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87
487화 불화(不和)의 후작 (5)
피의 강이 드디어 말라붙었다.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인간계와 마계의 전쟁은 역사서에 ‘멸망의 시대’라는 섬뜩한 기록으로 남았다.
그리고 인간계의 승리가 반석에 아로새겨지는 그 날.
철혈의 검가(劍家)로 이름 높은 바스커빌 가의 정문에 목 하나가 내걸렸다.
비키르. ‘비키르 반 바스커빌’.
바스커빌 가의 가주 ‘휴고 레 바스커빌’의 사생아.
그간 가문의 뒤에서 손에 무수한 피를 묻혀 왔던 그림자.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였다.
* * *
…….
잘린 목은 말이 없다.
개의 목이 내걸린 세상은 전쟁 후의 후유증을 그대로 앓고 있었다.
반파된 황도.
불과 물에 의해 쑥대밭이 된 적과 흑 산의 수해.
폐허로 변해 버린 콜로세오 아카데미.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른 수십, 수백 그루의 나락수.
여전히 붉은 죽음에 잠식되어 있는 리바이어던가, 돈키호테가, 어셔가.
포연만이 피어오르는 바스커빌가.
타락한 쿼바디스가.
몰락한 부르주아가.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모르그가.
식수 고갈에 의해 바짝 말라죽은 토치카의 시체들.
부서진 천사상.
무너져 내린 시계탑.
흔적도 없이 사라진 누벨바그 등등…….
너무나도 익숙한 이 풍경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수없이 죽어 간 전우들의 피로 붉어진 저 황무지를 어찌……!
“……! ……! ……!”
비키르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렇다.
안드라스는 멸망의 문을 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멸망의 문을 연 것이나 진배없게 되었다.
이미 멸망의 문이 열려 있는 저쪽의 세상.
회귀하기 전 비키르가 살았던, 그리고 죽었던 세상.
그곳으로 통하는 차원문들을 우르르 열어 버린 것이다!
[후후후후- 멸망의 문이 이미 열려 있는 세계선. 그곳과 통하는 문이야.]이것은 비단 안드라스의 이능만으로 이뤄 낸 것은 아니었다.
황제의 핏줄.
대륙을 하나로 통일한 대제국 록의 시황제 ‘골딩 제럴드’는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초대 황제의 핏줄을 이어받은 골딩가(家)의 1 황태자 역시도 핏줄 속에 내재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숙주의 이능인 미래 예지, 그리고 고유 이능인 ‘문을 여는 능력’이 하나로 결합된 결과 안드라스는 시간축을 뛰어넘어 과거나 미래 세계로의 문을 여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평행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권능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 능력이 여러모로 상당히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어마어마한 권능이었다.
다른 십상시들이 무력이 출중한 숙주를 고른 것과 달리 안드라스는 자신이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이능력을 가진 숙주를 골랐다.
그 결과 지금 이곳에 비키르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안드라스는 히죽 미소 지었다.
[이제야 거래에 응할 마음이 좀 드나? 내 동생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준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게 해 주마.]“…….”
[설마 이쪽 세계마저 파멸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가는 곳마다 불행만을 몰고 올 셈이냐? 적어도 한쪽의 세계는 지켜야 할 것이 아니냐.]“…….”
비키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죽고 없는 원래의 세계.
그곳에는 이미 멸망의 문이 열려 있고 유극지옥의 멸망이 강림한 상태이다.
츠츠츠츠츠츠……
그곳과 현 세계가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한 다리를 거쳤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옥과 간접적으로 연결된 셈이다.
불의 비가 범람해 올 것이다.
수많은 마물들이 넘어올 것이다.
또다시 무수히 많은 인류가 사멸할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지난 삶에서 인간은 승리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멸망의 시대는 끝났으니까.”
그렇다.
비록 인류의 99%가 죽고 비키르 역시도 마지막에 악마가 남기고 간 모략에 빠져 처형당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는 멸종되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대홍수가 일어나 겁화의 장마를 끝내 버렸다.
십상시들은 모두 죽거나 마력을 탕진한 채 실종되었다.
온 세상을 뒤덮었던 천불은 꺼지고 마물의 잔당들은 전부 사냥당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멸망의 문을 넘어온 모든 사요한 것들은 결국 사라졌다.
그 결과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던 인간들이 비록 한 줌밖에 남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긴 것은 이긴 것이었다.
“그러니 그쪽 세상과 연결되는 차원문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쪽 세계로 넘어올 불길과 마물은 없어.”
비키르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회귀하기 전, 수없이 많은 영웅들의 희생으로 인해 인류는 종말을 피했다.
그것은 목이 잘리기 전 똑똑히 본 모습이었다.
그러나 안드라스는 가소롭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뭐?”
[정말로 멸망이 끝났고 너희 인간들이 이겼다고 생각해?]안드라스는 조소를 넘어 숫제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불쾌한 미소의 저변에는 숨길 수 없는 여유와 악의가 엿보이고 있었다.
