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사냥개 달린다 (1)
[……왜 내가 너를 회귀시켰는지 기억났어.]피기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동시에, 비키르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은 회귀하기 전, 후에도 동일하게 펼쳐졌던 사건들이었다.
‘우리가 언제 괴롭혔어?’
‘이건 다 친해지자고 하는 거야. 앞으로 오래 볼 건데.’
‘야, 왜 쳐 울고 XX이야. 우리 나쁜 사람 만들라고 작정했냐?’
‘얘. 울지 말고. 술 한 잔 받아.’
‘꺄악! 아 진짜 더러워! 스타킹에 다 튀었잖아!’
‘와하하하! 이 미친놈 토했네? 오티 때부터 아주 화려하구만!’
‘앞으로 네 별명은 토쟁이다! 토쟁이 피기!’
‘내가 졸업할 때까지 널 토쟁이라고 부르겠어!’
저번 생에서의 피기는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퇴한 뒤 말단 공무원이 되어 어렵게 살아갔었다.
빚까지 내서 자신을 아카데미에 보내 준 부모님을 모시고 말이다.
그 이후 멸망의 시대가 열려 악마들과 대전쟁이 시작되자 피기는 자원해서 전선으로 나가 수많은 보급 전략과 정보 분석 및 수집책을 실행해 인류 연합군 측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존경할 만한 전우(戰友)였다.
세상에 실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해 떠났지만 아카데미에 나락수가 솟아나고 황도가 불타고 후배들이,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뒤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고 연합군에 참전했을 정도로 강한 남자였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몇 개월 뒤, 피기는 암살당하고 만다.
싸늘하게 식어 돌아온 아들의 시신을 본 부모님의 망연자실한 그 표정을 비키르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키르는 회귀한 뒤 인과율을 비틀었다.
‘한 번만 더 아카데미 안에서 거슬리게 굴어 봐라. 그때는 네놈들뿐만 아니라 네놈들의 애비, 애미까지 싹 다 죽여 버릴 테니까.’
밤의 사냥개는 친구를 괴롭히던 불량배들을 공포로 찍어 눌러 두 번 다시 같은 악행을 되풀이하지 못하게끔 막았다.
그 작은 친절은 마치 눈덩이처럼 굴러갔고 종국에는 이토록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바로 최종 흑막, 가장 강대한 악마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는 결과를!
[저쪽 세계선의 나 역시도 너를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었나 봐.]피기의 말에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 피기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비키르는 그때도 피기의 시신을 수습했었다.
암살 당시, 피기는 죽지 않았었다.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피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냥 외면했다.
핑계를 대자면 전쟁 중이었고 상황이 워낙에 급박했었다.
죽어 가는 피기를 살리는 데 쓰는 시간과 노력보다 대영웅의 잔상처 하나를 치료하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그 편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었을 테니까.
세상은 효율이다.
세상은 인과율의 톱니바퀴로 돌아가고 그 크고 작은 수많은 톱니바퀴들은 각각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가치가 매겨진다.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작고 하잘것없는 톱니바퀴는 차갑게 식어 갔다.
세상에 대한 불신, 고독, 지독한 냉소와 염세(厭世) 속에서.
바로 그때.
그런 피기의 눈을 감겨 주는 손길이 있었다.
주름지고 상처투성이인, 끈적한 피로 범벅되어 있는, 온통 화상과 칼자국으로 뒤덮여 투박한.
……그러나 아주 크고 따듯한 손.
아주 아주 오래 전, 아카데미에서 만난 적이 있던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피기는 가물거리는 시선으로 비키르를 보았다.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소년의 시종.
두들겨 맞고 울고 있을 때면 말없이 약을 건네던 손길.
여행 당시 아무도 옆에 있지 않을 때면 조용히 그 옆에 함께 앉아 있어 주던.
