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7
7화 바스커빌 가의 개들 (4)
비키르는 휴고의 성격을 잘 안다.
‘……리자드맨(Lizard man).’
파충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가운 피를 가진 냉혈인간.
기본적으로 그는 가문의 미래와 자신의 무위에만 관심이 있는 존재였다.
자기 외에는 다 도구, 그 중에서도 무기로 생각하는 인간.
무기는 기본적으로 남을 해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무기가 독자적으로 인정을 베풀거나 머뭇거린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독을 품고 있을수록 좋은 무기가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휴고가 비키르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흐뭇함으로 물들어 가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 너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네. 오히려 형들이 잘못했죠.”
“무슨 잘못을 했지?”
“약한 잘못이요.”
강자존(强者尊). 약한 것이 곧 죄인 세상.
그것이 바로 바스커빌가 아니겠나.
비키르의 말은 바스커빌가의 이 핵심적인 가훈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죄가 아니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두들겨 패는 것은 자연의 섭리, 그것을 죄와 벌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약자들의 어리광일 뿐.
유년 시절 귀에 못처럼 박힌 가정교사들의, 그 배후에 있었던 휴고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니 형들이 먼저 저를 괴롭혔어요! 하고 징징거려 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
회귀 전의 비키르는 평범한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의 무고와 형제들의 죄를 설명했지만 휴고는 오히려 더욱 더 찌푸려진 표정으로 경멸을 표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눈빛은 처형장의 단두대에 무릎 꿇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똑같았고.
한편.
휴고 레 바스커빌.
그는 두 손을 깍지 낀 뒤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네 형들이 너보다 먼저 이곳에 왔었다.”
“…….”
“연장자답게 너를 너그러이 용서한다고 하더구나.”
비키르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름 휴고의 옆을 오래 지켜온 경험이 있는지라 알 수 있다.
아마도 세쌍둥이는 휴고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만 돋궈 놓았을 것이다.
‘분명 잔뜩 주눅 들어 있었겠지. 그리고 용서는 무슨, 하극상을 당했다며 어떻게든 격리시켜 달라고 찡찡거렸을 게 뻔한데.’
비키르는 별다른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이야 공짜로도 먹는 것이지요.”
“…….”
휴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비로소, 휴고가 옅은 웃음소리를 입 밖으로 낸다.
“후후후. 맞는 말이긴 하다. 이 아버지도 가주 자리에 오를 때 적장자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었거든.”
휴고가 스스로를 ‘아버지’로 자칭하는 것은 꽤나 생경한 광경이었다.
‘그나저나 적장자(嫡長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그게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건가?’
처음 듣는 소리에 잠시 고민하던 비키르는 이내 곧 말뜻을 알아들었다.
휴고는 하극상을 통해, 그러니까 나이 많은 형들을 죄다 죽이고 가주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그렇군. 가문을 잇는 것은 무조건 장남이라고만 들었는데. 장남도 후천적으로 될 수 있는 거였어.’
새삼 바스커빌가의 진면목을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휴고는 재차 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형들은 너를 용서하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도 너는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
“…….”
비키르는 잠시 말없이 휴고를 바라보았다.
저번 생에서는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따스한 눈빛.
하지만 이미 짜고 차게 얼어 버린 심장은 그런 미약한 온기 따위로는 절대 녹일 수 없다.
……회귀하기 전의 언제였던가.
바스커빌에게 멸문당한 가문의 마지막 여식이 휴고를 직접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수녀가 된 그녀는 ‘당신을 용서한다’라는 내용의 미사를 드렸었다.
그리고 그 미사 내용을 듣게 된 휴고는 이렇게 말했었다.
“용서라는 것은 복수할 힘이 없는 약자의 핑계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존칭을 제외한다면 그 시절의 휴고와 완벽히 똑같은 대사.
순간 휴고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하하하하하하-”
그제야, 창문이 떨릴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가주실 내에 울려 퍼졌다.
휴고는 더없이 만족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래야 내 자식답지. 마치 첫째 놈을 보는 듯하군.”
그가 자식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비키르는 처음 봤다.
휴고와의 대담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베리모어.”
집사를 호출한 휴고는 어느샌가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잔불의 온기가 남아 있는 채다.
“비키르에게 식량창고의 열쇠를 내주어라.”
그 말을 들은 베리모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스커빌가의 어린이들은 15세가 되기 전까지는 항상 똑같은 음식만 먹는다.
물과 해기스.
온갖 짐승의 고기와 내장, 약간의 야채를 한데 으깨어 다진 반죽으로 극도의 열량과 영양가를 자랑하지만 엄청나게 맛이 없고 짜다.
음식의 양은 무제한으로 제공되고 매우 위생적으로 관리되지만 맛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구조.
그래서 바스커빌 가의 어린아이들은 기초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가끔씩 떨어지곤 하는 과자나 사탕, 초콜릿 따위에 환장한다.
