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붉은 죽음 (2)
적과 흑 산맥에 우기가 왔다.
온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이번 우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 우기가 될 것 같았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늙은이조차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강물은 미친 듯이 범람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지였던 곳들은 거친 폭류가 몰아치는 늪지대가 되었다.
수해의 모든 것들이 물에 잠겼다.
……오로지 발락의 마을만 빼고!
“더 당겨 더 꽉 묶고!”
“목책을 끌어올려라!”
“단단하게 고정해! 떠내려갈라!”
저지대에 위치해 있던 발락의 마을은 어느덧 고지대에 있게 되었다.
장소를 옮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높은 나무와 나무들 사이를 널빤지와 통나무로 이은 뒤 수상 가옥을 만들었을 뿐이다.
지상으로부터 최소 15미터 위에 위치해 있는 이 나무 집들은 온 세상이 강물로 범람하는 와중에도 아늑한 쉼터가 되어 주었다.
마을 전체를 나무 위로 올리는 이 대규모의 토목공사 작업의 최전선에는 비키르가 있었다.
“……다행히 물에 쓸려 가지는 않겠군.”
비키르는 불과 몇 미터 아래까지 차오른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주 높은 나무들 사이에 밧줄과 나무판자, 통나무들을 이용해 다리를 설치했고 막사들은 비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다.
그리고 저 아래, 지금은 물에 잠겨 보이지 않지만 나무 밑동과 밑동들 사이에는 배수로가 파여 있었다.
몇몇 군데에는 바위와 흙을 쌓아 둑을 만들어 아예 물결의 방향을 틀어 버렸다.
덕분에 발락의 마을은 강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몇몇 남자들이 비바람을 뚫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넝쿨들을 꼬아 만든 밧줄 다리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널빤지로 만든 다리 위를 지나는 비키르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이! 비키르! 덕분에 우리 집이 멀쩡하다!”
“고마워! 네 말을 따르길 잘했어!”
하지만 비키르는 그들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비키르는 저 아래 물 밑에서 이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을 뿐이다.
“위험하다.”
비키르는 인사를 건네 오는 두 남자에게 짤막하게 경고했다.
비키르의 경고를 들은 남자들은 화들짝 놀라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불과 삼 미터 아래의 황갈색 흙탕물, 그 수면 아래에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푸확!
수면이 박살나며 무언가가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
그것은 지름 5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입을 가진 한 마리의 메기였다!
메기는 수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즉시 위에 있는 발락의 남자 두 명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불이 불어난 이후 종종 있었다.
기세등등해진 수중형 마물들이 나무 위에 있는 먹잇감들을 향해 점프해 오르는 일이.
하지만 메기는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꺼져라!”
나무줄기 위에서 화살들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부하들이 다리를 만드는 것을 엄호하고 있던 아이옌이었다.
…텀벙!
화살 몇 대가 대가리에 꽂히자 메기는 몸을 뒤틀더니 다시 물속으로 되돌아갔다.
비키르는 황급히 밧줄 다리를 건너 비바람 몰아치는 나무 위로 달려갔다.
“메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황갈색 수면은 이미 거센 폭류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키르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본 아이옌은 생긋 웃었다.
“저건 메기가 아니다.”
“뭐? 방금 물 밖으로 대가리를 내민 것 봤는데?”
“……몸통은 못 봤나 보군.”
아이옌의 말이 끝나기 무서웠다.
이윽고, 반대편의 수면이 퍽 깨지며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솟구쳐 올랐다.
과연, 비키르는 그제야 아이옌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가리가 넙데데하고 입이 비정상적으로 커서 메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물 바깥까지 튀어나온 저 말도 안 되게 긴 몸뚱아리를 보니 메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뱀이었던 것이다.
위험등급 : A+
크기 : 32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8부 능선
-일명 ‘전신창자의 뱀’.
거대한 몸 전체가 온통 창자로 이루어진 뱀이다.
코끼리조차 한입에 삼켜 버리는 큰 입과 식성을 자랑하며 전설에 의하면 태고적부터 살아온 거대한 무슈후슈는 하나의 나라(一國)를 통째로 삼킬 수도 있다고 한다.
땅 위를 기거나 물속을 헤엄칠 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슈후슈라는 종의 이 거대한 뱀은 수상가옥 위의 발락인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겠다는 듯 비늘을 세우고 쉭쉭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옌은 입술을 깨물었다.
“쳇. 위험한 놈이 떠내려 왔잖아.”
저 거대한 누룩뱀은 타고나길 빠르고 강하게 태어난 종이라서 상대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저 개체는 꽤나 늙고 노련한 놈으로 보인다.
[쉬익!]놈은 메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입을 쩍 벌린 채 입 안 전체에 빼곡하게 돋아나 있는 이빨들을 드러냈다.
아이옌이 재빨리 화살을 쏘아 보냈지만 매끈하고 단단한 비늘, 그리고 시야를 가리며 퍼붓는 빗줄기 때문에 유효타를 먹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뱀은 가까이서 잡아야지.”
무슈후슈의 뒤에서 유령처럼 일렁거리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비키르. 어둠 속에 녹아든 상태로 움직여 쥐도 새도 모르게 뱀의 뒷목을 타오른 그는 이내 숨겨 놨던 이빨을 드러냈다.
손목의 동맥을 뚫고 마검 바알제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래듀에이터 상급의 끈적끈적한 아우라가 그곳에 깃든다.
바스커빌 제 육식.
