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사냥꾼과 사냥감 (2)
“…….”
비키르는 늑대의 등에 탄 채 말이 없다.
그리고 그런 비키르의 앞에 타 있는 아이옌은 연신 뒤를 힐끔거리며 비키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팠어?”
“…….”
“화났어?”
“…….”
아이옌은 고개를 아예 뒤로 돌려 비키르를 쳐다본다.
그런 아이옌에게 비키르는 무뚝뚝하게 대답할 뿐이다.
“앞에 봐라.”
아이옌이 몰던 늑대가 뿌리에 걸려 한번 휘청거렸다.
아이옌은 급히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고는 늑대를 몰았다.
그러면서도 뒤에 있는 비키르가 신경 쓰이는지 시선을 계속 뒤쪽으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정말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지 모를 광경이다.
이윽고, 뿌리들이 사라지고 널찍한 평지가 나오자 아이옌은 늑대의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는 늑대의 등에 올라있는 채로 비키르를 향해 돌아앉아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훈은 쪼잔하고 집요한 녀석이야. 이게 놈의 치졸한 보복을 막을 수 있는 길이었다.”
“…….”
“……왜 말이 없어. 응?”
계속되는 주인님의 채근에 비키르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파서.”
실제로 그렇다. 입 안이 온통 피딱지 투성이라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아프다.
그때. 아이옌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비키르를 바라보았다.
“많이…… 아픈가?”
아이옌은 비키르의 목을 바라보았다.
흰 피부에는 개목걸이가 쓸린 붉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
아이옌은 잠시 그 자국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비키르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이내 목의 상처를 혀로 한번 핥았다.
비키르가 흠칫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자 아이옌 역시도 일순간 자기가 한 행동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비키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야만족들은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나?’
개과의 동물들이 그렇게 하기는 한다.
발락의 전사들은 늑대와 친하니만큼 이런 행동이 일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키르는 문명인이니만큼 이런 행동들이 어색했다.
‘게다가, 환부를 혀로 핥는 것은 오히려 감염의 여지가 있기에 위험하지.’
그래서 비키르는 아이옌이 만약 다시 한번 목의 상처를 핥아주려고 하면 단호하게 거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
아이옌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홱 돌릴 뿐이다.
어째서인지 뾰족한 귀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채로.
* * *
발락의 모든 전사들이 그렇듯, 아이옌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성격이었다.
비키르가 아파서 말수가 적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굴자 그녀의 기분 역시도 금세 다시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옌은 비키르에게 아까 때린 것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선물을 하나 준다고 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나? 내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지. 하나만 말해 봐라.”
그러자 비키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활 쏘는 법을 알려 줘.”
“……아. 활.”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약간 맥 빠진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옌은 즉각 튀어나오는 비키르의 대답에 왠지 약간 실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활 좋지. 활…….”
아이옌은 잠시 중얼거린 끝에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걸었다.
“좋다. 마침 사냥도 나왔으니 너에게도 활 쏘는 법을 알려 주지. 어차피 그 몸뚱이로는 칼보다 활이 나을 것이다.”
말을 마친 아이옌은 비키르의 뒤로 가 그의 가슴팍을 꽉 끌어안은 듯한 자세를 취했다.
찰싹 붙어 꾹 눌러오는 아이옌의 몸, 그 무게감은 비키르의 척추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비키르는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꼭 이런 자세로 배워야 하나?”
“뭐든 몸으로 배우는 게 최고지. 불만 있나?”
몸이 망가져 있는 비키르로서는 반항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윽고. 아이옌은 예비 활을 꺼내 비키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비키르는 손에 와 닿는 낯선 감각에 잠시 추억을 회상했다.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어린 사냥개들이 받는 교육에는 병기학개론이라는 것이 있었던지라 비키르는 활에도 제법 능숙하다.
그리고 멸망의 시대를 살아온 칼잡이들은 사실 칼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병기들을 거의 다 일정 수준까지는 다룰 줄 알았다.
비키르 역시 기본적인 궁술의 요령 정도는 이미 터득하고 있는 채였다.
……말하자면, 부전공이랄까?
‘하지만 어디 가서 내세울 정도는 아니었지.’
회귀하기 전, 그는 활을 꽤 잘 다루기는 했지만 딱히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바로 손질해 먹을 수 있는 작은 사냥감을 잡는 정도?
하지만 이곳 발락, 전원이 궁술의 대가인 이들과 함께 살면서 배운다면 전생과는 또 다른 경지를 밟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커다란 사냥감을 잡겠다는 일념 때문일까?
아이옌은 아까부터 비키르에게 착 달라붙어 열심히 궁술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번 사냥에는 새끼 늑대의 손이라도 빌려야지.”
그만큼 아이옌은 이번 사냥에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발락의 식구들 300명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최소 200킬로그램이 넘는 사냥감을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최근 전사들의 사냥 실적이 형편없어 부족 내에 굶주리는 이들도 많은 상황.
“여기서 공을 세워야 앞으로의 네 생활도 편해질 것이다.”
아이옌의 말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
아이옌의 늑대 ‘바키라’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사냥감을 찾아냈다는 신호였다.
