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선조들의 망령 (4)
아도나이가 쏘아 보내는 화살은 하나하나가 극도로 무서운 흉기였다.
하지만 그것을 잡아채 으깨버리는 손아귀가 있었으니.
“물러나 있거라.”
아퀼라. 그녀가 앞으로 나서 비키르와 아이옌을 가로막았다.
자신을 가로막는 여덟 구의 데스나이트를 원래 있어야 할 무덤 속으로 돌려보낸 그녀는 이제 최후의 정점, 발락의 궁극인 아도나이에게 맞서려 하고 있었다.
구시대를 이끌었던 아도나이, 그리고 신시대를 이끄는 아퀼라.
각기 궁술의 정점에 올라 있는 이 두 쌍봉(雙峯)은 지금 시대를 초월한 맞대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키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지고의 영역에 닿아 있는 두 절대강자, 마스터급 아우라 유저들의 전투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천지가 뒤집히던 멸망의 시대에서도 이 정도 강자들의 생사결은 흔하지 않았다.
“……어떻게 될까?”
“물어볼 가치도 없는 일이지.”
비키르의 의문에 옆에 있던 아이옌이 대답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는 절대 지지 않아.”
굳은 신뢰가 엿보이는 아이옌의 말.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까라락-
아퀼라는 커다란 활을 들어 정면을 겨누었다.
굵은 활시위가 엄청난 장력에 의해 당겨졌고 이내 강맹한 저격을 사출해 낸다.
콰쾅!
아퀼라는 은빛 아우라를 실어 아도나이를 저격했다.
단단한 고체 아우라는 마치 은으로 만들어진 화살처럼 날아가 아도나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아우라를 꿰뚫었다.
[…….]아도나이 역시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의 전투본능은 어찌나 날카로웠는지 죽어서 시체가 된 몸에도 단단히 박혀 있었다.
…후욱!
아도나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아우라가 증기처럼 폭발했다.
주변의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균열의 틈으로 자욱한 유황 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아도나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아우라는 마치 지옥의 불길인 양 유황을 타고 검게 넘실거린다.
그것들은 용오름을 타고 하늘로 뻗어 올라갔고 이내 드넓은 하늘에 먹구름으로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 짙은 암운(暗雲)을 향해, 아퀼라는 은빛의 섬광들을 폭사했다.
은빛 섬광과 검은 궤적이 서로를 사납게 살라먹는다.
그것은 그래듀에이터 초입의 아이옌은 물론이요 그래듀에이터 상급의 비키르조차도 제대로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아퀼라 님의 속사는 아도나이 님에게 필적할 정도로군.”
“우리 어머니의 활솜씨는 세계제일이니까. 그것은 비단 명중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두 명의 살아 있는 신화는 후대의 전사들을 제대로 개안(開眼)시키고 있었다.
아퀼라와 아도나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방전을 벌인다.
상대방이 움직이는 방향과 동선을 꿰고 예측된 경로로 화살을 미리 날려 놓는 것은 기본, 상대방의 화살이 날아오는 기류를 역이용해 회전 샷을 날린다거나 포물선을 만들어 화살이 위나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게 하는 고급 기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쾅!
아퀼라가 고개를 숙이자 검은 화살 한 대가 날아들어 뒤에 있던 통나무의 허리를 꺾어 버렸다.
…펑!
아도나이가 위로 훌쩍 뛰어오르자마자 그가 서 있던 모래톱에 은빛 화살이 박혀 전 방향에 모래의 쓰나미를 일으킨다.
일전일퇴의 공방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밀리고 있는 이는 아퀼라였다.
스팟!
아도나이가 쏜 화살이 아퀼라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검은 화살들은 아퀼라의 숨통을 천천히, 차근차근 조여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둘의 실력 차이 때문이 아니다.
아퀼라는 화살이라는 한정된 도구가 필요했고 아도나이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퀼라 역시도 종종 아도나이처럼 화살 없이 그저 아우라만을 응집해서 쏘아 보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나 소모가 너무 심해서 정말 급박한 순간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었다.
반면 아도나이는 지옥에서 끌어다 쓰는 음차원의 에너지 덕분에 순도 100%의 고체 아우라 화살들을 펑펑 사출한다.
심지어.
“……바람의 방향조차 불리하군.”