‘도사리는 매복치’ 여섯 개가 발치되었다.
상대방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겠다는 의도, 오로지 그것 하나뿐!
바키르의 칼에서 뿜어져 나온 핏빛의 아우라가 고속으로 회전한다.
단단한 뱀의 비늘도 속절없이 부서졌고 그 밑의 부드러운 살점들이 폭파라도 된 듯 터지고 흩뿌려졌다.
[캬아아아악!]뱀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키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뱀의 혓바닥을 잡고 앞으로 돌아갔고 이내 뱀의 눈알 하나를 송곳으로 후벼 버렸다.
뒷목과 눈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뱀은 뜨거운 피를 줄줄 흩뿌리며 물러났다. 그리고는 이내 물속에 고개를 처박고는 미친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달아난다기보다는 그냥 급류에 쓸려 내려가는 것에 더 가까웠다.
“…….”
비키르는 추격을 잠시 고민했으나 이런 폭우와 급류 속에서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아까웠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아이옌이 비키르의 허리에 밧줄을 감아 주고 있었다.
비키르와 아이옌은 서로의 허리에 건 밧줄을 잡아당기며 원래 있던 나뭇가지 위로 되돌아왔다.
어느 새인가 나무로 만들어진 테라스 위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 비키르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멋지다! 비키르! 최고였어!”
“그 커다란 뱀은 ‘카아’라는 놈이야! 지난 수십 년간 이 근방에서 제왕으로 통하던 놈이라구!”
“너는 그런 놈을 물리친 거야! 대단해!”
마을 사람들은 비키르를 향해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아이옌이 발끈했다.
“이것들아! 내가 화살 쏘는 것 못 봤냐!? 나 아니었으면……!”
“우우-”
아이들이 아이옌에게 야유를 보낸다.
“어휴, 나는 이래서 애들이 싫다니까.”
아이옌은 툴툴거리며 전신을 흠뻑 적신 강물과 빗물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비키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거 좀 젖었다고 붉은 죽음에 걸리지는 않겠지?”
“모르는 일이지. 어서 불가로 가 몸을 말려라.”
비키르는 방금 전까지 일어났던 격전이 모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훌쩍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환호하건 말건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가는 모습에 아이옌은 지난 2년간 꾸준히 말해 왔던 단어를 오늘 한 번 더 말해 보았다.
“합격.”
* * *
비키르는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에는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지만 막사 안은 밝고 따듯했다.
비록 벽면의 가죽들이 계속 요동치고 있기는 했지만 무거운 바위와 튼튼한 밧줄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으니 바람에 날아갈 일은 없었다.
이번 토목공사를 진두지휘한 비키르는 붉은 죽음의 예방법을 발견해낸 것과 더불어 발락, 아니 온 밀림 부족들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영웅은 지금 고심이 깊은 모습이다.
그것은 회귀 전후를 통틀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업무 때문이었다.
“삼추운!”
비키르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도도도 달려와 안기는 포메리안.
그 전까지는 막사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가족들의 초상화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포메리안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피했지만 오로지 비키르만은 무척이나 따랐다.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기에 자고 식사하고 목욕하는 시간 모두 비키르의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식사해야지.”
비키르는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이런 것뿐이었다.
이윽고, 비키르는 막사 구석에서 간단하게 불을 피웠다.
우기라 사방 천지에 달팽이들이 기어 다녔기에 예전보다 식량 구하기는 편했다.
비키르는 소젖으로 만든 버터와 허브, 등을 달팽이 살과 함께 간단하게 쪘다.
그리고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에 새알로 만든 크림 등을 섞어 기름지게 볶아 냈다.
나머지 달팽이 살은 예전에 상인들에게서 산 매콤한 향신료로 무쳐 야채와 곁들이자 꽤나 먹을 만한 요리가 되었다.
“맛있어 삼춘.”
“역시 그렇지? 네 삼촌이 요리는 참 잘한다.”
볼을 오물거리는 포메리안의 옆에는 자연스럽게 같이 볼을 우물거리고 있는 아이옌이 있었다.
포메리안은 비키르 다음으로 아이옌을 따랐다.
“엄마. 아빠. 같아.”
포메리안이 비키르와 아이옌을 번갈아 돌아보며 헤 웃자 아이옌이 검지로 코 밑을 쓱쓱 문질렀다.
“역시 아이들은 참 좋군.”
“……아까는 애들이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언제 그랬나.”
비키르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포메리안 때문에 가뜩이나 막사가 좁은데 아이옌까지 와서 이러고 있으니 더욱 더 비좁다.
“너무 구박 마라. 그래도 이제 소변은 나가서 보잖나.”
“…….”
또다시 다리를 벌리고 가죽 치마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는 아이옌의 태도에 비키르는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바로 그때.
휘이이잉-
입구의 천막이 확 젖혀지며 비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문 역할을 하는 거적때기 위에는 묵직한 돌을 얹어 놓았으니 그것이 자연적으로 날아갈 리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 밖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안으로 발을 성큼 들이밀었다.
바로 아훈이었다.
“……?”
비키르와 아이옌은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늘 짜증나는 시비를 걸어오는 아훈인지라 이번에는 또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벌써부터 속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비키르의 막사 안으로 들어온 아훈의 표정은 예상 외였다.
파랗게 질린 안색, 일그러진 얼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
이내 아훈은 절박한 목소리로 토하듯 외쳤다.
“제발 도와줘 비키르! 내 여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