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494
494화 종말 다음날 (1)
…팟!
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였다가 금세 없어졌다.
아주 짧은 순간 깜빡였던 별빛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인지 아니면 좋은 눈썰미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비참한 현실에 지쳐 슬픈 눈으로 밤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모를 한 패잔병만이 그 별을 보았다.
인류연합군 207연대 1대대 소속, 쟈네트 소령.
그녀는 화상과 칼자국으로 얼룩진 입술을 달싹였다.
“오늘은 길잡이별이 이상하네.”
그러자 옆에서 벌레와 도마뱀을 굽던 미르야무 병장이 물었다.
“대대장님. 방금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아아, 아니. 길잡이별이 좀…….”
“네? 길잡이별이 왜요? 평소랑 똑같은데.”
그러자 병사들 몇몇이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일곱 개의 길잡이별 성좌가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쟈네트 소령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방금 전에는 분명 여덟 개였는데.”
“하하하- 길잡이별은 일곱 개 아닙니까. 일곱 살 난 어린애도 알겠습니다. ……뭐, 이제 일곱 살 난 어린애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지만요.”
미르야무 병장의 말에 쟈네트 소령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밤하늘에서 눈을 뗐다.
멸망의 시대.
피의 강이 말라붙으며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인간계와 마계의 전쟁은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살아남은 인간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그 영광을 반석에 아로새기던 그 날.
진정한 종말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재앙들을 어린애 투정으로 전락시켜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십상시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힘과 사악함을 가진 악마들이 자그마치 62마리.
그것들은 장시간 지속되었던 겁화의 장마와 그 이후로 무려 150일간 세상을 휩쓸었던 대홍수로 쑥대밭이 된 인간계를 다시 한번 지옥으로 뒤바꿔 놓았다.
‘……차라리 병사로 있었을 때가 행복했었지.’
쟈네트 소령이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겨 있을 때.
“대대장님! 공습입니다! 마물들이 옵니다!”
살라딘 대위가 황급히 뛰어오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상관들이 외치는 명령들 역시도 요란하게 메아리친다.
키르케 중장, 하얄 준장, 쿠베린 대령 등등……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어온 베테랑들이 마지막 남은 인류연합의 생존자들을 그러모아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대장님! 어서!”
“이번 방어선이 뚫리면 끝장입니다! 뒤에는 마지막 남은 인류가…… 어린아이들이…….”
살라딘 대위와 미르야무 병장이 앞다투어 채근했다.
“오냐. 안다. 각자 위치로!”
쟈네트 소령 역시도 투구를 쓰고 검과 방패를 들었다.
뒤에는 미르야무 병장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이 정말로 제 마지막 전투겠군요.”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겠지.”
두 군인은 지평선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마물 떼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잠자리에 들기 전 친자매들이 대화하는 것 같았다.
문득, 미르야무 병장은 물었다.
“대대장님. 그런데 대대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늘 태연하실 수 있습니까?”
“음?”
“언제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시지 않습니까? 마치 무슨 가호라도 받고 계신 것처럼.”
신관들 대부분이 사라진 지금 가호라는 것은 허망한 꿈결 속의 서사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쟈네트 소령은 그저 싱긋 웃었다.
“가호라. 가호라면 있지. 믿는 구석 하나쯤은 있어야 이 험난한 세상 씩씩하게 살 것 아닌가.”
“에엥!? 믿는 구석이 따로 있으셨던 겁니까? 그게 뭔가요!?”
마지막까지 남아 허물없이 친해진 미르야무 병장의 채근에 쟈네트 소령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제 코앞까지 몰려온 마물 떼를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편지.”
“……예?”
“편지 말이다. 옛 상관한테서 받은.”
쟈네트 소령.
그녀는 가슴속에 품은 편지 한 장의 내용을 부적 삼아 지금껏 버텨 올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그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막 군에 입대했을 때 만났던 한 젊은 하급장교와의 추억이었다.
“그분의 성이 아마 바스커빌이었지?”
