 싶은 상대는 언제나 잘난 외모와 재력을 가진 경쟁자에게 빼앗겨 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온갖 시험과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밤낮없이 죽어라 애써야 하는 밑도 끝도 없는 레이스. 그렇다고 그 경주의 끝에 늘 행복만이 있던가? 아니잖아.]“…….”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던가? 아니야. 부모에 의해 ‘낳음 당한’ 것이잖아. 이 험난하고 외로운 세상에 말이야. 이처럼 인간은 강제로 태어나서 강제로 죽는 가련한 짐승이다.]안드라스는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박살난 옥좌에 다시 앉아 두 팔을 쫙 펼쳤다.
[그나마 전에 언급한 삶들은 나은 편이지. 대부분의 인간 유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제국의 영아사망률을 아는가? 무려 80% 이상이야. 성인의 평균 수명이 30대 중반인 이 세상에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고 해도 보육원을 전전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지. 그마저도 전쟁이나 질병, 기아로 인해 열 살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어 나간다. 단탈리안이 있던 보육원의 실상을 너도 봤지? 귀족 학교에는 보육원 봉사활동이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라고.]안드라스의 주변으로 어두운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비키르는 심상치 않은 기우를 느끼고 그것들을 칼로 베었다.
그러나 검은 안개는 바람을 타고 흐늘거리며 안드라스의 몸을 더욱 더 짙게 감쌌다.
[인간은 참으로 가련한 짐승이다. 욕망이 있다면 능력도 있었어야지. 지성은 있으나 그 지성으로 결핍만을 인식할 줄 아는 슬픈 존재들. 색욕, 식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 오만…… 그 어떤 욕구 하나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아는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열등감과 부채감, 패배감만 느끼게 될 뿐이다. 가끔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그 불만족들이 아주 잠시 해소된 상태에 불과하지.]강제로 태어나서 강제로 죽는 짐승.
어릴 때도 힘들고 다 컸을 때도 힘들며 죽을 때도 힘든, 늘 힘들고 버거운 것이 인생(人生)이다.
[그래서 나는 제안하는 바이다.]안드라스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절대다수의 인간이 빈곤과 기갈에 시달리며 30세, 아니 10세 이전에 죽어 나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인간이 악마의 가축으로 전락하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헛소리.”
안드라스는 비키르의 참격을 막아내며 말을 이었다.
[악마의 가축이 된다면 인간은 평균 1백 세가 넘는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상대와 마음껏 교미하고 번식하며 배부르고 따듯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질병도 전쟁도 기아도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자아실현을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1백 세가 되면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고 육신은 도축되는 것이야. 마치 성장 기간에 따라 7호 닭, 8호 닭이 나뉘어지는 것처럼.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구원’, 신과 무엇이 다르냐?]짙게 퍼지는 암흑 속에서 비키르는 이쪽을 관조하는 안드라스의 시선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의 입이 붉게 찢어진다.
[아주 오래 전에 인간에게 이 제안을 먼저 했던 존재가 있었지.]“…….”
[그게 바로 ‘신’이야.]안드라스는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신이라는 녀석은 나보다 훨씬 더 악질이지. 도축은 도축대로 하면서 약속했던 행복과 평화는 전혀 주지 않았거든. 심지어 다 크지도 않은 인간들까지 제 마음대로 잡아가잖아? 뭐, 지금껏 인간 농사가 워낙 풍년이었으니 그렇게 멋대로 구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나로서는 그저 모든 계약이 위반되고 있음에도 일방적으로 그것을 지키고 있는 너희 인간들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야.]“뭘 어쩌라는 거냐?”
[어쩌긴? 내가 인간을 위해 좋은 제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거지. 그리고 이 제안을 가능케 하려면 내 동생을 꼭 찾아야 한다는 것도.]안드라스는 말을 마치고는 얼굴을 1 황태자의 것으로 샥 바꾸었다.
황제의 장남. 정실(正室)의 적통.
그는 지금 첩출(妾出)의 이복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다.
[도와만 준다면 너를 그 시스템의 총 책임자, 즉 황제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예전의 골딩가(家)가 그랬듯……]그러나 비키르는 다시 한번 안드라스의 제안을 잘라 냈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왔군.”
[……뭐?]“네놈의 그 논리 말이다. 아주 옛날의 전국시대 때나 유행하던 사조가 아닌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마도종주국(魔道宗主國)’에서나 통했을 법한 논리다.”
비키르는 칼끝을 세웠다.
시선의 끝은 안드라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인간의 발전 욕구과 상승 본능은 가축 시스템으로 가둘 수 없다. 아무리 가둔다고 해도 결국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뚫고 나오지. 그것이 인간이다.”
마검 바알제붑이 송곳과도 같은 끝으로 아우라를 쏘아 낸다.
…콰쾅!
옥좌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먼지구름 속에서 안드라스가 날개를 펼치며 튀어나왔다.
“악마는 죽인다.”
[거참. 말이 안 통하네.]비키르의 칼과 안드라스의 칼이 허공에서 맹렬하게 교차한다.
비키르는 안드라스의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똥과 화염줄기를 걷어 내며 생각했다.
‘……그나마 칠귀타의 아스모데우스가 없어서 다행이군.’
회귀 전 안드라스의 성명절기였던 마검.
맨 처음 누벨바그에서 그 칼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마검 아스모데우스는 현재 키르코의 손에 들어가 있으니 안심이었다.
비키르는 바알제붑의 끝에 모든 아우라를 불태웠다.
그리고 안드라스 역시 비키르가 뿜어내는 아우라를 집어삼킬 정도로 짙은 암흑을 손아귀 안으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좋다. 네가 계약을 하지 않겠다면…… 하고 싶게 만들어 주마.]그 말에 비키르는 바짝 긴장해야 했다.
비록 칼은 없으나 악마 특유의 초능력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리고 지금 일번시 안드라스가 고유 능력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곧 네 스스로 계약을 구걸하게 될 것이다.]멸망의 시대를 이끌었던 악마들 중 정점에 올라 있었던 존재의 힘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