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상사병(相思病) (2)
밤의 사냥개가 돌아왔다.
비키르가 발락의 마을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붉은 죽음이 온 수해에 창궐하고 있었다.
발락은 그나마 수상가옥을 만들어 놓고 둑을 쌓아 물을 가둬 놓았기에 피해량이 적었지만 인접해 있는 다른 부족들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비키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아훈이 제일 먼저 뛰어나왔다.
그는 울상이 된 얼굴로 달려와 비키르를 보자마자 바로 와락 끌어안았다.
“돌아와 줬구나!”
아훈은 며칠 새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하나뿐인 여동생 아휼이 붉은 죽음에 걸린 뒤로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고 간병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훈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비키르의 손을 잡았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너는 의리 있는 녀석이다. 치료제를 구해 오지 못했다고 해도 좋아. 네가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그들은 비키르가 빈손으로 온 것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키르는 확실하게 가지고 왔다.
수해의 모든 친구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을 말이다.
“따라와.”
“……?”
비키르는 어리둥절해 있는 아훈을 잡아끌고 바로 그의 막사로 향했다.
마을 입구 근처에 바로 붙어있는 아훈의 막사, 그곳에는 아휼이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다.
가장 먼저 붉은 죽음에 걸렸기에 상태도 가장 나빴다.
그녀는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는데 다만 아훈이 간병치레를 잘 했기 때문인지 오물이나 악취는 찾아 볼 수 없이 깨끗했다.
비키르는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성녀의 눈물’이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파아앗!
주머니에서 나온 성녀의 눈물은 아직 병을 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신성력을 발휘했다.
놀랍게도, 성녀의 눈물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쬐는 것만으로도 아휼의 몸에서 붉은 죽음이 빠져나간다.
붉은 반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토록 한 인간을 괴롭게 만들어 왔던 병마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소멸해 버렸다.
“……! ……! ……!”
그 기적과도 같은 장면을 본 아훈은 두 눈을 찢어질 정도로 크게 떴다.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있는 것을 보니 심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훈은 떨리는 손으로 아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과 땀만을 흘리고 있던 아휼은 요 근래에 보지 못한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고른 숨소리만 색색 토해 내며 말이다.
“……비키르!”
아훈이 숨 가쁘게 외쳤다. 그리고 연달아 몇 번 더.
“비키르! 비키르! 비키르!”
마치 신앙심 깊은 성직자가 신의 이름을 입에 담아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조심스럽되 경건한, 무한한 신뢰감과 애정, 기쁨이 담긴 어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훈의 절친한 동료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내맡길 수 있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의 고통과 슬픔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친구들.
그들 역시 그동안의 초조함과 비통함, 무력함, 좌절을 한 방에 폭파시켜 날려버리는 비키르의 기적 앞에서 그의 이름을 힘차게 연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키르! 비키르! 비키르! 비키르!”
건장한 발락의 전사들이 발을 굴러대며 환호하는 통에 수상가옥이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비키르는 이 열띤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침착했다.
이제 막 한 명의 환자를 낫게 했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비키르는 아훈을 비롯한 발락의 전사들에게 물었다.
“환자 수가 몇이나 되지?”
“아휼을 포함해서 서른 명 정도 돼.”
그 말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숫자이니 조기에 진압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비키르는 극독명가 리바이어던의 계획을 송두리째 무너트릴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파급 효과들 역시도 모조리 흡수해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다른 부족들은 어떤가?”
비키르가 묻자 아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절망적이야. 몇몇 부족들은 거의 궤멸했어. 수상가옥을 짓지 않은 다른 부족들이지. 하지만 네 조언을 듣고 수상가옥을 설치한 이들의 피해는 비교적 적어.”
“환자들의 수는 정확히 어느 정도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많아. 저 산구릉 들판의 물소 떼처럼.”
얼추 만 단위는 넘는다는 뜻이다.
비키르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부족들의 환자들도 전부 한데 모아라.”
“으응? 다른 부족들도? 하지만 치료제가 그렇게 많아?”
“많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번 기회에 다른 부족들에게도 생색 좀 내자고.”
그러자 비키르의 말을 들은 아훈과 다른 젊은 전사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들이라고 해서 왜 다른 부족들이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먼 곳에 있는 이방인들이기는 하지만 같은 수해를 끼고 살아가는 동족들이고 또 우정이나 혈연으로 이어져 있는 경우도 심심찮다.
혼인이나 사냥감 문제로 종종 분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극복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였다.
비키르의 말을 들은 발락의 전사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는 듯 마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한편.
“…….”
비키르는 성녀의 눈물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바스커빌가를 크게 압박할 수 있겠군.’
비키르는 이번 기회에 적과 흑 산의 야만족 세력들을 통째로 휘어잡을 생각이었다.