혼자 밥을 먹고 있노라면 어느새인가 맞은편에 앉아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시험을 망친 날에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날에도, 그냥 이대로 삶을 끝낼까 싶을 때도 가끔씩 나타나 위로를 건네던 그 소년.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소년의 손길이 자신의 눈을 가려 주고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유일하게 자신에게 잘 대해 주었던 소년.
비록 아주 찰나의, 작은 친절에 불과할지라도 피기의 마음속에는 그것이 태양만큼이나 크고 따듯하게 남아 있었다.
문득, 피기는 아카데미에서 중간고사를 치를 때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분명 시종 소년의 목소리였다.
‘이제 괜찮다.’
시종 소년은 피기의 눈을 감겨 주며 말했다.
그것은 이 세상에 현존하는 그 어떠한 마법보다도 더욱 더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일순간에 싹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다.
출생의 설움도,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도, 자식으로서의 의무감도, 학업의 버거움도,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에 대한 외로움도, 끝끝내 자신을 외면한 세상도, 몸의 고통도, 그 모든 것을 덜어주는 한마디.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라.’
그것은 바로 ‘친구의 위로’였다.
그리고 피기가 시간축 너머에 있던 비키르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순간, 비키르 역시도 종종 듣곤 했던 환청을 들었다.
‘……좋은 사람이네.’
이제야 똑똑히 기억난다.
그것은 시간축 너머의, 아니 직접 겪었던 기억 속 과거의 피기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
회귀 이후 피기의 피를 암두시아스, 키메리에스, 안드레알푸스, 플라우로스 등의 악마에게 흘려 넣었을 때마다 들었던 환청의 정체였다.
[사람은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내가 겪어 본 사람은 받았던 친절을 기억하는 동물이더라.]인간 피기는 비키르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 비키르.”
그 미소는 과연 세상을 밝게 비출 만큼 해맑고 환한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 냉소와 염세 속에서 활짝 열린 멸망의 문을 닫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피기조차도 비키르 한 사람에게만큼은 차가울 수 없었다.
그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과거 세에레와 까뮤 사이에 이어져 있었던 무형의 끈처럼, 피기가 남긴 잔류사념은 질기고 억센 인연의 끈이 되어 다른 세계선으로 간 비키르와 이어졌다.
혹시 그쪽 평행세계라면 좀 다른 결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기대가 어려 있는 끈.
그 결과, 비키르는 회귀했다. 아니, 평행의 시간축을 건너뛰었다.
안드라스가 비키르를 선택해 소환하게끔 유도한 피기의 안배에 의해.
그것은 이쪽 세계선의 피기와 저쪽 세계선의 피기, 이형의 안드라스 둘이서 만들어 낸 합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였던 타인에게 무심코 베풀었던 작은 친절이 기적을 일궈 내어 세상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개연성 없고 핍진성 없는 우연적 전개를 납득하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지껄여라!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전개로 감히 누굴 우롱해!?]안드라스. 잭 메리듀.
모체의 뱃속에 있을 때 일찌감치 탯줄로 목을 매어 각성한 그는 천출 출신의 피기를 제거하기 위해 유년시절부터 모진 노력을 기울였다.
요람에 뱀을 보내거나 일부러 위험한 사지로 몰아넣거나 가문에서 내쫓는 등등…….
[그 천한 년이 설마 황궁 밖으로 달아날 줄은 몰랐는데, 그냥 바로 죽여 버렸어야 했다. 으으으!]그러나, 피기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니었어도 나는 알아서 죽었을 거야. 온갖 인간불신과 세태혐오에 빠져서 말이지.] [……!] [누가 나에게 ‘너 좋은 놈이다’라고 한마디만 해 줬어도 그렇게는 안 되었겠지만.]피기는 다른 세계선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쪽 세계선의 나는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 가족도, 친구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콜로세오 아카데미에서 만났던 동기 튜더, 산쵸, 비앙카, 싱클레어, 돌로레스.
그리고 나락수에서 힘을 합쳤던 수많은 동료들, 타는 목마름을 함께 참았던 토치카의 전우들.
