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부당 거래 (4)
비키르는 그날 부로 발락의 영웅이 되었다.
발락의 전사들을 알게 모르게 약화시키고 있었던 전염병의 정체가 사실 외세의 상인들이 은밀히 유통했던 싸구려 마약 때문임을 밝혀냈고 그동안 은밀하게 손해보고 있었던 교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게 해 주었다.
더군다나 불화살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름통 화살 전략까지 개발해 내면서 일약 영웅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용맹한 전사만이 사냥할 수 있다는 옥스베어를 잡아와 부족의 식량난을 해결했던 것으로 원래 호감을 사고 있었던 중인지라 환대는 더했다.
그래서일까?
“용자의 샘물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마.”
족장 아퀼라는 기분 좋게 비키르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딸이 답지 않게 계속 땡깡을 부려대는 통에 어떻게 이 요청을 들어주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이다.
이렇게 좋은 명분이 생겼는데 감히 반대하는 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꼬장꼬장한 노장로들 역시도 이제는 흐뭇한 표정으로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끙.”
다만 주술사 아흐헤만, 오로지 그 하나만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왜냐하면 아흐헤만은 마약으로 인해 폐인이 된 전사들에게 ‘저주가 내렸다’는 오진을 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비키르의 활약으로 인해 발락 부족은 한층 더 밝고 생기 넘치게 되었지만 아흐헤만 한 명에게는 꽤나 상황이 불리했다.
입지가 전보다 훨씬 좁아졌고 발언권도 약해졌다.
그래서 비키르가 용자의 샘물에 들어간다는 말에도 전과 같이 반대하고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옌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다가와 비키르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
그리고 아무런 말이 없다.
비키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틀었다.
“뭐 할 말 있나?”
“없는데?”
“근데 왜 남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
“그냥. 갖다 대고 싶었다.”
아이옌은 여전히 뜻 모를 미소로 방글방글 웃는다.
그녀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이왕 가져다 댄 김에 몇 마디만 좀 할까?”
“뭐냐.”
“내 생각에는 아흐헤만 저놈 저거 아무래도 내통자 같다.”
“왜?”
“……그냥 감이 그래.”
사냥으로 다져진 아이옌의 본능은 아주 예리해서 때로는 아무런 근거나 전조 없이도 결과를 예측하곤 했다.
비키르 역시도 아이옌의 말에 공감했다.
다만 그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본능 말고 이성으로도 아흐헤만의 수상한 점들을 잡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흐헤만은 상인들이 유통한 마약을 전염병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고 그것은 저주에 의한 것이며 오로지 주술적인 의식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주술사의 권위를 세웠고 자신의 입지를 키워나갔다.
본인의 손녀인 아휼이 마약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또한, 비키르는 지난번에 상인들이 무심코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뭔데 나서서 깽판을 놓는 거야! 이것은 신성한 교역이야!’
‘이것은 숲의 신께서 보우하시는 신성한 거래라고!’
‘발락의 주술사님도 숲의 신님 대신 우리를 축복……!’
마지막 놈이 아차 싶었는지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기는 했지만 눈치 빠른 비키르는 이미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감을 잡았다.
비키르가 아이옌에게 상인들이 제국어로 떠들었던 말을 통역해주자 아이옌의 두 눈썹이 대번에 확 꺾여 올라간다.
“역시 이 새끼를 그냥 두면 안 된다! 공짜로 처먹은 나이나마 대우해 줬더니만 이제는 세외세력하고 붙어먹……!”
“진정해라. 아직 심증뿐이다. 정확한 증거가 없지 않나.”
“그럼 그냥 보고만 있나!?”
아이옌이 펄펄 뛰자 비키르는 잠시 침묵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비키르, 그 말을 들은 아이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게 하자고?”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면 스스로 꼬리를 드러내게 될 거야.”
“흐음. 나쁘지 않은 계략인 것 같기는 한데.”
아이옌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 상 고민은 오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해서 손해 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지금은 당장 중요한 일에나 집중하도록 하지.”
아이옌의 말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일단 지금은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 * *
이윽고.
밤이 되자 아름다운 만월이 떴다.
밀림은 어제의 혈사(血事) 따위는 하루 만에 잊어버린 모양인지 호젓한 분위기를 드리웠다.
밝고 둥근 달이 뜨자 수해는 그것을 삼키려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
스스스스스……
소슬바람이 잎새를 스치는 소리들.
