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선조들의 망령 (1)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면 무엇이 나와도 소용없게 만들면 된다.’
휴고 레 바스커빌이 일곱 개의 이빨을 만들어 낼 일이 있을 때마다 하던 말이다.
그는 늘 수많은 도전자들을 맞이했고 그때마다 늘 그들을 자신의 칼 아래 거꾸러트려 왔다.
그동안 휴고에게 도전했던 이들 중에는 기습, 암살, 매복, 배신, 저주 등 의외성 넘치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했던 이들도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었다.
압도적인 강함.
그 앞에서 모든 변수와 의외성들은 그저 한낱 잔재주 정도로 전락해 버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키르는 이번 기회에 그 가르침을 그대로 써먹고 있었다.
[그르르르릉……]그 압도적인 강함이라는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는 것이 조금 다른 점이었지만 말이다.
위험등급 : A
크기 : 5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7부 능선
-두 개의 거대한 뿔을 가지고 있는 초대형 곰.
식육목 곰과 최강의 육상 포식자이며 완벽에 가까운 살상 병기, 적과 흑 산맥 7부 능선 생태계의 최강이자 정점으로 통한다.
동족을 제외한다면 천적이 거의 없는 마물.
두 개의 거대한 뿔을 가지고 있는 곰.
본디 신장 5미터, 체중 1톤 정도의 크기를 보이는 이 마물은 수해에서도 손꼽히는 위험종이다.
심지어, 이 옥스베어는 비키르와도 구면이었다.
‘……늙고 눈먼 암컷.’
신장이 다른 옥스베어들 보다 두 배는 족히 큰 녀석이다. 몸무게 역시 배는 육중했다.
위험등급을 따진다면 이 개체에 한해서만 A+급 이상을 메겨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일리아드가 벌어지고 있는 이곳은 이 늙은 암컷의 영역이었다.
비키르는 일전에 아이옌과 합동 사냥을 했던 경험으로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었고 일부러 큰 소란을 피워 암컷 옥스베어를 유인했다.
사냥을 나가 본 적이 별로 없었던 아흐헤만은 그것을 몰랐기에 이런 참변을 당한 것이다.
“끄으으윽…….”
아흐헤만은 입가에서 거품 섞인 침이 흐르는 것을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틀어막았다.
옥스베어는 예나 지금이나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귀를 쫑긋 세워 주위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가뜩이나 안 좋았던 눈이 더욱 나빠진 모양이로군.’
이 점 역시도 비키르가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스슥-
비키르는 조용히 뒤로 빠졌다.
/ 송곳
-1슬롯: 화상(火傷) -케르베로스(A+)
-2슬롯: 사일런트 힐 -무슈후슈(A+)
-3슬롯: 천근추 -옥스베어(A)
얼마 전 거대한 뱀 무슈후슈를 잡고 얻은 스킬 덕분에 발걸음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반면 아흐헤만은 여전히 비키르가 남겨 놓은 상처에서 케르베로스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흐으윽! 으으으읍!”
거기에 방금 전 옥스베어의 앞발에 강타당한 등이 이제야 충격을 전해 온다.
천천히 자각되는 고통과 계속해서 몰려오는 고통은 결국 아흐헤만의 피딱지 말라붙은 입술을 비틀어 열었다.
“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옥스베어가 바로 소리에 반응했다.
콰쾅!
옥스베어는 앞발을 후려쳐 아흐헤만의 하반신을 날려버렸다.
아흐헤만은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 나무에 부딪쳤고 그대로 다리와 허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다.
[크아아악!]옥스베어는 다시 한번 침입자를 향한 분노를 드러냈으나.
[끼이잉- 끼잉-]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이내 귀를 쫑긋 세운다.
옥스베어가 돌아본 곳에는 새끼 옥스베어 두 마리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새끼답지 않은 다부진 체격에 영민한 지성을 알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
암컷 옥스베어는 이내 침입자들을 향해 콧방귀를 한번 뀌어 주고는 새끼들에게로 되돌아갔다.
이쯤 되면 어미의 위엄과 단호함을 충분히 보여 줬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이윽고.
비키르는 다시 수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흐헤만은 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떨리는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숨은 붙어 있음이 분명하다.
바스락- 파사삭-
주변에서 잎사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껏 일리아드를 관전하던 발락의 전사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모든 전사들이 비키르와 아흐헤만을 둘러쌌다.
승자와 패자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비키르는 상처 하나 없었고 아흐헤만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끝났군. 승자가 정해졌어.”
“이쯤 되면 아흐헤만이 억울하든 말든 상관없는 거 아냐?”