아주 저렴한 값에 어린아이들의 학습의욕을 고취시키고 경쟁의식을 함양하며 나아가 훌륭한 바스커빌의 일원으로 키워 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것을 알기에 휴고는 비키르에게 물었다.
“먹고 싶은 간식이 있느냐?”
그러자 비키르는 8세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냉큼 대답했다.
“초콜릿이요!”
휴고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나이에 맞는 귀여움마저 갖추었군’ 정도로 생각하고 있겠지.
베리모어 역시 어린애는 역시 어린애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휴고는 베리모어에게 손짓했다.
“식량창고로 가서 초콜릿을 원하는 만큼 덜어 가게 해라. 단, 너무 욕심 부리게 하지는 말고.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만.”
“예, 가주님.”
베리모어는 비키르의 손을 잡고는 문으로 향했다.
그때.
휴고가 문을 등지고 돌아선 채 말했다.
“이번 중간평가 잘 봐라.”
이런 격려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뒤이어진 말은 더더욱 이례적인 것이었다.
“……직계들에게 지지 말고.”
그 말에 비키르의 눈빛이 시뻘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태양처럼.
* * *
“여깁니다, 도련님.”
베리모어는 비키르를 데리고 유아성 외곽에 있는 취사장으로 향했다.
몇 명의 셰프들이 공손히 시립한 채 그 뒤를 따라붙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식량창고는 언제나 서늘하다.
돌 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냉기는 문이 열림과 함께 들어온 따듯한 공기와 만나 결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베리모어는 등잔을 들어 창고 내부를 비추어 주었다.
마나를 운용하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굳이 노집사가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민망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
비키르는 안으로 들어갔다.
가문 내의 수호기사, 15세 이상의 가족들, 기타 사용인들이 먹는 식재료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사탕이나 젤리류는 이쪽입니다. 따로 조리하여 드시고 싶은 메뉴가 있으시다면 제가 요리사들에게 준비해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베리모어의 상냥한 권유에 비키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초콜릿이면 돼.”
그 말에 베리모어는 약간 애잔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비키르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초콜릿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15세가 넘으시면 드시고 싶으신 것들을 마음껏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진심으로 하는 위로였다.
뒤에 있던 셰프들은 집사의 눈치를 보며 선반 위에서 최고급 초콜릿들을 꺼냈다.
“이것은 미식가로 소문난 모르그 가의 여식들이 즐겨 먹는다는 최상품의 초콜릿입니다. 이번에 저희 측에서도 몇 통을 구했지요. 남방의 견과류와 서방의 꿀을 곁들일 경우 풍미가 더욱 진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키르는 고개를 저었다.
“가공된 것은 필요 없어.”
“……예?”
의아한 표정의 베리모어와 셰프들을 향해, 비키르가 입을 열었다.
“카카오 콩 원두가 필요해. 풍미가 아주 진한 종으로.”
그 말을 들은 베리모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초콜릿의 원료는 카카오 콩.
다만 가공되지 않은 카카오 콩은 달기는커녕 쓰고 떫은맛이 날 뿐이다.
심지어 풍미가 진한 종이라 하면 정말 쓴맛 밖에는 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셰프들의 보고를 들은 베리모어가 말했다.
“으음. 풍미가 진한 종이라면…… 있기는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가주님께서 가문 내의 상원의원들을 친히 이끌고 가셔서 영지 서부전선의 야만인들을 토벌하시고 그 일대의 광활한 밀림을 농지로 개척하셨지요. 그곳의 특산물인 ‘블러디빈’ 콩은 능히 한 알로 1백 리터의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좋네. 가져와.”
“얼마나 가져올까요?”
“있는 대로.”
비키르의 명령에 셰프들이 움직였다.
이윽고, 셰프 한 명이 손에 작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 왔다.
주먹 두 개가 겨우 들어갈 크기의 주머니 안에는 새빨간 콩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림잡아 100알도 넘어 보인다.
이것이 블러디빈. 콩알 한 알이 100리터의 초콜릿에 필적하는 농도를 가졌다는.
비키르는 시험삼아 콩 한 알을 씹어 보았다.
…까득!
입안에 바로 반응이 온다.
혀 전체가 얼얼해질 정도로 떫고 쓴 맛이었다.
비키르는 콩알을 뱉어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리모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콜릿을 정말 많이 좋아하시는구나.’
어차피 휴고는 휴대할 수 있는 선에서 비키르가 원하는 만큼의 식량을 내주라 했으니 이 카카오 콩들을 다 가져간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이 한 자루의 카카오 콩은 초콜릿 1만 리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양.
베리모어는 8살 아이의 욕심과 지혜에 감탄했다.
아마 비키르는 평생 동안 좋아하는 초콜릿을 실컷 먹을 수 있겠지.
“도련님. 이것을 가공해서 방으로 올려드릴까요?”
……그러나.
비키르는 모두의 표정을 의아하게 만드는 대답을 내놓았다.
“가공은 필요 없어. 이대로면 족해.”
아무래도 자기가 먹으려고 구한 게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