이윽고, 기묘한 지각 변동과 함께 바윗골이 갈라지고 그 아래에서 뜨거운 물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다.
용자의 샘물.
발락의 과거 먼 전성기를 이끌던 궁신 아도나이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온천.
발락의 전사들 중에서도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성지(聖地)이다.
비키르는 혼자서 이 온천 앞에 섰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온천 저 깊은 곳에서는 약간의 유황가스가 끓고 있는 듯하다.
온천의 얕은 곳에는 몇몇 작은 짐승들이 먼저 와 몸을 담그고 있었다.
녀석들은 비키르가 가까이 가도 딱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 온천에 들어오는 동물들끼리는 먹이사슬을 막론하고 서로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 듯싶었다.
비키르는 옷을 모두 벗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몸을 지지고 있는 토끼와 오목눈이, 고슴도치들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들어가 앉았다.
“……!”
과연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효과였다.
온천수에 들어오자 신체 내부가 빠르게 안정되고 있었다.
“그 주술사 노인이 괜히 심통을 냈던 게 아니었어. 자기가 들어오고 싶었나 보군.”
마나가 한층 더 정순해지고 몸의 뼈와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마도 바스커빌가 내부에 흐르는 스틱스 강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듯했다.
용자의 샘물은 스틱스 강에 비하면야 효과가 조금 떨어지지만 대신 이용에 있어 나이 제한이 없다는 점은 더 나았다.
다만 일 년에 한두 번, 만월이 뜨는 밤에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흠일 뿐이다.
비키르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자기가 없는 바스커빌가는, 언더독 시는 잘 돌아가고 있을지.
……뭐, 아마도 무척 잘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록 치와와 사무장은 울상을 짓고 있겠지만 말이야.’
비키르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전혀 의외의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하의 비키르조차도 흠칫 놀랄 정도.
“놀랐나?”
어느 새인가, 아이옌이 기척도 없이 비키르의 옆에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생글생글 웃으며 비키르의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것을 본 비키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멸망의 시대를 살아온 나조차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이 은밀한 움직임은 필히 배워 놔야겠군.’
그렇다면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키르가 속으로 전략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동안.
“…….”
아이옌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비키르의 태도에 실망했다는 듯 풀썩 주저앉았다.
“너는 사내가 되어서 여인네의 알몸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냐?”
“원체 홀딱 벗고 다니지 않나?”
“다르지. 홀딱 벗은 것과 아슬아슬하게 가린 것은 다르지.”
당최 뭐가 다르다는 건지.
비키르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려 놓았을 뿐이다.
이내 비키르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등을 기댄 아이옌은 술병을 하나 든 채 입을 열었다.
“아도나이님께 감사하도록 해라. 이 온천은 그분이 발견하신 거니까.”
“아도나이라. 나도 아는 인물이지.”
“그래? 그럴 만도 해. 대단하신 분이니까. 수해의 마담과도 일전을 겨루실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이셨다. 너도 이제 어엿한 발락인이니 그분에 대해 존경심을 갖도록. 또 그분의 후손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비키르는 그 말을 듣고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랐다.
첫 번째는 발락인들이 후손의 개념을 핏줄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궁신 아도나이가 마담 여덟다리와도 일전이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그 괴물과 단신으로 싸울 수 있는 궁수라.’
얼마나 레벨이 높아야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지금의 비키르로서는 아직 요원한 길이다.
그때.
아이옌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오똑한 코끝이 비키르의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거리가 되었다.
아이옌은 술기운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말했다.
“그 상인 놈들 말이다.”
“음?”
“폭리 취하는 것 알고 있었다.”
아이옌은 다이아몬드와 옥수수 두 개를 흥정했던 기억 때문인지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변했다.
“어렴풋하게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당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거든. 네가 말해 주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내가 한번 뒤집어엎었을 것이야.”
“그러냐.”
비키르는 작게나마 웃었다.
그러자 아이옌이 미간을 찡그렸다.
“웃지 마라. 진짜 알고 있었다. 상인 놈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것 말야. 제국에 가면 옥수수보다 다이아몬드가 더 비싼 것은 상식이지.”
“얼마나 더 비쌀 것 같은데?”
비키르가 묻자 아이옌은 잠시 눈을 굴렸다.