“네? 바스커빌? 저-기 최전방에 있을 그 미친개들 말입니까?”
“그래. 다른 바스커빌들과는 달리 참 멋진 분이셨지. 뛰어나고 믿음직한 사냥꾼이셨어. 비록 전쟁 중반부에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시긴 했지만…….”
쟈네트 소령은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하게 느껴지는 옛 추억을 떠올렸다.
미르야무 병장은 눈앞으로 몰려드는 마물 떼를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퍽 낭만적인 분이셨나 보군요. 편지를 다 남기시고.”
“아니, 편지를 쓰는 성격은 아니셨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참 이상하지.”
“어떤게요?”
“편지 말이야.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도착했거든.”
“그거야 뭐, 우편배달부가 게을렀거나 뭐 그런 게 아닐까요?”
“흠. 그렇다기에는 지난 세월이 너무 유구했는데? 편지는 그분이 처형당하고 나서도 정말 한참 뒤에나…….”
하지만 두 군인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콰쾅!
최전선에 등장한 거대한 몸집의 마인 때문이었다.
그것은 주변에 있는 다른 마물들과는 뿜어내는 기세 자체가 달랐다.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 그리고 네 장의 날개와 긴 꼬리.
휘어진 뿔과 태양처럼 타오르는 눈, 그리고 전신에 꽉 들어찬 밀도 높은 근육.
쟈네트 소령은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용마인(龍魔人).”
용과 악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저주받은 혼혈.
영원한 디아스포라(Diaspora).
용들에게도 악마들에게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울분을 다른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푸는 고약하고 사악한 생명체다.
[크-아아아아악!]그것은 악귀처럼 포효하며 인간 진영을 향해 달려왔다.
단신으로도 수천 명의 인간을 능히 찢어발길 수 있는 압도적인 전투력 앞에 최후의 인류들마저 긴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평소에는 나락수 속에나 도사리고 있던 놈이 여기에는 웬일이지? 최종결전이 되니까 기어 나온 건가?”
쟈네트 소령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인류는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처지.
한 발자국이라도 뒤로 밀려난다면 그때는 진정코 끝이었다.
“막아라! 저지선이 뚫리면 뒤에 있는 피난민들이 몰살당한다!”
쟈네트 소령은 아우라를 뿜어내며 용마인에게 맞섰다.
터무니없이 강한 상대이니만큼 기회는 한 번뿐이다.
목숨을 도외시한 일격!
온 힘을 다해 휘둘러진 쟈네트 소령의 칼이 용마인의 주먹이 휘둘러지고 난 뒤의 빈틈을 노렸다.
그러나.
…따앙!
단 한 번뿐이었던 기회는 허무하게 스러졌다.
쟈네트 소령의 칼은 용마인의 몸에 난 비늘에 닿는 즉시 반토막으로 부러져 버렸다.
“…….”
쟈네트 소령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어렸다.
고개를 든 곳에는 입꼬리를 죽 찢은 채 웃고 있는 용마인의 얼굴이 보였다.
이윽고. 용마인의 커다란 주먹이 운석처럼 떨어져 내린다.
저것에 맞는다면 즉사, 아니 최소한 후방의 십수 미터가 초토화되겠지.
그리고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여기까지인가.’
쟈네트 소령이 막 삶을 체념하려는 순간.
“대대장님!”
그녀의 허리를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미르야무 병장. 그녀가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쟈네트 소령을 밀어 넘어트린 것이다.
콰콰쾅!
저 옆으로 날아간 쟈네트 소령.
그녀는 바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미, 미르야무!?”
하지만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아…….”
쟈네트 소령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메마를 대로 메말라 완전히 딱딱한 고체가 되어 버린 줄 알았던 안구가 아직도 이렇게 많은 수분을 머금고 있었는지 자기 자신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미르야무. 이등병 시절부터 유난히 자신을 잘 따랐던 녀석.
그 녀석이 병장이 되도록 함께 전장을 누볐다.
