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야만부족의 노예 (1)
짹짹짹-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
비키르는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떴다.
아침의 빛이 전신을 아프게 찌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비키르는 마치 전신이 박살나기라도 한 듯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완전히 일어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비키르는 어제, 아니 그새 며칠이 지났을지 모를 지난밤을 떠올렸다.
수해 속 어둠을 향해 온몸의 힘을 폭사했던 기억이 난다.
무리하게 쥐어짜낸 마나, 장렬하게 태워낸 아우라.
그래듀에이터 중급의 힘에 마검 바알제붑까지 뽑아들고 덤빈 결과는 참혹했다.
‘패배’.
칠흑에 몸을 파묻은 거대한 마물 ‘마담 여덟다리’, 그것은 비키르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생물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그녀가 갑작스럽게 폭사된 빛에 놀라 주춤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목숨을 잃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화력을 만들어 냈던 비키르의 반동 데미지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전신의 근육과 혈맥들이 모두 파열되었다.
그것들을 떠받쳐야만 했던 뼈의 부담은 더욱 심했다.
칼을 쥐었던 손가락과 팔뚝의 뼈는 분쇄골절을 일으켜 산산조각이 났고 나선골절로 꺾인 갈비뼈의 뾰족한 부분들이 내장을 찌른다.
내팽개쳐졌던 다리뼈는 사골절에 횡골절에, 아무튼 여러모로 골고루 토막토막 분절골절을 일으킨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뼈, 근육, 핏줄, 피부, 뭐 하나 성한 구석이 없다.
‘그래도 목숨은 건져 다행이군.’
비키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틱스 강의 가호와 바알제붑의 능력인 ‘질긴목숨’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마담 여덟다리의 전투력을 잘못 파악한 것에 대한 결과는 뼈아팠지만 그래도 일단 휴고의 감시망을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곧 바스커빌가에 자신의 죽음이 보고될 것이다.
마도성 아돌프, 까뮤, 스태포드셔, 세쌍둥이 등등 목격자들도 많았으니 죽음을 증명하는 것에야 걱정할 바 없다.
더군다나 제 분수를 모르고 나대다가 죽은 것도 아니고, 무려 모르그가의 차기 가주 후보를 마물과 야만족으로부터 구하고 죽었다.
‘……바스커빌가는 앞으로 모르그가와의 외교에서 큰 이익을 보겠지.’
더군다나 기사 가문인 바스커빌가이니만큼 이 미담은 가문 대내외적으로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이 정도 무훈(武勳)이라면 황실에서까지 포상이 내려올 가능성이 컸다.
죽어서도 가문에 명예와 이익을 안겨 줬으니 한심한 놈 취급은 당하지 않겠지.
그뿐인가? 훗날 가문으로 돌아가 생존 사실을 밝혔을 때의 취급이 더욱 좋아질 것이다.
‘빨리 몸을 회복하고 전생의 힘을 되찾아야겠다.’
비키르는 무르시엘라고의 힘을 운용하여 몸의 상처들을 치료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아물어 가고 있는 뼈와 상처들.
그때.
비키르는 문득 목에 걸려 있는 밧줄을 발견했다.
올가미 하나가 비키르의 목에 개목걸이처럼 걸려 있었다.
이것은 스틱스 강의 가호와 무르시엘라고의 능력 말고도 비키르의 목숨을 건져 주었던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마물의 공격에 온몸이 짓이겨지기 직전, 뒤에서 날아와 목을 잡아당긴 이 올가미가 아니었더라면 비키르는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꽤나 시기적절하게 날아든 이 올가미, 그 때문에 목이 부러져 죽을 뻔하기도 했지만 일단 살아났으니 다행이다.
비키르는 목에 걸린 올가미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올가미 밧줄의 끝은 천막을 지나 문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비키르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천막 내부를 돌아보았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원뿔형의 천막. 나무 지지대 몇 개가 기둥의 전부였고 바닥에는 마른 낙엽들이 수북하게 깔려 있었다.
바스락-
옆에는 웬 유리병 하나가 둥글어 다니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스커빌가의 문양이 찍혀있는 포션 병이다.
천막 안에서는 바싹 마른 흙냄새, 낙엽 냄새, 짐승의 털 냄새, 포션이 졸아붙은 냄새가 뒤섞여 나고 있었다.
비키르는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천막 바깥으로 나갔다.
한 발을 뗄 때마다 전신이 타는 듯 아팠지만 주변 정황을 파악해야 했다.
이윽고, 천막 바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천막들, 곳곳에서 들려오는 북소리, 높게 쌓인 장작더미 위로 치솟는 불길.
많은 수의 야만인들이 그 사이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검거나 은색의 머리카락, 갈색의 피부, 남녀 할 것 없이 잘 단련된 근육.
사슴이나 재규어의 가죽으로 만든 상의, 도토리즙으로 물들인 천 하의.
몸에 문신이 있거나 흉터가 새겨진 이들이 마물의 사체를 해체해 고기를 발라내고 있는 옆으로 아이들이 새를 잡으며 놀고 있었다.
쾌활하고 생기 넘치는, 그러나 다듬어지거나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분위기.
비키르는 이곳이 야만부족 ‘발락’의 부락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바스커빌가와 오랜 천적(天敵) 관계였던 적진의 한복판.
바짝 경계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몸이 만신창이이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키르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발락의 전사들은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비키르를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다녔다.
여자들이나 아이들은 조금 쭈뼛거리며 경계하는 것 같았지만 그뿐이었다.