이윽고, 그녀는 약간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아몬드 하나면…… 적어도 옥수수 열 개 정도는 하지 않나?”
“…….”
“이, 이십 개던가?”
“…….”
“……삼십?
비키르는 웃고 말았다.
아이옌에게 다이아몬드 하나가 제국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게 옥수수 몇 개 어치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말해 주자 아이옌은 기겁을 했다.
“미친! 그딴 돌덩이가 무에 쓸모가 있다고! 옥수수는 먹을 수라도 있지!”
“반짝거리는 것이 예쁘지 않나.”
“반짝거리기로는 새벽이슬이 더욱 반짝거리지.”
“단단하니 영원하기도 하고.”
“긁으면 상처 나고, 때리면 쪼개지고, 불에 쬐면 타 없어지는 것 아니냐? 영원하긴 뭐가 영원해.”
아이옌이 이리 말하니 비키르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긴 했다.
과연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것은 어떤 기준일까?
비키르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그런 쓰잘데기 없는 문제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았다.
한편.
“…….”
비키르가 생각에 빠져 있을 동안 아이옌은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오늘 밤, 이 자리에서 끝(?)을 볼 생각이었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기를 배필로 고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니 이렇게 자연스러운(?) 장소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뭔가를 슥슥 척척 샥샥 진도를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면천도 했겠다, 마을 내 평판도 좋겠다, 남편감으로는 나쁘지 않구나. 오늘 거기서 몸을 치료함으로써 사내구실만 확실하게 할 수 있게 회복시켜 놓으면 그 뒤는 알아서 흘러갈 것이다.’
참고로 어머니인 아퀼라 역시도 비슷한 조언을 했던 바 있었다.
그래서 아이옌은 큰마음 먹고 아끼던 술까지 내와서 이렇게 비키르의 옆에서 온천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네가 들어오면 온천의 신비한 효과가 반감되는 것 아니냐? 너는 왜 들어왔지? 분명 족장님은 나만 들어오라고 하셨었는데?”
비키르는 지금 이딴 것이나 따지고 앉아 있는 중이다.
아이옌은 기가 막혀 되물었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진정한 발락인은 그런 쪼잔한 것을 따지지 않는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냥 한번 물어봤다. 따지는 건 아니고, 확실하게 해 두는 게 좋지 않나. 뭐,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좋고.”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한 비키르가 다시 홱 고개를 돌리자 아이옌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확실하게 해 두는 게 뭔지 보여 줘?”
순간.
…첨벙!
물보라가 일었다.
아이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키르를 찍어 누른 것이다.
비키르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조금 놀란 듯 눈의 동공이 커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아이옌은 짓궂은 미소를 띤 채 비키르의 몸 위로 올라탔다.
“너는 가만히 있거라, 노예.”
“…….”
“이 주인님이 알아서 할…….”
바로 그 순간.
첨벙첨벙첨벙첨벙!
샘물 저편에서 무수한 물보라가 튀어 오른다.
뿌연 증기 너머로 그림자 몇 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와아- 대쟝님이다!”
“비키르 형아!”
한 떼의 아이들이 난데없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
아이옌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밑에 깔려 있던 비키르 역시도 고개를 돌렸다.
발락의 아이들이 웬일인지 온천에 우르르 몰려들어와 있었다.
잘 보니 하나같이 다 상인들이 유통한 마약의 부작용 때문에 아팠던 아이들이었다.
나체로 온천에 들어온 아이들은 아이옌과 비키르를 향해 첨벙첨벙 다가왔다.
“대쟝님! 같이 놀쟈요!”
그러자 아이옌이 울컥 소리 질렀다.
“야 이 녀석들아! 늬들이 들어오면 온천의 신비한 효과가 반감되잖냐! 누가 너네보고 여기 들어오랬어!”
“족장님이요-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말에 아이옌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머니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심지어.
“말이 다르군. 아까는 진정한 발락인이라면 이런 쪼잔한 문제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고……”
비키르는 진중한 얼굴로 지적을 하고 있다.
아이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천에 들어온 아이들은 먼저 들어와 있던 토끼나 고슴도치, 다람쥐 등과 이미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비키르는 온천에 몸을 담근 채 그저 몸을 회복시키는 데에만 열중이다.
아이옌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비키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정식으로 발락의 일원이 된 걸 환영해.”
딱히 끝맺을 말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