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불화(不和)의 후작 (3)
츠츠츠츠츠츠……
암흑이 드리운다.
팔을 쭉 뻗으면 자기 손가락이 몇 개인지도 셀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시야.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서도 몇몇 물체들은 유별나게 잘 보이고 있었다.
비키르의 눈앞에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쟈네트 병장.”
비키르는 끊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분명 낯익다.
회귀하기 전 같은 부대에 있었던 전우였다.
그 뒤를 이어 하나둘씩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했다.
멸망의 시대에 두고 온 전우들. 부하, 동기, 상관들이 피 흘리는 모습으로 서서 비키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으실 겁니까?] [우리를 다시 되살릴 수 있었잖아.] [전우들을 버리고 가는 건가?] [회귀한 뒤의 세상이 그토록 편하더냐?] [그래. 전우들의 희생을 뒤로하고 잘 살아 봐라 어디.] [너만을 믿었거늘…….]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비키르를 향해 고함쳤다.
굵은 식은땀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마음속 깊은 곳의 트라우마가 악령처럼 되살아나 비키르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여자들이나 끼고 다니며 시시덕거리려고 회귀하셨습니까?]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했나?] [그러고도 네놈이 악마사냥꾼이냐?] [전우들의 희생 따위는 이제 기억도 안 나는 거냐구!] [……배신자! ……변절자!]과거의 망령들이 장송곡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아래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고 그 안에서 창처럼 날카로운 혓바닥을 꺼내 비키르를 향해 날 선 말을 뱉어 냈다.
…퍼억!
혓바닥 하나가 창이 되어 날아와 비키르의 가슴팍에 쿡 꽂혔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혓바닥들이 비수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퍼퍼퍼퍽!
비키르는 전신이 피범벅이 되는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깜짝 놀라 확인해 보니 몸은 멀쩡하다.
방금 전의 피분수는 환각이었을까?
‘안드라스는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이 특기. 절대로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비키르는 마음속에 와 꽂히는 창과 비수들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그때.
돌아선 비키르의 시야에 이번에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네가 뭔데 마음대로 계약을 거절해?] [우리들의 의견은 안 들어 보고?] [너는 그래도 귀족가에서 태어나기라도 했잖아.] [나는 태어나자마자 음식물 쓰레기통에 파묻혀 죽었는데?] [나는 마도열차의 코인 사물함 속에서 얼어 죽었어.] [응애- 으아앙-]그곳에는 보육원에서 죽어 간 어린아이들이 서 있었다.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혹은 태어나자마자 생을 마감한 아이들.
부모에 의해 강제로 낳음 당한 존재들.
그들은 비키르를 향해 원망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무리 중 제일 앞에 서 있는 소녀가 한 명.
[오빠. 아니, 아저씨.]님펫(Nymphet).
오래 전 목숨을 잃었던, 회귀 이후의 첫 죄책감이 되었던 아이.
님펫은 비키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인간의 발전 욕구니 상승 본능이니 잘도 말씀하시던데…… 아저씨가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나요?]“……그건.”
비키르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님펫은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뚫고 나온다고? 호호호- 그것은 제 혓바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님펫의 얼굴을 한 망령은 히죽 웃는다 싶더니 입에서 긴 창과도 같은 혓바닥을 뱉어 냈다.
…퍽!
비키르의 가슴팍에 틀어박힌 님펫의 말은 지독하게도 날카롭고 차가운 것이었다.
마치 이 세상처럼 말이다.
이윽고, 멸망의 시대에 남은 전우들과 이쪽 세상에서 죽어 간 모든 아이들이 비키르를 둘러쌌다.
[자격도 없는 놈이 감히!] [매달아라! 매달아!] [돌을 던져라!] [죽여! 죽여야 해!]동시에 계속해서 비수가 박혀 든다.
…퍽! …퍽! …퍽! …퍼억!
그것은 마음에 박힐 뿐만 아니라 몸에도 박히고 있었다.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
비키르는 바알제붑을 길게 뽑아 들었다.
콰콰콰쾅!
바스커빌 제 8식. 극한의 실전 경험을 통해서 오를 수 있는 단계. 산 자의 마지막 종착지.
이 다음부터는 죽은 자들의 영역이다.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넘어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비키르는 여덟 개의 이빨을 드러내며 주변의 암흑을 흩어 버렸다.
그러나 계속해서 날아드는 혓바닥의 비수들은 비키르의 전신에 박히고 있었다.
‘어디냐?’
비키르는 시야를 가리는 어둠 속을 계속해서 내달렸다.
그런 비키르의 귓가에 안드라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넌 여기서 죽을 거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계약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해 줄 수 있지.]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감미롭고 포근하게 들렸다.
내미는 손을 그저 마주 잡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인류에게 약속된 구원, 꽃길처럼.
……그러나.
퍼억!
비키르는 가슴을 꿰뚫는 비수들의 세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서 있었다.
이미 흘러내린 피와 바닥에 박힌 창과 비수로 주변은 온통 처참하게 변해 있다.
그야말로 고행의 가시밭길 그 자체.
눈앞에 약속된 꽃길과 지금껏 걸어온 가시밭길은 실로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었다.
[무섭나? 두려운가? 그럴 거야.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 자, 지금이라도……]귓가에 꿀처럼 끈적하게 엉겨 붙는 안드라스의 목소리.
그러나.
“악마는.”