이윽고, 주변에 몇 개의 차원문이 더 열렸다.
츠츠츠츠츠츠츠츠……
시커먼 기운이 일렁이는 포탈.
암흑 속에 거울처럼 투명한 막이 생겨난다.
차원문 너머의 세상이 조금 더 멀리 보이게 되었다.
더 넓은 땅이, 더 높은 하늘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간.
“……!?”
비키르의 두 눈에 경악과 불신이 차올랐다.
흔들리는 동공에 기억에 없던 세계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비키르가 처형당한 이후, 세계는 더욱 더 참혹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모여 있었던 고원지대에서 연신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미 멸종시킨 줄 알았던 거대한 마물들이 내지르는 포효 소리가 들려온다.
산을 휘감고 있는 지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섬처럼 큰 두족류, 땅을 찢고 나오는 거인,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큰 새, 육지를 내달리는 각종 맹수들.
그리고 언뜻 보기에도 강대한 마력을 지닌 마인들이 수많은 마물 떼를 이끌고 날뛰고 있었다.
동쪽의 사막은 온통 인간의 핏물로 가득 차 진흙펄이 되었다.
서쪽의 밀림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한 폭풍이 불고 있었다.
남쪽의 바다는 지독한 역병의 창궐로 인해 썩은 물로 변해 버렸다.
북쪽의 설원을 용암지대로 바꾸어 버릴 정도로 뜨거운 불길의 해일이 밀려온다.
떼를 지어 날뛰고 있는 악마와 몬스터들은 비키르가 겪어 봤던 그 어떤 처절한 시대와 비교해도 더욱 더 쪽수가 많았고 훨씬 더 흉폭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온통 분노와 슬픔, 비탄에 가득한 절규뿐.
남은 극소수의 인간들이 실로 처절하게 항전하고 있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어, 어찌 이런? 분명 나는 인류연합의 승리를 보고 죽었거늘……!?”
비키르가 당황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회귀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분명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어온 노련한 백전노장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저것이 정말 내가 살던 세계라고?”
비키르의 동공이 떨린다.
눈앞에 있는 세계는 분명 비키르가 원래 살던 세계가 맞았다.
이는 초인의 반열에 이른 직감에 따른 것이었다.
비키르가 회귀하기 전에 보고 듣고 들었던 모든 참혹한 것들을 아득히 웃도는 무시무시한 광경.
멸망의 시대를 겪어 봤던 회귀자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인외마경 그 자체.
-당했다! 악마들이 더 몰려온다!
-전멸! 전멸입니다!
-이건…… 이런 건 불가능해!
-대체 얼마나 더 싸워야 하는 거야!
-차라리 죽여! 죽여라!
-차라리 멸망의 문이 처음 나타났을 때가 좋았지.
-영웅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끝났어. 이제는 진짜 종말이다.
.
.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비키르와 함께 멸망의 시대를 이겨 냈던 역전의 용장, 맹장들마저 쓰레기처럼 죽어 나자빠질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
멸망의 문에서 튀어나온 마물들과 그것들을 이끌던 십상시는 그야말로 ‘튜토리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안드라스가 교묘한 환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두 번 세 번 의심했지만.
[……인간. 저것은 환각이나 세뇌술이 아니다. 진짜 현실이야.]악마인 데카라비아의 눈에도 같은 것이 보이고 있는 이상 거짓은 아니다.
지금 차원문 너머로 보이고 있는 풍경은 분명히 비키르가 처형당한 이후의 세상이었다.
안드라스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 뻥 뚫린 배를 움켜잡았다.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었지? 네가 죽고 난 다음에 세상은 많이 안정되었다고 했던가? 굳이 따지자면 그쪽이 거짓말이었다.]“저럴 수는 없다! 나는 분명 십상시 열 마리가 전부 패배하는 것을 보고 죽었어!”
[잘 봤어. 우리들은 실패한 게 맞아. 어디까지나 ‘우리들은’ 말이야.]“……!?”
안드라스는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멸망의 문’만 남아 있다면 악마들은 얼마든지 세력을 재건할 수 있다. 왜인지 알아?]그리고 이내, 안드라스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는 말이 이어졌다.
[우리 십상시들은 마왕들 중 ‘최약체’에 불과하거든.]뻔한 스토리.
흔해 빠진 클리셰.
……하지만 그런 것들이 통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뻔하고 흔해 빠진 것들이야말로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수많은 차원문들 저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드리워진다.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그 그림자들은 어찌나 크고 거대한지 저편의 세계에 짙게 드리운 것으로도 모자라 차원문 너머 이쪽의 세계에까지 뻗어 나오고 있었다.
안드라스는 말했다.
[나는 안드라스. ‘불화의 후작’. 그리고 72개의 서열 중 고작 63위에 불과한 말석의 악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나?]입꼬리가 귀밑을 넘어 정수리까지 찢어져 올라가는 웃음과 함께.
[저 멸망의 문 너머에는 나보다 더 강한 악마가 예순둘이나 더 있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