비키르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도나이는 바람을 등지고 있었고 아퀼라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수해의 바람은 편을 들어주려는 듯 아도나이의 화살에 더욱 더 힘을 실어 주고 있었고 반면 아퀼라의 화살이 가지는 힘은 반감된다.
이 차이는 점차 잔상처가 많아지는 아퀼라의 몸 상태로 점점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었다.
심지어 아도나이가 쏘아 보내는 저격에는 마담 여덟다리의 독이 깃들어 있지 않던가!
츠츠츠츠츠……
아퀼라의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이 검게 물든다.
그녀의 안색은 반대로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핑- 피핑- 핑-
심지어 아퀼라가 날려 보낸 화살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은 그녀의 화살을 감싸 안고 아도나이에게 전혀 닿지 않는 다른 방향으로 날려버렸다.
마치 밀림 전체가 아도나이를 수호하고 있는 모양새. 그는 정말 수해의 신인 것일까?
비키르는 고민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불리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지를.
이대로라면 아퀼라는 지고 발락의 모든 전사들 역시도 데스나이트 무리에 밀려날 것이다.
‘……역시 아흐헤만부터 잡아 죽여야 하는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버티고 있는 아도나이의 철벽을 뚫어야 한다.
더군다나 아흐헤만은 모든 데스나이트를 철수시킨 것이 아니라 아도나이를 비롯한 몇몇 네임드 급 데스나이트의 조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발락의 전사들은 소금을 뿌려도 약간 주춤할 뿐, 전혀 기세가 죽지 않는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상대하느라 고전하고 있다.
“누군가 가서 마을에 남은 다른 전사들을 불러와야 한다! 이대로라면……!”
비키르가 다급하게 외치는 순간.
아이옌이 그의 입을 막았다.
“쉿. 이제 거의 다 이겼어.”
“……?”
비키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점 지쳐 가고 있는 아퀼라, 역풍을 타고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그녀의 화살들.
반면 여전히 쌩쌩하게 움직이는 아도나이.
대체 어딜 봐서 이겼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비키르보다 궁술이 뛰어난 아이옌의 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옌. 그녀는 아퀼라가 펼치는 신기(神奇)를 넋 나간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보인다. 그래. 어머니가 보고 있는 것이 내게도 보여.”
“……?”
비키르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때.
이변은 갑자기 벌어졌다.
…푹!
의문의 화살 한 자루가 날아들어 아도나이의 등팍 한가운데에 박힌 것이다.
정통으로 꽂힌 화살 한 가닥이 파르르 떨린다.
그것은 전혀 의외의 방향, 위도 아래도, 옆도 아닌 뒤에서 날아들었다.
[……?]아도나이는 잠시 멈칫했다. 뒤에는 분명 아흐헤만 한 명밖에 없었을 터인데?
하지만.
퍼-억!
곧바로 또 한 대의 화살이 날아들어 아도나이의 뒤통수에 박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피피피피핑!
엄청난 수의 화살들이 ‘뒤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어억!?”
아흐헤만이 바닥에 벌레처럼 납작 엎드렸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몇 대가 아흐헤만의 뒷덜미 북 찢으며 스치고 갈아갔다.
“……!”
비키르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의 정체가 보인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아퀼라가 쏘아 보내던 눈먼 화살들이었다!
피피피핑!
또다시 후방에서 화살비가 쏟아진다. 여전히 아도나이의 등을 노리고!
휘이이이이잉-!
매서운 바람이 아퀼라의 화살들을 아도나이에게로 인계하고 있었다.
그제야 비키르는 이 기현상의 원인을 눈치 챘다.
아퀼라가 쐈던 화살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견 잘못된 방향으로 꺾인 것 같았지만 다시 수해 전체에 몰아치는 회오리를 타고 위로 용솟음쳤다가 그대로 한 바퀴를 회전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향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아도나이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검은 와류의 중심부, 바람이 시작되는 곳을 향해서!
…퍽! …퍼퍽! 콰긱!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던 아도나이의 등팍이 순식간에 고슴도치처럼 변해 버렸다.
바람에 두 번 튕긴 화살은 원래 쏘아졌을 때보다 더욱 더 강력해져서 과녁을 노린다.
바위나 통나무도 퍽퍽 관통하는 아퀼라의 화살은 아도나이의 강력한 육신을 완전히 꿰뚫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깊게 박히고 있었다.