비키르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더욱 더 사납고 거칠어져 있었다.
“죽인다!”
검붉은 반월이 주변의 검은 운무를 난자했다.
비키르. 상처투성이의 사냥개는 가시밭길 위에 선 채 헐떡거리는 숨결을 토해 냈다.
피비린내가 짙게 퍼지며 뜨거워진 몸뚱이가 주변의 대기를 달군다.
“죽음이라면 두렵지 않다.”
비키르는 이미 한 번 죽어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나락수에서의 경험까지 합친다면 두 번이나.
그 외에도 수없이 넘어온 사선의 끝. 그 결과가 지금이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도 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해 보았다. 은유나 비유 따위가 아닌, 실제로 겪었던 경험이야.”
남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죽음을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자.
실제로 죽음을 겪고도 이 자리에서 숨을 토해 내고 있는 이질적인 존재.
비키르는 손을 움직여 칼날을 들었다.
지금까지 꺾고 넘었던 무수한 죽음들의 고개에서 항상 길벗이 되어 주었던 칼.
비키르는 칼을 휘둘렀다.
어쩌면 생에 마지막으로 토해 내는 검식이 될지 모른다.
여덟 개의 궤적이 마치 길잡이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암흑 속에서 수없이 많은 망령들이 쏘아 보내는 혓바닥 비수만은 어쩔 수 없었다.
비키르는 피분수를 뿜어내며 무릎을 꿇었다.
“…….”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는 비키르.
그 앞으로 어둠이 걷혔다. 안드라스가 혀를 끌끌 차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강직하면 부러지는 법이지.]안드라스는 피투성이가 된 비키르의 머리를 발끝으로 슬쩍 건드렸다.
[죽었나? 흐음- 마음까지 죽어 버린 건가? 아아, 힘 조절을 잘못했군. 그럼 2황태자 놈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머리칼을 쥐어뜯는 안드라스. 그의 표정은 점차 짜증으로 물들고 있었다.
…퍼펑! …쾅!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 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지진.
황궁 밖에서의 전투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듯했다.
[일단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들부터 정리해야겠군.]안드라스는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안드라스가 비키르에게서 천천히 등을 돌리려 할 때.
“……악마는.”
창자가 끊어질 때나 날 법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비키르가 초점도 맞지 않는 눈을 들어 안드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인다.”
[하하하하- 비루먹은 개가 따로 없구나.]안드라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비키르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느릿하게 움직일 뿐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마나도 모두 고갈되어 희미한 아우라조차도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손을 움직이고는 있지만 손가락 끝에 이빨이 만져지지 않는다.
그저 죽음의 문턱에 도달하기 직전인, 이제는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 마르고 퍼석퍼석한 감각만이 여덟 번 반복될 뿐.
안드라스는 당연히 비키르의 마지막 발악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안드라스는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아홉.
여덟 번째 검식의 뒤로 이어지는 아홉 번째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팟-
비키르의 바알제붑 끝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음?]안드라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둠에 익숙한 그의 동공을 한순간에 확 태워 버릴 정도로 밝은 빛이 폭사되고 있었다.
[끄악!?]질끈 감은 두 눈이 타들어 간다.
눈꺼풀을 뚫고 매운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밝게 빛나는 점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리고 아홉.
안드라스가 눈을 떴을 때는 작은 빛의 점이었던 그것들이 어느새 시야 전체를 꽉 채우는 거대한 빛무리로 변한 뒤였다.
[지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도 검을 처음 잡던 시절과 같은 마음으로 쉬지 않고 계속해서 부던히 뜀박질을 하는 이만이 얻어 가는 것이 있는 법.]케인코르소가 언젠가 말했었던 8식의 묘리.
[너는 아마 살아생전에는 이 경지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9식의 영역은 죽음의 문턱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지.]육식(六式).
모든 감정을 초월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칠식(七式).
버렸던 감정을 되찾아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팔식(八式).
칼을 쥐고 또다시 처절한 수라장을 수없이 전전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그리고 구식(九式).
정말로 죽음을 경험한 이만이 오를 수 있는, 지고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핵심에 있는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
“…….”
비키르는 희미해지는 시야 너머로 빛나고 있는 아홉 개의 궤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암흑 너머로 언젠가 들었던 케인코르소의 목소리가 아스라졌다.
[이 경지는 일반적인 인간들의 이해와 공감, 납득, 믿음, 상식, 개연성과 인과율을 모두 부정해 버리는 영역.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는 절대로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지.] [아해야, 보아하니 삶에 미련이 많아 보이는구나. 하긴.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을 나이이긴 하겠군.]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그때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던 말.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죽음을 경험했었던 이질적인 존재는 그동안 손끝에서 놓쳐 왔던 다른 수많은 죽음들을 목도했다.
그리고 생사경(生死境)의 기로에서 불현듯 찾아온 어떠한 깨달음은 피안(彼岸)의 저편 그 어딘가에 있는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다.
비키르는 손을 뻗어 문 너머의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짧게, 찰나를 찰나로 쪼개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흩어 놓은 것 중의 한 점(點).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들여다본 지고의 영역 상층부.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본 그곳의 풍경은 망막에 불타 아로새겨지듯 그대로 자국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자국을 따라 멍하니 손을 움직이자 그것은 곧 살아 움직이는 별무리의 궤적이 되었다.
…번쩍!
비로소 아홉 번째 이빨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