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사냥꾼과 사냥감 (4)
‘암곰이 있으면 숫곰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비키르는 아이옌이 이렇게 말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현재 비키르와 아이옌은 밀림 깊숙한 곳에 있는 한 토굴 앞에서 잠복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굴속에는 커다란 암컷 옥스베어와 작은 수컷 옥스베어가 들어가 있었다.
이 두 옥스베어는 벌써 사흘간이나 쉬지 않고 교미하고 있는 상태였다.
암컷의 힘과 욕구는 엄청났다.
특유의 거구로 굴 입구를 막고 기진맥진한 수컷이 도망가지 못하게 찍어 누른다.
수컷 역시도 종자가 좋은지라 이틀 정도는 암컷의 해소되지 않는 갈증에 어울려 줄 수 있었으나 사흘째부터는 슬슬 힘이 달리는지 종종 죽는 소리로 앓곤 했다.
암컷은 동족들 중에서도 유난히 강한 개체이기에 욕구도 유난히 왕성하다.
기나긴 겨울잠을 앞두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수태를 하고 동면에 임할 모양인지 수컷을 잠시도 놓아주지 않은 채 채근하고 있었다.
수컷이 모든 것을 쏟아내고 퍼져 버리면 그 위로 올라타 전신의 털을 그루밍해 주며 수컷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아까 하던 짓을 계속 연이어 줄기차게 하는 것이다.
비키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작게 탄식하는 비키르의 품에는 방금 잡아온 잉어와 연어, 나무열매와 버섯 등등이 가득 안겨 있었다.
아이옌 역시도 잡다한 식량들을 모아와 동굴 앞에 깔아두었다.
이것들은 비키르와 아이옌이 먹을 식량이 아니었다. 저 토굴 속에서 교미하고 있는 옥스베어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 둘은 지난 사흘간 옥스베어들의 교미를 돕고 있었다.
배가 고파진 암컷이 밖으로 식량을 구하러 나오면 아이옌과 비키르는 암컷이 가능한 더 빠르게, 많이 교미를 할 수 있게끔 이렇게 약간의 식량들을 제공해 주었다.
암컷 옥스베어는 독이 있는지 없는지를 신중히 살핀 뒤 그것들을 가져가 수컷에게 먹여 기력을 회복시켜 놓았다.
아이옌은 피식 웃었다.
“저 열매와 버섯들은 단기간에 힘을 북돋아 주는 것들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몸에 해로워. 몸의 열기를 급격하게 상승시킨 뒤 다시 급격하게 떨어트리거든.”
비키르 역시도 저 식재료들의 효능을 알고 있었다.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힘이 강해지지만 그것은 결국 생명력을 깎아내서 불태우는 것으로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그리고 암컷 옥스베어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가져가는 것 같았다.
수컷 옥스베어 역시도 이 버섯과 열매들의 효능을 아는 눈치였지만 당장 암컷의 욕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별 수 없다.
먹는 수밖에.
먹이를 공급하는 도중 가끔 비키르가 실수로 냄새나 흔적을 남기기라도 하면 암컷 옥스베어는 경계심 가득한 태도로 굴 밖으로 나와 경고를 남겼다.
암컷 옥스베어는 늙어서 눈이 나빴지만 그만큼 귀가 발달해 있는 것 같았다.
[크르릉!]놈은 주변의 굵은 통나무들을 발톱으로 찢어발기고 바위들을 뽑아 부숴 버렸다.
수백 년은 살았음직한 거목이 통째로 부러져 버렸고 작은 언덕을 지탱하던 바위들이 산산조각났다.
한참 동안이나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암컷은 주위에 침입자의 흔적이 더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기진맥진해 있는 수컷 위에 올라탔다.
덤불 뒤에 숨어 있던 비키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침입자에게 하는 경고인지, 수컷에게 하는 경고인지 모르겠군.”
저렇게 힘을 과시하는 행동은 침입자를 물러나게 만드는 효과도 있지만 주눅이 든 수컷이 함부로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비키르는 이제야 왜 아이옌이 크고 힘센 암컷을 첫 추격 대상으로 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강하고 큰 암컷일수록 수컷의 힘을 확실하게 빼 놓을 수 있으니까.
한편.
잠복하고 있는 사냥꾼들도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아이옌은 바람의 방향을 계산한 뒤 옥스베어들에게 냄새가 흘러가지 않는 방향을 잡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코코넛 껍질 속에 폭포에서 잡아 온 가재를 넣고 끓인 맑은탕. 추가로 들어간 것이라고는 소금 한 줌과 보드라운 수초 정도다.