그들의 면면들을 가슴에 담은 채 피기는 관짝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피기는 선택했다.
[나는 문을 닫겠어.]안드라스의 두 자아는 각각 ‘문을 여는 자’와 ‘문을 닫는 자’로 나뉜다.
안드라스가 열었던 문은 안드라스가 닫을 수 없다. 그것은 안드라스가 닫아야 한다.
반대로 안드라스가 닫았던 문은 안드라스가 열 수 없다. 그것은 안드라스가 열어야 한다.
잭이 연 문은 피기만이 닫을 수 있다.
피기가 닫은 문은 잭만이 열 수 있다.
결국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만은 같았다.
츠츠츠츠츠츠츠……
안드라스가 열었던 문이 피기에 의해 닫히고 있었다.
[안-돼애애애애!]안드라스가 절규했지만 이미 늦었다.
뎅겅- 뎅겅- 뎅겅- 쩍! 퍼억!
문이 닫히며 저 위의 차원문 바깥으로 서서히 몸을 빼내고 있던 몇몇 거대한 악마들의 몸뚱이가 잘려 나갔다.
성운을 먹는 뱀, 벌레들의 지도자, 흡혈귀들의 왕, 짙은 독을 뿜어내는 전갈, 겉은 아름다우나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여성, 사막을 베어 먹는 아귀, 모든 썩은 것들의 우선권자, 산을 휘감는 지네, 바다 밑을 걸어 다니는 자, 땅을 찢는 거인, 불을 마시는 사자, 하늘을 뒤덮는 날개를 가진 새, 무덤가의 처형인, 늪에 누워 썩어 가는 시체, 깊이 파고드는 촉수 등등등…….
…쿵! …콰쾅! …쿠르릉!
악마들의 절단된 육체 일부분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지진을 일으킨다.
[으으…… 으으으으으……!]안드라스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62개의 차원문들은 서서히 닫혀 가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다! 네가 닫겠다면 나는 계속 열어 주마!]안드라스는 남은 마력을 쥐어짰다.
츠츠츠츠츠츠츠……
피기가 열고 안드라스가 닫는다면 어차피 결과는 동일.
이제부터는 누가 더 마력이 많은지, 누가 더 빠르게 문에 간섭하는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나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안드라스는 두 조각으로 갈라진 심장이 이번에는 네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비키르가 정면에 선 채 안드라스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있었다.
…뿌욱!
비키르는 안드라스의 몸에 계속해서 칼침을 놓았다.
카잔바이는 파괴되었고 아스모데우스는 저 멀리 키르코의 손에 들어가 있다.
안드라스를 상징하던 쌍검은 하나만 남았고 그마저도 지금은 파괴된 상태.
게다가 결국 피기의 영혼과 몸을 빼앗지 못한 안드라스는 반쪽만 남은 신세가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려 아홉 개의 이빨을 개화해 낸 비키르가 밀릴 리 없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안드라스의 육체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냥감의 목을 문 사냥개는 승리를 직감했다.
그리고 사냥감의 목뼈를 부러트리기 위해 더욱 더 힘을 끌어올린다.
……그 순간.
“!?”
비키르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안드라스의 몸에서 튄 검은 피.
그것이 비키르의 상처를 통해 몸으로 흘러 들어간다.
츠츠츠츠츠츠츠츠……
마치 피기의 피가 악마에게 충격을 주었듯, 안드라스의 피 역시도 비키르에게 지금껏 없던 기묘한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건국의 신화, 시황제(始皇帝)의 핏줄을 이었다.]그것은 악마로서의 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피.
인류 역사상 가장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던, 그 고유한 이능으로 전 인류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었다던 한 고대 영웅의 유물.
황가, 아니 예언가 일족 골딩가(家)로서의 능력이었다.
[자, 스포일러(Spoiler)다. 지금부터 네놈의 미래를 보여 주마.]안드라스는 비키르의 두 팔을 꽉 잡은 채 웃었다.
[……한평생을 악마와 얽혀 있었던 네 인생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