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성녀(聖女) (5)
쿼바디스가의 성직자들이 한 데 모여 밤낮으로 기도를 한 결과, 임상 3상까지의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 방울만 뿌려도 광역지대의 역병들을 모두 정화할 수 있는 신성력의 정수(精髓).
극도로 농축된 이 성수는 예비용까지 해서 모두 세 방울이 제작되었다.
일명 ‘성녀의 눈물(Plany de la Verge)’.
한 방울만 있어도 빈민가에 도는 모든 역병을 뿌리 채 뽑아 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돌로레스는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성수 세 방울에 대고 축복과 감사의 기도문을 외웠다.
[모두들 보라. 여기에 하나뿐인 아들을 둔 여자가 있다. 아들이 매달리는 것을 본 어미의 슬픔을 아느냐? 신의 아들을 길러야만 했던 불행한 나는 그날의 밤부터 다음 날 밤까지 울부짖으니, 마음이 나를 따르지 않는 것은 너무나 괴롭도다. 오, 아름답고 훌륭한 나의 아들아. 이 날은 나에게 가장 비통하고 가슴 쓰라린 날일지어니……]최초의 성녀가 울며 남긴 서사시는 이 세상의 모든 거룩한 희생들을 위로하여 빛난다.
이윽고 성수 세 방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주교 모즈구스가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그것들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쟁반 위에 올렸다.
이윽고 십 수 명의 주교들이 모즈구스를 따라 성수를 봉송했다.
쿼바디스가의 세인트 메카 지부 공관의 깊숙한 곳, 단단한 지하 금고 속에 보관하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수많은 신관들이 봉송을 구경하기 위해 쿼바디스가의 본관으로 모여들었다.
“…….”
돌로레스는 대기에 감도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앙성가 쿼바디스는 최근 내전 중이었고 그 내전을 이끄는 두 세력인 ‘구약파(舊約派)’와 ‘신약파(新約派)’가 이곳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병 ‘붉은 죽음’은 그만큼 큰 문제였다.
이윽고, 중후하고 매끈한 외모를 가진 중년 남자 하나가 돌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나의 님펫(Nymphet), 나의 딸아.”
돌로레스는 그 말에 약간 망설인 끝에 공손히 눈을 내리깔았다.
“……예, 아버님.”
말을 마친 그녀는 느리고 작은 보폭으로 걸어 남자의 앞으로 가 섰다.
이윽고 돌로레스의 두 눈에 그의 얼굴이 가득 담긴다.
‘험버트 험버트 룬 쿼바디스(Humbert humbert L Quovadis)’.
구약파를 이끄는 실질적인 최고 존엄이자 교황을 제외하면 더 오를 자리가 없을 정도로 지고한 신분인 추기경 직을 맡고 있는 남자.
그는 손을 뻗어 돌로레스의 머리를 한번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번에 큰 봉헌을 했구나.”
“과찬이십니다.”
돌로레스는 아버지를 대함에 있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부녀사이라고 하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태도였으나 거대한 가문에서는 으레 흔히 있는 일이기도 했기에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편, 험버트는 돌로레스의 얌전한 태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고를 해 봐라.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보고서를 작성해 왔는데 바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입으로 해 보거라. 글은 딱딱하지 않으냐.”
험버트의 말에 돌로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만들어진 ‘성녀의 눈물’을 이용하여 세인트 메카의 지하를 흐르는 물길을 모두 정화할 예정입니다.”
“역병의 발원지는 찾았느냐?”
“예. 빈민가 고지대에 있는 한 미등록 우물이었습니다.”
돌로레스는 타고난 조사관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카데미 1학년에 재학할 당시 교내의 탐정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었을 정도로 추리와 수색에 능했다.
돌로레스는 빈민가의 환자들, 그 중에서도 주로 아이들을 위주로 탐문 활동을 벌였고 한 우물가에서 유령을 보았다는 증언들을 다수 확보할 수 있었다.
유령이 우물가에 저주를 내렸다는 아이들의 진술에 돌로레스는 바로 그 우물을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우물은 역병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고 범인이 역병균을 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병도 찾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리고 그곳을 조사하던 도중 수상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보고서에 없는 내용이다.
험버트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돌로레스는 깨끗한 천에 감싸 둔 증거물을 꺼냈다.
그것을 본 험버트의 두 눈은 이내 찢어질 듯 커졌다.
“……이건!?”
한 자루의 시커먼 단도.
커다란 뱀 문양이 그려져 있는 이것은 분명 극독명가 리바이어던의 상징이었다.
또한 그 옆에는 단추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황금색 단추, 이는 분명 재벌가 부르주아의 표식이다.
“이것들이 어디서 났느냐?”
“우물가의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험버트 추기경의 두 눈이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인과관계가 착착 짜 맞춰지고 있었다.
“……어째 역병의 구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했었지.”
이 정도 역병을 만들어 내려면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연구자금도 필요할 것이다.
쾅!
험버트 추기경은 발을 한번 세게 굴렀다.
하얀 대리석 지면이 쩍 하고 갈라졌고 주변에 있던 돌기둥 두 개가 무너져 내렸다.