아이옌은 자기가 만든 맑은 탕을 비키르에게 권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재들도 비키르의 앞으로 전부 다 밀어 놓았다.
정말로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지 모를 광경이었다.
“많이 먹어라. 그래야 몸이 낫지.”
상당한 양의 식량을 비키르의 코앞으로 들이미는 아이옌.
비키르는 그녀의 모습에 왠지 까뮤가 겹쳐 보인다고 생각했다.
…뿌득!
빨갛게 익은 바닷가재의 몸통이 반으로 분리된다.
딱딱한 껍데기가 부서지자 그 안에서 통통하게 오른 흰 살이 삐져나왔다.
노랗고 푸른 내장이 뜨끈한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비키르는 가재 머리를 씹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미친 듯이 교미만 하는군.”
옥스베어들은 사흘 간 거의 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토굴이 쉴 새 없이 진동하고 안에서 암컷과 수컷의 신음소리가 뒤섞여 나오는 것을 사흘 내내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기가 질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 비키르를 향해 아이옌이 장난기 가득한 눈을 빛낸다.
“저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뭐?”
“발락의 남자들은 다들 저 정도는 하는 것으로 아는데. 제국의 남자들은 아닌가 보지?”
비키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옌의 말은 예전의 일로 신뢰를 잃어서 믿을 게 못 된다.
그녀의 말을 믿고 아무 데서나 소변을 봤다가 부족원들에게 망신을 당했던 적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아이옌은 계속해서 비키르에게 깐족거렸다.
“너는 저렇게 못 하나?”
“…….”
“하긴 샌님의 나라에서 왔으니 못할 수도 있겠군.”
“누가 샌님이냐.”
“그러면 너도 저렇게 할 수 있나?”
“…….”
“할 수 있나? 할 수 있냐구우-”
자꾸 채근하며 귀찮게 구는 아이옌.
비키르는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골치 아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예 무시하기로 했다.
실로 건방진 노예였다.
……바로 그때.
[크릉!]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아이옌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걷혔다.
그녀는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고 재빨리 활과 화살을 쥔 채 덤불 너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스럽게 굴던 열일곱 소녀는 간 곳이 없다.
지금은 예리한 살기를 뿜어내는 사냥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르르르르……]아이옌의 파트너 늑대인 바키라 역시도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키르 역시 바닷가재의 집게발을 내팽개치고 일어나 아이옌의 옆에 수그렸다.
두 마리의 옥스베어가 들어가 있는 토굴 속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우욱! 그웨에엑!]지금껏 수컷에게 살뜰하게 대해주던 암컷이 헛구역질을 몇 번 하는가 싶더니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암컷은 수컷에게 이빨을 세웠고 감추어 놓았던 손톱을 빼들어 위협했다.
수컷은 암컷의 급격한 태세전환에 당황했지만 지금껏 붙어 있었던 정을 믿었는지 바닥에 엉거주춤 누운 상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녀석은 아무래도 이곳 넓고 포근한 보금자리에 조금 더 누워 있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암컷은 수컷이 계속 뭉그적거리며 눌러 붙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뻐억!
둔탁한 소음.
암컷이 수 톤 어치의 힘이 담긴 앞발을 날렸다.
이빨이 부러지고 피가 튄다.
귀싸대기를 한 대 얻어맞은 수컷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그제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굴 밖을 향해 도망쳐 나왔다.
아이옌이 쾌재를 불렀다.
“암컷이 수태를 확신했나보군.”
새끼를 배는 것에 성공했으니 이제 굳이 수컷의 씨앗을 쥐어짤 필요도 없다.
동족포식을 서슴지 않고 하는 곰들의 세계.
교미를 마치고 난 이성은 그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경쟁 포식자에 불과하다.
[크아앙!]암컷은 도망치는 수컷에게 한 번 더 포효했다. 두 번 다시는 자기의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다.
수컷은 혼비백산해서 암컷의 토굴로부터 멀어진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암컷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했다.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고 행동거지 자체가 또렷하지 못하고 비실거린다.
털은 푸석푸석하고 윤기도 많이 바래 있었다.
코와 눈은 건조하게 말라붙었고 허리와 배, 옆구리, 허벅다리에 투덕투덕 튼실하던 지방들은 전부 다 연소되어 홀쭉했다.
방금 전에 얻어맞은 뺨은 벌써 눈에 띄게 퉁퉁 부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컷 옥스베어를 향해, 발락의 사냥꾼 아이옌의 눈이 반짝거린다.
“따라와라, 노예.”
“…….”
수컷을 잡아먹으러 가는 아이옌, 그리고 그런 여주인을 보좌하는 노예 비키르.
이제부터가 진짜 사냥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