선임자들이 하도 빨리, 많이 죽어 나가서 진급도 쉬웠는데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겨우 병장까지밖에 못 달았던 녀석.
겁이 너무 많아서 늘 도망만 다녔기에 그랬다.
“……그런 겁보 녀석이 나를 구하고.”
쟈네트 소령은 이를 악물었다.
부하의 복수를 해야 한다.
터져 나간 입술을 다시 한번 꽉 깨문다.
고갈된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부러져 나간 칼을 다시 한번 꽉 잡았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 하나만큼은 데려가겠다.”
쟈네트 소령은 인생 마지막 모든 힘을 쥐어짜 내어 정면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거대한 그림자가 드러났다.
용마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아무런 방어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선 채로.
‘기회다!’
쟈네트 소령은 지금 이 순간이 기적처럼 주어진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녀는 칼에 마나를 불어넣은 채 온 힘을 다해 돌진했다.
목표는 심장. 단칼에 꽂는다!
쟈네트 소령이 온 힘을 다해 도약하는 그 순간까지도 흙먼지가 걷히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용마인의 그림자는 가만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마치 하잘것없는 벌레에게 아량을 베풀기라도 하듯.
“그 오만함이 네놈의 사인이다!”
이윽고, 쟈네트 소령은 온 힘을 다해 부러진 칼날을 용마인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실패를 직감해야 했다.
…뚝! 팍삭-
부러진 검이 다시 한번 부러졌다.
애초에 균열이 너무 많이 가 있어서 힘을 다 받지 못한 것이다.
용마인의 가슴팍에는 제법 큰 상처가 났지만 심장에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아.”
쟈네트 소령은 정말로, 정말로 끝임을 직감했다.
이제는 마나도, 힘도 없었다.
지금 당장 저 용마인의 손아귀에 잡혀 머리통이 으스러진다고 해도 어떠한 변명도 저항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하다.’
미르야무 병장의 복수를 해 주지 못했다.
처절하게 죽어 간 다른 전우들의 복수 역시도.
쟈네트 소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이왕이면 고통 없는 한 방을 기대하면서.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생각했던 죽음은 오지 않는다.
‘뭐지? 설마 벌써 끝난 건가?’
원래 죽음이라는 게 이렇게 아무런 느낌도 없이 찾아오나?
아니면 충격이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한 건가?
“……?”
쟈네트 소령은 의아함에 감았던 눈을 살짝, 아주 살짝 떠 보았다.
그러자 눈앞에 놀라운 풍경이 보였다.
“……!”
완전히 걷힌 흙먼지 너머, 쟈네트 소령의 앞에는 여전히 용마인이 우뚝 서 있었다.
가슴팍에 칼도 박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우람한 육체를 뽐내듯 가슴을 떡 펴고 말이다.
……문제는, 그런 용마인의 어깨 위가 텅 비어 있었다는 것.
푸슉! 푸슈슉!
잘려 나간 목의 절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오른다.
현재 용마인은 머리통을 잃어버린 채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발밑에는 미르야무 병장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쟈네트 소령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7초. 그리고 8초.
자신이 헷갈린 길잡이별의 개수만큼 초침이 움직였다.
쟈네트 소령은 그런 뒤에야 용마인을 죽이고 미르야무 병장을 구한 ‘누군가’의 얼굴을 쳐다볼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그는……. 그는…….
“다들 살아 있었군 그래.”
너무나도 여상한 어조로 말하는 목소리.
마치 어디 먼 곳으로 산책, 아니 유람이라도 다녀온 듯한 태도.
흡사 긴 휴가에서 복귀한 군인처럼, ‘그’는 자신의 내무반이나 다름없는 전장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키르케 대위, 하얄 소위, 쿠베린 중사, 쟈네트 병장, 살라딘 상병, 미르야무 이등병…… 모두 살아 있었구나. 207연대 4중대 1소대, 아직 건재하군.”
‘그’는 분명 쟈네트 소령의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쟈네트 소령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기도 했다.
모순된 설명이지만 아무튼 그랬다.