적과 흑 산을 개척하고 토벌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고 있는 철혈검가 바스커빌.
바스커빌의 최고 호적수는 제국의 다른 여섯 가문들이 아니다.
그것은 적과 흑 산의 원주민들.
전사 부족 발락과 주술사 부족 로코코를 비롯한 수많은 원주민 세력들이 바로 바스커빌가의 가장 무서운 천적이었다.
그들은 칼날 같은 검수림의 잎사귀들을 맨살로 뚫고 나갔고 못과 압정들이 깔린 듯한 숲의 바닥을 맨발로 퍽퍽 밟고 지나갔다.
수천 보 밖에서도 화살을 쏘아 버들잎을 맞추었으며 도끼와 칼로 커다란 맹수를 반 토막 냈다.
그런 것이 일상인 존재들이 바로 이곳 수해의 원주민들이다.
만약 이들에게 큰 빚을 지워 한 편으로 포섭할 수만 있다면 비키르는 단신으로 바스커빌가 전체와 맞서는 것도 가능했다.
더군다나 원주민 세력이 역병을 조기에 막아 내고 세력을 더욱 융성하게 키운다면 그것은 자연스레 바스커빌가와 제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지.’
비키르는 현재 발락의 영웅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번 계기를 통해 밀림 전체 부족의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될 것이다.
극독명가 리바이어던이 벌인 악행이 그대로 비키르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다. 사망자가 늘지 않게 서둘러야 해.”
비키르는 성녀의 눈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발락의 모든 환자들을 치료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원지 정화였다.
밀림의 젖줄, 가장 높은 곳에서 흘러와 모든 저지대로 퍼지는 강가의 수원지에 이 성녀의 눈물을 살포해야 했다.
비키르는 빠르게 움직였다.
2년간 이곳 수해에서 살며 어떤 곳이 수원지로 통하는지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키르를 따라 수해의 전 부족들이 몰려왔다.
식인 풍습으로 악명 높은 주술 부족 로코코, 부족원 전원이 도끼 한 자루만 쥐어 줘도 제국의 일개 중대를 상대한다는 광전사 부족 르네상스 등등 평소 만나보기 힘든 발락의 적대부족들 역시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족장 아퀼라가 이 모든 부족들을 통솔하여 강의 수원지에 도달했을 때.
“모두들 이 물을 떠 마시면 됩니다.”
비키르는 성녀의 눈물을 강물에 뿌렸다.
이윽고, 드넓게 흐르는 강물 전체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가 지상으로 내려와 흐르는 듯 아름다운 광경.
이 신비로운 빛에 홀린 원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강물을 두 손으로 떠 마셨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붉은 죽음’이 사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오오오오!”
밀림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발락의 족장 아퀼라가 감격한 듯 외쳤다.
“비키르, 자네를 우리 부족의 주술사로 임명해야겠군!”
밤의 여우가 밤의 사냥개를 칭찬한다.
그 밖에도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부족들이 각기 서로 다른 저마다의 언어와 몸짓으로 비키르를 향해 외친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같았다.
사랑과 존경, 감사의 뜻이 가슴 벅찰 정도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역병 환자들 중 가족이 있던, 친구가 있던, 혹은 환자 본인이었던 이들이 비키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다.
그 말은 밀림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비키르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발락 내에서 비키르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꼬장꼬장한 늙은이들 역시 비키르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아들이나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을 구해 준 것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였다.
한편.
“……?”
비키르는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함과 동시에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붉은 죽음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얼굴.
비키르는 한참이나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구름같이 몰려든 환자들 중 찾던 얼굴은 없었다.
바로 그때.
타타타타타탁-
요란한 발소리가 들린다.
비키르는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찾고 있던 사람이 왔다는 것을.
고개를 돌리자.
퍽-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몸을 들이받는다.
아이옌. 그녀가 쏜살같이 달려와 비키르의 몸을 끌어안은 것이다.
우드득!
근육이 콱 조여들고 뼈가 비명을 지른다.
비키르는 순간 허리가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마나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이윽고, 비키르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아이옌의 볼을 잡아 올렸다.
“너 붉은 죽음에 걸렸다면서?”
하지만, 비키르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옌의 얼굴은 멀쩡했다.
몸에 붉은 기운도 없고 땀도 흘리지 않는다. 안색도 멀쩡했다.
다만 얼굴 전체에 어려 있는 옅은 홍조가 조금 신경 쓰일 뿐.
혹시나 해서 비키르는 성수가 풀려있는 강물을 그녀의 얼굴에 조금 뿌려 보았지만 그래도 홍조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옌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몸을 내려다본다.
“……어 뭐지?”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시 비키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병, 다 나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