“성전 선포다! 이 천박한 독쟁이, 수전노들이 감히 신성모독을……!”
쿼바디스가의 뜻에는 황제조차도 한 수 접어 줄 정도이거늘 어찌 감히 독이나 만들고 돈이나 주무르는 미천한 것들이 이런 시비를 걸어 온단 말인가!
바야흐로, 제국의 일곱 가문들 사이에 정쟁(政爭)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
돌로레스는 그저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말이 험버트 추기경의 입에서 나왔다.
“……밤의 사냥개라고 했나?”
험버트는 수려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놈도 수상하다. 잡아들여서 이단심문관을 붙여라. 알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토해 내게 해.”
그러자 돌로레스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동안 차분하고 냉정하던 태도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녀는 여느 열여섯 살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다급히 외쳤다.
“그분은 죄가 없습니다!”
“……?”
돌로레스가 갑자기 이의를 제기하자 험버트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그분?”
험버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돌로레스를 내려다본다.
“딸아. 지금 뭐라고……?”
평소 한 마디의 항변도 없이 늘 고분고분하게 움직이던 딸이다.
신약파에 적을 두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아비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던 착한 딸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
돌로레스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바들바들 떨면서도 험버트의 시선에 맞서고 있었다.
밤의 사냥개라는 존재를 지키겠다는 일념이 아주 단단한 듯싶었다.
‘그렇게 빈자들을 열심히 치료하던 사람이 악인일 리 없어!’
돌로레스는 많은 환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뭐가 그리도 미안한지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환자들을 밤새 진료했던 사람.
미약하기는 했지만 분명 신성력도 사용했고 그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들을 풀어 나누어 줘 버린 사람.
‘그는 왜 환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을까?’
더 빨리, 더 많이 치료해 주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면 돌로레스 또한 격하게 공감하는 바였다.
그녀는 매번 아픈 사람들에게 미안했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미안하냐고 묻는다.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왜 미안해하느냐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로레스는 미안했다. 늘 모두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밤의 사냥개는 그것을 이해해 주었다. 공감해 주었다.
그녀는 얼마 전 밤의 사냥개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저는 운 좋게 신성력을 타고났을 뿐 몸도, 마음도, 믿음도 약해요. 그대처럼 강한 사람이 이런 신성력을 타고났어야 하는데…….’
왜 신은 자신을 성녀로 선택했을까? 신성력을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믿음이 강한 다른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하필 자신에게 성녀라는 과분한 칭호를 내려주었을까?
고개를 푹 숙이고 우는 돌로레스를 향해 밤의 사냥개는 말했다.
‘그렇게 괴로워하고 미안해한다는 것 자체가 신이 너를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가장 낮고 가장 치열한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빛나는 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신의 사랑일 테니까.’
그 말에 돌로레스는 속으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온갖 산전수전과 평지풍파를 다 겪은 베테랑 성녀가 말하는 듯한 위로.
이 조언은 마치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건네 오는 노크처럼 그녀의 가슴을 따듯하게 두드렸던 것이다.
마치 고전시대의 성숙한 성녀, 아니면 닮고 따르고 싶은 듬직한 언니.
밤의 사냥개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도 나이를 먹으면 방금 당신이 한 것과 같은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될까요?’
‘……아마 그렇게 될 거다.’
그는 묘한 대답을 하며 돌로레스를 향해 옅게나마 신뢰감을 드러냈다.
열여섯 소녀는 그렇게 동경심을 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버지인 험버트 추기경 앞에서 강하게 밤의 사냥개의 결백을 역설했다.
하지만.
“…….”
돌로레스가 강하게 변호하면 할수록 험버트의 표정은 오히려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이윽고, 험버트가 수많은 주교들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긴급 체포 준비를 해라. 그를 만나 추궁하리라.”
돌로레스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험버트는 아까보다 더욱 더 살기등등한 태도로 발걸음을 옮겨 밤의 사냥개가 머물고 있다는 객실로 향했다.
돌로레스는 당황한 채로 험버트의 뒤를 쫓아왔다.
여차하면 몸을 던져 밤의 사냥개를 감쌀 각오를 한 채로.
……하지만.
“!?”
객실 앞에 선 모든 이들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게 되었다.
휘이이잉-
텅 빈 객실. 커튼이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삼켜 유령처럼 부풀었다.
어느 샌가 사라져 버린 밤의 사냥개.
그리고 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신관의 다급한 외침이 상황을 짐작케 했다.
“큰일 났습니다! 성녀의 눈물 한 방울이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아!’
돌로레스는 조용히 입을 벌렸다.
이제 그가 왜 이곳을 찾아왔었는지 그 이유를 얼추 알 것 같았다.
또한 그가 목적을 달성한 지금, 이제 그를 영영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막연한 확신도.
험버트와 성기사들이 소란을 피우며 추격대를 편성하는 동안 돌로레스는 그저 가만히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텅 빈 객실과 구멍 난 창문, 차가운 바람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쿵!
다시 한번 심장이 내려앉았다.
저번과는 사뭇 다른 박동(搏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