얼굴을 뒤덮고 있던 화상과 칼자국은 간 곳이 없었고 나이도 수십 살은 더 어려 보인다.
그러나.
“장하다. 잘해 주었어.”
풍기는 기세만큼은 여전히 압도적, 아니 전보다도 훨씬 더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한편.
“이, 이 사람. 하늘에서 떨어졌어요. 길잡이별에서 왔어요.”
바닥에 엎어져 있던 미르야무 병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별에서 온 그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미르야무 이등병. 그때는 너무 짬찌끄레기였어서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겠군.”
“뭐, 뭣? 짬찌? 제가요? 저 병장인데…….”
미르야무 병장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쟈네트 소령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환희에 젖은 어조로 외쳤다.
“중대장님! 살아 계셨군요!”
“……나를 알아보겠나?”
“당연하죠! 역시 살아 계실 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어디 계셨습니까! 모습은 왜 그렇게 변하시고……?”
“역시 살아 있었냐니? 내 목이 잘리는 것을 못 봤나?”
“예? 아, 보기는 봤는데…… 그 뒤로 편지를 보내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의 쟈네트 소령은 이내 품 안에 간직하고 있던 가호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하도 오랜 세월이 지나 누렇게 변색된 양피지에 적힌 편지글이었다.
-보고 싶구나, 전우여. 그곳에서는 편히 지내고 있는가?
그것을 본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런가. 그때 그 편지가 진짜였던 건가. 뭐가 뭔지 모르겠군.”
그때, 용마인이 죽은 것을 본 인류 연합 측의 군인들 몇몇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쟈네트 소령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본 뒤 경탄에 찬 외침을 내질렀다.
“중대장님? 중대장님이십니까?”
“살아 계셨습니까?”
“어디 계셨습니까! 모두가 중대장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살아 계실 줄 알았습니다! 중대장님이 돌아가셨을 리 없다고 전선에 나가 있는 모두가 입을 모아……!”
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짧았다. 아니, 짧아야만 했다.
콰콰쾅! 우지지지지직!
용마인의 시체를 두부처럼 으깨 버리며 등장한 거대한 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발굽과 긴 갈기를 휘날리는 마수형 악마가 용마인의 시체를 짓이기며 등장했다.
[푸흐하하하하- 나는 유극지옥의 기마공자 ‘오로바스’! 서열 55위의 귀공자이시다! 덧없는 저항을 계속하는 이 누구냐뇨!?]거대한 악마의 등장에 모든 인간들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어 간다.
“끄, 끝이다! 서열 55위가 나타나다니!”
“이런 놈이 왜 여기에 있어!”
“틀렸다. 마왕급 악마가 강림한 이상 모든 게 끝…….”
그러나. 인간들이 미처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번쩍!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다섯 개의 빛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불타는 쇠꼬챙이, 강맹한 저격, 신성한 빛기둥, 황금의 주먹, 날카로운 참격이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키며 지면에 내리꽂혔다.
[끄아아아아악-]방금 전에 나타났던 악마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다.
“아이고, 허리야. 멀미도 나는데, 웩-”
“데뷔부터가 요란하군.”
“이게 이세계에서의 첫 신고식이네요.”
“시계 초침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
“종말의 다음 날도 뭐 별 것 없군.”
악마가 깔려 죽으며 만들어진 구덩이 바깥으로 다섯 명의 여자들이 걸어 나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장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던 모든 악마와 인간들이 싸움을 멈췄다.
그리고는 입을 딱 벌린 채 일제히 이쪽을 돌아본다.
이윽고.
쿠-르르르르륵!
아우라의 폭풍이 시커멓게 휘몰아치며 주변 수십 미터를 쓸어버렸다.
아홉 개의 이빨을 가진 거대한 검둥개 한 마리가 전장 한복판에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
악마고 인간이고 전장에 모인 모든 이들은 선 자세로 굳은 채 마른침만 꼴깍 삼켰다.
그리고.
이 모든 시선들을 앞두고 ‘그’는 말했다.
“악마는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