바로 그때.
“빨리 빨리 가! 걸어!”
어디선가 신경질적인 외침이 들려온다.
비키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야만족 전사 몇몇이 밧줄에 묶인 포로들을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일렬로 서서 터덜터덜 걷는 포로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검은 머리칼에 갈색 피부를 가진 타 부족의 사람들.
하나같이 다 모진 고문과 학대를 당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키르는 그중 듬성듬성 섞여 있는 아는 얼굴들을 발견했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분명 바스커빌가, 그리고 모르그 가에 속해있던 전사들.
요새에서 만났던 이도 있었고 혹은 이곳 정글까지 함께 들어왔었던 이도 있었다.
밧줄에 생선처럼 전신이 메여 있는 그들은 개목걸이 하나만을 목에 걸고 있는 비키르와 아주 잠시 눈이 마주쳤다.
“…….”
“…….”
그리고 이윽고, 그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비키르는 조용히 선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발락의 전사들은 포로들을 창끝으로 찔렀다.
“빨리 올라가라. 늑대에게 물려 죽기 싫으면.”
그들이 포로들을 데리고 간 곳은 기다랗게 솟아 있는 한 나무였다.
껑충 키가 큰 이 장대에는 칼날처럼 튀어나온 가시들이 빼곡하게 돋아 있었다.
발락의 야만인들은 포로들로 하여금 맨몸으로 이 칼날의 나무를 오르게 만들었다.
포로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가며 이 칼침의 탑을 오른다.
오르지 않는 이가 있다면 야만인들은 나무의 밑동에 불을 질렀다.
나무는 줄기 표면에 기름이 발라져 있었기에 불길은 계속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갔고 그 속도는 대부분의 포로들이 나무를 타는 속도보다 빨랐다.
결국 포로들은 칼날 같은 줄기들에 찔리고 베여 과다출혈로 죽거나 밑에서부터 타 올라오는 불길에 타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저 아래의 지상으로 추락해 죽고 마는 것이다.
컹! 컹컹! 컹!
나무 아래에서는 늑대들이 연신 요란하게 짖으며 포로들을 나무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칼침의 나무를 오르지 않으려다가 창에 찔려 죽거나 늑대에게 물려 죽었다.
발락의 한 늙은 주술사가 고안해 냈다는 끔찍한 ‘가시나무 형벌’.
지옥이 따로 없는 듯한 이 처형식을 비키르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때.
“후후후, 저 꼴 나지 않은 것에 감사해라.”
누군가 비키르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훈. 저번에 까뮤에게 마취침을 쐈던 야만전사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비키르를 죽이고 싶다는 듯 살벌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대장의 애완견이 아니었더라면 바로 삶아 버렸을 텐데.”
“…….”
“거기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빨리 네 주인이나 찾아가!”
아훈은 비키르의 엉덩이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
바닥에 넘어진 비키르는 가만히 아훈을 바라보았다.
아훈은 그런 비키르의 시선을 받고는 약간 움찔했다.
‘무슨 놈의 눈이…….’
고요한 눈동자 속에는 한 줌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다.
포로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것도, 만신창이가 된 몸이 느끼는 고통도.
그 무엇도 비키르의 영혼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것을 알자 아훈은 왠지 주눅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비키르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목에 걸려 있는 밧줄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훈은 뒤에서 이만 갈 뿐 그런 비키르를 따라가지 못했다.
* * *
‘……아까 그놈. 이름이 아훈이라고 했었지?’
아마도 저번에 늑대 등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것 때문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키르는 방금 자기 엉덩이를 걷어찬 놈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일단은 참을 뿐.
지금도 스틱스 강의 가호와 무르시엘라고의 재생력은 비키르의 몸을 착실하게 원상복구 시켜 놓는 중이다.
그리고 그동안 비키르는 자신을 구해 줬던(?) 올가미의 주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한참 동안이나 목에 걸린 밧줄을 잡아가며 걸어간 결과, 비키르는 마을에서 꽤 떨어진 외진 곳으로 가게 되었다.
바윗골 사이로 폭포가 떨어지는 웅덩이, 작은 샘물이 자리한 곳.
맑은 수면 아래 가재 몇 마리가 기어 다니는 것이 보인다.
밧줄은 그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
비키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따라가던 밧줄이 웅덩이 중앙으로 이어져 물 아래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바로 그때.
촤아아악!
난데없이 물보라가 일더니 물속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으로 흩어지는 물방울, 은발과 흑발이 뒤섞여 있는 머리칼, 뾰족한 세모꼴의 귀.
갈색 피부에 큰 눈을 가진 한 소녀가 물속에서 알몸으로 걸어 나왔다.
올가미의 밧줄 끝은 그녀의 손목에 단단히 묶여 있는 채였다.
“…….”
비키르는 야만족 소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반달형의 짙은 눈썹, 여우처럼 휘어진 눈매, 지금 몸담고 있는 웅덩이처럼 맑은 눈동자, 오똑한 코에 붉은 입술.
전과 달리 얼굴의 숯검댕이 지워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분명히 기억 속에 있었다.
예전 언더독 시 정화작업 당시 불법 노예경매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야만족 소녀였다.
그때와는 정반대로 엇갈린 위치. 비키르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직시했다.
“…….”
“…….”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 대치를 먼저 깬 이는 야만족 소녀였다.
그녀는 비키르의 목에 걸린 목줄을 잡아당기며 활짝 웃었다.
“엎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