“누가 결백한지를 떠나서 아흐헤만은 너무 추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아주 잘됐다고 봐.”
전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지금껏 붉은 역병 사태를 거쳐 현재의 일리아드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아흐헤만에게 크고 작은 실망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평가들을 듣는 아흐헤만은 바닥에 벌레처럼 엎어진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 왜!’
아흐헤만은 절규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저 비키르라는 놈, 그와 자신이 다를 게 뭔가?
외지에서 노예로 잡혀 온 것은 똑같은데 왜 저놈은 자신과 걷는 길이 이토록 다른가?
아흐헤만은 그동안 자신이 견디고 참아 왔던 오욕의 세월을 쭉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비키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도.
젊음. 자신을 따르는 족장의 딸. 주변 모든 동료들의 신뢰. 수해 전 부족의 지지와 사랑. 걸출한 능력과 빛나는 외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에 관심 없다는 듯 초연한 저 눈빛.
“……! ……! ……!”
아흐헤만은 이를 갈았다. 이빨이 죄다 빠져나가고 없어 뭉개진 잇몸이라도 갈았다.
아흐헤만은 이제 비키르에게서 눈을 떼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늙음. 자신을 성노리개 취급하던 늙은 주술사. 주변 모든 동료들의 멸시와 무시. 제국인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진 패. 인정받지 못한 능력과 이제는 불구가 되어버린 몸뚱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젊은이를 향한 모든 것을 다 잃은 늙은이의 열등감, 패배감, 증오, 울분, 보상심리 등등이 한데 섞여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리고.
“…….”
그런 아흐헤만과 마주쳤던 시선을 이내 돌려 버리는 아훈.
마지막 핏줄. 손자의 외면이 아흐헤만의 감정에 불을 당겨 폭발에 이르게 했다.
한편.
“…….”
아훈은 두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 아훈의 어깨를 탁 짚는 손이 있었다.
비키르. 그가 잔잔한 눈으로 아훈을 바라본다.
“네 손으로 수습해 드리는 게 어떻겠나.”
“……싫다.”
아훈은 고개를 저었다. 붉은 죽음 사태 때 여동생을 잃을 뻔했기에 그렇다.
제아무리 조부라고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것에는 그동안 꾸준히 자신과 여동생을 멸시해 온 것에 대한 서러움과 분노도 덧씌워져 있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순간쯤은 옆을 지켜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 때문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됐다! 저런 비겁자는 죽어 마땅해! 동정할 가치도 없다!”
아훈은 비키르의 손을 쳐낸 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쿠-오오오오오!
이변이 일어났다.
수해 곳곳에서 시커먼 마나들이 수상한 기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삐그덕- 끼걱!
뼈가 맞물리는 소리, 이윽고 아까 옥스베어의 앞발에 맞아 피떡이 되었던 오랑우탄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썩은 살점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옷을 벗고 해골만 남은 몸을 주워 일으켰다.
망자(亡者)의 등장에 발락의 전사들은 몸을 움찔했다.
오랑우탄들의 시체는 이내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며 걸어가 아흐헤만을 부축해 세웠다.
이윽고. 아흐헤만이 충혈된 눈을 들어 비키르를, 그 옆의 아훈을, 그 너머의 발락의 전사들 모두를 바라보았다.
“……다 필요 없다. 너희들 모두.”
아흐헤만이 포기를 선언했다. 그것은 일리아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발락의 전사로서 가진 모든 것들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발락인이 사라지는 즉시, 한 사람의 로코코인이 태어났다.
아흐헤만은 전사의 긍지를 버리자마자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심지어 로코코 내부에서도 거의 실전되다시피 한 사령술의 일부를 입에 머금었다.
유계로 돌아간 망자들을 도로 불러들이는 금단의 주문.
아흐헤만이 읊조리는 주술 주문을 들은 발락의 전사들은 경멸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또 그 같잖은 망자 소생술이냐?”
“정말 추하기 그지없군. 아무리 주술사라고는 하지만…….”
“하지만 어쩌나? 더 이상 소생시킬 원숭이도 없을 텐데!”
이 근방에는 더 이상 죽은 시체가 없다.
아흐헤만이 일으킬 수 있는 망자는 기껏해야 여기 있는 오랑우탄 몇 마리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
비키르는 눈치 챘다.
아흐헤만의 주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조금 더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비키르는 검은 마나의 기류가 향하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낯익은 장소가 보였다.
낮은 구릉지대 아래 높게 솟은 계곡과 폭포, 그 밑으로 흐르는 용자의 샘물.
발락의 역대 선조들이 묻혀 있다는 ‘용자의 무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