아이옌은 몸을 낮추고 바키라가 냄새를 맡는 곳의 흙을 한 줌 집어 들었다.
썩은 톱밥과 낙엽, 이끼와 모래가 섞여 있는 흙.
흙은 약간 젖어 있었고 톡 쏘면서도 노릿한 냄새가 났다.
아이옌은 확신하듯 말했다.
“옥스베어야.”
비키르는 아이옌이 말한 마물을 알고 있었다.
위험등급 : A
크기 : 5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7부 능선
-두 개의 거대한 뿔을 가지고 있는 초대형 곰.
식육목 곰과 최강의 육상 포식자이며 완벽에 가까운 살상 병기, 적과 흑 산맥 7부 능선 생태계의 최강이자 정점으로 통한다.
동족을 제외한다면 천적이 거의 없는 마물.
두 개의 물소 뿔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곰.
전신이 두꺼운 근육과 지방, 빳빳한 털로 뒤덮여 있는 강력한 마물이다.
일전에 가문 내의 실습 때 몇 번인가 겪어 본 적이 있었던 몬스터.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돌아다니는 개체들은 가문 내부의 우리에 생포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개체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과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 너머부터가 이놈의 영역인가보군.”
아이옌은 냄새가 이어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옥스베어는 일부러 독한 오줌을 뿌려 사냥감들을 위축시키고 경쟁자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어지간한 포식자였다면 이 냄새에 꼬리를 말고 도망갔겠지만 발락의 젊은 층을 이끄는 사냥대장 아이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비키르 역시도 회귀하기 이전, 닳고 닳은 사냥개로 활약했던 이답게 차분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옌이 씩 웃었다.
“무섭지 않나?”
“그다지.”
“제국 출신 꼬맹이답지 않게 배짱이 두둑해서 좋군. 옥스베어라면 발락의 노련한 사냥꾼들도 부담스러워하는 존재인데.”
아이옌은 비키르의 태도가 새삼 더욱 마음에 든 것 같다.
이내, 아이옌과 비키르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냄새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아이옌은 동물적인 감으로 사냥감을 쫓았다.
때로는 늑대인 바키라보다도 더욱더 냄새를 잘 맡을 때도 있었다.
비키르 역시도 추적술에 능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망치는 인간을 대상으로 했을 때에만 그렇다.
‘좋은 기회로군.’
비키르는 아이옌의 노련한 마물 추적술을 어깨너머로 습득하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덤불숲과 키 작은 관목들이 즐비한 구릉지대의 위쪽에서 목표 대상을 마주칠 수 있었다.
커다란 옥스베어 한 마리가 덤불 사이를 헤치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살벌하게 휘어진 두 개의 뿔,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두껍고 빳빳한 털, 말도 안 될 정도로 투덕투덕 붙어 있는 살집과 근육.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것으로 보이는 이 옥스베어의 신장은 약 8미터 정도로 비키르가 회귀하기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옥스베어들보다도 거대했다.
“……저 정도면 위험등급을 상향 조정해야겠는데.”
비키르가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저 정도 덩치를 가진 괴물이라면 정면승부가 힘들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물러나 다른 사냥감을 노리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이옌은 물러나지 않았다.
“쫓아가자.”
그녀는 비키르의 옆으로 바짝 달라붙는다.
비키르는 미약하게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저런 덩치는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보아하니 옥스베어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한 개체 같은데.”
“바보. 누가 저놈을 잡겠다고 했나?”
아이옌의 말에 비키르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암곰이 있으면 숫곰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단 말이다. 봐.”
아이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덤불숲 너머에서 반응이 왔다.
다른 옥스베어 한 마리가 원래 있던 옥스베어에게 접근해 온 것이다.
아무래도 비키르와 아이옌이 처음에 발견했던 거대한 옥스베어가 암컷인 것 같았다.
새로 나타난 수컷 옥스베어의 덩치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체고는 기껏해야 4미터가 겨우 넘는 수준, 몸무게는 거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발정기라도 된 것일까?
암컷 옥스베어가 거대한 몸을 움직이자 수컷 옥스베어가 은근슬쩍 다가와 털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나아가 가슴과 허리를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좋았어. 저게 진짜 사냥감이다.”
아이옌은 싱글벙글 웃으며 수풀 아래 숨은 비키르를 가슴팍과 허리로 꾹 눌렀다.
비키르는 수컷 옥스베어와 암컷 옥스베어의 그루밍을 보며 자기의 두 팔을 꽉 쥐는 아이옌의 손아귀 힘을 느꼈다.
파사삭…
수풀 속에 숨은 아이옌의 몸이 비키르의 몸에 더욱 가깝게 밀착되었다.
습하고 뜨거운 숨결이 귓불에 닿아 부서진다.
잘 단련되어 있는, 탄력이 있고 부드러운 그녀의 몸 곳곳 전신의 피부가 비키르의 등을 감싸 누르듯 달라붙었다.
등을 통해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몸을 활시위처럼 바짝 긴장시킨다.
자연스럽게도, 비키르는 하나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되게 무겁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