펑!
아도나이의 허벅지에 박힌 화살 위에 또 다른 화살이 떨어졌다.
그제야 비로소 아도나이의 허벅지를 관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아도나이는 비틀거린 끝에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아퀼라는 지친 안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위대한 선조여. 그대가 만약 살아생전의 멀쩡한 정신이었다면 이런 초보적인 우를 범하지 않았을 터. 그것이 슬프오.”
아퀼라는 거동이 불편하게 된 아도나이를 향해 마지막 화살을 날려 보냈다.
뒤에서는 눈 먼 화살이, 앞에서는 눈 뜬 화살이 날아든다.
아도나이는 결국 아퀼라의 마지막 저격을 피하지 못했다.
퍼억!
뒤통수에 반쯤 박혀 있던 화살과 이마에 반쯤 박혀든 화살.
…쩡!
두 개의 화살촉이 한 점(點)에서 맞닿는 순간.
쿵-
아도나이는 무릎을 꿇었다.
전 세대의 전설이 새로운 시대의 신화 앞에 고개를 수그린다.
“…….”
아퀼라는 눈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인 아도나이를 바라보았다.
이겼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아퀼라는 지금이 최고 전성기였고 방금까지 상대했던 아도나이는 이미 노환으로 늙어 죽은 뒤 시체로 소생한 상태가 아니던가.
게다가 생전의 이지는커녕 기본적인 지능도 없는 시체인형 상태였으니 제대로 된 승부라고 할 수 없었다.
‘만약 아도나이 님 역시도 전성기 시절의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퀼라는 고개를 저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결과만이 예상될 뿐이었으니까.
그때.
“크아아아아!”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흐헤만이 아도나이의 시체를 부여잡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도나이의 시체로 만든 데스나이트가 쓰러진 이상 승패는 났다.
몇 구 남지 않은 데스나이트들이 아흐헤만의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발락 전사들이 아흐헤만을 포위했다.
“이제 그만 죽어라.”
아이옌이 경멸스럽다는 눈초리로 아흐헤만을 노려본다.
하지만.
아직 아흐헤만의 도박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거의 모든 생명력과 마나를 잃었고 하반신까지 불구가 되었지만 아직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오지 마!”
아흐헤만은 아도나이의 시체와 다른 조상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한 웅큼 움켜잡았다.
“다가온다면 네놈들의 선조는 나의 피로 오염될 것이다!”
아흐헤만의 협박에 아퀼라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발걸음이 순간 주춤했다.
배신자의 피를 뒤집어쓰게 되면 그 영혼은 전사들의 낙원으로 갈 수 없게 된다는 미신.
아흐헤만은 최후의 순간 이 작은 미신에 기대어 다른 이들을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사들의 영혼은 아흐헤만에게 농락당한 것도 모자라 영원히 낙원에 갈 수 없다.
가뜩이나 놈은 주술에 조예가 깊었던지라 더더욱 찜찜한 상황이었다.
“…….”
아퀼라는 활을 들었지만 아흐헤만은 교활하게도 선조들의 시신 뒤에 바짝 붙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전사들 역시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가딱하면 조상들을 영원히 성불시킬 수 없을지 모르기에.
바로 그때.
“모두들 물러나십시오.”
비키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비키르가 활을 들어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비키르가 겨누고 있는 화살은 전혀 엉뚱한 방향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어찌할 셈이냐?”
방금 전까지 바람을 이용해 신기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여 준 아퀼라조차도 감이 오지 않는다는 눈빛.
하지만. 비키르는 자신만만했다.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십시오.”
그것이 비키르의 마지막 조언이었다.
동시에.
핑-
비키르의 활에서 쏘아진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것이 꽂힌 곳은 통나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 그 목책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넝쿨 매듭이 있는 곳이었다.
…툭!
비키르가 화살을 날려 끊어 버린 넝쿨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윽고.
그르르륵- 끼기기긱-
수많은 넝쿨들이 하나둘씩 끊어지는가 싶더니 무거운 통나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넝쿨에 의해 고정되어 있던 목책 둑이 무너지자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이 사이사이로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촤아아아악-
그것은 기나긴 우기 동안 불어났던 강물, 허연 소금들이 잔뜩 녹아 있는 소금강의 파도였다!